전정의장(殿庭儀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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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의 공식 행사 때 궁궐 마당에 배치되는 왕, 왕비 등 특수 신분자의 상징 의물 및 그 구성 체제

개설

조선의 공식 행사가 진행될 때는 행사의 성격에 따라 중요 인물의 신분을 상징하는 의장을 배치하게 된다. 궁궐에서 진행되는 행사에서는 주인공인 왕과 왕비, 왕세자의 의장이 규정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시행되는 망궐례(望闕禮) 등의 행사에서는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황의장(黃儀仗)과 황태자를 상징하는 홍의장(紅儀仗)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의 전정의장, 즉 궁궐에서 공식적인 행사가 진행될 때, 마당에 배치되는 의장은 『세종실록』「오례」에 의하면 왕이 외부로 행차할 때 사용되는 노부(鹵簿)와 구성이 동일하였다. 이러한 규정은 성종 때 편찬된 후로 조선의 예전(禮典)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도 동일하게 계승되었다.

조선시대 의장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주로 참조한 자료는 당의 제도를 수록한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송의 제도를 담은 『문헌통고(文獻通考)』 등이었고, 이외에도 고려의 관련 기록과 동시대의 중국 왕조인 명나라의 『제사직장(諸司職掌)』 등을 검토하였다. 의장과 관련된 사항을 당에서는 여연(輿輦), 정기(旌旗)와 노부로 정리하였고, 송에서는 승여(乘輿)와 거기(車旗), 노부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이들은 군왕이 이동할 때 갖추게 되는 사항을 성격별로 구분한 것인데, 여연이나 승여는 통치자가 이용하게 되는 수레와 탑승 장치를, 정기와 거기는 이에 수반되는 치장물을, 노부는 이동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갖추게 되는 수레의 종류와 치장을 종합한 것이었다. 이와 별도로 궁궐 안에서 공식 행사가 진행될 때도 다양한 시위 병력이 동원되었는데, 송나라에서는 여기에 각종의 의장기(儀仗旗)를 추가하였다. 송대를 거치면서 노부와 의장 사이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다양한 등급의 노부가 수록되어 있는데, 동원되는 병력과 의장물에 대한 사항을 기재하고 있으나 수레의 편성은 기재하고 있지 않다. 반면에 궁궐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배치되는 의장은 노부에 동원되는 의장물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고려는 원칙상 당과 송의 제도를 수용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 상세한 내용은 이미 『고려사』를 정리하는 단계에서는 산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의 의장 정비 과정에서 참조한 명나라의 『제사직장』에서는 왕 이동 시의 편성을 의미하는 노부가 의장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궁궐 행사에 사용되는 별도의 의장을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 조선의 궁궐 의장이 연원하게 된 정확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지만, 대체로 명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제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서는 황제의 노부나 의장 제도가 아닌 친왕(親王) 등급의 의례 제도를 정비하고자 하였는데, 이에 부합되는 체제나 규정을 중국의 고제(古制)나 고려의 제도에서 참조할 수 없었다. 조선에서는 명의 제도를 참작하여 조선 나름의 의장 제도를 갖추었다. 따라서 의장을 구성하는 개별 의장물은 중국의 유교식 제도에 준하여 수용하였지만, 전체적인 의장 구성은 조선 독자의 편성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태조의 장례식에 동원되는 길의장(吉儀仗)이 후대의 노부 제도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태조 때부터 노부에 동원되는 의장물은 대체로 갖추어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행차의 규모에 따라 노부를 대가(大駕)와 법가(法駕), 소가(小駕)로 구분하는 방식은 세종 때 확립되었다. 아울러 노부의 의장물을 그대로 궁궐 마당의 의장에 동원한다는 원칙도 세종 때 제정되었다. 세조대를 거치면서 노부에 대응하여 전정의장에서도 대장(大仗), 반장(半仗), 소장(小仗)의 등급 구분이 확정되었다.

세조 때는 군대의 지휘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형명(形名)이 재정비되었는데, 형명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의물은 표기(標旗)와 교룡기(交龍旗), 둑(纛) 등이었다. 이들은 제정 초기에는 노부를 구성하는 의장물과는 구분되어 실제로 군대를 지휘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형명을 구성하는 의장물은 왕의 행차 시 반드시 동원되는 것이었으므로, 점차 노부의 의장물과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의 노부에는 형명을 구성하였던 교룡기와 둑 등이 포함되어 사용되었고, 궁궐 마당의 의장에서도 이를 준용하여 교룡기와 둑이 추가된 의장 편성을 갖게 되었다.

절차 및 내용

궁궐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동원되는 의장물은 몇 차례에 나누어서 배치된다. 『국조오례의』를 기준으로 배치 방식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의장은 행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초엄(初嚴) 단계에서 병조(兵曹)의 주도로 배치된다. 이들 의장은 행사의 등급에 따라 규모가 조정되는데, 의장의 시작은 문 바깥에 배치되는 홍문대기(紅門大旗)에서 시작하여 후전대기(後殿大旗)에서 끝난다. 세종 때에는 동쪽과 서쪽 마당에 이들 의장을 세 줄로 배치하였지만, 『국조오례의』에서는 동쪽과 서쪽 및 남쪽 담장을 따라서 배치하였다. 『국조오례의』 단계에서 의장은 상징 대상의 신분을 표시할 뿐 아니라, 행사 공간을 의례적으로 표시하는 기능을 하였다. 수정장(水精杖)과 부월(斧鉞) 같은 일부 의장은 왕이 위치하는 건물의 앞쪽 월대에 배치되어 왕의 상징적 능력을 직접적으로 표시하게 된다.

의장 배치와 동시에 왕이 사용하는 수레와 각종 탈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행사장의 가운데 도로와 동쪽과 서쪽 마당의 공간에 진열한다. 문 밖에서 이용하는 여(轝)와 문 안에서 이용하는 연(輦)이 배치된다. 이들 여와 연은 행사 규모에 따라 보조 여와 연이 추가로 배치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왕이 착석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교의(交椅)와 어마(御馬), 장마(仗馬) 등이 배치된다. 궁궐 행사이기 때문에 왕이 실제로 이들을 이용하지는 않고, 신분상의 상징성만을 갖게 된다.

세 번의 북을 쳐 왕의 거둥을 알리는 삼엄(三嚴) 단계에서는 왕이 입장하는데, 홍양산(紅陽繖)과 청선(靑扇) 등의 의장이 왕을 수행하여 들어와서 어좌의 전면과 좌우에 위치하게 된다. 이들 의장은 왕이 현재 그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상징하게 된다.

조선의 궁궐에서 사용되는 의장 중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황의장과 황태자를 상징하는 홍의장이 있다. 이들 의장은 행사장 건물의 앞쪽과 좌우에 배치되는데, 건물의 월대를 중심으로 그 일대가 황제, 혹은 황태자의 공간이 되었음을 나타내게 된다. 제한적인 상징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들 의장은 약식으로 편성된 점이 특징이다. 황의장은 황양산(黃陽繖)이, 홍의장은 홍양산(紅陽繖)이 대표적인 의장이며, 행사장 건물에는 패(牌)를 두어서 황제와 황태자를 대신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통전(通典)』
  • 『문헌통고(文獻通考)』
  • 『대명집례(大明集禮)』
  • 『제사직장(諸司職掌)』
  • 백영자, 『조선시대의 어가행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994.
  • 강제훈, 「조선전기 국왕 의장제도의 정비와 상징」, 『사총』77, 2012.
  • 김지영, 「조선시대 典禮書를 통해 본 御駕行列의 변화」, 『한국학보』3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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