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杖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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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초 형조에 배속되어 죄수를 체포·연행·치죄하는 과정에서 잡역을 담당한 잡류직.

내용

장수(杖首)는 소유(所由)·나장(螺匠)과 함께 형관의 졸도(卒徒)로 구분되는데, 사헌부(司憲府)에서는 소유, 형조(刑曹)에서는 장수, 의금부(義禁府)에서는 나장이라고 지칭되었다.

고려시대 형조 소속 장수는 26명으로 죄인을 심문할 때 형장(刑杖)을 가하는 역할을 하였다. 고려의 직제를 전습한 조선시대 형조의 장수는 잡류(雜類)로 구분되어 죄인을 체포하고 심문할 때 압송 및 형장(刑杖)을 가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1418년(태종 18) 형조의 낭청이 조회에 참석할 때 조례(皂隷)를 거느리도록 하였는데, 특별히 조례가 없었던 형조는 장수를 형조 낭관(郎官)의 조례로 만들어 배종시키기도 하였다.

조선초 장수와 유사한 직종인 공상(工商)·천례(賤隷)·조예(皂隷)·소유(所由)·나장(螺匠) 등의 잡류직(雜類職)은 관직(官職)만 획득하면 조관(朝官)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1430년(세종 12) 장수를 비롯한 잡류는 별도로 잡직(雜織)에 편입시켜 문무반(양반)과 구분하였다. 1448년(세종 30) 거관(去官)한 장수·나장·소유 가운데 그대로 종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섭육십(攝六十)의 격례(格例)에 따라 시취(試取)하고, 입격한 사람은 종전대로 종사하도록 하였다.

1457년(세조 3) 도성의 야간 치안을 위해 병조(兵曹) 이외에 의금부(義禁府)와 형조의 낭관은 표신(標信)과 군호(軍號)를 소지하고 영사·장수·나장·백호(百戶) 등을 거느리고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순찰(巡察)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종(睿宗) 이후 형조 소속의 장수라는 명칭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장리(杖吏)가 담당했던 체포 및 형벌 집행은 형리(刑吏)와 사령(使令)이 대신 실시하였다.

용례

命護軍李攝贖杖八十 巡禁司請攝抶刑曹所遣杖首 又通三寸姪李陽德曾奸之婢古音年之罪 命減攝罪二等 古音年亦減二等 贖杖六十(『태종실록』 13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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