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영(李喜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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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57년(영조 33)~1801년(순조 1) = 45세]. 조선 후기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활동한 문인화가이자 천주교도. 세례명은 루가. 자는 추찬(秋餐)이고, 본관은 양성(陽成)이며, 거주지는 서울과 경기도 여주이다. 아버지는 이소(李熽)이다.

정조~순조 시대 활동

1801년(순조 1)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한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순교한 김건순(金健淳)과 절친하였던 이희영(李喜英)은 본래 여주에 거주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만나 세례를 받고 더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이희영은 젊었을 때 정철조(鄭喆祚)에게 그림을 배워 천주교 성화(聖畫) 이외에도 영모화와 산수 등을 즐겨 그렸다. 예수상 3점을 그려 황사영(黃嗣永)에게 보낸 것 때문에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은 후 요서(妖書)·요언(妖言)을 퍼트렸다는 죄목으로 3월 29일 45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사망하였다.(『순조실록(純祖實錄)』 1년 3월 29일),[『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순조 1년 3월 29일]

유작으로는 사생풍의 「견도(犬圖)」(숭실대학교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와 「누각산수도」(개인 소장)를 비롯해서 남종화풍의 산수도가 여러 점 전하고 있는데, 서양화법의 특징도 보인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사학징의(邪學懲義)』
  •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안휘준, 『한국회화사(韓國繪畵史)』, 일지사,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9,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