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봉도(栗峰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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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충청도 청주의 율봉역을 중심으로 편성한 역도.

개설

율봉도(栗峰道)는 세종대에 역도-속역 체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충청도 청주의 율봉역(栗峰驛)을 중심으로 설치된 역도(驛道)로, 세종과 세조대를 거치면서 존폐를 거듭하다가 1460년(세조 6)에 확립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에 역제(驛制)가 폐지됨에 따라 철폐되었다.

내용 및 특징

율봉도는 이인도(利仁道)·성환도(成歡道)·시흥도(時興道)·연원도(連原道)·금정도(金井道)와 더불어 충청도 지역에 편성된 역도이다. 청주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진천, 동북쪽으로 청안, 동남쪽으로 보은-회인-상주 방면, 남쪽으로 문의-옥천-영동-황간-추풍령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와, 옥천에서 무주 방면을 연결하는 역로를 관할하였다. 조선 개국 초에는 역승(驛丞)이 주재하였으나, 나중에는 찰방(察訪)이 역무를 관장하였다.

변천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역도를 언제부터 개혁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태종과 세종대의 역도 개편의 과정을 거쳐 1457년(세조 3) 9월에는 병조(兵曹)의 수교관문(受敎關文)에 의거하여 이조(吏曹)에서 계(啓)한 바에 따르면 국도(國都) 주변의 경기 여러 역과 강원·충청도의 일부 역을 합속하여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경기충청좌우도(京畿忠淸左右道)·경기충청도(京畿忠淸道)·경기강원도(京畿江原道)의 6도로 나누어 역승을 폐지하고 정역찰방(程驛察訪)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역도-속역 체제의 개편 과정에서 충청도 지방의 역도는 1460년과 1462년(세조 8)의 역제 개편을 통해 일부 역도가 통합되면서 완성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충청도에는 율봉도를 비롯해 일신도·연원도·성환도·황강도·증약도·시흥도·금정도·이인도가 설치되었다. 그 중 율봉도는 쌍수역(雙樹驛)·덕류역(德留驛)·금사역(金沙驛)·저산역(楮山驛)·태랑역(台郞驛)·장양역(長楊驛)·시화역(時化驛) 등 7개의 속역으로 구성되었다. 이어 세조 연간인 1457년에는 율봉도와 증약도의 모든 역과 괴산의 인산역(仁山驛), 음성의 감문역(甘門驛)을 통합하여 증약도라 하였다. 1460년(세조 6)에는 율봉도에 속한 청주의 율봉역·쌍수역·저산역(猪山驛), 진천현의 태랑역·장양역(長陽驛), 문의현의 덕류역, 청안현의 시화역과 연원도에 속한 충주의 연원역(連原驛)·단월역(丹月驛), 연풍현의 안부역(安富驛)·신풍역(新豊驛), 음성현의 용안역(用安驛)·감원역(坎原驛), 괴산군의 인산역(仁山驛)과, 황강도의 속역인 청풍군의 황강역(黃江驛)·수산역(水山驛)·안음역(安陰驛), 단양군의 장림역(長林驛)·영천역(令泉驛), 영춘현의 오사역(吾賜驛), 제천현의 천남역(泉南驛) 등 총 21개 역을 통합하여 율봉도라 하였다. 그 뒤 1462년에 역제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율봉도는 율봉역·쌍수역·저산역·장양역·태랑역·시화역·증약역(曾若驛)·가화역(嘉禾驛)·토파역(土破驛)·순양역(順陽驛)·화인역(化仁驛)·전민역(田民驛)·덕류역·회동역(會洞驛)·신흥역(新興驛)·사림역(舍林驛)·원암역(原巖驛) 등 17개 속역을 관할하는 역도로 확립되었다.

한편 1808년(순조 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쌍수역·저산역·장양역(長楊驛)·태랑역·덕류역·시화역·함림역(含林驛)·원암역(元巖驛)·증약역(增若驛)·가화역(嘉和驛)·토파역(土坡驛)·순양역·화인역·회동역·신흥역·전민역 등 16개의 속역과 3등마 478필, 아전과 군졸 8,704명이 있었다고 기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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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만기요람(萬機要覽)』
  •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 유선호, 「朝鮮初期의 驛路와 直路」, 『역사교육』7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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