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五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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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의 다섯 행성.

개설

오성(五星)은 오행성(五行星)으로, 황도 궤도를 따라 이동하는 5개의 행성을 일컫는다. 현대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매겨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라 칭하지만, 전통적 용법으로는 오행상생설(五行相生說)에 따라 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이라 불렀다. 오성은 본래 각각 세성(歲星), 형혹성(熒惑星), 진성(鎭星), 태백성(太白星), 진성(辰星)이라 칭하였다. 그러다가 지상의 자연 변화를 통찰하면서 구한 이론인 목·화·토·금·수의 오행 사상이 성립된 뒤로는 이를 천상의 다섯 행성으로 투영하여 각기의 이름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에 고대 천문학을 처음으로 집성·체계화한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에서 “하늘에 오성이 있고 땅에는 오행이 있다.” 하는 천지상응 오성오행론을 제창하였고, 이는 이후로 2천 년 이상 전근대시대 내내 동양 천문론의 근간이 되었다.

내용 및 특징

오성은 다른 말로 오위(五緯) 또는 오요(五曜)라고도 일컫는다. 오위는 경성(經星)에 상대되는 말이다. 현대 천문학적으로 경성은 붙박이별인 항성(恒星)과 같은 개념이나, 옛 천문학에서는 주로 28수(宿) 별자리를 지칭한다. 하늘의 별자리를 씨줄과 날줄로 보아, 적경(赤經) 역할을 하는 28수를 경성으로 삼고, 이들 사이로 이동하면서 천문의 변화를 주도하는 행성을 날줄이란 뜻의 위성(緯星)이라 칭한 것이다. 이 ‘위성’은 현대 천문학에서 각 행성의 달을 가리키는 ‘위성(衛星)’과는 다른 말이다. 육안으로 관측되는 행성은 고대 동양이나 서양이 모두 일찍부터 5개로 관측하였다. 이것을 오성으로 묶어 중시한 것이다. 망원경이 발명된 뒤로는 천왕성, 해왕성 등이 추가되었으나 이들은 육안 관측이 불가한 행성들이다. 그런데 하늘에 움직이는 별은 오성 외에 둘이 더 있다. 해와 달이 그것인데, 이들까지 합쳐서는 칠요(七曜)라 일컫는다. 요(曜)란 말은 해와 달, 그리고 오성에만 붙인다. 이렇게 칠요가 천상과 지상의 재이론적 해석을 주도하는 존재가 된다는 인식에서 칠요를 다른 말로 칠정(七政)이라 칭하였다. 하늘의 정사(政事)를 이끄는 일곱 별이라는 의미이다. 조선 세종 때 간행된 해·달·오성의 운행 도수를 다룬 천문 역법서 이름을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 지은 것은 이런 맥락이다.

고대에 오성의 1주천(周天) 주기는 토성은 약 30년, 목성은 12년, 화성은 2년, 금성과 수성은 1년으로 추산하였다. 여기서 주천이란 천체가 각기 자신의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현대 주천 값은 토성은 29.46년, 목성은 11.86년, 화성은 1.88년, 금성은 0.62년, 수성은 0.24년이다. 동일한 위상이나 합충으로 회복하는 회합(會合) 주기는 토성이 378.1일, 목성이 398.9일, 화성이 780.0일, 금성이 583.9일, 수성이 115.9일이다.

오성은 또한 각기의 특성에 따른 별칭들이 붙어 있다. 금성은 겉보기 등급이 최대 -4.6등급으로 매우 밝아 달빛에 견줄 수 있다는 뜻에서 태백성(太白星)이라 하였다. 금성은 또한 내행성이라 태양과 근접하는데, 새벽 동쪽 하늘에서 보이는 금성은 샛별 또는 계명성(啓明星)·명성(明星)이라고도 했으며, 저녁 서쪽 하늘의 금성은 장경성(長庚星) 혹은 개밥바라기라고도 불렀다. 화성은 붉은색을 띠는 행성인데, 밝기가 불빛처럼 때에 따라 어두웠다 밝았다 한다 하여 깜빡깜빡하는 등불에 비유되었다. 또 보이는 행적이 일정치 않아 사람들을 미혹(迷惑)한다 하여 형혹성이란 이름을 가졌다. 형(熒)은 등불을 가리킨다. 토성은 진압한다는 뜻의 진성(鎭星), 28수 각 자리를 차례로 메워간다는 뜻에서 전성(塡星), 또는 오상(五常)의 중앙토(中央土)에 대응한다는 의미에서 신성(信星)이라고도 일컬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오성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 먼저 서운관(書雲觀) 산하 관원들에 대한 업무와 승진 방침을 개진한 예조(禮曹)의 계문에 나타난다. 예조의 보고에 따르면, 금루(禁漏)를 맡은 자는 원래 인원수가 40명이며, 4개 조로 나누어 번갈아가며 입직하되, 직무는 낮이면 시각을 아뢰고 밤이면 누각을 맡는다 하였다. 천문생(天文生)은 원래 인원수가 20명이며, 일월(日月)과 오성 등을 기술(記述)하고 매년 음양의 교회(交會)를 관측하되, 매일 5명씩 입직하여 밤낮의 날씨와 천문을 관찰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면서 이들의 일이 정밀하여 역무(役務)가 고되니 더 많은 관원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서운관의 참외녹관(參外錄官) 10명 중에, 금루(禁漏) 담당자가 종전은 7품 1명, 8품 1명, 9품 1명이었는데 여기에 9품 1명을 더 배정해주고, 풍수학(風水學) 담당자는 전례에 따라 참외녹관인 체아직(遞兒職) 1명을 두자고 하였다. 나머지 녹관은 모두 천문생에게 주고, 만약 6품에 승진시킬 차례가 되면 천문·금루·풍수학을 합하여 한 도목(都目)으로 하되, 그 숙직 횟수의 많고 적음과 취재(取才)에서의 능부(能否)를 심사하여 우수한 자 한 명을 천망(薦望)하기를 청하였다(『세종실록』 7년 11월 29일). 이를 보면 서운관 산하 천문생이란 직책이 일월과 오성을 관측하고 일식·월식을 예보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품직은 7~9품 내외의 참외녹관에 해당함을 보여준다.

세조 때에는 이조(吏曹)에서 역산(曆算) 생도(生徒)를 권려하고 징계하는 법의 개선책을 개진하였다. 삼사(三司)의 사람들이 곱셈과 나눗셈[乘除法]을 조잡하게 아는 정도이고, 계산법의 일종인 입방개법(立方開法)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3승방(乘方)·4승방 등의 방정식(方程式), 개방법(開方法) 등을 알겠느냐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산소(曆算所) 또한 서운관의 업무를 겸임하며, 아울러 서운관의 여러 역술자(曆術者)들이 매년 태양, 태음, 오성, 사여(四餘), 현행력, 일식·월식 추산 등을 모두 역산으로 교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후로 서운관에 결원이 생겨 보충할 때는 역산훈도(曆算訓導)와 학관(學官) 중에서 품등(品等)에 따라 높고 낮음을 헤아리지 않고 체아직(遞兒職)을 차하(差下)하도록 요청하고 있다(『세조실록』 6년 6월 16일).

참고문헌

  •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
  • 『여씨춘추(呂氏春秋)』
  • 『회남자(淮南子)』
  • 『천문류초(天文類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사계절, 2008.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대부터 조선까지 한국 별자리와 천문 문화사』, 고즈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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