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거호대(雙擧互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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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영조대에 탕평을 위해 관직에 각 당의 인사를 분배하여 배치하던 정치 운영술.

개설

쌍거호대는 호대(互對)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하였다. 영조대 탕평책을 운영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제기된 것인데, 중요 관직에 각 당의 인사를 분배하여 배치하는 방식을 말한다. 영조 초반 탕평을 주도했던 조현명(趙顯命)을 통해서 구체화되어 쌍거호대를 추진하였다. 1740년(영조 16) 이후 대탕평(大蕩平)을 주장하는 원경하(元景夏) 등은 쌍거호대를 비판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후기 영조대 탕평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정치 운영술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이조(吏曹)의 경우 이조 판서에 노론을 임명하면, 이조 참판에는 소론을 임명하고, 이조 참의에 노론을, 그리고 전랑에 소론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쌍거호대는 영조대 전반 탕평을 주도했던 조현명에 의해서 구체화된 것으로, 그의 형 조문명(趙文命)이 이조 참의로 재직하던 때에 실천하려 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734년 이후 조현명이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더욱 구체화되어 시행되었다.

조현명이 쌍거호대를 주장한 이유는 한편을 등용하고 한편을 물리치는 데서 당쟁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일진일퇴(一進一退)에 이르고 결국에는 살육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당쟁을 구제하는 방법으로 쌍거호대를 시행하자고 했다. 단, 쌍거호대가 모든 관직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고 고관대작이나 청요직(淸要職)과 같이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거나 민감한 관직에 한정하는 것이었다.

변천

쌍거호대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비판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1733년(영조 9) 정언심명열(沈命說)은 이쪽 편 한 사람을 쓰고자 할 때 반드시 저쪽 편 한 사람을 쓰는데 재주가 있고 없고는 논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였다(『영조실록』 9년 1월 5일). 심명열 외에도 상당수의 논자들이 비난하였다. 그러나 영조도 인정하듯이 전조(銓曹) 즉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에서 쌍거호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당쟁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부득이한 것이었다. 1740년 이후 원경하(元景夏)를 중심으로 대탕평이 제기되면서 쌍거호대는 더욱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영조실록』 17년 3월 18일).

참고문헌

  • 이근호, 「조현명의 현실 인식과 국정 운영론」, 『한국사상사학』32, 2009.
  • 정만조, 「귀록 조현명 연구: 그의 탕평론을 중심으로」, 『한국학논총』8,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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