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무사(巡撫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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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변란이나 외적의 침입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관직.

개설

순무사(巡撫使)는 조선 태조 이후 고종 때까지 필요할 때 설치했다가 임무가 끝나면 폐지시킨 임시 관직이다. 조선전기에는 주로 국토방위를 위한 성곽의 축조와 보수를 위해 파견되었으나, 후기에는 변란 진압과 외적의 침입을 막는 임무로 확대되었다.

담당 직무

순무사는 왕명을 받아 특별한 사안을 처리하였다. 그 임무는 시기별로 차이가 있었다. 조선초기 태조와 세종 때는 국경 지대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 축조와 보수에 치중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숙종 때는 전라도·경상도 등지의 연해를 방어하기 위한 방비책을 강구하였고, 영조·순조·고종 때는 지방의 변란을 진압하고 외적을 방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변천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백성을 위무하는 순무사는 고려후기에도 있었다. 1276년(고려 충렬왕 2) 안무사(按撫使)를 순무사로 개칭했는데, 이때의 순무사는 백성들의 어려움과 지방관의 잘잘못을 살피는 임무를 맡은 임시 관직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때 순무사를 파견한 이래 간헐적으로 고종 때까지 이어졌으며, 시기별로 그 역할과 성격에 차이가 있었다. 개국 초 1395년(태조 4)에 원종공신 최윤지(崔允祉)가 서북면도순무사로 재직한 기록이 있다(『태조실록』 4년 6월 26일).

세종 때는 1429년(세종 11)에 최윤덕(崔潤德)을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도순무사(都巡撫使)로 삼아 성곽 축조를 감독하도록 했다. 1433년(세종 15)에는 심도원(沈道源)을 함길도순무사로 임명하여 갑산·혜산 등지에 성을 쌓거나 보수하도록 했다. 1434년에는 박곤(朴坤)을 강원도도순무사로 파견하여 성을 쌓도록 했다. 조선전기에 순무사는 국토방위를 위해 성곽을 축조하고 보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조선후기 숙종 때는 1675년(숙종 1)에 이세화(李世華)를 전라도순무사에 임명해 전선(戰船)과 병사의 상태, 지방관의 민폐 여부 등을 점검 조사하도록 하고, 연해 방비책을 강구하고 유사시에 대비하도록 했다. 1695년(숙종 21)에는 삼남, 즉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순무사를 파견하여 민정과 민폐를 조사하여 아뢰도록 했다.

영조 때는 1728년(영조 4)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오명항(吳命恒)을 사도(四道) 도순무사로 삼아 난을 진압하도록 했다. 성공적으로 난을 진압한 순무사를 맞이하기 위해 영조가 몸소 남대문까지 마중 나가기도 했다(『영조실록』 4년 4월 19일).

순조 때는 1811년(순조 11)에 홍경래(洪景來) 난이 일어나자, 포도대장이요헌(李堯憲)을 양서순무사로 삼아 난을 진압토록 했다(『순조실록』 11년 12월 24일). 고종 때는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훈련대장이경하(李景夏)를 기보연해도순무사에 임명하고 천총(千總)에 양헌수(梁憲洙) 등을 임명하여 출정하도록 했다.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호위부장신정희(申正熙)를 양호도순무사(兩湖都巡撫使)에 임명하여, 호서와 호남의 동학도들을 토벌하고 백성을 무마하는 임무를 맡겼다(『고종실록』 3년 9월 8일), (『고종실록』 31년 9월 22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배항섭, 『19세기 조선의 군사제도 연구』, 국학자료원, 2002.
  • 차문섭, 『조선시대 군사관계 연구』, 단국대학교출판부, 1996.
  • 최병옥, 『개화기의 군사정책연구』, 경인문화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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