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역(歲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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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에서 해마다 번갈아 가며, 1년 내지 2년씩 농지를 놀리며 농사를 짓는 방식.

개설

세역은 휴한을 다르게 표현한 용어였다. 1년 내지 2년씩 특정한 논밭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 놀려 둔 다음 이듬해에 농사를 짓는 방식을 가리켰다. 세역은 특정한 논밭을 번갈아 가면서 쉬게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농작물을 길러 낼 수 있는 지력(地力)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시비법 등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 농지에 계속해서 농사를 지으면, 땅이 척박해져 소출을 기대할 수 없었으므로, 1년 또는 2년 정도 경작을 하지 않아 지력을 회복하였던 것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세역은 중국의 『주례(周禮)』에서 역전(易田)을 설명하는 항목에 함께 등장한다. 역전은 1년이나 2년을 휴한시키고 경작하는 토지를 가리켰다. 세역은 바로 역전에서의 농사짓는 방식이었다. 또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세역으로 벼농사 짓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내용

세역은 1년 내지 2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농지를 경작하지 않고 놀리며 토지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같은 토지에 연속해서 농사를 지을 경우 지력의 소모가 커져서 수확량이 감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1054년(고려 문종 8)에 제정된 전품(田品) 규정을 보면 휴한하지 않는 땅을 상(上)으로 삼고, 1년 휴한하는 땅을 중(中)으로 삼으며, 2년 휴한하는 땅을 하(下)로 삼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휴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토지 상태가 좋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어느 시기까지 세역이 이루어지다 농업기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세역은 없어지고, 해마다 경작하는 상경(常耕)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그런데 그 시기는 대략 15세기 우리나라에서 무논농사법이 보급되면서부터로 추정하고 있다.

세역 방식에서 상경 방식으로 변화하는 시기와 그 배경을 살피는 것은 토지에 관련된 국가제도, 곡물 등을 경작하는 농업기술, 인구 변천과 지역 개발 양상 등을 고려해야 보다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토지 소유 규모, 지역적인 농업 관행 등과 같은 농업경영, 관행 농법 차원에서의 검토도 필요할 것이다.

변천

문종대 전품 규정과 통일신라 및 조선전기 농법과 관련하여, 우리 역사에서 세역 농법, 즉 휴한 농법을 극복하고 상경 농법 단계로 전환된 시기에 대해서 견해가 몇 가지로 나뉘었다. 그중 통일신라시기에 이미 평지의 경우 상경 농법이 일반화되었고, 고려전기에 산지에서 휴한법이 실시되었다는 견해가 있고, 고려후기 내지 조선전기에 휴한법에서 상경법으로 발전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여러 견해에서 공통적인 것은 휴한에서 상경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시비(施肥)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429년(세종 11)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에 보이는 벼농사 기술은 상경으로 벼를 재배하는 방식이었다. 이때에는 이미 밭작물의 재배도 1년 1작을 기본으로 2년 3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위은숙, 『고려후기 농업경제연구』, 혜안, 1998.
  • 이태진, 『한국사회사연구』, 지식산업사, 1986.
  • 김용섭, 「고려시기의 양전제」, 『동방학지』 16, 1975.
  • 이정호, 「고려후기의 농법 -농법 발달과 무신정권기 사회변화의 관계를 중심으로-」, 『국사관논총』 98, 2002.
  • 이종봉, 「고려시기 수전농업의 발달과 이앙법」, 『한국문화연구』 6,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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