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원(徐思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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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50년(명종5)∼1615년(광해군7) = 66세].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 때의 유일(遺逸). 자는 행보(行甫), 호는 미락재(彌樂齋) · 낙재(樂齋)이다. 본관은 달성(達成)이고, 거주지는 경상도 하양(河陽)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서흡(徐洽)인데, 7세 때 백부인 진사(進士)서형(徐浻)에게 양자로 갔다. 한강(寒岡)정구(鄭逑)의 수제자이다.

선조∼광해군 시대 은거 활동

처음에 부모의 명령으로 시문(詩文)을 공부하여, 일찍이 향시(鄕試)에 1등으로 붙었으나, 본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양부모의 상례를 끝마치고 나서는 다시 과거에 응하지 않고, 퇴계(退溪)이황(李滉)의 제자 정구를 찾아가서 성리학을 공부하면서 성현(聖賢)의 글을 읽고 도(道)를 구하려고 애를 썼다. 그때 동문수학하던 친구들과 더불어 일찍이 이황이 입산하여 수학하던 안동(安東)의 청량산(淸凉山)을 답사하고 퇴계 선생이 남긴 발자취를 두루 돌아보면서 욕망을 깨끗이 씻어내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고향 하양(河陽)의 서당(書堂)이 불타버렸으므로 이를 수리하고, 그 정사(精舍)의 학규(學規)를 만들고, 후학을 가르쳤다. 조정에서 서사원의 명성을 듣고 감역(監役)과 찰방(察訪)에 제수하였으나, 그는 한번 부임하였다가 곧바로 돌아왔다. 1595년(선조28) 국가에서 전후의 민심을 수습하려고 재능이 있는 유일(遺逸)을 천거 받아서 파격적으로 등용할 때 서사원 등 30인이 발탁되었다. 그때 그는 청안현감(淸安縣監)에 임명되었는데, 부임하여 공무에 바쁜데도 불구하고, 매월 일정한 날에 학사(學舍)에 나아가서 경서(經書)의 구두(句讀)를 강해(講解)하고 시문(詩文)을 가르치니, 근방의 수재(秀才)들이 다투어 와서 학업을 닦았다. 1602년(선조35) 조정에서 개령(開寧) · 옥과(玉果) · 연기(燕岐)의 현감에 임명하고, 1605년(선조38) 비변사에서 추천하여 호조 정랑 · 익위사 사어(司禦) · 역학(易學) 교정(校正)에 임명하였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607년(선조40) 형조 정랑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서 부임하지 않았다. 그는 고향 하양의 금호(琴湖)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은거 생활을 하다가, 1615년(광해군7) 4월에 노병으로 죽으니, 향년이 66세였다.

저서로는 『낙재집(樂齋集)』이 남아 있다.

성품과 일화

그가 살고 있던 대구 하빈(河濱: 하양)의 이천(伊川)은 금호(琴湖) 하류에 있어 은거(隱居)하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푸른 솔이 집을 둘러싸고 집안에는 정결한 대나무와 향기 높은 매화가 가득하였다. 서재(書齋)가 병란을 겪으면서 불타버렸으므로 그가 이를 수리하고, ‘경의완락(敬義翫樂)’이라 이름을 붙이고, 선유(先儒)의 격언(格言)을 모아서 정사(精舍)의 학규(學規)를 만들었다. 그는 배우는 학도들을 깨우치기를, “뜻은 하루라도 게을리 할 수 없고 마음은 잠시라도 놓아두면 안 된다. 군자가 ‘장경(莊敬)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 방자하면 날로 게을러진다’는 이 두 구절은 마땅히 체득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가가 있으면 한두 명의 문하생을 데리고 작은 배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풍월(風月)을 읊었다. 이때에 사수(泗水: 사천)에는 한강정구가 살고 있고, 일선(一善: 선산)에는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이 살고 있어서 그와 더불어 솥[鼎]의 발처럼 세 곳에 나누어 살았으므로, 그들을 따라서 배우는 선비들이 모두 세 곳을 왕래하면서 성리학을 고증하고 질문하였다.

묘소와 비문

묘소는 경상도 대구 하양(河陽) 파산(巴山)의 기슭에 있고,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남아 있다. 부인 죽산박씨(竹山朴氏)는 재상(宰相) 박원형(朴元亨)의 후손인데, 아들 서항(徐恒)을 낳았다. 대구의 이강서원(伊江書院), 청안(淸安)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되었다.

관력, 행적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동주집(東州集)』
  • 『동계집(桐溪集)』
  • 『여헌집(旅軒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퇴계집(退溪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