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관(西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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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을 아울러 이르던 말.

개설

서관은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 일대를 함께 부르던 명칭이다. 평안도는 평안북도와 평안남도를 합쳐서 부르는 지명으로, 관서 혹은 관서 지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평안이란 평양과 안주(安州)의 첫 글자를 각각 따서 만든 지명이다. 한편 황해도 지역은 애초 1391년 경기 지역을 두 개로 나누면서 해당 지역을 경기우도(京畿右道)에 속하도록 조치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면서 초기의 행정구역은 고려의 제도를 계승했다. 그러나 후일 전국을 8도로 나누는 제도가 확정되면서 1395년(태조 4년)에 풍천(豊川)과 해주(海州)의 이름을 따서 풍해도(豊海道)로 명명하였다.

변천

평안도 지역은 995년(고려 성종 14)에 관서도(關西道)라 이름하였다. 이 지역은 서경(西京: 현 평양) 중심으로 행정체제가 편제되었다. 고려 정종 때 북계(北界)로 개칭하였다가 1102년 서북면(西北面)으로 다시 명칭을 변경했다. 1269년 서북면의 여러 성이 몽골에 편입되어 자비령(慈悲嶺) 이북 지역은 몽골의 영토가 되었다. 당시 서경에는 동녕로총관부(東寧路摠管府)가 설치되었다가 충렬왕 때 다시 고려의 영토로 환원되었다. 이후 공민왕의 재위기에 해당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게 되었다.

조선은 건국 후 초기에는 고려의 행정편제를 계승했다. 하지만 1413년(태종 13) 이 지역을 평안도로 개칭했다. 1440년(세종 22)에는 여연(閭延)·상무로(上無路)·우예(虞芮) 지역을 나누어 무창군(茂昌郡)을 설치하고, 3년 뒤에는 우예군을 다시 설치하여 평안도에 편입시켰다. 1895년(고종 32) 8도제를 23부제로 변경함에 따라 평양·의주·강계의 3부(三府)가 설정되었다. 다음 해에는 전국이 13도제로 개편되어 청천강을 경계로 평안남도와 평안북도로 나뉘었다.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의 행정체제는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

황해도 지역은 애초 1391년 경기 지역을 두 개로 나누면서 해당 지역을 경기우도에 속하도록 조치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면서 초기의 행정구역은 고려의 제도를 계승했다. 그러나 후일 전국을 8도로 나누는 제도가 확정되면서 1395년에 풍천과 해주의 이름을 따서 풍해도로 명명되었다. 이후 1417년 황주(黃州)와 해주의 이름을 따서 황해도로 개칭하고, 해주에 관찰사를 두어 2목 4도호부 7군 77현을 관할하도록 했다.

이후 광해군의 재위기에 잠시 황연도(黃延道)로 명칭이 바뀐 적도 있으나 곧 황해도로 환원되었다. 1895년에 23부제가 도입됨에 따라 도의 동부는 개성부, 서부는 해주부, 황주 지방의 일부는 평양부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행정체제가 크게 변화했다. 다음 해에는 23부제가 다시 13도제로 개편되어 모든 지역이 황해도로 환원되었고 23군을 관할하도록 했다.

관련사건 및 일화

서관이란 명칭이 처음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보이는 것은 연산군대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평안도 일대에 야인들의 침입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들의 침입에 관한 정보가 계속 보고되자 관서 지역의 길을 열어 야인들의 왕래를 자유롭게 해 주면서 그들을 통제할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당시 윤필상(尹弼商)·정문형(鄭文炯)·이극돈(李克墩)·이세좌(李世佐)·여자신(呂自新)·윤효손(尹孝孫) 등은 야인들에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의 개방을 허락할 수 없다는 요지의 의견을 밝히면서 ‘서관’이란 명칭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연산군일기』 6년 1월 9일). ‘서관’이란 용어가 평안도 지역과 황해도 지역 일대를 일컫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비변사에서는 겨울의 초입에 서관 지역의 지친 군사가 모두 여름옷을 입고 천 리 밖에서 전쟁에 임하고 있으니 의복 문제가 매우 절박한 계절이라며, 군사들에게 입힐 겨울옷을 긴급하게 요청하는 기록이 확인된다(『선조실록』 26년 9월 3일). 이 기록을 통해 조선중기에 이르면 서관이라는 용어가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비변사의 같은 글에서 관서(關西)라는 명칭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조선시대에 두 용어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었음도 아울러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