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西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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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천신제(薦新祭)를 지낼 때 올리던 제물의 하나로, 1년생 덩굴성 박과식물의 열매.

개설

덩굴성 줄기가 땅 위를 기며 자라고 크고 둥근 열매가 달린다. 물이 많고, 단맛이 있는 대표적인 여름과일이다. 한자로는 서과(西瓜), 수과(水瓜), 서과(西果)라고도 한다.

원산지 및 유통

아프리카 원산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재배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이색의 『목은집(牧隱集)』에 수박[西苽]의 기록이 있다. 세종대에는 궁에서 주방을 맡은 자들이 수박을 훔쳐 귀양을 보내기도 하였다(『세종실록』 5년 10월 8일). 조선초기에 이미 수박 재배가 이루어져 진상되었고(『성종실록』 12년 8월 27일), 진상된 수박은 장원서(掌苑署)에 보관되어 궁에서 소비되었다(『연산군일기』 10년 1월 14일).

왕이 행차할 때에는 농사를 지은 백성들이 수박을 직접 가지고 나와 바치기도 하였다(『중종실록』 21년 9월 11일)(『정조실록』 3년 8월 4일). 여름철에만 수박 재배가 가능하였으므로, 연산군대에는 중국 북경으로 가는 인편에 수박을 구해 올 것을 명하기도 하였다(『연산군일기』 8년 12월 4일). 수박은 용안(龍眼), 여지(荔枝)와 함께 수입되어 비수기에 이용되었다(『연산군일기』 11년 4월 6일).

연원 및 용도

천신제의 6월령 제물이었다. 『만기요람(萬機要覽)』에 호조(戶曹) 공물로 기록되어 있다. 세조는 궁에서 음복연을 베풀며 신하들에게 수박을 나누어 주었고(『세조실록』 6년 1월 16일). 안평대군의 생일잔치에 수박을 보내기도 하였다(『단종실록』 즉위년 9월 19일).

대표적인 여름철 과실로 잘라서 생으로 먹는다. 수박을 조리한 기록으로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밀전서과방(蜜煎西瓜方)이 있다. 『옹희잡지(饔饎雜志)』를 인용하여 수박 조리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둥글고 크고 속이 붉은 수박을 꼭지 둘레에 사방 1촌 정도를 칼을 세워 도려내는데 껍질과 속이 깨지지 않도록 떼어 낸다. 꿀 1잔에 계피가루, 후춧가루를 섞어 붓고 꿀이 부족하면 다시 1잔을 더 부은 다음에 떼어 낸 것을 다시 덮는다. 젖은 종이로 틈새를 막고 솥이나 노구에 3~5손가락 마디 깊이로 물을 붓고 그 안에 수박을 안친다. 꼭지가 위로 향하여 물에 빠지지 않게 하고, 한잠 잘 시간 정도 삶아서 꺼낸 수박을 새끼로 십자로 묶고 우물 속에 2시간 정도 넣었다 꺼내면 서리꽃이 가득 응고되어 있는데, 그 맛의 상쾌함이 제호(醍醐)감로(甘露)보다 더 낫다고 하였다.

비수기에 이용하려면 보관 방법이 문제였는데,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서는 수박을 깊은 장롱(欌籠)이나 큰 독에 겨를 넣고 묻은 후 얼지 않는 방에 두면 썩지 않는다고 하였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해를 보지 않게 하고, 먼지를 올리지 않으면 겨울까지 있고, 칼을 대지 말고 손톱으로 깨어 볕에 잠깐 놓았다가 음지에 이슥하게 두었다가 먹으면 얼음보다 차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박씨 기름을 이용하지 않으나, 『규합총서』에는 수박씨에 옻을 발라서 볕에 널면 껍질이 열려 씨가 저절로 빠지는데 수박씨를 볶아서 짜면 향기롭다고 하였다.

수박은 갈증 해소와 이뇨작용에 효과가 있어 약용으로도 이용되었는데, 순조의 병환에 어의들이 수박즙을 드시게 하였다(『순종실록부록』 19년 4월 15일).

생활민속 관련사항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수박 바르게 먹는 법으로 수박을 먹을 때 씨를 자리에 뱉지 말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규합총서(閨閤叢書)』
  • 『만기요람(萬機要覽)』
  • 『목은집(牧隱集)』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형재시집(亨齋詩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