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원(尙瑞院)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시대 새보(璽寶), 부패(符牌), 절월(節鉞) 등을 담당하던 기관.

개설

상서원은 조선시대에 새보, 부패, 절월 등을 담당하던 기관으로 조선 초기부터 설치되어 갑오개혁 이전까지 존속하였다. 상서원에서 담당한 새보, 부패, 절월을 간략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새보는 주로 국가적 차원의 공무에 사용하는 도장을 말한다. 새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 국가의 상징이자 왕위를 물려줄 때, 외교 문서를 작성한 후 사용하는 국새가 있다. 둘째, 국가적 공무에 사용하는 내치용 어보이다. 내치용 어보는 주로 국왕이 발행하는 각종 문서를 포함하여, 신료나 서고 등에 서적이나 어제, 어필 등을 하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부패는 부험(符驗), 병부(兵符), 마패(馬牌), 순패(巡牌)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흔히 패부(牌符)라고도 한다. 부(符)는 할부(割符), 즉 신표 2개를 나누어 가졌다가 필요시 짝을 맞춤으로써 증명을 하는 것이다. 패(牌)는 증명과 표식을 나타내는 신물(信物)의 총칭이다. 주로 출진(出陣)이나 무역, 역전(驛傳), 성문의 출입 등에서 증명으로 삼았으며, 재료는 금·은·동·나무·대나무·비단·종이 등을 사용하였다. 중국 진나라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여러 종류의 부패가 있었다. 지방 출장 관원에게 교부한 마패나 군대 동원의 표지로 쓴 발병부(發兵符), 순장(巡將)이 순찰 때 쓴 순패 등이 모두 부패에 포함된다.

절월은 조선시대에 관찰사(觀察使)·유수(留守)·병사(兵使)·수사(水使)·통제사(統制使) 등이 부임할 때 왕이 내어 주던 신표이다. 절(節)은 손에 쥘 수 있는 깃발[手旗]의 형태로 되어 있다. 월(鉞)은 부월(斧鉞)이라고도 하며, 도끼 형태로 제작되어 군령(軍令)을 어긴 자에 대한 생살권을 상징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 개국 직후 태조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따라 1392년(태조 1) 상서사(尙瑞司)를 두었다. 고려의 상서사가 관리의 임명과 더불어 인장과 부신(符信)을 관장했던 반면, 1405년(태종 5) 관제 개혁에 의해 설치된 상서사는 단지 새보·부신·절월만을 관장하게 되었다. 즉, 동·서반의 인사는 이조와 병조에서 담당하고 새보·부신·절월은 상서사에 맡겨 업무를 나누었다. 이런 조치는 6조의 권한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조치였다. 그 뒤 1466년(세조 12) 상서사에서 ‘상서원’으로 개칭했다. 이조의 속아문으로, 약간의 명칭과 기능의 변동이 있었지만 왕실 인장과 각종 신물을 담당하는 기구로서의 상서원은 갑오개혁 이전까지 존속하였다.

조직 및 역할

1392년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상서사를 두었는데 판사(判事) 4명, 부윤(府尹) 1명, 소윤(少尹) 1명, 승(丞) 1명, 주부(主簿) 2명, 직장(直長) 2명, 녹사(錄事) 2명이 있었다. 1466년에는 ‘상서사’를 고쳐서 ‘상서원’으로 삼았다. 이때 정(正) 1명이 있었는데 도승지(都承旨)가 예겸(例兼)하고, 판관(判官) 1명, 직장 1명, 부직장 2명이 있었으며, 나중에 주부 1명을 더 두었다. 1683년(숙종 9)에 주부를 감하고 첨정(僉正) 1명을 두었다가 뒤에 또 첨정, 판관, 부직장 각 1명을 감하였다. 1886년(고종 23)에 주부 2명을 늘렸다. 이속(吏屬)은 서원(書員) 2명, 사령(使令) 1명, 군사 2명이었다.

변천

조선후기의 학자 송징은(宋徵殷)은 「제명기(題名記)」에서 “『주례(周禮)』에는 ‘장절(掌節)’이 있고 한(漢)나라 때에는 ‘상부새랑(常符璽郞)’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상서원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여 왕실 인장과 각종 신물의 담당 기구가 중국에서 연유했음을 언급하였다.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공무에 사용하는 인장과 각종 신표를 관장한 기관에 대한 내용은 고려 때부터 보인다. 고려 내부에서 왕실 인장을 관리한 기구와 그 기능은 시기에 따라 변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중서주보리(中書主寶吏)와 부보랑(符寶郞)을 두어 담당하게 했다. 이는 의종대에 정해진 의위(儀衛) 규정 가운데 왕의 법가의장(法駕儀仗)에서 확인된다. 그 후 1298년(고려 충렬왕 24) 충선왕이 즉위하여 관제를 개편할 때 종6품의 인부랑(印符郞) 2명을 두었다. ‘랑(郞)’이란 본래 ‘벼슬이름 랑’자로 관부보다는 관직을 의미한다. 인부랑은 부보랑에 연원을 두며, 충렬왕 당시 정제(定制)를 갖추어 2명을 두었고, 직품은 종6품으로 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인부랑의 기능이 상서사로 옮겨졌다. 상서사는 충선왕이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설치되었기 때문에 충선왕의 개혁 정치와 관련 있다고 보고 있다. 상서사는 또한 인사를 담당하기도 하여 1388년(창왕 1) 9월 정방(政房)이 혁파된 뒤 인사 기능도 수행하였다.

상서사의 기능과 기구에 대해서는 『태조실록』에 “부신(符信)과 인장, 관리 임명 등의 일을 관장하였고, 판사 이하 많은 관료가 있다.” 하였다. 한편 정도전(鄭道傳)은 “조선에서는 상서사를 두어 부신과 어보를 관장하고, 아래로는 모든 관리와 관청, 밖으로는 사신(使臣), 수령(守令)에게 모두 인장이 있다.”고 하여 왕실 인장 담당 기구로서의 상서사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음을 언급하였다.

조선에서는 태조 원년부터 상서사를 두어 새보와 부패를 관장하였다. 이긍익(李肯翊)은 “태조는 고려의 제도에 의하여 상서사를 설치하여 새보·병부·신패(信牌)·절월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뒤에 ‘사(司)’를 ‘원(院)’으로 고쳤다.” 하여 상서사의 기능 및 연원을 밝혔다. 상서사를 계승한 상서원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삼봉집(三峰集)』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문형만, 「고려특수관부연구: 제사도감각색의 분석」, 『부산사학』9, 1985.
  • 성인근, 「조선시대 인장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