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검(朴尙儉)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총론

[1702년(숙종 28)~1722년(경종 2) = 21세]. 조선 후기 숙종·경종 때 활동한 환관(宦官).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평안도 영변(寧邊) 출신이다.

박상검의 옥

어려서는 고향인 영변 이웃집에 살고 있던 심익창(沈益昌)에게 글을 배웠다. 심익창과 김일경(金一鏡) 사이에 교류가 있어 그도 김일경과 교류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환관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그가 환관으로 있을 무렵, 경종이 즉위하였다. 당시 노론은 경종이 병약하다는 이유로 1721년(경종 1) 연잉군(延礽君: 후에 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할 것과 왕세제가 대리 청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경종의 즉위를 도왔던 소론(少論)은 왕세제 책봉을 막으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김일경은 조태구(趙泰耉)등과 함께 왕제세의 대리청정만 겨우 저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722년(경종 2) 1월 왕세제가 입직궁관(立直宮官)과 익위사관(翊衛司官)에게, 환관들이 생명을 위협하니 독수(毒手)를 피하고자 사위(辭位)한다는 뜻을 알리면서 <박상검의 옥사>가 일어났다. 다음날 대신들의 주청으로 경종은 왕세제가 지목한 박상검과 문유도(文有道)는 등을 잡아 국문하였는데, 당시 혐의 내용은 박상검이, 김일경의 사주를 받아 그가 보낸 재물로 환관과 궁녀를 매수하여, 왕세제의 궁궐 출입을 막고 왕세제를 헐뜯는 등 경종과 왕세제 사이를 이간하고, 왕세제의 생명을 위협하였다는 것이다. 『경종개수실록(景宗改修實錄)』 2년(1722) 9월 21일조에는 “박상검은 김일경의 손발이 되어 은밀한 기회를 몰래 주선하여 안에서 해적(害敵)이 되어 안팎에서 선동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박상검과 문유(石烈)·필정(必貞)도 자살하는 등 사건은 전모가 채 밝혀지지 않은 채 마무리되었다. 이 일을 사주한 김일경도 도는 끝내 자복하지 않은 채 복주(伏誅)되었고, 연루되었던 궁녀 석렬<신임사화(辛壬士禍)> 때의 죄목으로 영조가 즉위하자 곧 죽임을 당했다. 한편, 1725년(영조 1)에 환관 손형좌(孫荊佐)를 심문할 때에 이 사건이 다시 거론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경종개수실록(景宗改修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보감(國朝寶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