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곤(朴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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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 성종~연산군 때 활동한 장악원(掌樂院)전악(典樂). 금천군(錦川君)중추원 사(中樞院事)박강(朴薑)의 얼자(孽子)이다.(『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별집 권12 참조.)

성종~연산군 시대 활동

박곤은 비록 천첩(賤妾) 소생이었으나, 슬기롭고 빼어나 일찍이 장악원에 들어가 전악으로 주로 성종·연산군까지 활동하였다. 1493년(성종 24)에 완료한 『악학궤범(樂學軌範)』 편찬 때는 유자광(柳子光)·성현(成俔)·신말평(申末平)·김복근(金福根)을 도왔다. 그는 음악 이론뿐 아니라 황효성(黃孝誠)처럼 음률(音律)에도 밝았다. 그러므로 실제의 음악 연주에도 뛰어났고, 다른 전악들보다 많은 활약을 하여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특별히 승진되어 4품계(四品階)에 이르렀다. 1506년(연산군 12) 2월에는 사명(使命)을 받고 제주(濟州)에 가서 음률을 아는 사람과 악기의 재료를 구하기도 하였다. 천류(賤類)로서 사명(使命)을 받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 하겠다.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박곤은 어려서부터 악(樂)을 배웠으며, 재주가 뛰어나서 악사(樂事)의 일을 잘 맡아 했는데, 그 재주는 황효성보다 나아 한때 선사(善師)가 되었고, 배우는 사람이 그 문하에 모여들어 많은 선수(善手)들을 배출하였으니, 역시 지금의 제1품이다라고 하였다. 또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박곤은 성현과 김복근을 도와서 중국의 『사림광기(事林廣記)』와 『대성악보(大晟樂譜)』를 참작하여 합자보(合字譜)를 창안하였는데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용재총화(慵齋叢話)』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악학궤범(樂學軌範)』
  • 이혜구 역, 『국역 악학궤범』, 민족문화추진회,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