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장(墨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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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만드는 일을 하던 장인.

개설

먹은 선비들의 필수 용구였던 문방사우(文房四友) 가운데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문(文)을 숭상하던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우수한 품질의 먹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먹은 그을음에 아교를 섞어 만드는데, 우수한 먹은 벼루에 갈았을 때 찌꺼기가 생기지 않으며 향기와 윤택이 나야 한다. 조선시대에 전문으로 먹을 제조하던 묵장(墨匠)은 경공장(京工匠)외공장(外工匠)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담당 직무

고대부터 우수한 종이와 붓, 그리고 먹을 만들어 사용해왔음을 여러 기록과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먹은 중국·일본과의 교역품이나 왕의 하사품으로도 쓰일 정도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였다.

전통적으로 먹은 전문 묵장이 제조했을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도 묵장이 경공장과 외공장으로서 국가에서 필요한 먹을 제조하였다. 묵장은 원래 조선초기 궁중 안에서 먹을 제조하던 부서인 묵방(墨房)에 소속되어 있었다. 묵방은 세종대에 책방(冊房), 조각방(彫刻房) 등과 함께 설치되었던 부서로 문종대에 상의원(尙衣院)으로 귀속되었다(『단종실록』 1년 5월 2일). 이 밖에 조선시대 묵장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다른 기록은 단순하게 언급된 장인에 불과하다(『영조실록』 44년 1월 5일). 그러나 제묵법(製墨法)이나 특산물에 관한 문헌 기록들에서 조선시대 먹의 품질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묵장들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먹골[墨洞], 묵정동(墨井洞)이라는 지명과 해주먹[海州墨] 등 지역 특산 먹의 존재로 보아 중앙과 지방에서 활동했던 묵장의 존재도 짐작할 수 있다.

변천

먹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보인다. 특히 고구려의 승려 담징(曇徵)이 서기 610년에 먹과 제묵법을 일본에 전한 사실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묵장을 묵척(墨尺)이라고 하였으며, 종이와 함께 중국에 공납(貢納)될 정도로 우수한 먹을 생산하였다. 중국의 『묵사(墨史)』에는 고려의 맹주(猛州)와 순주(順州), 해주(海州)의 먹이 우수하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중앙과 지방에서 관장과 사장(私匠)들이 우수한 먹을 제조하여 중국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일본서기(日本書紀)』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고려도경(高麗圖經)』
  • 『묵사(墨史)』
  • 이겸노, 『文房四友』, 대원사, 1989.
  • 김도연, 「文房四友중 墨을 중심으로 한 연구」, 경성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 허인경, 「文房四友 硏究」,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