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방(武工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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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대에 무악(武樂)을 담당했던 기관.

개설

조선 태조대에 설치되었고 무악을 익혀 공연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에 각종 의식에서 무무(武舞)를 담당했던 무반 조직인 견예부(堅銳府)를 조선 태조대에 개편한 것이다(『태조실록』 2년 10월 9일). 각종 제사에서 수반되었던 무무를 추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직 및 역할

무공방(武工房)은 무공(武工)을 봉상시, 전악서 등 음악 기관에 파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무공은 나이 어린 소년으로 구성되었다. 무업(武業)을 형용한 노래·춤을 연행하였는데, 그중 핵심 역할은 여러 제사에 사용되었던 무무를 춤추는 일이었다. 무무는 난을 평정한 공(功)을 춤동작으로 형상화한 것이므로, 왕의 훌륭한 업적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외에도 무공방의 무공들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드러난 태조의 공(功)을 찬양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악장(樂章)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조선 건국 이듬해인 1393년(태조 2), 무공방의 무공들은 관습도감(慣習都監)판사(判事)정도전(鄭道傳)이 지은 「문덕(文德)」·「무공(武功)」·「몽금척(夢金尺)」·「수보록(受寶籙)」을 태조에게 올릴 때 연주를 담당하였다(『태조실록』 2년 10월 27일). 이때 헌정된 악곡의 가사는 정도전이 태조의 건국을 찬양하는 의미를 담아 창작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수보록」의 선율은 당악정재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수보록」은 태조와 태종대는 당악 선율에 맞추어 연주되었고, 1430년(세종 12) 아악 정비 이후에 『의례경전통해』의 선율을 차용하여 만든 아악 선율로 연주되다가, 늦어도 성종대부터는 다시 당악정재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한 내용을 담은 신곡을 올리는 행사는 태조대에 가장 중요한 행사 중에 하나였다. 무공들은 이와 같은 중요한 행사에서 공연을 담당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제례를 행할 때에도 무공이 참여하였다. 이런 무공들을 모으고, 그들을 연습시켜 각 행사에 파견하는 기능을 담당했던 기관이 바로 무공방이었다. 무공(武功)을 예술로 승화시켜 보여줄 전문 인력을 관리했던 것이다.

변천

무공방은 고려시대 견예부의 뒤를 이은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태조대에만 그 명칭이 나타난다. 무공방에서 육성된 무공의 역할은 세조대에 장악원 소속의 악생(樂生)악공(樂工)이 계승하였다. 아악이 연주되는 제사에서는 악생이 춤을 추었지만, 속악이 연주되는 제사에서는 악공이 춤을 추었다.

참고문헌

  •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 김종수, 「조선 초기 악장 연행(演行) 양상 - 수보록(受寶籙)·몽금척(夢金尺)·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 -」, 『溫知論叢』 18, 온지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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