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장(木梳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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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이 굵고 성긴 얼레빗을 만들던 장인.

개설

전통 빗은 한자로 소(梳)라고 쓰며, 조선시대에는 즐(櫛)이라고도 하였다. 전통 빗의 종류에는 빗살이 굵고 성긴 얼레빗과,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참빗이 있다. 그중에서 얼레빗은 주로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목소(木梳)라고 하고, 제작 장인을 목소장(木梳匠)이라고 하였다. 반면 참빗은 주로 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죽소(竹梳), 혹은 진소(眞梳)라고 하였으며, 제작 장인을 죽소장(竹梳匠)이라고 하였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 목소장은 경공장(京工匠)외공장(外工匠)으로서 왕실과 국가에서 필요한 얼레빗을 제작하였다. 중앙에서는 공조(工曹)상의원(尙衣院)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얼레빗은 빗살이 굵고 성긴 전통 빗으로 대개 나무로 만들지만 고급 공예 재료인 거북이 등껍질[玳瑁]이나 상아(象牙)·화각(華角)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얼레빗의 종류에는 반달 형태로 만든 반달빗이 가장 많고 양쪽으로 빗살을 낸 음양소(陰陽梳)나 남자들이 사용하는 상투빗 등 여러 가지 가지가 있다.

조선시대 경공장에는 목소장과 함께 빗살 사이의 때를 빼는 솔을 제작하는 목성장(木省匠) 또는 소성장(梳省匠)과 대나무로 참빗[竹梳]을 만드는 죽소장도 같이 소속되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대에 궁내(宮內)에서 오래 활동하던 목소장 이춘산(李春山)이 싸리나무를 묶어서 만든 홰[杻炬]를 들이지 않은 일로 감금된 일이 언급되어 있다. 이 기록은 궁내 목소장의 존재와 함께 목소장이 얼레빗 말고도 싸리나무로 횃대와 같은 기물도 만들었던 사실을 말해준다(『연산군일기』 9년 3월 8일).

변천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머리 모양새와 옷차림 등 단정한 차림새를 중요시하여 머리빗을 비롯한 화장 문화가 발달되었다. 문헌 기록상 빗을 제작하는 전문 장인은 고려시대부터 보이지만 초기철기시대 유적에서 이미 전통 빗 유물이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왕실 기물을 담당하는 중상서(中尙署)에 소장(梳匠)이 소속되어 왕실과 관청에 납품할 빗을 제작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목소장의 기술이 더욱 전문화되어 목소장과 죽소장으로 분화되었다.

생활필수품이었던 머리빗의 수요는 1895년(고종 32)에 단발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꾸준하였으나 단발령과 플라스틱 빗이 도입되면서 급감하여 단절의 위기에 처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이종석, 『한국의 전통공예』, 열화당, 1994.
  • 전완길, 『한국화장문화사』, 열화당, 1987.
  • 최공호·최영숙, 『소목장·공주 목소장』, 민속원, 2011.
  • 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3.
  • 유지효, 「한국 여성의 전통 화장문화에 관한 연구」,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