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채(納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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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집에서 혼인을 하고자 예를 갖추어 청하면 여자 집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의례.

개설

혼례는 납채(納采)·문명(問名)·납길(納吉)·납폐(納幣)·청기(請期)·친영(親迎)의 육례(六禮)로 이루어진다. 납채는 그중의 한 절차로 혼담이 오고 간 후 여자 집에서 이를 허락하면 남자 집에서 사주단자를 보내 채택의 예를 행하고 혼약을 맺는 것을 말한다. 『주자가례』에서는 납채를 말로 약정한다고 하여 언정(言定)이라고 부른다.

연원 및 변천

육례는 『예기』에 기록된 중국주나라의 고례(古禮)이다. 그러나 육례의 여섯 절차를 다 거치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어서 송나라에 이르러 주희(朱熹)가 『가례』를 통해 이를 줄여 의혼(議婚)·납채·납폐·친영의 사례(四禮)로 줄였다. 우리나라도 납채를 포함한 육례의 절차는 세종 때 『국조오례의』를 통해 정해졌지만 『주자가례』의 보급에 따라 이의 사례를 따르게 되었다. 1551년(명종 6) 9월 17일에 사헌부의 건의로 혼인 시 납채를 간소히 하는 조목을 갖추어 개혁하였다

절차 및 내용

왕실 가례 때의 납채 절차는 고례인 육례를 따르고 있다. 혼례는 먼저 남자 집에서 혼인의 뜻을 여자 집에 전달함으로써 시작된다. 이때 남자 집에서는 직접 여자 집에 혼인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중매인을 이용한다. 중매인을 통해 전달된 혼인 의사를 여자 집에서 받아들이면 곧 납채, 즉 채택을 받아들이는 의식을 행하는데, 다음과 같다.

남자 집에서는 기러기를 예물로 사용한다. 기러기가 음양에 따라 왕래하기 때문에 그 뜻을 따른 것이다. 남자 집의 혼주는 서식을 갖추고 사주를 써서 신부 측에 보낸다. 사주는 천간지지(天干地支)를 필요로 하는 궁합과 길흉과 택일에 참고하라고 보내는 것이나 이것은 이미 청혼할 때 본 것이어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납채는 대궐에서 간택된 왕비의 집이나 집을 대신한 별궁에 청혼하러 사자(使者)를 보내는 의식인 납채의(納采儀)와 이를 수락하는 수납채의(受納采儀)로 진행된다. 뒤이은 납징의(納徵儀)와 고기의(告期儀)도 의주(儀註)가 같아 모두 동일한 형식으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책비(冊妃)는 대궐에서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인 책비의(冊妃儀)와 별궁에서 왕비로 책봉받는 비수책의(妃受冊儀)로 진행된다. 친영은 왕이 왕비의 집 역할을 했던 별궁에 가서 왕비를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동뢰(同牢)는 왕이 친영한 날 밤에 대궐로 맞아들인 왕비와 서로 절한 뒤에 술과 찬을 나누고 첫날밤을 치르는 의식이다.

『국조오례의』의 가례 의식 중에서 종친과 문무관 일품 이하의 혼례 가운데 납채에 관한 절차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이 서신을 갖추고 일찍 일어나서 사당에 고하고, 이에 자제(子弟)로 하여금 사자로 삼아 성복(盛服)한 차림으로 여자의 집에 가게 하면, 주인이 또한 성복한 차림으로 나와서 사자를 맞이하여 정청에 오르게 한다. 사자가 치사하기를, “그대가 은혜를 끼쳐 아무개의 모친(某親) 모관(某官)에게 아내를 주니, 선인(先人)의 예가 있으므로 아무개로 하여금 납채하기를 청합니다.” 한다.

종자(從者)가 서신을 올리면, 사자가 서신을 주인에게 준다. 주인이 대답하기를, “아무개의 자식, 또는 매(妹)·질(姪)·손(孫)이 어리석고, 또 능히 가르치지 못했는데, 그대가 명하시니, 아무개는 감히 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한다. 이에 서신을 받고 북향하여 두 번 절하면, 사자가 피하고 답배(答拜)하지 않는다.

사자가 물러가기를 청하여 명령을 기다리며, 위차(位次)에 나아간다. 주인이 마침내 사당에 고하기를 사위집에서 하는 의식과 같이 하고, 나가서 사자를 맞이하여 정청에 올라가서 복서(復書)를 주고, 서로 절하기를 평일에 빈객에게 대하는 예와 같이 한다. 이에 술로써 사자에게 대접하고, 사자가 복명한다.

생활ㆍ민속적 관련 사항

사주는 ‘대개 손 없는 날’에 보냈다. 육례를 줄여 사례로 행하게 된 것은 번거로움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양가 간의 지리적인 거리도 고려한 것이다.

참고문헌

  • 『주자가례(朱子家禮)』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사례편람(四禮便覽)』
  • 김혁, 「조선시대 혼서(婚書)의 서식(書式) 변화를 통해서 본 혼례의 양상」, 『영남학』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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