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총(旗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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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군영과 속오군의 하급 부대 단위인 기(旗)의 지휘관으로 서반 잡직 정8품.

내용

조선후기 군사제도의 개편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속오법(束伍法)에서는 영장(營將)이 통솔하는 영(營)이 편제상 최상의 단위부대였다. 영에는 5개 사(司)를 두고, 1사에는 5개 초(哨), 1초는 3기, 1기는 3대(隊), 1대는 화병(火兵) 1명을 합쳐 11명의 병사로 조직되었다. 사에는 파총(把摠), 초에는 초관(哨官), 기에는 기총, 대에는 대총(隊摠)을 각각 지휘관으로 삼았다. 그런데 훈련도감을 설치하면서 당시 조선의 실정에 맞게 변형을 해서 받아들였다. 영, 부(部), 사, 초, 기, 대, 오(伍)의 순서로 편제된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오가 5명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대개 50명 내외로 이루어진 기를 통솔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어청(守禦廳)과 총융청(摠戎廳)의 군병(軍兵)은 결원이 있을 때에는 각각 그 고을에서 결원된 인원만큼 다른 사람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이것을 숨기고 보고하지 않았던 기대장(旗隊長)은 엄중 처벌해서 유배를 보내도록 했다.

용례

兵曹啓曰 禁衛零落 且無統攝之規 常時行幸擧動 埋沒胡亂 不成摸樣 似當別爲處置 將見在受料之數 束伍分隊 置旗摠隊摠 每隊給金鼓 以爲進退行止之節(『선조실록』 27년 3월 6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金友哲, 『朝鮮後期 地方軍制史』, 景仁文化社, 2001.
  • 金鍾洙, 『朝鮮後期 中央軍制硏究』, 혜안, 2003.
  • 徐台源, 『朝鮮後期 地方軍制硏究』, 혜안, 1999.
  • 陸軍士官學校 韓國軍事硏究室, 『韓國軍制史 - 近世朝鮮後期篇』, 陸軍本部, 1977.
  • 李泰鎭, 『朝鮮後期의 政治와 軍營制 變遷』, 韓國硏究院,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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