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도(金井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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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충청도의 청양·대흥·결성·보령·홍주·해미·태안·서산 등지에 설치된 역들을 관할한 역도.

개설

금정도(金井道)는 조선시대의 41역도(驛道) 중 하나로 충청도 지방에 편성된 것으로, 고려시대의 충청주도(忠淸州道)에서 비롯되었다. 고려시대의 충청주도는 속역으로 주로 경기와 충청도 지역의 역을 소속시켰다. 그중에서도 금정도에 해당하는 속역들은 청양의 금정역을 포함하여 이산(伊山)의 급천(汲泉), 홍주역(洪州驛), 대흥(大興)의 광세(光世), 여미(餘美)의 득웅(得熊), 정해(貞海)의 몽웅(夢熊), 가림(嘉林)의 영유(靈楡), 홍산(鴻山)의 비웅(非熊) 등이었다. 이와 같은 고려의 역도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역의 신설과 이설 및 통합에 따라 1462년(세조 8) 8월에 병조의 건의로 역로를 재정비하여 충청도 지방은 연원도(連原道), 율봉도(栗峯道), 성환도(成歡道), 이인도(利仁道), 시흥도(時興道), 금정도(金井道)로 개편되었다. 그리하여 금정도 속역은 금정역(金井驛)·광시역(光時驛)·용곡역(龍谷驛)·세천역(世川驛)·몽웅역(夢熊驛)·해문역(海門驛)·청연역(靑淵驛)·풍전역(豐田驛)·하천역(下川驛) 등 9개의 속역으로 편성되었다. 이 금정도는 충청도 청양을 중심으로 아산, 평택 및 당진과 서산 그리고 보령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 역로 구실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의 금정도는 고려시대의 충청주도에서 비롯되었다. 충청주도는 경기도와 충청도에 위치한 34개 역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전기 세종 연간에 역제(驛制)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충청도의 역도는 금정도를 비롯해 율봉도·연원도·성환도·일신도(日新道)·황강도(黃江道) 등 9개로 분화되었다. 이때 금정도는 금정역을 포함해 광시역·세천역·용곡역·풍전역·하천역·몽웅역·해문역·청연역·급천역(汲泉驛)·순성역(順成驛)·흥세역(興世驛) 등 12개 역으로 편성되었다. 그 뒤 1457년(세조 3) 9월에는 이조의 건의에 따라 각 역의 관할을 조정하고 정역찰방(程驛察訪)을 두면서, 충청도의 이인도·시흥도·금정도에 속한 모든 역을 이인도로 통합하였다. 또 1460년(세조 6)에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전국의 역을 정비하면서, 이인도에 속한 10개 역과 금정도에 속한 12개 역, 시흥도에 소속된 5개 역을 이인도로 통합하였다.

이어서 1462년(세조 8) 8월에는 역로를 재정비하여 찰방과 역승(驛丞)을 파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충청도의 역도는 연원도·율봉도·성환도·이인도·시흥도·금정도로 개편되었다. 이때 금정도는 세종대의 12개 속역에서 급천역·순성역·흥세역이 빠짐에 따라 9개의 속역으로 편성되었다. 그 후 성종대에 이르러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반포와 더불어 충청좌도에 소속된 금정도는 최종적으로 금정역 외에 광시역·해문역·청연역·세천역·용곡역·몽웅역·하천역·풍전역 등 9개 역을 속역으로 하는 역도로 확립되었다.

<표1>은 금정도 속역의 역속 및 역마 현황을 『여지도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충청도읍지』에 따르면, 금정도의 본역인 금정역에는 역리(驛吏) 10명, 역노(驛奴) 10명, 역비(驛婢) 3명이 배속되어 있었으며, 역마는 대마 2필, 기마 3필, 복마 5필 등 총 10필이 배정되어 있었다. 여기에 비해 『여지도서』홍주 역원 조에는, 음직(蔭職) 출신의 6품 찰방 1명과 역리 121명, 역노 175명, 역비 21명이 역무를 담당하였으며, 역마는 상등마 2필, 중등마 4필, 하등마 5필 등 총 11필이 소속되었다고 하여 차이를 보인다. 금정도 속역의 전체 역속 및 역마 현황을 집계하면 역속은 역리 390명, 역노 462명, 역비 74명 등이었으며, 역마는 96필이 배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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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고려시대 역도의 하나인 충청주도에서 비롯된 금정도는 세종대의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금정역을 포함 광시(光時)·세천(世川)·용곡(龍谷)·급천(汲泉)·순성(順成)·흥세(興世)·풍전(豐田)·하천(下川)·몽웅(夢熊)·해문(海門)·청연역(靑淵驛) 등 12개 역이 소속되어 있었다. 1462년(세조 8) 8월에 역로를 재정비하면서 금정도 속역은 금정역(金井驛)·광시역(光時驛)·용곡역(龍谷驛)·세천역(世川驛)·몽웅역(夢熊驛)·해문역(海門驛)·청연역(靑淵驛)·풍전역(豐田驛)·하천역(下川驛) 등 9개의 속역으로 감소되었다. 이후 『경국대전』 체제에서도 그대로 확립되었다.

이와 같은 금정도의 내력은 다음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대동지지(大東地志)』가 편찬된 19세기 중반 무렵에는 평택의 화천역(花川驛), 온양의 시흥역(時興驛), 신창의 창신역(昌德驛), 예산의 일흥역(日興驛) 등이 추가로 편입되어 속역의 수가 17개 역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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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만기요람(萬機要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해동지도(海東地圖)』
  • 『동여도(東輿圖)』
  •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 『금정도역지(金井道驛誌)』
  • 조병로, 『한국근세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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