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부(恭安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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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이 상왕이 된 후 정종에 대한 모든 사무를 맡아 보던 상왕부.

개설

1400년(정종 2) 정종이 태종에게 국왕의 자리를 내어 주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나자, 태종은 공안부를 설치하여 상왕 정종에 대한 공봉(供奉)과 그 밖의 모든 사무를 맡아 보게 하였다(『정종실록』 2년 11월 13일). 공안부에는 판사·윤(尹)·소윤(少尹) 등을 각 1명을 속관으로 두었다. 그러다가 정종이 사망한 뒤 1420년(세종 2) 공안부를 폐지하여 인녕부로 통합시켰다(『세종실록』 2년 3월 16일).

제정 경위 및 목적

1400년 11월 정종이 태종에게 왕의 자리를 내어 주고 물러나자, 태종은 태조를 위해 설치하였던 승녕부(承寧府)의 예에 따라 그를 상왕으로 추대하고, 부(府)를 세워 공안부라 하였다. 정종의 비(妃)를 위해서는 인녕부를 설치하였다. 공안부는 상왕 정종에 대한 공봉과 그 밖의 모든 사무를 맡아 보았다.

내용

1400년 공안부가 설치될 당시에는 판사·윤·소윤·판관·승(丞)·주부(主簿) 각 1명을 속관으로 두었고, 인녕부에도 내관과 궁녀를 배치하였다. 1403년(태종 3) 6월 불필요한 관원을 가려내어 없애고 관제(官制)를 고칠 때 보화고(保和庫)를 공안부에 합쳤다(『태종실록』 3년 6월 29일). 1405년 3월 육조(六曹)의 직무 분담과 소속 아문(衙門)을 상세히 정할 때 공안부는 승녕부·인녕부 등과 함께 이조(吏曹)의 속아문(屬衙門)으로 편제되었다(『태종실록』 5년 3월 1일). 이어 6월에는 상왕 대비(上王大妃)의 공상별진사(供上別進使)를 없애고 공안부에서 이를 겸하여 맡도록 하였다(『태종실록』 5년 5월 29일). 이듬해 2월에는 공안부 판사와 윤을 혁파하였다.

1414년(태종 14) 1월 관제를 고칠 때 공안부 주부를 부승(副丞)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였고, 영사(領事) 1명을 축소하였다. 4월 정부 조직을 개편할 때 공안부 윤 1명을 더 두도록 하였다. 이듬해 3월에는 검교판공안부사(檢校判恭安府事)를 2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1419년(세종 1) 11월에는 공안부 윤 2명을 혁파하였다.(『세종실록』 1년 11월 30일).

변천

정종이 사망한 뒤 1420년(세종 2) 3월에 공안부를 폐지하여 인녕부로 통합시키고, 소윤을 더 두었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