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오원력(庚午元曆)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몽골의 야율초재(耶律楚材)가 만든 역법.

개설

『경오원력(庚午元曆)』은 칭기즈칸을 추종한 야율초재가 만든 역법이다. 경오년(庚午年)은 1210년을 가리키는데, 금나라를 쳐서 몽고가 중국을 장악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에 알맞은 역법을 야율초재가 제안한 것이다. 경오원력은 공식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종대 이순지(李純之)와 김담(金錟)이 왕명을 받아 책으로 편찬하였다.

내용 및 특징

경오원력을 만든 야율초재는 칭기즈칸을 추종한 요나라 왕족 출신의 천문학자이다. 야율초재는 『수시력(授時曆)』을 편찬한 원의 곽수경(郭守敬)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표적인 천문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1218년 칭기즈칸을 따라 서쪽으로 진군하여 사마르칸트 지역에 오래 살면서 그 지역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 남기기도 했다. 특히 아랍 역법을 연구하여 마답파력(麻答巴曆)을 만들었고, 아울러 경오원력을 만들었다. 경오년이란 1210년을 가리키는데, 이미 금나라를 쳐서 몽고가 중국을 장악하게 된 것을 계기로 종래 금력(金曆) 대신 알맞은 역법을 제안한 것이다. 경오원력은 공식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하였고, 이후 원 세조가 『수시력』을 편찬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경오원력은 1444년(세종 26)에 이순지와 김담이 왕명을 받아 간행하였다. 경오원력이 우리나라에 유입하여 소개된 것은 고려충선왕(忠宣王)이 원나라에서 수시력을 가져왔을 때 함께 소개되었다. 이순지와 김담이 경오원력을 편찬할 수 있었던 것은 충선왕 이후 조선 태종 연간에 경오원력이 실려 있는 『원사(元史)』를 중국으로부터 하사 받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경오원력은 원초(元初)에 사용되던 종래 금나라 역법인 『대명력(大明曆)』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이었다. 『대명력』은 본래 중국 송대 천문학자 조충지(祖沖之)가 유송(劉宋)의 효무제(孝武帝)의 대명연호(大明年號)를 따서 463년에 만든 것으로 원가력(元嘉曆)의 추산법이 천체 운행과 맞지 않아 만든 역법이다. 『대명력』은 계산법에서 윤법(閏法)을 개정했다는 점과 세차(歲差)를 채택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북량(北涼)의 『현시력(玄始曆)』에서 처음으로 19년 7번이라는 윤법을 버리고 장세(章歲) 600년간에 221번 윤월을 두자는 파장법(破章法)을 채택했지만, 조충지는 391년 144번 윤월을 두게 하였다. 세차는 동진(東晋)의 우희(虞喜)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역법에서 채택한 사람이 조충지였다. 그리고 1년의 길이를 원가력의 365.2467일에서 365.2428일로 줄였다. 파장법은 현시력에서 대명력을 거쳐 경오원력까지 이어졌다. 결국 경오원력은 대명력의 수정본으로서 조지미(趙知微), 야율이(耶律履) 등이 수정한 소위 『중수대명력(重修大明曆)』과 거의 같은 것이다. 두 역법 모두 역원(曆元)을 1210년(원 태조 5)으로 잡고, 그간 경진년(庚辰年), 즉 1220년까지 10년간의 적년(積年) 20,275,270을 연기(演紀) 계산하고 있다.

변천

경오원력은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으나, 『대명력』과 동일한 역법으로 그 원리는 원대 곽수경의 『수시력』이 사용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경오원력(庚午元曆)』
  • 이은성, 『曆法의 原理分析』, 정음사, 1985.
  •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 박성래, 「<수시력>의 수용과 <칠정산>의 완성」, 『한국과학사학회지』 24권 제2호, 2002.
  • 山田慶兒, 『授時曆の道』, 東京, みすず書房, 1980.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