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계(結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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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같은 목적을 지니고 결성한 계.

개설

결계(結契)는 뜻을 같이하거나 동질적인 기반·성격을 지닌 인사들이 만든 모임체이다. 모임의 구성원과 성격에 따라 재지사족들의 결사계(結社契), 촌락민들의 동린계(洞隣契)인 향촌결계(鄕村結契) 등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결계 중 지배층인 사족들의 결계는 지연과 학연·혈연을 바탕으로 한 족계(族契)나 문인계(門人契), 동갑계(同甲契), 시사계(詩社契), 동방계(同榜契) 등이 존재하며 조선초기 신흥 성리학자나 사림들이 조직한 친목·친린계(親隣契)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족의 영향력과 지위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결사체 조직들은 보다 넓은 범위의 지역 조직으로써 향안(鄕案)이나 향규(鄕規), 향약(鄕約)류로 발전하기도 하고, 수령 중심의 군현 단위 향약이 유명무실화되면서는 여러 개의 인접한 촌락을 연계시키는 동계(洞契)·동약(洞約) 조직으로 변화되기도 하였다.

한편 촌락민들의 생활 공동체 조직으로써 결계류는 향약의 실시 논의와 함께 그 하부 단위로의 활용이 거론되는 소위 ‘향촌결계(鄕村結契)’류의 촌락민 조직들이 있었다. 1546년(명종 1)에 향약에 대해 논의하는 중에 향촌결계에 관한 기사가 보이는데(『명종실록』 1년 8월 23일), 향도(香徒, 鄕徒)·음사(淫祀)·동린계 등이 향촌결계에 해당한다.

조선전기의 향촌결계들은 조직의 단위를 말단 자연 촌락으로 하고 있고, 구성원도 상·천민으로 하였다. 또한 이들이 주체가 되어 행하는 행사들도 공동 노역이나 마을의 잡역, 그리고 당제(堂祭)나 동제(洞祭)처럼 무속적인 전통이 가미된 마을 제사[淫祀], 관혼상장(冠昏喪葬)의 공유와 그 부조(扶助)가 주된 것이었다. 이들은 성리학적 사족의 지배 질서가 구축되어 가는 과정에서 사족계나 향약 조직의 하부 구조로 대부분 편입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배 이념과 근본적으로 상충되지 않는 선에서 부분적인 기능만을 담당하거나, 아예 지배층의 하층민 지배 틀 속에 귀속되어 갔다.

그 외에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503년(연산군 9)에는 이서배(吏胥輩)들이 상인들과 계를 맺어 형제의 약속을 한다는 기사가 있다(『연산군일기』 9년 2월 8일). 숙종대에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 "도하(都下)의 무뢰배들이 검계(劍契)를 만들어 사사로이 서로 진법을 익히니[習陣] 마땅히 금지하는 법을 먼저 세워 향도계(香徒契)를 모두 혁파하고 그 도가(都家)를 허물어 폐단의 근원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숙종실록』 10년 2월 12일) (『숙종실록』 10년 2월 25일).

변천

결계 조직들은 사족의 영향력과 지위가 높아지면서 보다 넓은 범위의 지역 조직으로써 향안이나 향규, 향약류로 발전하기도 하고, 동계·동약 조직으로 변화되기도 하였다. 촌락민들의 생활 공동체 조직으로써 기능하던 향촌결계류는 성리학적 사족의 지배 질서가 구축되어 가는 과정에서 사족계나 향약 조직의 하부 구조로 대부분 편입되었다. 그리고 지배 이념과 근본적으로 상충되지 않는 선에서 부분적인 기능만을 담당하거나, 아예 지배층의 하층민 지배 틀 속에 귀속되어 갔다.

이 밖에 이서배들이 상인들과 계를 맺어 형제의 약속을 하거나 도하(都下)의 무뢰배들이 결계하는 모습도 『조선왕조실록』 기사에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 이해준, 『조선시기 촌락 사회사』, 민족문화사, 1996.
  • 향촌 사회사 연구회, 『조선 후기 향약 연구』, 민음사, 1990.
  • 박경하, 「조선 후기 촌락민 조직과 촌계」, 『정신문화연구』53, 1993.
  • 이해준, 「조선시대 향도와 촌계류 촌락 조직」, 『역사민속학』1, 1991.
  • 이해준, 「조선 후기 촌락 구조 변화의 배경」, 『한국문화』14,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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