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假引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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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이후 국가 의례를 주관하던 통례원(通禮院) 소속의 종9품 임시 관직.

개설

중종 연간에 겸인의(兼引儀)와 함께 각 정원 6명으로 설치되었다. 명종 때 겸인의에 결원이 생기면 충원하여 녹봉을 받도록 하였다.

담당 직무

가인의(假引儀)는 조선시대 각종 의례에서 인의·겸인의 등과 함께 행사 진행을 도왔다. 각종 의궤에 따르면, 가인의는 대치사관(代致詞官)이나 알자(謁者)·예모관(禮貌官)·찬자(贊者)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치사관이란 축하문인 치사(致詞)을 읽는 관원을 말하며, 알자는 빈객(賓客)의 인도를, 예모관은 의식 절차의 진행을, 찬자는 의식 진행을 돕는 관원을 말한다. 이 밖에도 재상급 관원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할 때는 통알(通謁)의 임무를 띠고 참석하였다.

변천

조선후기에는 음직(蔭職)의 한 자리로 활용되었다.

1709년(숙종 35) 7월에는 가인의에 처음 제수되는 연령을 30세로 한정하였다. 1741년(영조 17)에는 6품으로 승급되는 규정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실무 관직의 여부를 논하지 않고 60개월이 차면 6품으로 올리도록 법제가 마련되었다.

이후 『속대전』에서는 근무 일수와 관계없이 차례대로 겸인의에 올린 뒤 900일 만에 6품으로 승급되도록 변경하였다. 900일은 30개월에 해당되는 기간으로, 6품으로 승급되는 기간이 60개월에서 30개월로 완화된 것이었다. 한편 1765년(영조 41)부터는 가인의 정원의 반은 중서(中庶)층에 배정하도록 규정되었다.

가인의는 여창(臚唱)을 잘하는 자 가운데 뽑아 의망(擬望)하였다. 이때 의망단자(擬望單子)에는 나이와 현조(顯祖)를 비롯해 천주(薦主)와 감련찬의(監鍊贊儀)를 함께 기록하였다. 이는 잘못 추천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만약 여창을 잘 못하면 천주는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로, 찬의는 불응위사율(不應爲私律)로 그 죄를 다스렸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육전조례(六典條例)』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임민혁, 『조선시대 음관연구』, 한성대학교 출판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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