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창(臚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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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무과 급제자를 위한 각종 의식이나 행사에서 식의 절차를 소리 높여 읽은 일.

개설

조선시대에는 국가와 왕실의 각종 의식과 다양한 행사들이 실시되었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의식과 행사를 일사분란하게 제대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때 식의 절차를 소리 높여 읽은 일을 여창(臚唱)이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행사에서 사회를 본다.”라고 할 수 있다. 문과는 물론 무과 급제자들을 위해서도 창방의(唱榜儀)·은영연(恩榮宴)·사은례(謝恩禮)·알성례(謁聖禮) 등의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으며, 통례원(通禮院)의 인의(引儀)가 여창을 담당하였다.

내용 및 특징

어려운 고난과 과정을 통과한 문무과 급제자에게는 다양한 의식과 행사들이 펼쳐졌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실시된 것이 합격 증서를 수여하는 창방의(唱榜儀)였다. 이 행사는 방방의(放榜儀)라고도 불렸는데, 왕이 직접 참석하고 문반과 무반의 모든 관원과 급제자의 부모 형제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여기에서 문과 급제자는 오른쪽, 무과 급제자는 왼쪽에 정렬한 뒤, 호명(呼名)에 따라서 왕에게 네 번 절하는 사배례(四拜禮)를 올리고 나서 합격 증서인 홍패(紅牌)를 비롯한 술과 과일, 일산(日傘), 어사화(御賜花) 등을 하사받았다.

창방의가 끝나면 의정부에서는 급제자들을 위한 축하 잔치를 베풀었다. 은영연(恩榮宴)이라 불리는 이 잔치는 당상(堂上)에 시험을 주관하였던 시관(試官)들을 앉히고, 당상에 이르는 계단을 중심으로 동쪽에 문과 급제자, 서쪽에 무과 급제자를 각각 성적순으로 앉혔다. 악공이 연주하는 가운데 기생들이 술을 권하고, 재주꾼들이 여러 가지 재주를 펼쳐 보여 급제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흥겨운 연회였다.

은영연이 실시된 다음 날에는 문과 급제자들이 무과 급제자들과 함께 문과 장원의 집에 모인 뒤 궁궐로 가서 왕에게 사은례(謝恩禮)를 올렸으며, 다시 그다음 날에는 무과 장원의 집에 다 함께 모여 성균관 문묘(文廟)에 가서 공자(孔子)의 신위(神位)에 참배하는 알성례(謁聖禮)를 행하였다.

창방의·은영연·사은례·알성례 등과 같이 문무과 급제자를 위한 각종 의식과 행사가 치러질 때에는 많은 참석자들이 모두 엄숙하면서도 일사분란하게 식의 절차에 제대로 잘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때 식의 절차를 소리 높여 읽은 것이 바로 여창이었으며, 이것을 담당한 관원은 통례원의 정6품 인의(引儀)였다(『세종실록』 26년 6월 9일).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면, 인의라는 관직에는 8명을 두었는데, 모든 인의가 여창을 담당하기보다는 그 중에서도 나이 젊고, 여창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맡아서 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차미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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