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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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 대구 서씨 (大丘 徐氏)

관향 = 대구광역시

원조(遠祖) = 서한(徐閈)

중조 = 서익진(徐益進)


인물 = 서거정, 서성, 서경우, 서종태, 서종제, 정성왕후, 서문중, 서명균, 서종급, 서명응, 서명선, 서매수, 서호수, 서유대, 서유방, 서용보, 서영보, 서유구, 서준보, 서영순, 서희순, 서대순, 서당보, 서상정, 서상우, 서광범, 서재필, 서명원, 서기원, 서갑원, 서중석, 서동권, 서정화, 서상목, 서상철,서도립

년도 = 2015

인구 = 97,866명


대구 서씨 (大丘 徐氏)는 대구광역시 대구(大邱)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목차

역사

이천서씨(利川徐氏)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 5세손인 원조(遠祖) 서한(徐閈)이 고려(高麗)조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냈다. 서익진(徐益進)을 중조로 한다.

서익진의 증손자인 서거정(徐居正)이 1444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제학을 역임하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으며, 좌찬성으로서 세자이사(世子貳師)를 겸했다.

서거정의 형인 서거광(徐居廣)의 현손 서성(徐渻)은 1586년(선조 19) 문과에 급제하고 인조반정 후 판서를 역임하였다. 선조, 인양조(仁兩朝)의 명신으로 선조고명칠신(宣祖顧名七臣)의 한분이시다. 판중숙부사(判中肅府事)를 역임 시(諡)는 충숙공(忠樞公)이시다. 공(公)이 생사남(生四男). 장남(長男)의 휘(諱)는 서경우(徐景雨) 우의정 호를 만사(晩沙)라 하여 공(公)의 후예를 만사공파라 하고,이남(二男)의 휘는 서경수(徐景需) 종진부전첨을 역임 공의 후예를 전첨공파라하고,삼남(三男)의 휘는 서경빈 첨지중추부사 공(公)의 후예를 첨추공파라 하고,사남(四男)의 휘(諱)는 서경주 승선조(承宣祖) 장옹주(長翁主)하여 봉 달성위공(公)의 후예를 도위공파라 한다.

위와 같이 대구 서씨(大丘徐氏)를 칠파(七派)로 나누어 영조(英祖) 을미보 범례(乙未譜凡例)에 종훈(宗訓)으로 명시한 바 있다.

조선조(朝鮮朝)에 대구 서씨(大丘徐氏) 후손이 크게 번창하여 명덕(名德)이 높아 명문거벌(名門巨閥)로 지칭되어 왔으며,이를 류별로 기록하면 黃閣(정승) 9人(인), 文衡(대제학) 6人(인), 판서(判書) 33人(인), 참판(參判) 18人(인),국구(國舅) 1人(인), 儀賓(의빈, 부마) 1人(인), 觀察使(관찰사) 6人(인), 大將(대장) 6人(인), 院享(원향) 3人(인), 贈諡(증시) 38人(인)이시다. 과방(科榜)에 문과(文科)가 140人(인), 무과(武科) 106人(인), 소과(小科)(진사 108, 생원 106) 214人(인) 인지라 世稱(세칭) 仍爲冠冕大族(잉위관명대족)이라 한다.

서성의 아들 4형제 중에서도 둘째 서경수와 넷째 서경주의 집이 특히 번성하여 서경수의 현손 서종제(徐宗悌)의 딸이 영조비가 되고, 서종제의 현손 서용보(徐龍輔)가 영의정에 올랐으며, 서경주의 집에서 영의정 6명과 좌의정 1명, 대제학 5명이 나왔다.

특히 서종태(徐宗泰)·서명균(徐命均)·서지수(徐志修)의 3대 상신(三代相臣)과 서유신(徐有臣)·서영보(徐榮輔)·서기순(徐箕淳)의 3대 대제학(三代大提學)이 유명하고, 또 서명응(徐命膺:大提學)·서호수(徐浩修:直提學)·서유구(徐有榘:吏判)의 3대는 다같이 문명(文名)이 높았다. 이처럼 이른바 '약봉가(藥峯家)'이라 부르는 서성의 가계는 선조에서 고종에 이르는 약 300년간 정계에서 주요 역할을 하였다.

이밖에 한말의 개화파인 서광범(徐光範)과 서재필(徐載弼) 등을 배출하였다.

대구 서씨(大丘徐氏)의 고향은 대구인바 대구의 古地名이 達成(달성)이므로 후손들이 대구와 달성을 혼용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고려시대 권문세족은 이천 서씨,인주 이씨,해주 최씨,남양 홍씨가 4대 문벌귀족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천서씨에서 분파한 대구 서씨(大丘徐氏) 서성(徐渻 증 영의정) 후손이 3대 정승(서종태(徐宗泰 영의정),서명균(徐命均 좌의정),서지수(徐志修 영의정)),3대 대제학(서유신(徐有臣 대제학),서영보(徐榮輔 대제학),서기순(徐箕淳 대제학))을 최초로 6대 연속과 서명응(徐命膺 대제학),서호수(徐浩修 직제학), 서유구 (徐有榘 대제학) 3대 대학자를 연속 배출하여 조선에서는 서지약봉(徐之藥峰)이요.홍지모당(洪之慕堂) 으로 유명했고, 연리광김(延李光金)와 더불어 대구 서씨,풍산 홍씨,연안 이씨,광산 김씨가 조선 최고 4대 양반 가문으로 꼽힌다. 숙종때 이런 일화가 전한다.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비롯한 서씨 성을 가진 참판급 이상 중신이 30여명 이었다. 어느날 조회를 소집한 숙종이 용상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오가는 대신들이 대부분 서씨들이라, “마치 어미 쥐가 새끼쥐를 거느리고 다니는 듯 하다!” 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숙종의 말씀이었으나,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어미쥐로 빗대 그 아래 웅성거리는 서씨대신들의 융성함을 나타내는 기막힌 표현이였다.대구 서씨달성 서씨라고도 부른다.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이천서씨서신일(徐神逸)(아간대부 정2품)- 서필(徐弼)(내의령 종1품) 서봉(徐逢)(광평시랑평장사 정2품) - 서희(徐熙)(내사령 종1품) - 서눌(徐訥)(문하시중 종1품) 서유걸(徐維傑)(좌복야 정2품) 서유위(徐維偉)(장야서령 정3품)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서정(徐靖)(판삼사사 종1품) 서존(徐存)(병부상서 정3품)-서균(徐鈞)(우복야 정2품) 서린(徐嶙)(판대부사 정2품) 서석(徐碩)(시랑평장사 정2품)-서원(徐元)(평장사 정2품) 서공(徐恭)(판삼사사 종1품) 서순(徐淳(徐諄)(동지추밀원사 종2품) 서성(徐成)(평장사 정2품) 서염(徐廉)(사복부령 종2품)에 걸쳐 칠대(7 대) 동안 연속 재상직에 임명된 고려 최고 문벌 귀족 가문이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連城君))-서준영(徐俊英 연성군(連城君))-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 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원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하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서씨일가연합회 서일연[[1]]

가족

시조: 서신일 (徐神逸 아간대부. 종1품)

  • 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필(徐弼)(종1품 내의령)
  • 고고고고고고고조할머니 : 평양 황씨(平壤黃氏)
    • 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 서희(徐熙)(종1품 내사령)
      • 큰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눌(徐訥)(종1품 문하시중)
      • 큰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 서유걸(徐惟傑)(정2품 좌복야)
      • 큰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 서유위(徐惟偉)(정3품 장야서령)
      • 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고고고고조할아버지: 서한(徐閈 정4품 군기소윤)
          • 고고고조할아버지: 서신(徐愼 정2품 이부판사)
            • 고고조할아버지: 서무질(徐無疾 종2품 밀직사)
              • 고조할아버지: 서진(徐晉 정3품 판도판서)
                • 증조할아버지: 서기준(徐奇俊 정2품 문하시중찬성사)
                  • 할아버지: 서영(徐穎 정2품 문하시중찬성사)
                    • 큰아버지: 서균형(徐鈞衡 종2품 정당문학)
                      • 사촌: 서침(徐沈 정3품 조봉대부)
                        • 조카 : 서문한(徐文翰 현감)
                          • 증조카 : 서제(徐濟, 현감공파(縣監公派)
                            • 고조카 : 서맹원(徐孟源 충순위)
                              • 고고조카 : 서필(徐弼 예빈시 직장)
                                • 고고고조카 : 서응기(徐應期 생원)
                                  • 고고고고조카 : 서형(徐泂 진사)
                                  • 고고고고조카 :서흡(徐洽 전교)
                                  • 고고고고조카 : 서식(徐湜 의병장)
                                  • 고고고고조카 : 서함(徐涵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 고고고고고조카: 서사건(徐思建 증 장악원 정(贈 掌樂院正)
                                        • 고고고고고고조카: 서변(徐忭 학자)
                                  • 고고고고조카 : 서호(徐灝 생원)
                          • 증조카 : 서도(徐渡, 학유공파(學諭公派)
                          • 증조카 : 서섭(徐涉. 판서공파(判書公派)
                        • 조카 : 서문간(徐文幹 현감)
                          • 증조카 : 서근중(徐近中, 감찰공파(監察公派)
                        • 조카 :서문덕(徐文德 현감)
                      • 사촌 : 서습(徐漝)
                      • 사촌 : 서환(徐渙)
                • 증조할아버지: 서지유(徐之宥 상호군)
                • 증조할아버지: 서원(徐遠 생원)
                    • 아버지: 서익진(徐益進 종2품 판전객시사)
                      • 본인: 서의(徐義 정3품 호조전서)
                        • 아들:서미성(徐彌性 정3품 목사(牧使))
                          • 손자: 서거광 (徐居廣 언양현감)
                            • 증손자:서팽소(徐彭召 사헌부장령)
                              • 고손자:서후(徐厚 대사간(大司諫) 정3품)
                              • 고손자:서구(徐久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 고손자:서업(徐嶪 증 병조 판서 겸 부사(兵曹判書兼府使))
                                  • 고고손자: 서수(徐洙 생원)
                                    • 고고고손자: 서경무(徐景茂 절충 장군(折衝將軍)
                              • 고손자 : 서포(徐包 증참판(贈參判)
                              • 고손자: 서고(徐固 예조참의(禮曹參議)
                                • 고고손자:서대(徐岱 장사랑)
                                • 고고손자:서엄(徐崦 학자)
                                • 고고손자:서해(徐嶰 학자)
                                  • 고고고손자:서성(徐渻 판중추부사 종1품)
                                    • 고고고고손자:서경우(徐景雨 우의정 정1품)
                                      • 고고고고고손자:서원리(徐元履 함경도 감사)
                                        • 고고고고고고손자:서문중(徐文重 영의정 정1품)
                                    • 고고고고손자:서경수(徐景需 전첨.증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손자 : 서형리(徐亨履)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문도(徐文道 사평(司評))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제(徐宗悌 영조의 국구.달성부원군)
                                            • 고고고고고고고고손녀: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백(徐命伯 증 이조판서)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덕수(徐德修 증 이조참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호(徐有浩 군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일보(徐日輔 도정)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진순(徐震淳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상기(徐相夔 생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광효(徐光孝)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재필(徐載弼 독립운동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항순(徐恒淳)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상목(徐相穆)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재필 양부): 서광하(徐光夏)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인수(徐仁修 도호부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경(徐有慶 좌찬성 종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능보(徐能輔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신수(徐信修 증 좌찬성)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녕(徐有寧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귀보(徐龜輔 예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응보의 자):서호순(徐灝淳 증 이조판서)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상정(徐相鼎 병조판서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용보(徐龍輔 영의정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 서응보의 자): 서대순(徐戴淳 예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응보(徐應輔 군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희순(徐憙淳 부제학)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휴(徐命休 지평)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노수(徐魯修 목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풍(徐有豊 현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영보(徐永輔 사헌부 지평)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경순(徐慶淳 현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상우(徐相雨 예조판서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승(徐有升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경보(徐京輔 첨지중추부사 종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영순(徐英淳 한성부판윤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종신(徐宗愼)(선공감감역 繕工監監役)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삼(徐命三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명오의 자): 서호수(徐好修 현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계(徐有階 첨추)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장보(徐長輔 대사간)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홍보의 자): 서형순(徐衡淳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손자: 서홍보(徐鴻輔 현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구(徐命九 동지의금부사 종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오(徐命五 목사)
                                      • 고고고고고손자 : 서택리(徐擇履 진사)
                                      • 고고고고고손자 : 서상리(徐祥履 병조참의)
                                      • 고고고고고손자 : 서광리(徐匡履 진사)
                                      • 고고고고고손자 : 서홍리(徐弘履 진사)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문준(徐文濬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적(徐宗積 한성부부윤)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명장(徐命璋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일수(徐逸修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유대(徐有大 한성판윤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영보(徐英輔 훈련대장)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봉순(徐鳳淳 가선대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상오(徐相五 병조참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병훈(徐丙勳 병조참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명형(徐命珩 도승지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각수(徐覺修 부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유원(徐有元 대사간)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효수(徐孝修 교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유린(徐有隣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유방의 자): 서준보(徐俊輔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기순(徐耆淳 이조참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상조(徐相祖 판돈녕원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병찬(徐丙贊 봉상시부제조)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복순(徐復淳 생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유방(徐有防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손자 : 서탄리(徐坦履)
                                    • 고고고고고손자:서경빈(徐景霦 현감)
                                    • 고고고고고손자:서경주(徐景霌 달성위 선조부마)
                                      • 고고고고고손자 : 서정리(徐貞履 부사)
                                        • 고고고고고고손자 : 서문상(徐文尙) 병조 참의)
                                          • 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종태 (徐宗泰 영의정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명균 (徐命均 좌의정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지수 (徐志修 영의정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로(徐有老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유신의 자): 서경보(徐畊輔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유신(徐有臣 대제학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영보(徐榮輔 대제학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기순(徐箕淳 대제학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후(徐有後 참봉 통훈대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공보(徐恭輔 생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춘보의 자): 서염순(徐念淳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춘보(徐春輔 총융사 종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기보(徐基輔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헌순(徐憲淳 형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무수(徐懋修 학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유돈(徐有敦 현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긍보(徐兢輔 현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정순(徐正淳 예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당보(徐堂輔 영의정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현보의 자):서공순(徐公淳 궁내부특진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상집(徐相集 공무아문참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병의(徐丙義 최초 축구심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현보(徐玄輔 생원)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순(徐命純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회수(徐晦修 공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명빈(徐命彬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문하(徐文夏)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헌(徐宗憲 관찰사)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연(徐命淵 관찰사)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문징(徐文徵 진사)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문유(徐文裕 부사)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옥(徐宗玉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명익(徐命翼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명응의 자): 서호수(徐浩修 부제학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유본(徐有本 학자)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응 (徐命膺 대제학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명장의 자): 서철수(徐澈修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서호수의 자): 서유구(徐有榘 대제학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선 (徐命善 영의정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성 (徐命誠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양자. 서명응의 자):서형수(徐瀅修 이조참판)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벽(徐宗璧 목사)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민(徐命敏 호조정랑)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기수(徐淇修 이조참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훈(徐有薰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수(徐宗秀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명신(徐命臣 제학 형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손자 : 서정리(徐正履 좌랑)
                                    • 고고고고고손자 : 서진리(徐晉履 직장)
                                      • 고고고고고고손자: 서문택(徐文澤 주부)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집(徐宗集 목사)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관(徐命寬 음관)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광수(徐廣修 군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증(徐有曾 군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선보(徐善輔 군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경순(徐璟淳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섭(徐宗燮 이조참의)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서명원(徐命元 사헌부집의)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매수(徐邁修 영의정 정1품)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천(徐命天 대사간)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격수(徐格修 동중)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영(徐有英 금계필담 저자)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엽(徐宗燁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인(徐命仁 도호부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미수(徐美修 대사간)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여(徐有畬 공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승보(徐承輔 형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직수(徐直修 관찰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유문(徐有聞 이조참판 종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좌보(徐左輔 병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원순(徐元淳 예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명전(徐命全 진사)
                                            • 고고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정수(徐鼎修 이조판서 정2품)
                                        • 고고고고고고고손자: 서종급(徐宗伋 이조판서 정2품)
                                • 고고손자: 서영(徐嶸 서흥파(瑞興)
                              • 증손자: 서팽려(徐彭呂) 풍저창봉사(豊儲倉奉事)
                          • 손자: 서거정 (徐居正 좌찬성 종1품)
  • 큰고고고고고고고조할아버지 : 서목(徐穆)(종1품 문하시중.이천백)



서씨일가연합회 서일연[[2]] [[3]]

인물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좌찬성,대제학,彌性아들,權近외손
  • 서성(徐渻) 1558-1631 호조판서,해(山解)아들,居廣(서거정兄)현손
  • 서경우(徐景雨) 1573-1645 우의정,성(渻)아들
  • 서경주(徐景霌) 1579-1643 달성위,선조부마,성(渻)아들
  • 서문중(徐文重) 1634-1709 영의정,문과장원,元履양자,貞履아들,景雨손자
  • 서문유(徐文裕) 1651-1707 이조판서,貞履아들, 선조부마景주 손자
  • 서종태(徐宗泰) 1652-1719 영의정,대제학,文尙아들,선조부마景주 증손
  • 서명균(徐命均) 1680-1745 좌의정,宗泰아들
  • 서종급(徐宗伋) 1688-1762 이조판서,文澤아들,선조부마 景주 현손
  • 서종옥(徐宗玉) 1688-1745 이조판서,文裕아들
  • 서종헌(徐宗憲) 1656-1712 관찰사,文夏아들
  • 서명빈(徐命彬) 1692-1763 이조판서,宗泰아들
  • 서명신(徐命臣) 1701-1771 형조판서,宗秀아들,선주부마景주 현손
  • 서회수(徐晦修) 1713-1792 공조판서,命純아들,宗泰손자
  • 서지수(徐志修) 1714-1768 영의정,命均아들
  • 서명응(徐命膺) 1716-1787 이조판서,대제학,宗玉아들
  • 서유경(徐有慶) 1727-1788 예조판서,仁修아들,宗悌증손
  • 서명선(徐命善) 1728-1791 영의정,宗玉아들
  • 서매수(徐邁修) 1731-1818 영의정,命元아들,선조부마景주5대손
  • 서유대(徐有大) 1732-1802 훈련대장,逸修아들
  • 서유녕(徐有寧) 1733-1789 예조판서,信修양자,仁修아들,宗悌증손
  • 서유신(徐有臣) 1735- 대제학,문과장원,志修아들
  • 서호수(徐浩修) 1736-1799 이조판서,命翼양자,命膺아들,宗玉손자
  • 서유린(徐有隣) 1738-1802 이조판서,문과장원,孝修아들
  • 서유방(徐有防) 1741-1798 이조판서,孝修아들
  • 서정수(徐鼎修) 1749-1804 이조판서,命全아들,선조부마 景주5대손
  • 서영보(徐英輔) 1757-1821 훈련대장,有大양자,有常아들
  • 서용보(徐龍輔) 1757-1824 영의정,有寧아들
  • 서영보(徐榮輔) 1759-1816 이조판서,대제학,문과장원,有臣아들
  • 서락순(徐洛淳) 1761-1835 사간원 사간, 聖躋아들, 彭呂후
  • 서유구(徐有榘) 1764-1845 이조판서,대제학,문과장원,浩修아들
  • 서능보(徐能輔) 1769-1835 이조판서,문과장원,有慶아들
  • 서준보(徐俊輔) 1770-1856 이조판서,대제학,有隣양자,有防아들
  • 서경보(徐耕輔) 1771- 이조판서,문과장원,有老양자,有臣아들
  • 서춘보(徐春輔) 1776-1825 총융사,有後아들,志修손자
  • 서좌보(徐左輔) 1786-1855 병조판서,문과장원,有聞아들
  • 서귀보(徐龜輔) 예조판서,有寧아들,宗悌증손
  • 서기순(徐箕淳) 1791-1854 이조판서,대제학,청백리,榮輔아들
  • 서유여(徐有畬) 1792-1879 공조판서,美修아들
  • 서영순(徐英淳) 1793-1854 형조판서,京輔아들,宗悌5대손
  • 서희순(徐熹淳) 1793-1857 이조판서,應輔아들,有寧손자
  • 서유훈(徐有薰) 1795-1862 이조판서,淇修아들,文裕현손
  • 서염순(徐念淳) 1800-1859 이조판서,恭輔양자,春輔아들
  • 서헌순(徐憲淳) 1801-1868 이조판서,基輔아들,志修증손
  • 서상오(徐相五) 1801-1857 어영대장,鳳淳아들
  • 서유영(徐有英) 1801-1874 금계필담 저자. 서경주(徐景霌)의 6대손.
  • 서원순(徐元淳) 1805- 예조판서,左輔아들
  • 서대순(徐戴淳) 1805-1871 예조판서,龍輔양자,應輔아들
  • 서당보(徐堂輔) 1806-1883 영의정 有敦아들,命均증손
  • 서경순(徐璟淳) 1808- 이조판서,善輔아들,有曾손자
  • 서형순(徐衡淳) 1813-1893 이조판서,長輔양자,鴻輔아들
  • 서상정(徐相鼎) 1813- 병조판서,灝淳아들,龜輔손자
  • 서승보(徐承輔) 1814- 형조판서,有여 아들
  • 서상우(徐相雨) 1831-1903 예조판서,문과장원,慶淳아들,有豊증손
  • 서정순(徐正淳) 1835-1908 예조판서,兢輔아들,命均현손
  • 서봉순(徐鳳淳) 좌포도대장,英輔아들
  • 서경순(徐景純) 이조판서
  • 서진순(徐瑨淳) 이조판서
  • 서광범(徐光範) 1859-1897 법부대신,相翊아들,戴淳손자,龍輔증손
  • 서재필(徐載弼) 독립운동가
  • 서상렬(徐相烈) 항일의병장
  • 서상륜(徐相崙) 최초 개신교 교회 설립자.최초 개신교 신자
  • 서경조(徐景祚) 최초 개신교 교회 목사
  • 서상돈(徐相敦) 독립운동가. 국채보상운동
  • 서병호(徐丙浩) 독립운동가
  • 서병희(徐炳熙) 항일의병장
  • 서정희(徐廷禧) 농민운동가
  • 서정주(徐廷柱) 시인
  • 서범석(徐範錫) 6선 국회의원

분파

  • 만사공파(晩沙公派)
  • 전첨공파(典籤公派)
  • 첨추공파(僉樞公派)
  • 도위공파(都尉公派)
  • 봉사공파(奉事公派)
  • 서흥파(瑞興派)
  • 사가공파(四佳公派)
  • 춘헌공파(春軒公派)
  •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 장원공파(掌苑公派)
  • 훈련봉사공파(訓鍊奉事公派)
  • 배산파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 정신옹주(선조의 옹주) 부마 서경주
  • 영조비 정성왕후

항렬자

15세 16세 17세 18세 19세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경口(景) 口리(履) 문口(文) 종口(宗) 명口(命) 口수(修) 유口(有) 口보(輔) 口순(淳) 상口(相) 병口(丙)
광口(光)
정口(廷)
재口(載)
口석(錫) 口원(源) 동口(東) 口덕(德) 口규(逵) 口진(鎭) 영口(永) 口영(榮) 口렬(烈) 세口(世) 口선(善 口호(浩) 계口(桂) 口경(慶) 기口(基) 口용(鏞)


서씨(徐氏)의 성씨 기원에 대해 예국 군장 여수기 후손설과 기자조선 후손설, 부여왕족의 후예설 등이 있다.

단군조선(檀君朝鮮) 예국 군장 여수기 후손설

고조선 시대에 예국(穢國)의 군장(君長)인 여수기(余守己)라는 사람이 9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 뒤 아들들은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며 백성들에게 공적을 쌓았다. 이에 백성들이 “중민(衆民)을 도와 공이 많다”는 뜻에서 여(余)씨 성에 두인변(彳 : 두 사람, 즉 여러 사람이라는 의미)을 붙여 서(徐)라고 고쳐 사성(賜姓)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남방계 오음(吳音)으로 여(余)는 Yi*Ya*To 와 더불어 서(徐) Su로도 읽힌다. <대어대자전臺語大字典>. 서국(徐國)는 단군 조선(檀君朝鮮)의 제후국이며 동이(东夷)이다. 고대 중국은 이 서국(徐國)을 서이(徐夷),서융(徐戎) 혹은 서방(徐方) 즉 동이집단(東夷集團)이라 부른다.서언왕(徐偃王)의 나라인데 대서제국(大徐帝國) 바로 대서황제국(大徐皇帝國)이라 부른다. 기원전 1236년부터 기원전 512년까지 존속한 나라였다. 서언왕(徐偃王)이 동이(東夷)의 맹주가 되었고 이때 주나라는 스스로 천자국이라고 칭하기에는 부끄러운 존재에 불과하였던 것이 된다.단군 조선 21세 단군(檀君) 소태(蘇台)와 23대 아홀 단군의 기록에 등장한다.을유년 기원전 1196년 (또는1236)년 남후 검달(금달,今達)이 청구군(靑邱君)과 구려군(句麗君)과 주개(周愷)라는 곳에서 모여서 몽고리(蒙古里)의 군사와 함께 은나라를 정벌하였고 깊숙히 들어가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하였다. 제후들이 회대의 땅을 평정, 포고씨(蒲古氏)를 엄국(奄國), 영고씨(盈古氏)를 서국(徐國), 방고씨(邦古氏)를 회(淮)땅에 각각 봉하였다.은나라 쇠퇴하였다.서국(徐國)은 기원전 1236년에 영고씨(寧古氏)를 봉한 나라로 기원전1236년부터 기원전 668년 제나라에 합병될 때까지 570년간 존속하였다. 기원전 680년경 초나라 문왕에게 한때 수도를 점령당하여 서산(徐山)으로 수많은 백성들과 피난하였다.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인물 서이족(徐夷族)의 지도자인 서언왕(徐偃王)은 중원 대륙에 진출한 동이족(東夷族)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이다. 주목왕이 서이(徐夷)가 두려워 서언왕(徐偃王)을 동이(東夷)세력의 맹주로 인정한 것이며 서국(徐國)의 제후국이 36개나 된다. 서우여(徐于餘, 혹은 西余)는 번한조선(番韓朝鮮) 왕(王)으로 임명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서우여(徐于餘) 원손이 서국(徐國)에 서구왕(徐駒王=徐驹王)과 서언왕(徐偃王)이다. 부여(扶餘(余)) 녹산(아사달)왕조(鹿山王朝)의 왕손이 부여가 망하자, 본래 왕성(王姓)인 여씨(餘(余)氏).부여씨(扶餘(余)氏)에서 서씨(徐氏)로 하였다. 백제(百濟)왕조(王朝)는 부여(扶餘(余)) 왕조를 계승하여, 왕성(王姓)을 부여씨(扶餘(余)氏).여씨(餘(余)氏)로 사용하였고, 신라(新羅)왕조(王朝)에는 서나(徐那:徐那伐)·서야(徐耶:徐耶伐)·서라(徐羅:徐羅伐)·서벌(徐伐) 등 사용하여 서이족(徐夷族) 흔적이 남아있다. 서복(徐福)은 진한(辰韓)으로 진출해 신라 건국의 효시가 되는 사로국(=서라벌·徐羅伐)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신라와 서복(徐福)의 동도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일본(日本) 진무천황(神武天皇)이 부여족(扶餘(余)族)=서이족(徐夷族) 후손 혹은 서복(徐福) 후손이고, 또한 부여족(扶餘(余)族)=서이족(徐夷族)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고추불가제국(현재;타타르 자치공화국),1차 불가리아제국을 세웠다. 《利川徐氏敎理公派譜》 卷之70.서씨득성연원록">利川徐氏敎理公派譜編纂委員會, 1989,《徐氏得姓淵源錄》

《서주지리지(徐州地理志)》에는 서언왕(徐偃王)의 기사(奇事)를 말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즉, "서군(徐君)의 궁인(宮人)이 임신을 하여 계란 하나를 낳자, 상서롭지 않다고 여겨 물가에다 내다 버렸다. 고독모(孤獨母)에게는 곡창(鵠倉)이라고 부르는 한 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물가에서 포획물을 찾다가 이 계란이 눈에 띄자 그것을 입에 물고 집에 돌아왔다. 고독모는 이 물건이 매우 진기한다고 느껴 그것을 덮어서 보온해 주었더니 이윽고 한 아이로 변하였다. 태어났을 때 옆으로 누워 있었다고 하여 이름을 언(偃)이라고 하였다. 서군(徐君)은 궁중에서 이 소식을 듣고 또 그 아이를 받아드렸다. 그 아이는 장성한 뒤에 총명(聰明)하면서도 또 인후(仁厚)한지라 서국(徐國) 임금의 자리를 계승하였다. 그뒤 곡창이 임종시에 머리에 뿔이 나고 9홉의 꼬리가 생겼는데 원래 그 개은 황룡(黃龍)이었다. 서언왕(徐偃王)은 그 개를 서나라에 장사지냈다고 하며, 지금도 이 개무덤을 볼 수 있다. 서언왕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인의(仁義)한 것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가 배를 타고 상국(上國)으로 갈 생각을 하고 이윽고 진채(陳蔡) 일대에서 수로를 개통하였는데 도랑을 파다가 불은색의 화살을 얻었다. 이는 상천(上天)의 상서로운 징조로 생각하고 바로 이로써 자기 이름의 호로 취하고 서언왕(徐偃王)을 자칭하자, 강회(江淮)의 제후 36국이 모두 그에게 의부하였다. 주나라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사자를 초(楚)나라에 보내어 초나라에 명하여 군사를 내어 토벌하라고 하였다. 서언왕(徐偃王)은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여 백성들에게 전쟁에 나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라고 하지 않으려다가 마침내 초나라에 패하여, 팽성(彭城)의 무원현(武原縣) 동산(東山) 자락으로 달아났는데 백성들이 그를 따라간 사람들의 숫자가 만여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그 산을 서산(徐山)이라고 하였으며 산위에 석실묘를 만들었는데 매우 영험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곳으로 가서 기도하였다. 문자의 기록에 의하면 역사적 사실과 서로 검증이 되어 서로 부합된 곳이 있는 듯하지만 시대가 까마득하여 이미 고증하기가 매우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현재 서성 (徐城) 밖에 서군(徐君)의 묘가 있다. 종전에 연릉(延陵) 계자(季子)가 이 묘 앞에서 차고 있는 칼을 풀어 놓았다고 하는데, 이른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응한 일이 결코 위배되지 않았다."(역도원 저·진교역 등 역주, 《수경주전역(水經注全譯)》(상), 귀주인민출판사, 206쪽 참조)

서복(徐福): 서귀포(西歸浦)에 전해오는 서불(徐市)에 대한 전설은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마애명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진시황의 사자인 ‘서불(徐市)’이 시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하여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명(혹은 삼천명)과 함께 대선단(大船團)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 한라산〔漢拏山〕)을 찾아 항해를 하였다. 영주산의 제일경인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린 서불(徐市)은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서쪽으로 돌아갔다. 서불(徐市)이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복(徐福)전시관은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한 곳이다.

기자조선의 후손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1대 기자(奇子) 서우여(徐于餘,서여西余) 단군(檀君)을 기점으로 번조선(番朝鮮)은 기자조선(奇子朝鮮)으로 불리우게 된다. 서우여(徐于餘,서여西余)(BC 1285 ∼ BC 1225)는 번한조선(番韓朝鮮) 고죽군(孤竹君)1세가 되었다. 우현왕이었던 高씨 색불루 단군(檀君)이 소태 단군(檀君)으로부터 선양받아 단군 조선(檀君朝鮮)으로 국호를 바꾸고, 소태 단군의 종실 서우여(徐于餘,서여西余)를 번한(番韓)에, 웅족의 후손인 여(黎)씨를 마한에 봉하였다. 색불루 태왕은 처음 삼한을 합치더니 나라의 제도를 크게 개혁하였다. 기자(奇子) 서우여(徐于餘)의 40대 손이고 기씨조선(箕氏朝鮮)의 마지막 왕인 애왕(哀王)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뱃길로 남쪽으로 옮겨, 진(辰)나라 북쪽 변방인 지금의 경기도 이천(利川) 땅인 서아성(徐阿城) 지방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지명을 따 성씨를 서씨(徐氏)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新羅)의 국호는 서라(徐羅)가 설아벌(새벌)에서 파생된 단어이듯, 서신일의 묘역이 있는 장소는 성(城)을 새로 쌓았다는 뜻에서 설아성이라 부르던 것을 서아성(徐阿城)으로 일컬었는데, 여기서 첫 글자인 서(徐)씨라 칭했다는 설이다. 한국의 성씨 가운데 기자(箕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성씨는 서씨 이외에도 청주한씨(淸州韓氏)와 태원선우씨(太原鮮于氏) 및 행주기씨(幸州奇氏) 등이 있다.

중국 황하 중류에서 일어난 왕조 가운데 하(夏)나라는 화하족과 동이족이 교대로 지배한 시대로 알려져 있다. 그 다음으로 황하 하류에서 일어난 은(殷)나라는 고고학상으로 볼 때, 동이족이 지배권을 장악한 시대다. 기원전 12세기경에는 황하의 지류인 위수(渭水)에서 주나라가 등장해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기 시작한다. 은나라가 주나라에 멸망하자 은나라 지배층의 일부는 한반도로 건너와 조선의 왕이 되었다. 바로 기자조선(箕子朝鮮)이다.

수유국(須臾國)은 기자 조선(奇子朝鮮)의 나라이다. 단군(檀君) 즉위 쟁탈전에서 색불루에게 패하고 반항하다가 결국 번조선(番朝鮮)의 단군(檀君)으로 임명받은 수유국(須臾國)(번조선(番朝鮮) 제후국)의 서우여(徐于餘,서여西余)도 번조선(番朝鮮) 단군(檀君)에 즉위하자 번한조선(番朝鮮)을 '태양의 아들(기자奇子)의 조선'이라는 의미로 '기자조선(奇子朝鮮)'으로 바꾸고 단군(檀君)을 천왕이라 칭하게 했다. 기자(箕子)는 은나라 마지막 왕의 서숙으로 번조선(番朝鮮)의 제후국가인 수유족(須臾國)의 후손이다. 기자(箕子)가 망명을 할 때 은나라의 수유족(須臾國)도 번조선(番朝鮮) 땅으로 많이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망명한 수유족(須臾國)을 기자(箕子)족이라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망명한 기자(箕子) 족이 후에 강성해져서 연나라가 번조선(番朝鮮)을 침략했을 때 기(箕)후라는 사람이 5천의 군대로 몰아 내고 번한조선(番朝鮮) 단군(檀君)에 올랐기 때문이다. 239 년 해모수가 웅심산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켜 옛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을 점령한 후, 수유국(須臾國)의 제후 기비(箕丕)를 번조선(番朝鮮) 단군(檀君)으로 삼고 자신은 천왕랑이라 칭하며 부여(扶餘(余)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 기(箕)후부터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준(箕準)까지가 번한조선(番朝鮮)(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이다. 수유족(須臾國)(기자(箕子)족)의 성씨로는 서씨(徐氏), 선우씨(鮮于氏), 한씨(韓氏)가 있다.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마한(馬韓)(마조선(馬朝鮮)지역인 해머리땅으로 들어 온 기준(箕準)의 후손들이 바로 서씨(徐氏), 선우씨(鮮于氏), 한씨(韓氏)다.

기자조선의 영역


동이(东夷)족의 지도자로는 태호씨(太皞氏)와 소호씨(小皞氏)가 있었다. 양자강 중하류와 그 이남 지역에는 종족의 기원이 다른 여러 종족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남만(南蠻)이라고 불렀다. 이 가운데 구려족(九黎族)은 최초로 중원 지역에 진입하였던 가장 강력한 종족으로서 치우천왕(蚩尤天王)이 지도자였다. 소호금천(小昊金天)의 자손나라가 있는데 산동성 담(譚)지역이며 후손의 성이 영(嬴)이고 창의(昌意)의 아들 전욱고양(顓頊高陽)의 후손에 여수(女脩)란 여자가 제비 알을 삼키고 <대업(大業) 혹 고요(皐陶)>을 낳고 이이가 동이족의 후손인 소전(小典)의 자손을 아내로 맞아 여화(女華) 아들을 낳으니 대비(大費) 혹 백익(伯益-백의)이다. 창의(昌意)의 아들 전욱고양(顓頊高陽)의 4남 여목(余目)[또는 사방책봉(四方冊封)]이다. 여목 씨가 넷째 아들이라는 이유로 토템인 돼지는 유달리 숫자 ‘4’와 긴밀한 인연을 맺게 된다. 예를 들면 돼지를 뜻하는 ‘시(豕)’는 4월을 뜻하고 4월은 또 ‘여월(余月)’ 이라고 한다.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에서 ‘시(豕)’는 숫자 ‘4’를 뜻하고 태양족인 까닭에 돼지를 ‘해(亥)’라고 부르며, 지금도 우리는 고사(告祀)에 돼지머리를 올리며 역사를 반추하고 있는 것이다. ‘4’를 ‘사(死)’와 관련지어 ‘재수 없다’ 또는 ‘죽음’을 뜻한다하여 기피하는 까닭도 사방책봉의 아들로 고조선(古朝鮮)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백익(伯益-백의. 산해경(山海經) 저자)이 우임금의 아들인 하계(夏啓)로부터 암살당한 역사적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백익(伯益)은 대렴(大廉 -진(秦) 진시황제) · 조(趙)씨의 조상)과 약목(若木 -서(徐) · 황(黃) · 마(馬)씨의 조상) 두 아들을 낳았다. ​백익(伯益)의 후예로서, 영성(嬴姓) 14성씨(姓氏)는 서(徐), 조(趙), 황(黃), 마(馬), 양(梁), 종(鍾), 진(秦), 강(江), 갈(葛), 비(費), 구(瞿), 곡(谷), 렴(廉), 무(繆)이다. 후손인 서우여(徐于餘, 서여西余)의 번한성(番韓)으로는 그 동북쪽이면서 금주시 서쪽인 대집둔(台集屯) 서가구(徐家溝)로 비정된다. 중국에서 현재 요서군 도하, 대극성 등으로 보는 곳인데 이는 틀린 것이고 전한의 도하, 대극성은 앞에 애기한 홍애자 고성이다. 대신에 이곳은 황수 黃水 위에 있던 험독성이다. 요동속국이었다가 전연국의 모용외에게 들어갔고 모용황의 등극 과정에 나온다. 대집둔 서가구(徐家溝) 출토품으로는 번한서인(番○徐印)이라 새겨진 은제銀製 도장이 있고, 채도문 도기와 용문龍文 동모銅矛가 나왔다. 동모銅矛는 보통 전국시대 유행하였다. 대집둔에는 서가구성과 남쪽의 반장자성, 즉 번한성, 동쪽의 장령구성이 있다. 이곳이 서우여 기자(徐于餘奇子)의 번한 험독성으로 고려된다. 서우여(徐于餘, 서여西余) 번한성의 가운데를 지나는 물은 지금 여라하(汝羅河)라고 하는데 고대 황수이기도 했고 또한 당태종의 30만 대군이 고생한 요택(遼澤)이기도 했다. 고대에는 금주시 바로 밑, 번한성의 동쪽까지 바다가 들어왔을 것으로 고려된다. [요사]에서는 험독險瀆을 비리군지陴離郡地라고도 하였다. 본래 서우여기자국(徐于餘奇子國)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파형 청동검이 주로 나오는 곳은 거의 기자(奇子) 서우여(徐于餘, 서여西余)의 영역이다. 기자조선(奇子朝鮮)은 종교의식으로서 천단(天壇)을 세웠는데, 소위 지석묘, 고인돌, 대석붕大石棚 제도가 그 흔적이다. 그리고 단군(檀君) 대신에 기자(奇子) 또는 천왕(天王)이라는 호칭을 가졌다. 색불루의 후단군(檀君) 조선은 고리국이 있던 창무시의 막주, 즉 막한과 철령시 이북의 평양성, 녹산(鹿山王朝) 아사달, 장당경, 그리고 서압록과 오지인 길림을 가졌다. 요동에서 살수 이남은 기자조선(奇子朝鮮)의 영역이었다.

부여족(부여씨)의 후예설

부여(扶餘) 녹산왕조(鹿山王朝)(아사달)의 왕손이 부여가 망하자, 본래 왕성(王姓)인 여씨(餘氏).부여씨(扶餘氏)에서 서씨(徐氏)로 하였다. 백제(百濟)왕조(王朝)는 부여(扶餘) 왕조를 계승하여, 왕성(王姓)을 부여씨(扶餘氏).여씨(餘氏)로 사용하였다. 일본(日本) 진무천황(神武天皇)이 부여족(扶餘族)=서이족(徐夷族) 후손이고,또한 부여족(扶餘族)=서이족(徐夷族)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고추불가제국(현재,타타르 자치공화국) ,1차 불가리아제국을 세웠다.

의자왕의 태자인 부여융이 당나라로 건너가 살다가 당 고종에게 서(徐)씨 성을 하사받았다는 설이다(만성대동보). 하지만, 최근 부여융과 여동생(부여태비)의 유적이 중국 장안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성씨를 여전히 부여씨(扶余(餘)氏)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이 설은 신빙성이 낮다. 그렇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백제의 왕성인 부여씨(백제에서 성씨를 처음 쓴 근초고왕은 여씨(余(餘)氏)로 기록했고, 이후 무왕 때 부여씨(扶余(餘)氏)로 개칭했다)가 삼국통일이 되면서 성씨를 부여(扶余(餘))에서 서(徐)로 바꾸고 숨어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실제 발해 대조영의 후손인 대(大)씨가 고려로 망명한 뒤 성을 태(太)로 바꾸고 살았던 것, 또 고려의 왕(王)씨가 조선 건립 이후 성을 전(全), 옥(玉) 등으로 변형해서 살았던 사례를 볼 때, 이 주장의 신빙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부여씨(扶餘)는 백제 왕족을 상징하는 고유 성씨이다. <삼국사기> 건국서문에 부여씨 기원이 나온다. ‘온조왕(溫祚)의 조상은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성씨를 부여(扶餘)로 삼았다.’ <삼국사기>는 부여씨 원조를 시조 온조왕로 설명한다.

최초의 부여씨 서부여왕 여현(현왕)

문헌상 최초의 부여씨는 <자치통감> 기록에 나오는 서부여 여현(餘玄-부여현(현왕)) 왕이다. ‘영화4년(346년) 부여는 처음 녹산(鹿山)에 거주했으나 백제가 침범해 부락이 쇠잔해져 연(燕)에 가까운 서쪽으로 이주했다. 연왕 모용황(慕容皝)이 세자 모용준으로 하여금 부여를 습격했다. 드디어 부여왕 현왕(玄王)과 그 부락민 5만여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당시 서부여 본거지는 녹산(鹿山-요녕성 건창현)지역이다. 346년 여현(현왕)은 백제의 침범을 받아 녹산지역을 떠나 서쪽 전연(前燕-모용황)에 가까운 곳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곧바로 모용황의 공격을 받고 멸망한다.

또한 <자치통감>은 여현왕의 아들 여울(餘蔚)도 소개한다. 전연의 산기시랑(散騎侍郎)‘부여왕자[胡三省: 餘蔚扶餘王子]’이다. 370년 여울은 전연의 업성(鄴城) 북문을 열어 전진(前秦-부건) 군사를 맞아들이며 전연 멸망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여현여울은 부자지간으로 대륙 부여 기마족을 대표하는 서부여(녹산 세력) 왕과 왕자이다.

서부여는122년 북부여왕족 출신 위구태(우태)(백제 3번째 시조)가 대흥안령산맥의 서자몽(西紫蒙-화북성 승덕 북쪽)에 세운 나라다. 이후 위구태 후손집단은 요서지방으로 내려와 대방(하북성 노룡현) 세력과 녹산(백랑산-요녕성 건창현) 세력으로 분리된다. 녹산세력은 서부여를 계승하고, 대방세력은 한반도로 백가제해(百家濟海)하여 부여백제로 재탄생한다. <진서>에 동진(東晉-사마예) 황제가 수여한 관작에 부여 백제 왕의 이름이 나온다.

372년 ‘진동장군영낙랑태수’의 관작을 받은 여구(餘句)왕과 386년 ‘사지절도독진동장군백제왕’의 관작을 받은 여휘(餘暉)왕이다. 여구여휘는 부자지간으로 한반도 부여기마족을 대표하는 부여백제(대방세력) 왕이다.

중국왕조의 망명객 부여씨

그런데 부여씨는 전연 멸망(370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모용선비 국가들에서 나타난다. 후연(後燕-모용수)에는 건절장군 여암(餘巖)을 비롯하여 진동장군 여숭(餘嵩)과 건위장군 여숭(餘崇), 산기상시 여초(餘超)가 있으며, 남연(南燕-모용덕)에는 진서대장군 여울(餘鬱)과 수광공 여치(餘熾)가 있다. 모두 <자치통감> 기록에 나오는 인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연(燕-후연,남연)에 부용하여 큰 벼슬을 받는다. 부여의 성씨와 이름으로 중국사서에 기록을 남긴 것은 이 시기가 유일하다.


부여기마족의 상징인 부여씨

이 중 후연의 건절장군 여암은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385년 7월 무읍(武邑-하북성 형수)에서 갑자기 봉기한 여암은 한때 유주(幽州-하북성 베이징)를 점령하며 기세를 올린다. 그러나 난하 유역의 영지(令支-하북성 천안)로 본거지를 옮긴 직후인 그해 11월 모용농의 공격을 받고 진압된다. 서부여 왕족 출신 여암은 4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대륙을 종횡무진 휩쓸고 다닌다. 우리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또 하나의 걸출한 영웅이다. 여암은 멸망한 서부여의 재건을 꾀한 것은 아닐까.


여암의 활약 (385년 7월~11월)

부여씨부여 기마족을 상징하는 성씨이다. 부여씨 성립시기는 4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대방 세력이 대륙을 떠나 한반도로 백가제해하는 시기로 부여 기마족이 본격적으로 대륙과 한반도로 양분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결론적으로 백제 부여씨 기원은 온조왕이 아니다. 서부여 창업자인 위구태(우태) 즉 구태이다. 온조왕 계열은 해씨 왕조이며, 구태 계열은 부여씨 왕조이다. 다만 <삼국사기>는 온조왕을 시조로 확정하며 구태(우태)계열의 부여씨온조왕 계열의 성씨로 편입시킨다. 백제 역사는 적잖은 부분이 잘못 해석되고 있다.

백제 부여씨의 분파

백제의 왕성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확실한 성씨들은 다음과 같다. '흑치씨'를 제외하면 660년 사비백제 멸망 이후 일본 조정으로부터 성을 하사받은 경우가 많다.

귀실씨(鬼室氏) - 일본 측 기록인 《신찬성씨록》에 따르면 귀신의 감화를 받아 '귀실씨'가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백제부흥운동에 참여했던 무왕의 조카 귀실복신(부여복신), 귀실복신(부여복신)의 친족인 귀실집사, 귀실집신이 있다.

쿠다라노키미씨(百濟公氏, 백제공씨) - 761년 본래 귀실씨였던 여민선녀(餘民善女) 등 4명이 성씨를 하사받았다.

흑치씨(黑齒氏) - <흑치상지 묘지명>에 의하면, 흑치씨는 본래 부여씨였으나 흑치(黑齒: 예산군 덕산면 추정)에 봉해져 '흑치씨'가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흑치상지, 흑치준 부자가 있다. 대성팔족 중 연씨와의 관계가 보이기 때문에 부여곤지의 아들들 중 왕위에 오르지 못한 3~5남 중 한 명이 선계였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삼국사기》 <동성왕조>에 따르면 사약사 → 백가 → 연돌 순으로 등용되고, 관등이 사약사 > 백가 > 연돌 순으로 높기 때문에 5남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쿠다라노코니키시씨(百濟王氏, 백제왕씨) - 31대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선광이 시조로 660년 백제 멸망 이후 일본에 망명하여 지토 덴노 시기에 하사받았다. 현재는 미마쓰씨, 스가노씨, 야마토씨가 후예로 전해진다.

쿠다라노아손씨(百濟朝臣氏, 백제조신씨) - 758년 여증인(餘益人), 여동인(餘東人) 등 4명이 성씨를 하사받았다.

타카노노미야츠코씨(高野造氏, 고야조씨) - 663년 백제부흥운동 실패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부여자신(여자신)을 조상으로 한다.

타카노노아손씨(高野朝臣氏, 고야조신씨) - 25대 무령왕의 아들로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서 죽은 순타태자를 조상으로 한다. 헤이안 시대를 개막한 제50대 간무 덴노의 모후인 타카노노 니이가사(高野新笠)가 유명하다.

오우치씨 - 26대 성왕 또는 27대 위덕왕의 아들로 추정되는 백제 왕자 임성태자의 후손으로, 무로마치 막부 시대와 센고쿠 시대에 무가 다이묘로서의 위명을 일본 열도에 떨쳤으며, 현재는 오우치씨, 토요타씨, 스에씨가 후예로 전해진다.

억례씨(憶禮氏) - 억뢰씨(憶頼氏)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백제부흥운동 이후 일본에 망명한 억례복류(憶禮福留)가 있다.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억례복류는 13대 근초고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손자(후손이라고도 해석)라고 기록되어 있다.

문휴씨(汶休氏) - 《일본서기》에서 문휴마나(汶休麻那), 문휴대산(汶休帶山)이 확인되며, 《신찬성씨록》에서 이 성씨는 5대 초고왕의 손자인 문휴해(汶休奚)라는 인물을 선조로 떠받든다고 한다. 이외에 같은 가문에서 분적된 '문사씨(汶斯氏)'는 《일본서기》에서 문사간노(汶斯干奴)라는 인물이 확인된다.

백제의 왕성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성씨들은 다음과 같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부여씨의 분파로 추정되는 이유는 해당 성씨들이 백제 국왕과 관련있을 것이라는 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이씨(古爾氏) - 대표적인 인물로 고이만년, 고이해가 있다. 백제 제8대 고이왕(古爾王)의 후손이기에 왕명에서 따왔을 것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이외에도 음운적으로 19대 구이신왕부여곤지와의 연관성이 보인다. 다만 고이해의 경우 '해'(解)가 이름이 아닌 존칭접사라는 주장이 있어 '고이'(古爾)가 성인지 이름인지 의견이 엇갈린다.

동성씨(東城氏) - 대표적인 인물로 26대 성왕 시기 인물인 동성도천, 동성자언, 동성자막고가 있다. 이는 백제 24대 국왕인 동성왕(東城王)에게서 따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단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왕력편>에 따르면 25대 무령왕동성왕의 2남이기 때문에 동성왕의 맏아들은 분명 따로 존재했다. 다만 무령왕릉 발굴 이후 무령왕이 동성왕보다 나이가 많았음이 밝혀지면서 무령왕동성왕의 아들일 가능성은 사라졌고, 실제로는 부여곤지의 아들일 가능성을 높게 보는 편이다. 한편 동성자언과 동성자막고는 동성도천과 다르게 '동성자(東城子)' 부분이 성씨가 아닌 "동성왕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마지막으로, 후대의 기록에서 부여씨의 분파로 나오는 성씨는 다음과 같다. 계백씨(階伯氏)? - 1860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지지》의 기록을 근거로 계백이 이름이 아닌 성씨이며 이름이 '승'(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서야 나오는 기록이기 때문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부여씨 이외의 백제 왕성?

다만 왕비족이자 대성팔족으로 남은 해씨와 달리, 우씨와 진씨, 모씨의 경우 설이 제기된 정도라 실존했는지부터가 불분명하다.

해씨(解氏) -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부여씨와 연관이 있다.

우씨(優氏) - 제8대 고이왕의 동생인 내신좌평 우수(優壽), 내법좌평 우두(優豆), 제11대 비류왕 대 내신좌평 우복(優福) 등 이름에 '우(優)'가 연달아 사용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고이왕계의 성씨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진씨(辰氏) - 직계 선조-후손 관계인 제16대 진사왕, 진손왕, 진이왕이 모두 이름에 '진'(辰)을 포함했기에 제기되었다. 여기에 일본 도래계 성씨 중 하나인 '하타'(秦)씨 또한 동계로 추정되기도 한다. 다만 하타씨는 다른 이런저런 근거로 신라계 설이 좀 더 대세이다.

모씨(牟氏) - 《남제서》와 《양서》에 따르면 제22대 문주왕의 이름이 '모도'(牟都)'로 기록되어 있고, 제24대 동성왕 역시 이름이 '모대'(牟大)여서 제기된 설이다. 다만 《일본서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로 나왔기에 현재는 사장된 가설이다. 신라 법흥왕도 성씨가 '모'(牟)인 것으로 추측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모도, 모대, 모즉' 모두 고유어인 맏이를 음차한 것으로 본다.

부여 부여씨의 인물

부여가 전연에 의해 멸망한 후, 주로 모용선비 세력 휘하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부여 왕실의 국성 '해(解)씨'가 아니라 '여씨(餘)'로 표기되어 있는데 중국의 백제 기록에서 나온 백제 역대 왕들의 성씨처럼 부여씨의 약칭일 가능성이 크다. 여호규, 강종훈 교수는 이들을 부여의 유민으로 보았다. 다만 부여울과 달리 확실하게 부여인으로 나오지 않은 점이 특징. 정확히는 부여 국왕의 아들로 기록된 여울, 동이로 표현된 여화는 부여계일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여씨 인물들을 부여계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는 정도일 뿐이다.

여현

여울

여화(餘和): 생몰년도 미상. 후연의 모용농이 한단 일대에서 군사를 모았을 때 호응했다. 칙륵과 함께 동이라고 언급한 점이 있어 선비족이 아닌 부여인으로 볼 여지가 있다.

여암(餘巖) 형제: ? ~ 385년. 여암은 후연에서 건절장군을 지냈다. 385년 7월 무읍에서 반란을 일으킨 뒤 요서로 넘어가 요서의 하구인 영지 일대에 거점을 구축했다. 이후 4개월만인 385년 11월 모용농에게 패배하고 동생과 함께 참수당했다.

여숭(餘嵩): ? ~ 396년. 396년 후연에서 평규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었지만 싸움에서 패배하고 사망한다.

여숭(餘崇): ? ~ 398년. 위의 여숭의 아들. 후연의 외척이었던 난한에게 암살당했다.

여초(餘超): ? ~ 399년. 후연의 산기상시. 모용성에게 역모죄로 몰려 399년에 처형당했다.

여울(餘鬱): ? ~ 406년. 남연의 서중랑장, 북위로 달아났던 봉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다.

여치(餘熾): 생몰년도 미상. 남연의 인물. 지위는 수강공에 이르렀으며, 단풍의 과부인 모용씨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두 남편을 섬길 수 없었던 모용씨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선비 모용씨가 건국한 후연과 남연에서 관료 생활을 했다. 이중 여암의 반란에 대한 견해 중에서는 중국에서 벗어나 부여로 달아나려던 것이 아닌가하는 주장도 있다.

백제 부여씨의 인물

부여성충(성충)(夫餘成忠): 백제의 좌평(佐平).

부여질(夫餘質): 8대 고이왕의 숙부.

우복(優福)

주군(酒君) - 《신찬성씨록》에는 '주왕(酒王)'이라고 되어 있다.

부여홍(扶餘洪) - 15대 침류왕의 서자. 17대 아신왕의 아우(이름미상) - 광개토대왕릉비에 의하면 396년 고구려에 볼모로 끌려갔다. 부여홍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부여훈해 - 15대 침류왕의 차남.

부여설례 - 15대 침류왕의 3남.

부여신 - 17대 아신왕의 서자. 407년 전지왕(18대) 시기에 처음으로 상좌평에 임명되어 428년에 사망했다.

신제도원 - 17대 아신왕의 공주.

진손왕 - 일본 측 기록에서만 확인되는 인물로, 16대 진사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태아랑왕 - 진손왕의 아들. 진이왕의 증조부.

부여기

부여례 - 21대 개로왕의 사위.

부여고(夫餘古)

부여력(夫餘歷)

부여고(夫餘固) 21대 개로왕의 아들- 이름 미상. 《일본서기》 기록에 의하면 475년 한성 함락 때 개로왕, 왕후와 함께 사망했다고 한다.

부여곤지(곤지) - 20대 비유왕의 아들로, 21대 개로왕의 형제.

순타태자 - 25대 무령왕의 아들.

마나군 - 문휴마나와 목리마나 두 명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문휴마나로 본다.

사아군 - 순타태자(여순타)와 동일인물?

임성태자 - 아좌 태자와 동일인물?

소비 부여씨 - 553년에 신라 진흥왕과 혼인한 백제 26대 성왕의 딸.

왕흥사지 사리장엄구에 등장하는 왕자(가칭) - 이름 미상. 27대 위덕왕의 아들로 577년에 사망했다.

아좌 태자 - 27대 위덕왕의 아들.

진이왕 - 진손왕의 현손.

부여교기 - 30대 무왕의 아들이자 31대 의자왕의 동생.

부여효 - 31대 의자왕의 차남.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당으로 압송된다.

부여태 - 31대 의자왕의 3남. 백제가 멸망한 뒤 당으로 압송된다.

부여연(扶餘演) - 31대 의자왕의 아들. 백제가 멸망한 뒤 당으로 압송된다.

부여궁 - 31대 의자왕의 서자. 해석에 따라서 궁이 인명이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부여용 - 부여융의 동생. 백제부흥운동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였다. 부여선광과 동일인이 아니냐는 설이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여자신 - 백제 왕족 출신의 부흥운동가이자 백제계 도래인.

부여충승(扶餘忠勝) - 백강구 전투 이후 당나라에 투항.

부여충지(扶餘忠志) - 백강구 전투 이후 당나라에 투항.

부여선광(여선광) - 부여용과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왕족.

부여문사 - 부여융의 아들. 부여효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부여문선 - 부여융의 아들.

부여덕장(扶餘德章) - 부여융의 아들. 딸 부여태비 묘지명에서 언급된다.

부여태비 - 부여덕장의 딸.

길온의 부인 부여씨 - 부여덕장의 딸로 부여태비의 언니.

일문낭장의 부인 부여씨 - 낙양 용문석굴 877호의 부조에서 언급된 인물.

부여경 - 31대 의자왕의 증손자.

부여준(扶餘準) - 백제 유민 출신의 당나라 무장.

헌왕태자(獻王太子) - 이름 미상. 성주사 비문에서는 백제국 헌왕태자가 절을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헌왕이 혜왕의 시호이기 때문에 그 아들인 법왕과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다.

부여사(扶餘絲) - 일본 《비목대명신록기》에 기록된 부여풍의 아들. 백제부흥운동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비록대명신록기》에 전설상의 백제 왕족인 정가왕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와 연관있는 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

부여창성 - 부여선광(여선광)의 아들.

부여양유 - 부여선광(여선광)의 2남.

그 외에 성씨가 기록되지 않고 이름만 남은 성충(백제), 충상(忠常) 등 여러 인물들도 부여씨라는 추정이 존재한다.

전설상의 부여씨의 인물

부여사(扶餘絲): 풍왕의 아들로 전해지는 인물.

정가왕 전설이 기록된 신사문헌 비목대명신록기(比木大明神縁起)에만 확인되는 인물로, 해당 문헌에 의하면 일본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일본 큐슈 미야자키현의 미사토 정에서는 그와 그의 아들인 정가왕, 복지왕을 기리는 축제인 시와스마츠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정가왕: 일본 규슈 미와자키 현의 미카도 신사의 제신으로 모셔진 인물. 역사적인 인물인지는 불분명하나, 정가왕이 나온 기록의 말미에 부여풍의 아들인 부여사가 일본으로 도피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어 백제 부여씨 왕족과 연관있는 것이 아니냐는 설이 존재한다. 다만 정가왕이 백제 왕족이라면, 왜 일본 《육국사》에는 정가왕에 대한 언급이 없는지가 불명이다.

복지왕: 정가왕의 아들. 정가왕을 추격한 적군을 무찔렀으나, 아버지인 정가왕은 적군과의 싸움에서 전사했다는 전승이 전해온다.

역대 서국(徐國) 국왕

부여왕 계보

백제왕 계보

정조대왕의 서씨에 대한 견해

홍재전서 제173권 일득록(日得錄) 13 인물(人物) “서씨(徐氏) 성을 가진 사람으로 현달한 경우는 우리나라만 한 곳이 없다. 한(漢) 나라에는 서치(徐穉)와 서서(徐庶)가 있고,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이 있다. 그리고 남송(南宋)의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과 북제(北齊)의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과 원위(元魏)의 서건(徐謇), 서웅(徐雄)과 수 나라의 서민제(徐敏齊) 등은 모두 명의(名醫)로 후세에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다. 지금 서씨 성을 가지고 현달한 지위에 오른 사람이 만약 나라를 치료할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매우 좋겠다.”라고 말하자, 당시 각신(閣臣)인 서유방(徐有防), 서정수(徐鼎修), 서용보(徐龍輔), 서영보(徐榮輔)와 사관 서유문(徐有聞)이 연석에 있었는데 함께 일어나 절하고 사례하였다. (姓徐者顯達。莫如我國。漢有徐穉,徐庶。吳有徐盛。而南宋之徐煕,徐道,徐度,徐叔嚮,徐仲融,徐文伯,徐嗣伯。北齊之徐之才,徐林卿,徐同卿。元魏之徐謇,徐雄。隋之徐敏齊者流。皆以名醫聞於後。今之姓徐而致位於隆顯者。若有醫國之才則甚善。時閣臣徐有防,徐鼎修,徐龍輔,徐榮輔,史官徐有聞登筵。竝起而拜謝。)

위의 기록은 정조 임금의 저작인 홍재전서의 기록 입니다. 위의 기록은 참으로 황당한 기록 입니다. 위의 기록에서 "서씨(徐氏) 성을 가진 사람으로 현달한 경우는 우리나라만 한 곳이 없다."고 하면서 그 일례로 한(漢),오(吳),남송(南宋),북제(北齊)원위(元魏),수(隨) 대의 서씨들을 열거 합니다. 즉 정조 임금 그 당대의 역사관은 대륙의 그 수많은 왕조가 남의 나라의 역사가 아닌 조선의 역사라는 전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한(漢),오(吳),남송(南宋),북제(北齊)원위(元魏),수(隨) 대의 서씨들이 남의 나라 역사라면 장황하게 열거할 필요가 없으며 적어도 고려조의 서씨들을 열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치적으로 타당 합니다. 위의 기록에서 "서씨(徐氏) 성을 가진 사람으로 현달한 경우는 우리나라만 한 곳이 없다."고 하면서 그 일례로 한(漢),오(吳),남송(南宋),북제(北齊)원위(元魏),수(隨) 대의 서씨들을 열거한 기록을 빼고 "지금 서씨 성을 가지고 현달한 지위에 오른 사람이 만약 나라를 치료할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매우 좋겠다."라고 한다면 참으로 막연한 기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위의 기록에서 정조 임금이 말한 한(漢),오(吳),남송(南宋),북제(北齊)원위(元魏),수(隨) 대의 서씨들은 조선의 상대(上代)의 인물들이며 역사였던 것입니다.


서씨 분파

몽어(夢漁) 서문중(徐文重) 서상공(徐相公)이 대구 서씨 보(大丘 徐氏 譜 – 1702년간) 서문에 이르기를 서씨(徐氏)는 애당초 두 관적(貫籍)이 없었는데 뒤에 8파로 나뉘었으니 이천(利川) 달성(達城) 대구(大丘) 장성(長城) 연산(連山) 남평(南平) 부여(扶餘) 평당(平當) 남양(南陽) 당성(唐城)이 이것이다. 그 분파된 이유인즉 문헌에 증거가 없어 알 수는 없으나 대개 이천(利川)의 선조는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이요. 대구(大丘)의 선조는 서한(徐閈)이요. 달성(達城)의 선조는 서진(徐晋)이요. 장성(長城)의 선조는 서능(徐稜 문하시중.종1품)이요. 연산(連山)의 선조는 서보(徐寶 연성군)요. 남평(南平)의 선조는 서린(徐鱗 대광내의령.종1품)이요. 부여(扶餘)의 선조는 서수손(徐秀孫)이요. 평당(平當)의 선조는 서준방(徐俊邦 형부상서.정3품)이요. 남양 서씨(南陽 徐氏)의 선조는 서간(徐趕)이요. 당성 서씨(唐城 徐氏)의 선조는 서득부(徐得富)이니 계파를 따져 보면 모든 서씨(徐氏)가 다 이천(利川)에서 나왔고 나머지 7관(七貫)은 곧 이천(利川)의 별파라 했다. 또 의성(義城) 김씨(金氏)의 족보를 보니 서씨(徐氏)의 선조(先祖)는 기자(箕子)로부터 나왔고 신라말년(新羅末年)의 서신일(徐神逸)이 있었고 고려초에 서목(徐穆)이 있었으니 이천서씨(利川徐氏)는 그 후손이요. 대구(大丘),봉성(峯城),남양(南陽),당성(唐城)이 이천에서 다 같이 나뉘었으니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이라 한다. 동국의 서씨(徐氏)는 모두 아간(阿干)을 선조로 함에 의심이 없고 또 몽어(夢漁) 서문중(徐文重)의 박식원견으로 반드시 고증을 거쳐서 그 족보 끝에 썼을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 서씨(徐氏)가 타족(他族)과 다른 점이다.

1742년 이천 서씨(利川徐氏) 문중에서 간행된 족보인 《임술보》(壬戌譜) 서문에는 “무릇 나뭇가지가 천이라도 뿌리는 하나요, 물 갈래가 백이라도 근원은 하나이니 우리나라에 달성(達城), 대구(大丘), 부여(扶餘), 평당(平當), 장성(長城), 연안(延安), 전주(全州), 남평(南平), 남양(南陽), 당성(唐城)의 서씨(徐氏)중에 누가 아간공(阿干公)을 조상으로 해서 나뉜 자가 아니랴. 아간(阿干)공의 줄거리는 이천(利川)이다”라고 쓰여 있어, 부여 서씨(扶餘徐氏)가 이천서씨(利川徐氏)의 한 갈래임을 밝히고 있다.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족보 「계미보癸未譜(1763년)」 서문에 보면, 우리나라 서씨(徐氏)는 3관(貫)이 저명한데, 이천조(利川祖)는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이고 부여조(扶餘祖)는 백제의 온조왕(溫祚)이며, 달성조(達成祖)는 소윤(少尹) 서한(徐閈)이라고 했다. 이천 서씨(利川徐氏), 달성 서씨(達城徐氏), 부여 서씨(扶餘徐氏)는 아간대부 서신일(阿干大夫 徐神逸)의 후손이라고 참찬(參贊)을 지낸 달성인 서명응(達城人 徐命膺)이 썼다.

달성 서씨와 구분

달성(達城)서씨와 대구(大丘)서씨는 족보상으로 시조가 다르다. 달성 서씨는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고 있고, 대구 서씨는 고려 군기소윤(軍器少尹) 서한(徐閈)을 시조로 한다. 달성 서씨대구 서씨는 근원이 같다고 추측되지만 분파된 시기와 계대를 확실히 고증할 수 없다. 달성 서씨는 판도공파 또는 향파(鄕派)라 하고, 대구 서씨는 소윤공파 또는 경파(京派)라 한다. 두 파는 1702년(肅宗 28년)에 처음으로 족보를 함께 하여 임오보(壬午譜)를 만들었으나 1736년(영조(英祖) 12년)에 경파(京派)만이 단독 족보를 만들어 대구 서씨(大丘徐氏)로 갈라섬으로써 양파가 족보를 달리하게 되었다. 임오보에서 판도공파 계보 서두에 기록된 원문에 "版圖公派亦系達城必是同貫而世代已遠譜牒無徵未能明知故不敢渾錄於本譜姑爲別譜以附篇末(같은 관향인데 세대가 멀고 보첩으로 증명할 수 없어 능히 알지 못하므로 본보에 섞어서 기록하지 못하고 별보로 하여 책 끝에 붙인다)"하였다. 과거에 본관을 혼용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대구 서씨인데도 호적에는 본관이 달성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고, 달성 서씨인데도 호적에는 본관이 대구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문헌에 대구 서씨 인물들의 관향이 달성으로도 되어 있다.

대구서씨(大丘徐氏) - 대전 뿌리공원

작품명 : 숭조 애족 협동의 상

조각가 : 김복수, 김만복, 서용석

종시(宗是) : 1. 숭조 사상의 앙양 2. 명예유산의 보존 전승 3. 애족화합의 전통 확립

중시조 유훈(中始祖 遺訓) : 물태위선(勿怠爲善)

예산 소윤공 서한(大丘徐氏始祖 少尹公徐閈) 대구서씨 원조(遠祖)

서한(徐閈) 선생 묘(충남 예산군 대흥면 하탄방리 산16)

포천 대구서씨 백자묘지 및 석함

포천 대구 서씨 백자묘지 및 석함(抱川 大丘徐氏 白磁墓誌 및 石函)은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에 있는 묘지 및 석함이다. 2015년 11월 25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306호로 지정되었다.

대구서씨 정려(大丘 徐氏)

대구 서씨 정려는 판중추부사 문정공 서준보의 딸인 대구 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건물,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이다.

대구 서씨는 1810년 15세에 조두순과 결혼하여 60여 년간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남편 조두순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마치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1871년 현재의 위치에 정려각을 세워 열행을 기리고 있다.

이 정려각은 일반 정려각과 달리 앞면에 별도의 출입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가정역(四佳亭驛)

서울 지하철 7호선 722번. 서울특별시 중랑구 사가정로 지하 393 (면목동 495번지) 소재.조선 초기 문신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의 호에서 유래되었다.

사가정길(四佳亭)

사가정길은 아차산 한강 건너에 고원강촌(몽촌토성)에 거주하던 조선 초기 문신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의 호에서 유래되었다. 사가정길은 동대문구 답십리동 498-1번지(신답사거리)에서 장안교를 거쳐 중랑구 면목동 1083-1번지(용마산길)에 이르는 폭 20m, 길이 4,200m의 2~4차선 도로이다.

사가정공원(四佳亭公園)

2005년 4월 13일 개장한 사가정공원은 면목동 면목약수터지구 입구에 약 3만 3천 2백여 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공원의 명칭은 용마산 부근에서 거주했던 조선 전기의 문인인 서거정 선생의 정취를 느낄수 있도록 그의 호를 따서 지어졌다. 또한, 그의 대표적인 시 4편을 골라 시비를 만들어 설치함으로써 공원이용객들이 산책과 함께 명시를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 피크닉장, 어린이 놀이시설, 체력단련시설, 건강지압로, 사가정(전통 정자), 다목적광장 등 다양한 휴게시설과 운동시설, 조경시설이 갖춰져 있다.

안동 소호헌(安東 蘇湖軒)

안동 소호헌(安東 蘇湖軒)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 중종 때 문신 서해(徐懈) 선생이 서재로 쓰기 위해 명종(재위 1545∼1567) 때 지은 별당이다. 1968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75호로 지정되었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부속된 방은 지붕 양식이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왼쪽 3칸은 대청, 오른쪽 1칸은 누마루며 앞쪽으로 온돌방 2칸을 붙여 집의 구조가 T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간략한 새부리 모양의 구조를 짜았다. 누(樓)마루와 온돌방 뒤쪽으로 난간을 둘렀고 건물 안쪽은 민가 건축에서 볼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지붕 맨 윗부분에 있는 재료를 받치고 있다.

기와에 새겨진 용 두 마리가 나는 문양은 민가에서 보기 드문 것이며, 건물에 나타나는 오래된 수법들은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임청각(臨淸閣)

임청각에서 세 명의 정승이 태어난다는 예언이 전해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임청각에는 정승 두 명이 태어났습니다. 조선조 중엽의 서성 선생(1558년-1631)과 조선조 말엽의 유후조 선생(1798-1876)이 그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임청각의 외손으로 모친들이 친정에 와서 이들을 출산했던 것입니다. 서성 선생의 어머니(고성 이씨 부인)는 이명 선생의 손녀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시각장애인었다고 합니다. 서성 선생의 부친은 서해라는 분인데 어려서 부친을 여의어서 숙부가 후견인이 되어 조카의 혼사를 진행했습니다.

약주(藥酒)

선조 때에 문신 [[서성(조선)|서성][(徐渻)의 집에서 빚은 술이 유명하였다. 그의 호가 약봉(藥峰)이었고, 그가 사는 곳이 약현(藥峴)이어서 좋은 청주를 약주라 하게 되었다는 설이다. 『임원경제지』에서도 “서충숙공이 좋은 청주를 빚었는데 그의 집이 약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집 술을 약산춘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 약산춘이 약주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고성 이씨 부인은 중종 34년(1539년)에 나서 광해군 7년(1615년)까지 살았던 시각장애인으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자식을 훌륭하게 길러 냈으며, 약식약과, 약주, 약포 등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가난한 집안을 일으킨 여성 사업가였다.

고성 이씨 부인은 명종 때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 이씨(固城 李氏) 무금정(無禁亭) 이고(李股)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함재(涵齋) 서해(徐嶰, 1537~1559)와 결혼하여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 을 낳았고 사후에는 정경부인에 추증되었다.

약식(藥食)

고성 이씨 부인은 중종 34년(1539년)에 나서 광해군 7년(1615년)까지 살았던 시각장애인으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자식을 훌륭하게 길러 냈으며, 약식약과, 약주, 약포 등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가난한 집안을 일으킨 여성 사업가였다.

고성 이씨 부인은 명종 때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 이씨(固城 李氏) 무금정(無禁亭) 이고(李股)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함재(涵齋) 서해(徐嶰, 1537~1559)와 결혼하여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 을 낳았고 사후에는 정경부인에 추증되었다.

약과(藥果)

고성 이씨 부인은 중종 34년(1539년)에 나서 광해군 7년(1615년)까지 살았던 시각장애인으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자식을 훌륭하게 길러 냈으며, 약식약과, 약주, 약포 등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가난한 집안을 일으킨 여성 사업가였다.

고성 이씨 부인은 명종 때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 이씨(固城 李氏) 무금정(無禁亭) 이고(李股)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함재(涵齋) 서해(徐嶰, 1537~1559)와 결혼하여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 을 낳았고 사후에는 정경부인에 추증되었다.

약포(藥脯)

고성 이씨 부인은 중종 34년(1539년)에 나서 광해군 7년(1615년)까지 살았던 시각장애인으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자식을 훌륭하게 길러 냈으며, 약식약과, 약주, 약포 등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가난한 집안을 일으킨 여성 사업가였다.

고성 이씨 부인은 명종 때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 이씨(固城 李氏) 무금정(無禁亭) 이고(李股)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함재(涵齋) 서해(徐嶰, 1537~1559)와 결혼하여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 을 낳았고 사후에는 정경부인에 추증되었다.

악보 편찬

1759년(영조 35) 당시 왕명으로 진행된 악보 편찬사업을 주관하였으며, 장악원(掌樂院)의 악사들과 함께 세종·세조 때의 궁중음악의 악곡들을 수집·정리하여 『대악전보』 『대악후보』를 편찬했다. 『대악전보』는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 때 없어졌다. 7권 7책의 『대악후보』에는 세조 때의 악곡들이 전한다. 영조(1724~1776) 때 그는 홍계희(洪啓禧)와 함께 궁중의식을 위한 악장집인 『국조악장』(國朝樂章)을 편찬하였다. [1]

조선후기 방대한 분량의 악서를 남겼고, 이미 영조 때 『동국문헌비고』의 악고(樂考)를 지었다. 정조대의 『시악화성』(詩樂和聲)· 『국조시악』(國朝詩樂)· 『악통』(樂通)과 같은 음악이론서는 모두 서명응이 정조의 명을 받들어 저술한 악서(樂書)이다. 정조가 악학에 조예가 깊었고, 또한 학문의 여러 분야에 정통한 것은 모두 동궁시절 스승이었던 서명응의 영향에 기인한다.[2] -->

고사신서(攷事新書)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사대부와 관리 및 일반 선비들이 항상 기억해 두어야 할 사항을 기록하여 1771년에 편찬한 유서(類書).

기사경회력(耆社慶會曆)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기로소 연회의 연유 및 이에 관한 하장·축사·참여 명단 등을 모아 엮은 관찬서.

역학계몽집전(易學啓蒙集箋)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역학계몽』을 순차대로 해설하여 1772년에 간행한 주석서.유학서.

본사(本史)

조선후기 문신 서명응이 농작물과 농업기술에 관하여 1787년에 저술한 농업서.농업기술서.

신정자수(新訂字藪)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임진자의 종류와 수량을 기록하여 1777년에 편찬한 자보.

계몽도설(啓蒙圖說)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역학계몽』을 그림으로 해설하여 1772년에 간행한 주석서.유학서.

규장각지(奎章閣志)

1776년신설된 규장각의 연혁 및 제도·의식 등을 기록한 역사서.연혁지.

전운옥편(全韻玉篇)

『규장전운』의 부편으로 편찬된 자전.옥편.

보만재집(保晩齋集)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22년에 간행한 시문집.

달성공원(達城公園)

달성공원은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에 있는 공원이다. 본래 달성토성이었다. 면적 12만 8,700m2. 도심 속에 숲이 우거진 시민의 휴식처로서, 삼한시대에 부족국가를 이루었던 달구벌(達句伐)의 성터라고 한다. 고려 중엽 이후 달성 서씨(達城徐氏)가 대대로 살던 사유지였으나, 조선 세종(世宗) 때 서씨 일문이 헌납하여 국유로 귀속되었다. 1905년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67년 5월 대구시에서 새로운 종합공원 조성계획을 세워 현재의 대공원으로 만들었다. 공원은 토성(土城) 1,600m의 사적과 산책도로 ·잔디 ·광장 ·화단 등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600평의 종합문화관을 비롯하여 동물원 ·관풍루(觀風樓) ·망향루(望鄕樓)가 있다. 그 밖에 동학의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동상, 의병장 허위(許蔿)의 공덕비, 달성서씨 유허비 비문(達城徐氏遺墟碑碑文), 어린이 헌장비, 이상화 시비(李尙火詩碑) 등과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구암서원(龜巖書院)

구암서원(龜巖書院)은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 (산격동)에 있는 서원이다. 1975년 2월 5일에 '건조물 경북 제2호'로 지정, 1982년 3월 4일에 대구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구계 서침의 덕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이다. 서침은 고려말∼조선초의 변혁기에 향촌에 은거하며 학문 연구에 노력하였다. 대구부민이 구계선생을 구암서원 숭현사에 봉향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구계선생이 조선초에, 달성 서씨 胄孫(주손)으로 세거지인 달성에 살았는데 임금께서 달성이 국가의 군사요새로 필요하다고 하면서 命換其址(명환기지)케 하고 蓮信(현재의 영선시장자리)과 新池(현재의 서문시장)下의 蒙利土地(몽리토지)에 대한 세금을 서씨 일문에 받게 하고,南山古驛(남산고역)과 東山一帶(동산일대)의 땅을 下賜하며, 두터운 상과 세록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胄孫(주손) 구계선생이 「이 나라의 모든 것이 국왕의 땅이거늘 국가시책에 따라 땅을 바친다고 어찌 臣(신) 혼자만이 부귀를 바라겠습니까?」 라고 쾌연히 사양하고는 일가의 사사로운 은혜를 받기 보다는 대구부민이 고르게 은혜를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대구지방의 還穀利子(환곡이자)를 한섬에 다섯되씩 감해 주시기를 청하여 임금의 윤허를 받아 실시 하게 되었다. 그 뒤 대구부민이 조선말까지 그 혜택을 입었다.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서원에 들어서면 관리사인 백인당, 정문인 연비루, 동재(경례재), 서재(누학재), 강당(초현당), 내삼문(경앙문), 맨위에 사당인 숭현사가 있다. 구암서원은 정남향으로 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을 가지고 있고, 대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원으로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구암서원은 1665년(현종 6년)에 연구산(連龜山) 서남쪽(현재 대구초등학교 서남쪽 언덕)에 숭현사(崇賢祠)를 건립하고 대구부민이 구계 서침을 봉향하였다. 이후 1717년(숙종 43년)에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229번지로 이건하고, 1718년(숙종 44년) 3월에 서거정을 추가 배향하고, 1741년(영조 17년) 2월에 약봉 서성(徐渻)을, 1757년(영조 33년) 8월에 함재 서해(徐嶰)를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24년 유림에서 복설하고, 1943년 숭현사와 강당을 중수 하였고, 숭현사를 1974년에 보수하였다. 1975년 2월 5일 건조물 경북 제2호로 지정되었다가 대구직할시 승격 후에 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1동 연암공원로 17길 20번지 연암공원내로 옮기고 2008년 8월27일 유림에 의해 약재 서사원(徐思遠)을 추향하였다

숭현사

숭현사(崇賢祠)는 先賢(선현)을 높이 받들어 제향하는 사당으로써 1665년(현종 6년)에 연구산(連龜山)에 세워졌는데, 1718년(숙종 44년)에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229번지로 이건하였다.

현재는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 (산격동)의 구암서원 내에 있다. 숭현사의 중앙에는 서침서거정의 위패가, 오른쪽에는 서해, 왼쪽에는 서성의 위패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매년 9월 1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경비는 자손들에 의해 충당되고 있다.

배향 인물이 달성 서씨 대구 서씨이기 때문에 문중서원 성격이 강하다.

서침(徐沈)

서거정(徐居正, 1420년 ~ 1488년)

서해(徐解)

서성(徐省, 1588년 ∼ 1631년)

원주강원감영제(原州江原監營祭)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의 조선시대 사적지인 강원감영지(사적 제439호) 일원에서 해마다 9월 또는 10월에 열리는 종합축제. 조선시대 초기의 치악산에 동악단을 쌓고 조정에서 봄과 가을에 보내온 향과 축문을 바탕으로 원주와 인접한 일곱 개 고을 수령들이 모여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봉행한 동악제가 원주강원감영제의 기원이 되었다. 동악제를 계승하여 1971년부터 ‘군도제’로 시작하였으며, ‘원주치악제’로 개최되다가 강원감영지가 사적 제439호로 지정되자 그 명칭이 ‘강원감영제’로 바뀌었다.

대구 중구 진골목

대구 중구 진골길31에 위치한 진골목은 여성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한 진(긴)골목입니다. 1907년 2월 21일 대구 근면 대회에서 남자들이 나랏빚을 갚기 위해 금연을 결의하자 진골목에 살던 일곱 분의 부인이 패물을 바쳤고 패물 헌납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서씨 시조 서신일 추향대제(徐氏 始祖 徐神逸 秋享大祭)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장위공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

이천시는 외교 협상가로서 장위공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서희(徐熙)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고자 서희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사 문화 축제를 연다.

글로벌 축제를 지향하며, 우리나라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에 주목해 평화적 소통과 교류에 대한 방법을 찾아보고, ‘외교, 평화, 역사’를 테마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전 효문화 뿌리축제(大田 孝文化 祝祭)

대전효문화뿌리축제는 천혜 자연환경 속에 위치한 뿌리공원, 한국족보박물관, 효문화마을, 효문화진흥원을 아우르는 효문화 인프라를 기반으로 효의 가치와 의미를 경험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고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축제이다. 전국에 어르신과 청소년, 그리고 3대가 모두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어 전국에 효 실천 문화 확산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달성서씨 유허비 비문(達城徐氏遺墟碑碑文)

대구 달성공원 (達城公園)의 역사 얽힌 땅은 돌 한덩이 나무 한 그루도 무심히 볼 것이 아니어서 나그네는 멈추고 제 고장 사람들도 이대로 다시 들려보는 것이니 그것은 돌과 나무가 귀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아로새겨 놓은 역사가  귀하기 때문이며 그것도 아름다운 역사일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한 법이다.  여기에 달성(達城)공원은 바로 그 역사 얽힌 곳이니 바라보라 저 玄風(현풍) 琵瑟山 (비슬산)이 동북으로 뻗어 最頂上(최정상)이 되고 다시 서북으로 달려 大德山(대덕 산)을 이루고 그것이 또 북으로 뻗어내려 작은 언덕이 되었다가 그대로 서쪽으로  구불거려 圓山(원산)이 되고 거기서 다시 북으로 뻗어졌다 동으로 굽이 틀어 평지로 내려오다 고개 들고 일어나 동향하여 앉는 것이 바로 여긴데 앞에는 嶺南(영남) 의 웅도 大邱(대구)시가요 뒤에는 臥龍山(와룡산)이 병풍과 같이 둘러쳤으며 멀리  동북에는 八公山(팔공산)이 솟아 둘리고 굽이도는 琴湖江(금호강)이 서로 洛東江 (낙동강)이 흘러들어 강산풍경이 이와 같거늘 어찌 인물의 역사가 없을 가 보냐

서씨일가연합회 서일연(徐氏一家聯合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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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0년만에 전국의 살고 계시는 이천 서씨. 달성 서씨. 대구 서씨. 부여 서씨. 연산 서씨.남양 서씨(당성 서씨) 등 모든 서씨(徐氏)들의 소통방을 새롭게 개통합니다.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전국에 살고 계시는 서씨 (徐氏)가족 여러분들의 마음의 힐링과 더불어 교류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전세계서씨일가연합회(全世界徐氏一家聯合會)인 우리는 서로가 협조해서 가장 모범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간에 노력해야 합니다.

같이 보기


서재원(徐載源): 1966년생. 한양대졸. 고려대 경영대학원 MBA. 대신증권. 대신경제연구소. 코스닥 보안업체 본부장
  1. 송방송, 『한겨레음악대사전』, 보고사, 2012. 온라인 참조:"서명응",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2. 송방송, 『한겨레음악대사전』, 보고사, 2012. 온라인 참조:"서명응",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