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해태산집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PAGENAME}}의 편찬과 간행) |
(→{{PAGENAME}}의 내용과 특징) |
||
35번째 줄: | 35번째 줄: | ||
===={{PAGENAME}}의 내용과 특징==== | ===={{PAGENAME}}의 내용과 특징==== | ||
− | 『[[언해두창집요]]』의 발문에서 말하는 『[[태산집]]』이 『[[태산요록]]』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태산요록]]』이 시대적으로 앞서있고 산부인과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허준이 | + | 『[[언해두창집요]]』의 발문에서 말하는 『[[태산집]]』이 『[[태산요록]]』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태산요록]]』이 시대적으로 앞서있고 산부인과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허준이 집필 당시 『태산요록』을 참조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태산요록]]』과 성격을 비교해보면 간편한 내용으로 백성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책의 구성과 내용 면에서는 『{{PAGENAME}}』가 더욱 의학적인 처방을 중심으로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동의보감]]』의 「잡병편·부인문」과 비교해보면 그 내용이 아주 비슷하다. 여기서 『{{PAGENAME}}』가 『동의보감』의 지필과정에서 일부를 손질해서 민간에서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요약정리본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ref>정은아, 「허준의 《언해태산집요》에 대한 연구」,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19-20쪽.</ref> |
다음으로 『{{PAGENAME}}』는 『[[언해두창집요]]』와 함께 표기, 음운, 어휘에 있어서 17세기 국어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표기 | 다음으로 『{{PAGENAME}}』는 『[[언해두창집요]]』와 함께 표기, 음운, 어휘에 있어서 17세기 국어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표기 | ||
에 있어서는 음절말 자음, 음절말 자음군, ‘ㆁ’과 ‘ㅇ’의 표기에서 그 특성이 보이고, 음운에서는 어두자음군의 변화, 구개음화, ‘ㅿ’이 소실되어 ‘ㅇ’으로 대치되는 특성을 보이며, 어휘에서는 고유어로 쓰이던 한약재 이름이 한자로 대체된 것, 한자어와 고유어가 공존하는 것, 형태가 변하지 않은 것이 나타나고 있다. <ref>강순애, 「허준 편․간의 언해본 의서와 관련 판본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48, 서지학회, 2011, 32쪽. | 에 있어서는 음절말 자음, 음절말 자음군, ‘ㆁ’과 ‘ㅇ’의 표기에서 그 특성이 보이고, 음운에서는 어두자음군의 변화, 구개음화, ‘ㅿ’이 소실되어 ‘ㅇ’으로 대치되는 특성을 보이며, 어휘에서는 고유어로 쓰이던 한약재 이름이 한자로 대체된 것, 한자어와 고유어가 공존하는 것, 형태가 변하지 않은 것이 나타나고 있다. <ref>강순애, 「허준 편․간의 언해본 의서와 관련 판본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48, 서지학회, 2011, 32쪽. |
2017년 8월 30일 (수) 04:37 판
언해태산집요 | |
한자명칭 | 諺解胎産集要 |
---|---|
영문명칭 | A medical book related to obstetrics and gynecology |
작자 | 허준 |
작성시기 | 1608년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청구기호 | 한貴古朝68-88 |
문화재지정사항 | 보물 제1088-1호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5.2×17.2㎝ |
판본 | 목활자본 |
수량 | 1冊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목차
정의
허준許浚이 선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산부인과 계열의 의학서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허준許浚이 선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산부인과 계열의 의학서이다. 원래 1434년(세종16)에 노중례(盧重禮,?~1452)가 편찬한 『태산요록胎産要錄』 2권을 개편, 언해한 것으로서 주로 부인과에 속하는 잉태·출산·유아보호 등의 여러 처방과 치료 방법을 부문별로 수집편찬한 책이다. 산부인과 계통의 한방서로는 세종 때의 『산서産書』, 노중례의 『태산요록』, 연산군 때의 『임신최요방妊娠最要方』등이 있었으나, 이들은 모두 한문으로 쓰여 부녀자가보기에는 어려웠으므로 이 책을 편찬하게 되었다. 내용은 ‘구사求嗣 자식을 구하여 나을 방법’, ‘잉태孕胎 아기를 밴 증후’, ‘태맥胎脈 잉태한 맥’, ‘험태驗胎 태기를 험찰하는 방법’, ‘변남녀법辨男女法 사내와 여아를 분변하는 방법’,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방법’ 등 43개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각각의 증세와 처방이 한문과 언해문으로 실려있다. 표지 이면에 만력36년(1608, 선조41)에 대사성 김륵(金玏, 1540~1616)에게 하사한다는 '내사기(內賜記)'가 있고,그 다음 목록면에 ‘선사지기(宣賜之記)’의 인印이 있다. 이 책의 처방에 나오는 고유어휘와 표기법 및 한자음 표기 등은 17세기의 국어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1]
언해태산집요의 편찬과 간행
허준의 언해본인 『언해구급방』과 『언해두창집요』,『언해태산집요』는 각각 『구급방』,『창진집』,『태산집』을 참고하여 선조의 명으로 1601년부터 시작되어 1608년에 간행된 의서로 『동의보감』과 관련이 있다. (『언해두창집요』의 발문에 편찬 경위가 서술되어 있다.) 당시 임진왜란으로 인해 내의원의 의서들이 거의 소실되었고, 기근과 전염병이 난무하여 사망자가 속출했다. 1604년에는 선조마저 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의서의 간행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허준이 왕명을 받고 위의 3권을 편찬하여 올린 후 언해를 붙여 1607년 『언해구급방』,1608년 『언해두창집요』,『언해태산집요』가 내의원에서 이희헌과 이각이 주도하여 간행되었다.[2]
언해태산집요의 내용과 특징
『언해두창집요』의 발문에서 말하는 『태산집』이 『태산요록』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태산요록』이 시대적으로 앞서있고 산부인과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허준이 집필 당시 『태산요록』을 참조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태산요록』과 성격을 비교해보면 간편한 내용으로 백성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책의 구성과 내용 면에서는 『언해태산집요』가 더욱 의학적인 처방을 중심으로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동의보감』의 「잡병편·부인문」과 비교해보면 그 내용이 아주 비슷하다. 여기서 『언해태산집요』가 『동의보감』의 지필과정에서 일부를 손질해서 민간에서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요약정리본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3] 다음으로 『언해태산집요』는 『언해두창집요』와 함께 표기, 음운, 어휘에 있어서 17세기 국어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표기 에 있어서는 음절말 자음, 음절말 자음군, ‘ㆁ’과 ‘ㅇ’의 표기에서 그 특성이 보이고, 음운에서는 어두자음군의 변화, 구개음화, ‘ㅿ’이 소실되어 ‘ㅇ’으로 대치되는 특성을 보이며, 어휘에서는 고유어로 쓰이던 한약재 이름이 한자로 대체된 것, 한자어와 고유어가 공존하는 것, 형태가 변하지 않은 것이 나타나고 있다. [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언해태산집요 편찬 | 언해태산집요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선조 | 언해태산집요 편찬 | A는 B를 명령하였다 | 1601년 |
허준 | 언해태산집요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608년 |
허준 | 언해태산집요 편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허준 | 내의원 | A는 B에 소속된다 | |
내의원 | 언해태산집요 편찬 | A는 B를 주관하였다 | |
내의원 | 언해태산집요 | A는 B를 간행하였다 | 1608년 |
이각 | 언해태산집요 편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이각 | 내의원 | A는 B에 소속된다 | |
이희헌 | 언해태산집요 편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이희헌 | 내의원 | A는 B에 소속된다 | |
태산집 | 언해태산집요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태산집 | 언해두창집요발문 | A는 B에 언급된다 | |
태산요록 | 언해태산집요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태산집 | 태산요록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노중례 | 태산요록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434년 |
임진왜란 | 언해태산집요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김륵 | 언해태산집요 | A는 B에 언급된다 | |
산부인과 | 언해태산집요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동의보감 | 언해태산집요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국립중앙도서관 | 언해태산집요 | A는 B를 소장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434년 | 노중례가 태산집을 저술하였다 |
1601년 | 선조가 언해태산집요 편찬을 명령하였다 |
1608년 | 허준이 언해태산집요를 저술하였다 |
1608년 | 내의원이 언해태산집요를 간행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497765 | 127.003674 | 국립중앙도서관은 언해태산집요를 소장하였다 |
시각자료
사진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80쪽.
- ↑ 정은아, 「허준의 《언해태산집요》에 대한 연구」,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12-13쪽.
- ↑ 정은아, 「허준의 《언해태산집요》에 대한 연구」,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19-20쪽.
- ↑ 강순애, 「허준 편․간의 언해본 의서와 관련 판본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48, 서지학회, 2011, 32쪽.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안상우·권오민·이정화, 『언해태산집요:원문·해제』, 보건복지가족부, 2009.
- 정호완, 『역주 : 언해태산집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0.
- 논문
- 김유범, 「《언해태산집요》의 국어학적 특징에 대하여」, 『국어사연구』9, 국어사학회, 2009.
- 이창욱, 「朝鮮前期의 産婦人科學 發達史에 관한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