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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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笏)
심동신(沈東臣], 1824~?)의 홀,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23쪽.
대표명칭
한자표기
이칭별칭 수판(手板)
구분 기타
착용신분 백관, 종친, 왕세자
착용성별 남성



정의

조선의 종친백관조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 손에 드는 판이다.[1]

내용

장방형(長方形)의 판으로, 잡는 아랫부분은 비단으로 만든 싸개[甘伊]로 감쌌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였다. 본래 군주 앞에 나아가 어떤 일을 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였으나, 후대로 내려 오면서 형식적으로 바뀌었다. 은 제도상으로는 대한제국 말까지 변함이 없다.[2] 신하는 군주 앞에서 물건이나 사람을 가리킬 일이 있을 때, 손으로 직접 가리키면 예의가 없다고 여겨 을 들어서 가리키도록 했다.[3] 명대 백관용 수판의 명칭이 로 정해져, 1393년(홍무 26)에 1~5품은 '상아(象牙)', 6품 이하는 나무[木]로 정해졌다. 조선은 명의 제도에 기준해 1~4품은 상아(象牙), 5~9품은 나무(木)를 사용했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왕세자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백관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종친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백관의 조복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제복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제복 상의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제복 하상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조복 상의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조복 하상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91~92쪽.
  2.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124쪽.
  3.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80쪽.
  4. 임명미, 「韓·中·日 3국의 圭·笏에 관한 연구」, 『服飾』51권 2호, 한국복식학회, 2001, 5~25쪽.
  5.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 류희경,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문화재청, 2007.
  •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재, 1971.
  • 임명미, 「韓·中·日 3국의 圭·笏에 관한 연구」, 『한국복식학회지』 51권 2호, 한국복식학회, 2001.
  •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규순, 「이 시대의 진정한 ‘紳士’를 위하여」, 『전통 의생활 연구』 제 2집, 단국대학교 전통복식연구소, 2008.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최영선, 「朝鮮時代 文武百官 祭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