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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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
(宗親)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문화재청, 2006, 26쪽.
대표명칭 종친
한자표기 宗親
유형 신분



정의

조선시대 왕의 부계(父系)에 따른 친족이다.[1]

내용

친왕자 이하 의 4대손까지 종친부에 소속되어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국가에서 부여한 직무를 수행하였다.[2]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었으나, 국가 의례에서 백관과 함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종친은 각종 국가 제사와 제향, 크고 작은 조회, 왕실 혼례, 흉례, 빈례, 대열이나 강무와 같은 군례 등에서 역할이 있었으며, 특히 흉례종친들이 주축이 되었다. 종친부는 국가 의례, 중국사행, 왕실보첩 편찬에 참여하는 종친들을 관할하고 종반직에 처음으로 제수[初授]하거나 승진(陞進)ㆍ복직(復職) 등에 관여하며, 종친의 예우나 구휼에 힘썼다.[3]

종친부는 고려의 제왕자부와는 달리 왕의 친왕자 이하 종친을 모두 소속시켰다. 종친부의 체제는 종반직에 제수되는 종친과 전첨사 소속 관원으로 구성되었다. 『경국대전』 체제상으로 종친부는 관서 운영을 위한 종친의 직임이 없었다. 다만 2품 이상의 종친 가운데 3명을 ‘유사당상(有司堂上)’으로 제수하여 종친을 관할하는 대표로 삼았다. 종친이 많았던 시기에는 왕자군이 주로 유사당상을 맡았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조선후기에는 왕자군 이외의 종친이 유사당상을 맡았는데, 인조 이후로 왕세자 이외 왕자군의 출생이 거의 없거나 일찍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종친의 주류는 선조인조의 자손이다. 순조대 이후로는 종반직 제수 대상이 거의 없어서 종친부 유사당상의 성원도 갖출 수가 없었다.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에 따라서 종친에게도 국가 의례 이외에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었다. 주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 접대에 주로 참여하였던 종친이 조선 후기에는 중국 사행에 파견되었다. 또한 종친들은 왕실 족보 편찬, 『열성어필(列聖御筆)』 간행 등에도 참여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선원록(璿源錄)』 이외에도 다양한 보첩이 간행되어 보학에 밝은 종친이 왕실 보첩 교정관을 담당하였다.[4]

인조 이후로 점차 감소하던 종친은 19세기에 들어서는 3~4명 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다. 종친의 부재는 종친부에게만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종부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종부시의 기능이 종친 규찰, 왕실 보첩 편찬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종친 교육까지 맡고 있었으나, 종친이 감소하면서 총친 규찰과 교육 기능은 자연히 소멸되고, 왕실보첩 편찬만 담당하였다. 헌종대에 유사당상이 된 흥선군은 쇠잔한 종실 재건을 위해서 종친부를 수리하였으나 종친이 없는 현실 속에서 종실을 재건하기는 어려웠다. 흥선군은 선원파보(璿源派譜) 편찬을 시도하여 종친부에 파보청(派譜廳)을 설치하였다. 이를 통해 왕실 후손을 통솔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받았으며, 왕실 후손들과 연계될 수 있는 관계망도 형성하였다. 『선원속보(璿源續譜)』 편찬 중에 고종이 즉위하자, 종부시를 종친부에 통합시켰다. 왕실 후손들에게 과거 합격이나 관직 진출의 기회를 넓혀주고, 왕실 의례에도 참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종친부에서는 대소종회을 개최하여 왕실 후손과 왕실의 유대를 확인하였다. 고종대 재정비된 종친부는 확대 개편되었기 보다는 왕실 가문의 크고 작은 행사를 주관하고 왕실보첩을 편찬하는 왕실 자문 기구로 변질되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밀창군 이직 종친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종친 백관의 조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종친 백관의 제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종친 백관의 상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종친 백관의 공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종친 백관의 군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종친 백관의 융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종친 백관의 편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종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네이버.
  2. 원창애,「조선 종친부의 체제 및 기능과 그 변천」, 『史學硏究』 114호, 한국사학회, 2014, 42쪽.
  3. 원창애,「조선 종친부의 체제 및 기능과 그 변천」, 『史學硏究』 114호, 한국사학회, 2014, 75쪽.
  4. 원창애,「조선 종친부의 체제 및 기능과 그 변천」, 『史學硏究』 114호, 한국사학회, 2014, 74~75쪽.
  5. 원창애,「조선 종친부의 체제 및 기능과 그 변천」, 『史學硏究』 114호, 한국사학회, 2014, 75~77쪽.
  6.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147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김병우,「大院君의 宗親府 强化와 '大院位分付' 」, 『진단학보』 96호, 진단학회, 2003.
  • 연갑수,「19세기 宗室의 단절 위기와 宗親府 개편」, 『조선시대사학보』 51권 51호, 조선시대사학회, 2009.
  • 원창애,「조선 종친부의 체제 및 기능과 그 변천」, 『史學硏究』 114호, 한국사학회, 2014.
  • 지두환,「세조 집권 과정에서의 내종친의 정치성향」, 『백산학보』 99호, 백산학회, 2014.

더 읽을거리

  • "종친 품계도", 블로그 검색, 『네이버 블로그』online,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