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부대부인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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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부대부인 민씨(驪興府大夫人 閔氏)
Joseon female yangban mid.png
대표명칭 여흥부대부인 민씨
한자표기 驪興府大夫人 閔氏
생몰년 1818년-1897년
시대 조선시대
국적 조선
대표직함 여흥부대부인
배우자 흥선대원군 이하응
민치구(閔致久)
민치구 처 전주 이씨
자녀 이재면 조선 고종
성격 왕족
유형 인물



정의

흥선대원군의 부인이며 고종의 어머니이다.

내용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공조판서 민치구(閔致久)의 딸이다. 흥선대원군에게 출가, 장남 재면(載冕)과 차남 재황(載晃 : 高宗) 등 2남과 1녀(사위는 조경호)를 두었다. 참봉 민태호(閔泰鎬), 병조판서 민승호(閔升鎬), 보국판돈녕부사 민겸호(閔謙鎬) 등이 친가의 형제들이다.

생애

1863년(고종 즉위년)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 해 12월 9일 여흥부대부인으로 봉작되었다. 1866년 봄 왕비를 간택할 즈음, 대원군에게 친가의 숙항(叔行)이 되는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민치록(閔致祿)의 딸을 천거하였다. 대원군민치록 내외가 이미 고인이 되었고, 특히 처남인 민승호민치록의 양자로 들어가 대를 잇고 있었기 때문에 외척에 대한 세도정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 그 해 3월 20일 책비례(冊妃禮)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대원군의 예상은 빗나가, 민비(閔妃)를 비롯한 척족세력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정적으로 발전하였고, 여기에 더하여 한말 정국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부대부인 민씨는 일찍이 천주교에 귀의하였으며, 1896년 10월에 영세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국왕의 생모로서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처지였으나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민씨 척족 사이에 끊임없이 정쟁이 일어나고, 두 동생 승호·겸호도 정쟁에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군인 흥선대원군 이하응도 여러 번 정치적인 곤욕을 치러 부대부인 민씨로서는 불행한 생을 보냈다.[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여흥부대부인 민씨 민치구 A는 B의 딸이다 A ekc:hasFather B
여흥부대부인 민씨 조선 고종 A는 B의 어머니이다 A ekc:hasSon B
여흥부대부인 민씨 이재면 A는 B의 어머니이다 A ekc:hasSon B
흥선대원군 이하응 여흥부대부인 민씨 A는 B의 남편이다 A ekc:hasWife B
흥선대원군 이하응 이재면 A는 B의 아버지이다 A ekc:hasSon B
흥선대원군 이하응 조선 고종 A는 B의 아버지이다 A ekc:hasSon B
조경호 조경호 처 전주 이씨 A는 B의 남편이다 A ekc:hasWife B
조경호 처 전주 이씨 흥선대원군 이하응 A는 B의 딸이다 A ekc:hasFather B
민치구 민승호 A는 B의 아버지이다 A ekc:hasSon B
민승호 여흥부대부인 민씨 A는 B와 형제이다 A ekc:hasBrother B
민승호 민치록 A는 B의 양자이다 A ekc:IsAdoptedHeirOf B
민치록 명성황후 A는 B의 아버지이다 A ekc:hasSon B
조선 고종 명성황후 A는 B의 남편이다 A ekc:hasWife B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조선 고종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명성황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흥선대원군 이하응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왕세자 관례 상차림 발기 여흥부대부인 민씨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주석

  1. 권석봉, "여흥부대부인 민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