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월향
(桂月香) | |
한자표기 | 桂月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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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 미상-1592년 |
배우자 | 김응서(金應瑞) |
정의
조선 중기의 기생이다.
내용
개요
계월향(桂月香, ?-1592)은 조선 시대 평양의 명기이다.[1]
당시 평안도 병마 절도사 김응서(金應瑞)의 애첩으로,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에게 몸을 더럽히게 되자, 적장을 속여 김응서로 하여금 적장의 목을 베게 한 후 자결하였다.[2]
김응서와 계월향에 얽힌 설화
임진왜란 당시 평양에 계월향이라는 유명한 기생이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란 왜장이 평양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그는 온몸이 비늘로 덮혀 있어 칼로 베어도 베어지지 않고, 칼로 목을 치면 도로 붙어 도저히 죽일 길이 없었다. 이때 계월향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눈에 들어 그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 계월향은 그의 시중을 들며 김응서와 함께 고니시 유키나가를 죽일 기회를 엿보았다.[3]
고니시 유키나가는 잘 때에도 눈을 뜨고 자고, 그 옆에 칼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 방울이 달린 모기장 같은 것을 침상 위에 걸어놓고 잠이 들었다. 행여나 누군가가 방울을 울리게 되면 칼이 스스로 움직여 침입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계월향은 이 사실을 알아내고, 솜과 재를 준비하여 김응서와 함께 고니시 유키나가를 없애고자 하였다.[4]
먼저 계월향은 솜으로 방울을 틀어막아 울리지 못하게 하니 김응서가 들키지 않고 자고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김응서가 칼로 고니시 유키나가의 목을 내리치니 불꽃이 튀면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머리가 떨어졌다. 계월향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목 잘린 곳에 재를 뿌려 놓으니 목이 다시 붙지 못하였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목이 떨어진 채로 칼을 휘두르며 김응서와 계월향을 죽이려 하였다. 김응서가 계월향을 옆구리에 끼고 재빨리 피하였으나 이미 계월향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칼을 맞은 후였다. 김응서는 도망치면서 그가 죽은 것을 보고, 계월향을 부축하여 평양성을 넘었는데 계월향은 결국 죽게 되었다.[5]
훗날 계월향이 살던 마을 사람들이 계월향의 충심을 기려 마을 이름을 '월향동'이라 하였다고 한다.[6]
지식 관계망
- 논개와 계월향과 김응서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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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월향 초상 | 계월향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계월향 | 김응서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계월향 | 임진왜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계월향 | 고니시 유키나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계월향",
『위키백과』online . - ↑ "계월향",
『위키백과』online . - ↑ 김기창, "김응서와 계월향",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 김기창, "김응서와 계월향",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 김기창, "김응서와 계월향",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 김기창, "김응서와 계월향",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 국립민속박물관, "의기 계월향 초상(義妓 桂月香 肖像)", 소장품 검색,
『e뮤지엄』online ,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