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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당시 5월 27일 옛 전남도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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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 간첩 손성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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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극우단체가 ‘5·18 때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을 지휘했다’고 주장하는 간첩 손성모도 5·18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손성모는 1980년 5월4일 침투해 같은 달 8일 은신 목적으로 광주 무등산 약사암에 들렀으나 약사암이 공사 중이어서 전북으로 이동했고 1981년 2월 15일 경북 문경에서 붙잡혔다. 북한 청진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손성모는 군사작전 경험이 없었고 자술서, 피의자 신문조서, 판결문 등에서도 광주에 대한 언급은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 극우단체가 ‘5·18 때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을 지휘했다’고 주장하는 간첩 손성모도 5·18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손성모는 1980년 5월4일 침투해 같은 달 8일 은신 목적으로 광주 무등산 약사암에 들렀으나 약사암이 공사 중이어서 전북으로 이동했고 1981년 2월 15일 경북 문경에서 붙잡혔다. 북한 청진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손성모는 군사작전 경험이 없었고 자술서, 피의자 신문조서, 판결문 등에서도 광주에 대한 언급은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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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북한군 개입설 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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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는 5·17비상계엄확대 이전부터 끊임없이 북한의 남침설을 유포했다. 한국의 학생소요사태를 부추기고 혼란의 틈을 타 남침을 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한국민들의 레드 콤플렉스 심리를 이용하여 국민들과 시위대간 심정적인 분리를 유도하고, 또 신군부세력의 집권을 위한 빌미로 ‘북한’ 을 끌어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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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5일 (목) 00:04 판

Story

1980년 5·18 당시 5월 27일 옛 전남도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본부였던 구 전남도청은 수많은 시민군들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꺼이 산화했던 최후의 결사 항전지이다. 사태 수습을 위해서 노력하던 시민군들은 계엄군의 강제 진압이 임박한 5월 26일 어린 학생들과 여자들을 귀가조치 시킨 후 자신들은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아 목숨을 걸고 항전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3공수여단 특공대가 도청에 남은 마지막 ‘시민군’을 진압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은 종결되었다.

5·18 왜곡 시도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군의 체험수기, 간첩사건 등을 조작해 광주학살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여러 개가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독침사건, 검거 간첩 손성모 사건, 검거 간첩 이청룡 사건 등이다.

독침 사건

25일 아침 8시 쯤 전남도청에서 경비를 맡고 있던 무장시위대원 장계범(23)은 갑자기 ‘독침이다’고 소리쳤고 옆에 있던 무전사 정한규(23․운전사)가 장계범의 등을 빨아대는 시늉을 하면서 진짜 독침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긴급히 전남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이 날 도청 안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누군가 뒤에서 오른쪽 뒤 어깨부분에 침을 찔렀다고 주장했다. 장계범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척 하고 그 날로 퇴원했다. 처음에 독침사건이 발생하자 도청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항쟁요원들은 도청 안에 정보요원이나 프락치가 많이 들어왔을 것이고 간첩도 없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 으나, 막상 독침사건이 발생하자 진짜 간첩이 들어와 독침을 찌른 것으로 여기고 불안해 했다. 뒤에 이 사건은 뒤에 프락치로 들어온 두 사람이 짜고 조작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항쟁본부 측은 독침사건을 계엄사의 정보요원들이 내부 소동을 일으키고 5․18이 ‘북괴간첩들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에 의한 폭동’이라는 사실을 외부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검거 간첩 이창룡 사건

신군부가 간첩사건을 조작해 5·18과 북한을 연관 지으려는 시도를 했다. 1980년 5월 23일 서울시경은 주민신고로 서울에서 간첩 이창용을 붙잡았고 다음 달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 소요 선동 임무를 띤 남파 간첩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조사위는 당시 수사 경찰, 검·경 피의자 신문조서, 자술서 등을 확인한 결과 이창용은 체포될 때 독침과 혀를 깨무는 방식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2주가 지난 6월 10일 께 조사가 이뤄졌다. 옛 전남도청의 진압된 것이 1980년 5월 27일이므로 명백한 조작이다.

검거 간첩 손성모 사건

일부 극우단체가 ‘5·18 때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을 지휘했다’고 주장하는 간첩 손성모도 5·18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손성모는 1980년 5월4일 침투해 같은 달 8일 은신 목적으로 광주 무등산 약사암에 들렀으나 약사암이 공사 중이어서 전북으로 이동했고 1981년 2월 15일 경북 문경에서 붙잡혔다. 북한 청진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손성모는 군사작전 경험이 없었고 자술서, 피의자 신문조서, 판결문 등에서도 광주에 대한 언급은 확인되지 않았다.

신군부의 북한군 개입설 유포

전두환 신군부는 5·17비상계엄확대 이전부터 끊임없이 북한의 남침설을 유포했다. 한국의 학생소요사태를 부추기고 혼란의 틈을 타 남침을 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한국민들의 레드 콤플렉스 심리를 이용하여 국민들과 시위대간 심정적인 분리를 유도하고, 또 신군부세력의 집권을 위한 빌미로 ‘북한’ 을 끌어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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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흥미로운가 윤상원 http://dh.aks.ac.kr/~gwangju/wiki/index.php/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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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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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0645 판사항(21) 논문 김영택, 5․18 광주민중항쟁 연구 (박사, 2004) RISS http://www.riss.kr/link?id=T13582378
ISBN:9788991057425 03300 단행본 그날 그들은 그곳에서 : 다시 가본 민주화운동 역사의 현장 서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http://www.riss.kr/link?id=M11554705
KCI:ART002496560 논문 5・18관련 가짜뉴스의 기원과 실태에 관한 연구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96560
600.15 판사항(6) 논문 정현애, 5ㆍ18 기념공간의 변화와 활용 연구, (박사, 2021) RISS http://www.riss.kr/link?id=T14922706
KCI:ART001988955 논문 상무충정작전(尙武忠正作戰)의 입안과 실행 ― 1980년 5월 27일 최후의 진압작전을 중심으로 ―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88955
단행본 2022년 하반기_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_조사활동보고서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https://518commission.go.kr/pdf/pdfView.html?year=2022&half=2&fileName=2022_report_second&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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