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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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삼군부는 조선 말기 관청으로 1865년(고종 2) 예조(禮曹)를 옮긴 자리에 훈련도감(訓練都監)신영(新營) · 남영(南營) · 마병소(馬兵所)를 합설하여 삼군부라 불렀으니 옛 의흥삼군부가 있던 자리이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정치 · 군사의 양권을 장악해온 비변사를 폐지하고, 그 대신 초기의 관제대로 삼군부를 다시 부활시켜, 정치는 의정부에서, 군사는 삼군부에서 맡도록 한 것이다.

조선초기에도 삼군부가 있었는데 조선말의 삼군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고려 말 이성계가 병권(兵權)을 장악하기 위하여 설치한 삼군총제부(三軍摠制府)를 1393년(태조 2)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로 개칭 설치하여 정도전(鄭道傳)을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로 임명하여 종래의 십위군(十衛軍)을 중·좌·우군의 3군으로 나누어 귀속시키고 자체의 감독권 및 지휘권도 갖는 최초의 강력한 중앙 군사체제를 갖추었다.

삼군부의 체제는 후에 오위(五衛)체제로 군제(軍制)가 개편되기까지의 중앙부대인 동시에 왕권(王權)과 수도를 방위하는 병력을 지 휘·감독하는 최고 군부(軍府)로 군림하게 된다. 1400년(정종 2) 중추원(中樞院)에서 관장하던 군무의 일부를 흡수, 삼군부로 개칭하 였고, 태종 때 승추부(承樞府)·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삼군진무소(三軍鎭撫所) 등으로 개칭하였다가 1451년(문종 1) 삼군은 5 위사(五衛司:義興·忠佐·忠武·龍·虎賁)로 고쳤으며 1466년(세조 12)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로 체제가 바뀌었다.

조선말기의 삼군부는 865년(고종 2) 예조(禮曹)를 옮긴 자리에 훈련도감(訓練都監)의 신영(新營) · 남영(南營) · 마병소(馬兵所)를 합설한 것이다. 옛 예조자리가 삼군부로 바뀌고, 예조의 청사가 삼군부청사로 이용되게 된다. 청사 앞 공간은 연병장으로 쓰여 별기군들이 이 곳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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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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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삼군부 A는 B에 위치해 있었다. 육조거리,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삼군부 A는 B은 육군사관학교에 위치하고 있다. 삼군부 청헌당, 육군사관학교
삼군부 A는 B은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하고 있다. 삼군부 총무당
삼군부 A는 B은 없어졌다. 덕의당

기여

출처

  1. 삼군부, 한국콘텐츠진흥원
  2. 삼군부,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