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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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규수 [朴珪壽, 1807~1876)는 조선 말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개화론자이다.
  • 박규수는 19세기의 역사적 격변 한가운데에서 활동한 인물로 평안감사․대제학․우의정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면서, 진주농민항쟁(1862)[1],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2], 강화도조약(1876)[3] 등과 같이 민족사의 향방을 결정지은 중대 사건들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 열하일기》를 남긴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손자로서 영․정조시대 실학의 성과를 충실히 이어받고 이정리, 이정관, 서유구 등 뛰어난 문인 학자들과 교유하는 가운데 당대의 문학과 사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 박규수가 지은 《거가잡복고(居家雜服考)》는 복식에 대한 그의 개혁이 상세하게 나와있다.

관련 지식

관계 이름 설명
가족 박지원(朴趾源), 조부를 이어받음
교우 이정리, 이정관, 서유구 학문적 교류

연관 복식

족두리, 가체, 현단복, 어린이옷

관련 내용

박규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Writer: 차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