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연구
선행연구
문헌 연구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1970년대 연극계의 상황과 삼일로창고극장의 연극사적 의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본 연구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의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의 의미와 디지털 아카이브의 이론적 배경 및 구축 방식에 대한 국내 경향을 탐구하는 것이다.
1970년대 소극장운동을 직접 경험하고, 근대 연극사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체계적인 연구 성과를 보여주는 유민영의『우리시대 극장운동사』[1]는 1970년대 소극장의 등장과 동인제 극단들의 구체적인 활동 사항과 사건들을 연극사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특히 소극장의 등장과 증가의 이유를 명동예술극장의 폐관에서 찾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연극의 지형이 소극장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한국연극의 왜소화와 극단들의 영세화[2]
를 촉진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동인제 극단의 활동 사항, 문예중흥 5개년 계획으로 시도되었던 전국 순회공연의 맥락, 번역극의 증가, PD시스템[3]과 창작극에 대한 창작자와 비평가 사이의 논쟁 등을 구체적인 자료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공연법 개정에 관한 연극인들의 노력이 단순히 법 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활동의 본질적 의미를 국가 정책에 의해 보장 받으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유로운 연극활동 보장에 앞장서야 했던 한국연극협회의 교조적인 태도에 대해 다루며, 연극에 대한 규제가 제도적인 것에만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연극 관객 수와 공연 수익과 같은 수치들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이승희[4]의 연구는 1970년대 연극계의 상황을 문예중흥과 억제라는 모순된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또한 정책적인 이유에 못지않게 극단들이 영세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소극장 대관료와 입장료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있어, 번역극을 할 수 밖에 없는 동인제 극단들 입장을 추측할 수 있다.
김윤정[5]은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동인제 극단의 성격과 작품 활동을 살펴보고 있다. 1960-70년대 국내 연극계의 성장은 동인제 극단의 성장과 함께 하는데, 특히 전용 극장을 운영하던 극단 에저또와 전용 극장은 아니지만 공연 공간을 가지고 있었던 극단 자유극장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특히 1975년 극단 에저또의 전용 극장이었던 에저또창고극장(삼일로창고극장)의 작품 활동을 극단 에저또의 소극장 운동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있다. 극단 에저또가 1975년 흥행작 뱀의 공연을 중단하게 되는 맥락을 소극장 운동의 입장으로 언급하고 있어, 1975년의 에저또창고극장이 이후의 삼일로창고극장이 갖는 공간적 의미와 대조적인 성격의 공간임을 밝히고 있다.
삼일로창고극장의 극장 공간의 특성과 공연사, 공연에 관여했던 인물, 극단, 해당 시기의 공연법과 이에 따른 사건들, 그리고 소극장 운동을 검토한다. 특히 삼일로창고극장을 다루고 있는 연구는 네 편[6] 에 불과한데, 이는 현재까지 국내 연극사의 연구가 희곡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7]
차범석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극장 운동에 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차범석은 소극장 운동의 시작을 근대 협률사[8]의 연극 활동으로 보고 있다. 1950년대부터 등장한 동인제 극단과 1960년 말에 등장한 소극장의 연극사적 의미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삼일로창고극장의 공간적 특성과 운영 주체와 방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나, 공연된 작품들에 대해선 다루고 있지 않다.
정호순[9]연구는 1950년대 원각사에서 시작된 소극장 운동의 특성을 각 극장별로 다루고 있다. 소극장 개관의 배경, 극장 공간의 특성과 각 극장의 대표작들을 분석하여,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즉 정호순의 연구의 핵심은 국내 연극의 활성화에 있어서 극장이라는 현실적인 토대가 무엇보다 중요했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는 유민영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1970년대의 극장이 제도적 지원을 받는 관립극장과 규제의 대상이었던 사설 소극장으로 양분화되었던 현상을 정책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소극장 연극이 국내 연극의 대표적인 특징이 된 것과 이에 따른 문제점 역시 지적하고 있다. 이를 소극장의 고질적인 운영난[10]의 입장에서 살펴보는데, 1980년대 공연법 개정으로 소극장 규제가 완화되자 예술적 목표가 부족한 소극장이 양산되는 현상을 고찰하고 있다.
양정모[11]와 정대경[12]의 연구는 1975년 에저또전용소극장이었던 시절에서부터 1990년대까지의 활동 사항을 다루고 있다. 특히 삼일로창고극장의 공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삼일로창고극장의 아레나[13]무대가 프로시니엄 무대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장 운영진과 전용 극단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또한 삼일로창고극장에서의 공연활동, PD시스템, 극장 폐쇄 조치와 같은 사건들의 연극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특히 양정모의 연구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극장의 운영자였던 이원경의 인터뷰를 포함한다. 이는 1970년대 실제 극장 운영자의 육성을 통해 당시의 소극장 활동 사항을 구술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 연보를 제시하고 있는데, 극단 창고극장이 PD시스템으로 공연했던 작품들을 명확히 표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공연법을 극복하기 위한 극장 운영진 측에서의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극장 건물 주인의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14] 정대경은 삼일로창고극장 공간의 변화를 2004년 이후까지 언급하고 있다. 2004년 이후의 삼일로창고극장은 프로시니엄 무대이고, 무대 바닥에 리프트를 설치하는 등 시설 면에서 변화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이에 따른 소극장의 의미 변화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의 개념과 본질, 그리고 구축된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를 고찰하고 있는 연구의 검토이다.
이호신[15]의 연구는 공연예술의 본질인 현장성을 고찰하고, 공연예술과 기록의 모순적인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공연기록의 목적이 공연이 전달하는 예술적 감흥을 보존하고자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공연 자체를 기록하는 것 이상으로 공연 창작 과정을 보존해야 함을 주장하는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는 그 동안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연구가 정책적, 기술적인 입장에서만 전개되어 왔음을 고려할 때,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본질에 관한 성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유승[16]의 연구는 자료 관리과 보존에만 주력하였던 기존 아카이브를 아카이브 1.0으로 보고, 웹 환경의 발달과 함께 아카이브의 자료 활용과 이용자의 편의성을 강조한 아카이브 2.0의 철학과 구체적인 실행의 예를 살펴보고 있다. 아카이브 2.0에 적용되는 디지털 기술을 고찰하며 동시에 기록물 평가에 관한 아키비스트의 객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기록물 평가에 아키비스트들의 주관적 평가가 결정적인 영향을 발휘했음을 반성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카이브 이용자들을 발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이용자들의 편리한 자료 사용을 돕는 조력자로서 아카이브 2.0이 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른 실천으로 미국과 영국의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2010년 당시 연구 대상이었던 사례들을 현재 시점에서는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생애주기가 짧은 디지털 기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설인재[17]의 연구는 공공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공연예술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방법과 문제점 및 개선 방안을 공공기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담당자의 입장에서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에서 공연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필요한 예산과 시스템 조건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구이다. 그러나 공연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들(프로그램, 포스터, 리플렛, 티켓 등과 같은 공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을 우선적으로 디지털화의 대상으로 삼고 그 외의 행정 및 기획 자료들을 제외 시키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18]왜냐하면 공연은 단지 공연 내용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공연이 수행되는 문화․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개념이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보존한다는 기존 아날로그 아카이브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디지털화된 자료를 관리하는 측면에서만 전개하고 있다.
정은진[19]의 연구는 연극 아카이브의 연장선상에서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논의 하고 있다. 따라서 연극 아카이브의 활용과 접근성을 증대 시킨다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특히 각 기관별 소장물을 확인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인지하고 있으나, 실제 구축 방식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실물로 남아 있는 연극 자료 이외에 연극사에서 의미가 있는 주제나 사건을 선정하고 이를 기록물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20]
다음으로 선행 연구된 것은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 활동을 보다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공연 자료 디지털 아카이빙의 방법과 결과물에 대한 분석이다. 이 연구는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 민간단체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삼일로창고극장 공연기록 아카이빙 사업’[21]으로 수행되었다. 이 사업의 목적은 1975년에서 2015년까지 약 40년간 유지된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사를 정리하고, 생존해 있는 창작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공연 자료를 디지털화하며, 동시에 이들의 경험을 인터뷰로 남겨 1970년대 국내 소극장의 연극사적 의미와 동시대 연극계에 미친 영향을 재고하기 위함이었다. [22]또한 이 연구는 본 연구의 기반이 되는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 데이터 수집의 기반이 되었기에 선행 연구에 포함한다.
이 연구를 통해 1975년에서 1979년까지의 공연 112편 중 몇 52편에 해당하는 공연 자료를 디지털 이미지화 하고, 해당 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창작자, 스폰서, 인물 사진 등을 수집할 수 있었다.이러한 연구가 필요한 까닭은 연극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연극은 작품 자체를 보존할 수 없고, 공연 전후에 생산되는 자료를 통해 해당 작품을 추측할 뿐이다. 게다가 연극은 종합예술이라 다양한 분야의 자료가 생산된다. 이때의 자료는 자료를 생산하는 사람이 보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정 작품에 관한 자료는 파편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창작자들 개개인에게 자료를 받는 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또한 삼일로창고극장의 경우 약 45년간 운영되면서 여러 번 운영진이 바뀌어 왔고, 심지어 인쇄소 및 김치공장으로 운영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극장 내부에서 공연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 [23] 공연에 참여하였던 창작자나 비평가 등이 공연 자료의 일부를 소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위와 같은 사업으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 한 일목요연한 공연 자료의 수집 및 분석이 어렵다.
- ↑ 유민영, 우리시대 극장운동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0
- ↑ 유민영, 우리시대 극장 운동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0년, 363쪽
- ↑ PD시스템의 연극사적 의의에 관해서는 2장에서 다루고 있다.
- ↑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엮음, 한국현대예술사대계 1, 970년대, 연극, 2005,p.163~p.214
- ↑ 김윤정, 동인제 극단 연구 : 극단 자유와 에저또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학위 논문, 2016년
- ↑ 차범석, 한국 소극장 연극사, 연극과 인간, 2004.
정호순, 한국의 소극장과 연극 운동, 연극과 인간, 2002.
정대경, 소극장운동으로 본 삼일로창고극장-1975년부터 1990년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양경모, 창고극장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1년
- ↑ 민족문학사연구소 희곡분과 편, 1970년대 희곡 연구 1-2, 연극과 인간, 2008. 1970년대 희곡 연구 1-2편이 대표적이다. 이는 연극을 촬영하여 기록할 수 없었던 시대적 기술적 상황 때문이고, 극단들이 지속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까닭에, 공연 자료가 제대로 보존이 되지 못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또한 해당 시기연구자들이 서양문학과 국문학자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 ↑ 1902년 고종의 명에 따라 서울 정동에 세워진 최초의 현대식 국립극장이다. 국악예술인들을 중심으로 공연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연극 중심의 극장이라고는 볼 수 없다.
- ↑ 정호순, 위의 책
- ↑ 국내 소극장들은 하나 같이 운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서구의 소극장과 국내 소극장 등장의 이유가 필연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의 소극장은 기성연극에 대한 반발과 새로운 예술형식을 탐구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국내 소극장은 공연 공간의 부족에 따라 생겨난 점이 더 크다. 이에 대해 정진수(소극장운동, 1974년의 현실, 연극평론, )는 서구의 소극장 운동이 십 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즉 소극장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연극 실험이 끝나면, 소극장 운동을 종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소극장들은 젊은 연극인들이 연극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목적에 개관한 것이고, 소극장 연극 활동에서 확장된 연극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소극장 공간에서의 연극 활동에 더욱 집중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또한 소극장은 연극지원을 받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규제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극장은 지속적인 공연 활동을 위해 수익을 내야 했고, 그 결과 흥행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 ↑ 양정모, 위의 연구
- ↑ 정대경, 위의 연구
- ↑ 아레나 형식은 무대가 관객석으로 360도 둘러싸인 중앙에 위치하는 형태로써 무대와 객석의 벽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프로시니엄 무대가 객석과 분리되어 있다는 데 반해 이 무대는 객석이 둘러싸고 있어 배우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친밀감을 형성한다. 정호순, 위의 책, p.120
- ↑ 어떤 인물이 어떤 목적에 의해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가는 극장의 정체성과 연결되는 것이다. 1975년 극단 에저또의 방태수가 가정집을 구입해 소극장으로 개조했을 때에는, 연극실험실의 의미가 강했다. 이후 백병원 정신과의 유석진 박사가 극장을 인수했을 때에는, 싸이코드라마 공간과 청소년 선도 및 연극연구기관을 의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여관주인인 오영수가 극장을 인수하고부터는 필연적으로 상업적 목적의 대관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2015년 삼일로창고극장 폐관과 2017년 재개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2015년 폐관 역시 경제적인 문제였고, 2017년 재개관을 둘러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와의 잡음 역시 대관료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17년 6월 21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212143015&code=960313
- ↑ 이호신, 공연예술아카이브의 존재론적 특성에 관한 연구, 무용역사기록학 33호, 무용역사기록학, 11-33쪽, 2014년 6월
- ↑ 김유승, 아카이브 2.0 구축을 위한 이론적 고찰, 한국기록관리학회지 10(2), 한국기록관리학회, 2010.12, 31-52쪽
- ↑ 설인재, 국내 공연예술 디지털아카이브 발전방안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 실제로 국립극장 공연예술디지털 아카이브에는 공연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 이외의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 ↑ 연극 아카이브의 구축 및 운영에 관한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 ↑ 이는 본 연구가 지향하는 연극 데이터베이스의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 ↑ 본 연구자는 이 사업의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하여 1975년-2015년까지의 공연 자료를 수집하고, 디지털 이미지화하였다. 또한 창작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하여, 1975년에서 1990년대까지의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 활동에 관한 현장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 ↑ 특정 극장을 중심으로 아카이빙이 시도된 경우는 국립현대무용단의 공간 사랑 아카이빙 사업(2014년)과 삼일로창고극장이 있다. 전자는 공간 사랑의 공연자료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 아카이빙 전시와 ‘리빙 아카이브’라는 아카이브 기반의 공연 창작을 했다는 점이 삼일로창고극장의 아카이빙 사업과 다르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자료원에서 1950-70년대 동인제 극단의 자료 기증 사업을 진행했고, 2017년 9월 현재에는 소극장 ‘공간 사랑’의 자료 기능 사업을 하고 있다.
- ↑ 이러한 상황은 삼일로창고극장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1985년 개관하여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산울림소극장과 1987년 개관한 연우 소극장을 제외하곤, 모두 같은 상황이라고 추측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