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연구
목차
문헌연구
1970년대 소극장과 공연법 검토
문헌 연구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1970년대 연극계의 상황과 삼일로창고극장의 연극사적 의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본 연구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의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의 의미와 디지털 아카이브의 이론적 배경 및 구축 방식에 대한 국내 경향을 탐구하는 것이다.
1970년대 소극장운동을 직접 경험하고, 근대 연극사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체계적인 연구 성과를 보여주는 유민영의『우리시대 극장운동사』[1]는 1970년대 소극장의 등장과 동인제 극단들의 구체적인 활동 사항과 사건들을 연극사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특히 소극장의 등장과 증가의 이유를 명동예술극장의 폐관에서 찾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연극의 지형이 소극장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한국연극의 왜소화와 극단들의 영세화[2]
를 촉진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동인제 극단의 활동 사항, 문예중흥 5개년 계획으로 시도되었던 전국 순회공연의 맥락, 번역극의 증가, PD시스템[3]과 창작극에 대한 창작자와 비평가 사이의 논쟁 등을 구체적인 자료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공연법 개정에 관한 연극인들의 노력이 단순히 법 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활동의 본질적 의미를 국가 정책에 의해 보장 받으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유로운 연극활동 보장에 앞장서야 했던 한국연극협회의 교조적인 태도에 대해 다루며, 연극에 대한 규제가 제도적인 것에만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연극 관객 수와 공연 수익과 같은 수치들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이승희[4]의 연구는 1970년대 연극계의 상황을 문예중흥과 억제라는 모순된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또한 정책적인 이유에 못지않게 극단들이 영세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소극장 대관료와 입장료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있어, 번역극을 할 수 밖에 없는 동인제 극단들 입장을 추측할 수 있다.
김윤정[5]은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동인제 극단의 성격과 작품 활동을 살펴보고 있다. 1960-70년대 국내 연극계의 성장은 동인제 극단의 성장과 함께 하는데, 특히 전용 극장을 운영하던 극단 에저또와 전용 극장은 아니지만 공연 공간을 가지고 있었던 극단 자유극장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특히 1975년 극단 에저또의 전용 극장이었던 에저또창고극장(삼일로창고극장)의 작품 활동을 극단 에저또의 소극장 운동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있다. 극단 에저또가 1975년 흥행작 뱀의 공연을 중단하게 되는 맥락을 소극장 운동의 입장으로 언급하고 있어, 1975년의 에저또창고극장이 이후의 삼일로창고극장이 갖는 공간적 의미와 대조적인 성격의 공간임을 밝히고 있다.
삼일로창고극장의 극장 공간의 특성과 공연사, 공연에 관여했던 인물, 극단, 해당 시기의 공연법과 이에 따른 사건들, 그리고 소극장 운동을 검토한다. 특히 삼일로창고극장을 다루고 있는 연구는 네 편[6] 에 불과한데, 이는 현재까지 국내 연극사의 연구가 희곡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7]
차범석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극장 운동에 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차범석은 소극장 운동의 시작을 근대 협률사[8]의 연극 활동으로 보고 있다. 1950년대부터 등장한 동인제 극단과 1960년 말에 등장한 소극장의 연극사적 의미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삼일로창고극장의 공간적 특성과 운영 주체와 방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나, 공연된 작품들에 대해선 다루고 있지 않다.
정호순[9]연구는 1950년대 원각사에서 시작된 소극장 운동의 특성을 각 극장별로 다루고 있다. 소극장 개관의 배경, 극장 공간의 특성과 각 극장의 대표작들을 분석하여,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즉 정호순의 연구의 핵심은 국내 연극의 활성화에 있어서 극장이라는 현실적인 토대가 무엇보다 중요했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는 유민영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1970년대의 극장이 제도적 지원을 받는 관립극장과 규제의 대상이었던 사설 소극장으로 양분화되었던 현상을 정책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소극장 연극이 국내 연극의 대표적인 특징이 된 것과 이에 따른 문제점 역시 지적하고 있다. 이를 소극장의 고질적인 운영난[10]의 입장에서 살펴보는데, 1980년대 공연법 개정으로 소극장 규제가 완화되자 예술적 목표가 부족한 소극장이 양산되는 현상을 고찰하고 있다.
양정모[11]와 정대경[12]의 연구는 1975년 에저또전용소극장이었던 시절에서부터 1990년대까지의 활동 사항을 다루고 있다. 특히 삼일로창고극장의 공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삼일로창고극장의 아레나[13]무대가 프로시니엄 무대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장 운영진과 전용 극단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또한 삼일로창고극장에서의 공연활동, PD시스템, 극장 폐쇄 조치와 같은 사건들의 연극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특히 양정모의 연구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극장의 운영자였던 이원경의 인터뷰를 포함한다. 이는 1970년대 실제 극장 운영자의 육성을 통해 당시의 소극장 활동 사항을 구술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 연보를 제시하고 있는데, 극단 창고극장이 PD시스템으로 공연했던 작품들을 명확히 표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공연법을 극복하기 위한 극장 운영진 측에서의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극장 건물 주인의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14] 정대경은 삼일로창고극장 공간의 변화를 2004년 이후까지 언급하고 있다. 2004년 이후의 삼일로창고극장은 프로시니엄 무대이고, 무대 바닥에 리프트를 설치하는 등 시설 면에서 변화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이에 따른 소극장의 의미 변화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에 관한 연구 검토
다음으로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의 개념과 본질, 그리고 구축된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를 고찰하고 있는 연구의 검토이다.
이호신[15]의 연구는 공연예술의 본질인 현장성을 고찰하고, 공연예술과 기록의 모순적인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공연기록의 목적이 공연이 전달하는 예술적 감흥을 보존하고자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공연 자체를 기록하는 것 이상으로 공연 창작 과정을 보존해야 함을 주장하는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는 그 동안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연구가 정책적, 기술적인 입장에서만 전개되어 왔음을 고려할 때,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본질에 관한 성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유승[16]의 연구는 자료 관리과 보존에만 주력하였던 기존 아카이브를 아카이브 1.0으로 보고, 웹 환경의 발달과 함께 아카이브의 자료 활용과 이용자의 편의성을 강조한 아카이브 2.0의 철학과 구체적인 실행의 예를 살펴보고 있다. 아카이브 2.0에 적용되는 디지털 기술을 고찰하며 동시에 기록물 평가에 관한 아키비스트의 객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기록물 평가에 아키비스트들의 주관적 평가가 결정적인 영향을 발휘했음을 반성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카이브 이용자들을 발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이용자들의 편리한 자료 사용을 돕는 조력자로서 아카이브 2.0이 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른 실천으로 미국과 영국의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2010년 당시 연구 대상이었던 사례들을 현재 시점에서는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생애주기가 짧은 디지털 기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설인재[17]의 연구는 공공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공연예술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방법과 문제점 및 개선 방안을 공공기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담당자의 입장에서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에서 공연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필요한 예산과 시스템 조건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구이다. 그러나 공연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들(프로그램, 포스터, 리플렛, 티켓 등과 같은 공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을 우선적으로 디지털화의 대상으로 삼고 그 외의 행정 및 기획 자료들을 제외 시키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18]왜냐하면 공연은 단지 공연 내용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공연이 수행되는 문화․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개념이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보존한다는 기존 아날로그 아카이브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디지털화된 자료를 관리하는 측면에서만 전개하고 있다.
정은진[19]의 연구는 연극 아카이브의 연장선상에서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논의 하고 있다. 따라서 연극 아카이브의 활용과 접근성을 증대 시킨다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특히 각 기관별 소장물을 확인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인지하고 있으나, 실제 구축 방식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실물로 남아 있는 연극 자료 이외에 연극사에서 의미가 있는 주제나 사건을 선정하고 이를 기록물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20]
삼일로창고극장 디지털 아카이빙 결과물 검토
다음으로 선행 연구된 것은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 활동을 보다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공연 자료 디지털 아카이빙의 방법과 결과물에 대한 분석이다. 이 연구는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 민간단체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삼일로창고극장 공연기록 아카이빙 사업’[21]으로 수행되었다. 이 사업의 목적은 1975년에서 2015년까지 약 40년간 유지된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사를 정리하고, 생존해 있는 창작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공연 자료를 디지털화하며, 동시에 이들의 경험을 인터뷰로 남겨 1970년대 국내 소극장의 연극사적 의미와 동시대 연극계에 미친 영향을 재고하기 위함이었다. [22]또한 이 연구는 본 연구의 기반이 되는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 데이터 수집의 기반이 되었기에 선행 연구에 포함한다.
이 연구를 통해 1975년에서 1979년까지의 공연 112편 중 몇 52편에 해당하는 공연 자료를 디지털 이미지화 하고, 해당 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창작자, 스폰서, 인물 사진 등을 수집할 수 있었다.이러한 연구가 필요한 까닭은 연극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연극은 작품 자체를 보존할 수 없고, 공연 전후에 생산되는 자료를 통해 해당 작품을 추측할 뿐이다. 게다가 연극은 종합예술이라 다양한 분야의 자료가 생산된다. 이때의 자료는 자료를 생산하는 사람이 보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정 작품에 관한 자료는 파편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창작자들 개개인에게 자료를 받는 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또한 삼일로창고극장의 경우 약 45년간 운영되면서 여러 번 운영진이 바뀌어 왔고, 심지어 인쇄소 및 김치공장으로 운영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극장 내부에서 공연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 [23] 공연에 참여하였던 창작자나 비평가 등이 공연 자료의 일부를 소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위와 같은 사업으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 한 일목요연한 공연 자료의 수집 및 분석이 어렵다.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 횟수는 113회, 작품 수는 94편이다. 이중 46편에 해당하는 공연의 자료를 디지털 이미지화 하였다. 공연 프로그램이 35건, 리플렛 3건, 공연 사진 40건, 포스터 2건, 메모 1건, 기사 스크랩 11건, 우대건 및 티켓 1건이다. 이를 전체 개별 디지털 이미지화 했을 때의 분량은 299건에 해당한다.
삼일로창고극장의 연극 활동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연극 활동을 했던 창작들에 대한 인터뷰를 수행하였다. 인터뷰 대상은 다음과 같다. 극단 에저또의 대표이자 1975년 에저또전용소극장을 개관한 연출 방태수, 배우 이재희[24],1975년 뱀의 연출가 김종찬, 마임이스트 유진규[25],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의 여성 연출 박은희[26], 윤여성[27], 류근혜[28]이다. 인터뷰를 통해 1970년-1990년대에 이르는 삼일로창고극장의 극장 상황[29]과 해당 공간의 연극사적 의미[30]를 공연 창작자의 육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70년대의 소극장 운동이 상업적으로도 성과가 있었다는 것은 공연 프로그램과 리플렛에 실린 광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젊은 관객층을 고려한 광고가 많았다. 특히 아이스크림과 과자, OB생맥주, 구두와 패션 광고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연극이 젊은 세대들의 주요한 문화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197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소극장 연극이 상업화 되었다는 사실[31]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디지털 이미지화 하였다. 이후 해당 데이터는 서울시미래유산에 자료집으로 제출 되었고, 디지털화 파일 역시 서울시에 제출하였다. 해당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서울시의 공공데이터 활용 신청이 필요하다.
국내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 검토
마지막으로 국내 구축되어 서비스하고 있는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에 관한 선행 연구이다. 국내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는 연극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서비스하는 방식이다. 소장 자료의 디지털 이미지를 제공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의 맥락을 설명해주는 정보가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디지털 이미지 사이의 연계성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자료원 DA-Arts(http://www.daarts.or.kr)는 예술자료원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와 창작자 개인 및 단체가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연극 자료들을 웹 사이트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32] 연극 자료의 유형으로는 이미지, 동영상, 텍스트, 음원으로 구분되고 자료 생산 주체는 예술단체와 예술인으로 구분된다. 예술인에 관한 정보는 2003년부터 시작된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의 결과물로써 “예술사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과 이에 따른 예술사 연구의 단절과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33]
그림3은 예술자료원 DA-Arts의 자료 검색 결과이다. 공연단체, 공연장소, 공연날짜, 장르, 연출, 출연, 작성자에 관한 데이터와 포스터 섬네일 이미지를 기본 정보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연날짜에 관한 정보가 없는데, 이는 디지털 이미지화된 포스터에 공연 년도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34]또한 데이터로 입력되어 있는 정보들은 하이퍼텍스트 기능을 구현하지 못한 채 단순히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디지털 연극 아카이브라고 볼 수 없다. 화면 아래의 이미지는 새로운 창에서 열리고, 그 안에서 이미지 확대와 축소를 통해 공연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작품명, 공연단체, 공연장소, 공연날짜, 장르, 연출, 작성자에 관한 기본 정보를 제시하고 있고, 왼편의 이미지를 확대 축소하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제한된 크기의 창 안에서 봐야 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다.[35]
예술자료원은 Da Art의 검색과 통합검색이 구분되어 있는데, 통합검색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 화면이 나온다.
소장자료 검색 결과, 작품 검색 결과, 공연예술 검색 결과, 구술채록 검색 결과를 볼 수 있다. 작품검색 결과는 통합 검색 페이지 안에서 관련 정보가 제시되는 형태이고, 공연예술 검색 결과는 Da Art 서비스 안에서 볼 수 있다. 구술채록 검색 결과에는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와 관련 있는 예술인 정보를 볼 수 있다. 작품검색 결과는 공연예술 검색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예술자료원이 작품과 공연이라는 개념을 구분하여 자료를 분류한 것이 아니라, 자료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다르다. 작품검색 결과에 나오는 ‘고도’ 역시 공연에 관한 정보이자 소장 자료에 관한 정보이고, 공연검색 결과에 나오는 ‘고도’는 소장 자료를 디지털 이미지로 제공하고 있다는 차이이다. 소장 자료의 정보는 작품제목, 대등표제, 초연일자의 기본 정보를 제시하고 있다.
DA-Arts에서 제공하고 있는 기본 정보는 공연단체, 공연장소, 장소상세, 공연날짜, 장르, 연출, 출연, 제작진, 작성자이다. 그 아래에 출연진과 제작진 정보를 따로 제공하고 있다. 콘텐츠 정보에는 전체이미지, 사진, 포스터로 구분되어 있는데, ‘고도’의 경우 포스터 2건이 콘텐츠로 제시되고 있다. 오른편에 해당 작품의 아카이브 현황을 표기하고 있다. 제공하는 자료 정보는 이미지 자료, 영상자료, 음원자료, 문서자료이다. 그 아래에는 해당 작품의 인기자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예술자료원의 통합검색과 Da Art는 디지털 이미지로 제공하고 있는 자료를 작품과 공연으로 분류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소장 자료와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로 구분해 제공해 주는 것이 사용자의 편의를 도모하는 방법일 것이다. 또한 제공하고 있는 디지털 이미지의 정보에 대해서 아날로그 책자 형태처럼 제시되는 정보가 아니라 하이퍼텍스트 정보 제시 방법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이미지 안에서 제시하고 있지 않은 정보들은 다른 연구자료 및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해서 기입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하나는 해당 공연과 작품에 작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연출과 출연이라는 구분으로 창작자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DA-Arts가 시스템을 설계할 때 창작자에 관한 정보를 출연과 연출이라는 두 가지 분류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외의 창작자에 관한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예술자료원의 DA-Arts가 동시대 극단과 창작자들의 공연 예술 자료 디지털 아카이빙을 유도하고 있는 만큼, 이에 관한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립극장 공연예술 디지털 아카이브
국립극장의 공연예술 디지털 아카이브[36]는 국립극단,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교향악단, 국립현대무용단 등의 프로그램, 포스터, 공연 이미지 등을 디지털 이미지화하여 제공하고 있다. 자료 분류 유형으로 연극, 연희, 무용, 음악, 공연일반, 무대일반, 기타로 구분되어 있는데 공연일반은 위의 장르로 구분되지 않은 공연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연극은 일반연극, 인형극, 퍼포먼스, 서커스, 마임, 아동극, 대중쇼, 기타로 구분되어 있고, 일반연극에 194편[37]이 있으며 나머지 분류에는 한 편도 없다. 자료유형은 영상, 음향, 이미지, 복합, 디자인, 서지, 물품, 기타로 나뉜다. 복합은 포스터, 프로그램, 전단지, 기타로 구분되는데, 공연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들이다. [38]
아쉬운 점은 앞서 설인재의 연구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공연예술 디지털 아카이브는 공연 정보를 담고 있는 복합자료 이외 행정 및 기획 등에 관한 주변 자료들이 존재하나, 특별히 제외했기 때문에, 공연의 사회·경제·문화적 맥락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접할 순 없다.
공연예술 디지털 아카이브 역시, 소장 자료의 디지털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료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보들의 하이퍼텍스트 설계나 관련 자료들의 연계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림 8은 일반연극으로 구분된 <에밀레종> 포스터에 관한 결과이다. 왼편 분류유형 결과에 연극(3), 그 아래 일반연극(3)으로 되어 있는데, (3)은 이 공연과 관련된 자료의 숫자가 전체 3건이라는 의미이다. 관련자료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미지(1), 복합(2)가 이 공연과 가진 전체 디지털 이미지의 개수이다. 기본정보는 관리번호, 연출, 수행기관, 수행단체, 수행기관, 분류유형이다. 그 아래에 있는 정보는 서브 정보로 보이며, 관련자료, 출연, 스태프, 공연내용이다. 그러나 기본 정보에서 보듯이 연출에 관한 정보가 표기 되어 있지 않고, 수행 장소 및 출연 정보도 없다. 포스터 이미지에 기대해서 관련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이미지 확대조차 되지 않는다.
그림9의 공연 자료는 1960년 9월23일에서 29일까지 수행된 <분노의 계절>이라는 공연에 관한 이미지이다. 관리번호, 연출, 수행기간, 수행단체, 수행장소, 분류유형이 기본정보로 제공된다. 이 자료 역시 확대가 안 되기 때문에, 줄거리라는 제목 이외에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다. 관련자료 목록에는 이미지(1)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미지는 공연 사진을 말한다. 아래의 그림10에서처럼 이미지를 제시할 때 그 아래에 관련 복합 자료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미지는 관리번호 정보 밖에 없다. 복합 자료와 함께 제공되는 이유는 이미지의 맥락 정보를 파악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러나 복합 자료에도 연출, 수행기관, 수행단체, 수행기간, 분류유형의 기본 정보가 제공되고 있으나 수행기관과 수행단체 정보 밖에 없다.
국립극장과 한국예술문화위원회 예술자료원 DA-Arts의 문제점은 공연에서 생산되는 자료와 공연에 관한 정보를 구분하고 있지 않고, 더 나아가 디지털화되어 제공되고 있는 자료와 물리적 자료의 구분 또한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장하고 있는 공연 관련 자료(포스터, 프로그램, 공연사진, 티켓, 대본, 리플렛 등)을 기반으로 공연예술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할 때,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디지털화 하여 제공한다는 것 이상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스마트 박물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스마트 박물관[39]은 동국대학교 교수였던 김흥우가 남해시에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을 설립하면서 평생 동안 수집한 공연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사이트이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2008년 5월 개관하여, 7백여점의 국제탈과 2천여점의 포스터, 4천여점의 대본, 5만여점의 사진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 무대미술, 인형, 전단, 팸플릿 등 25만점이 보관되어 있고, 자료 촬영이 필요한 경우 유로로 복사 및 촬영할 수 있다. 2009년부터 수장고에 있는 자료의 전산화 작업을 통해 스마트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전산화된 자료는 1960년대에서 2000년대 까지의 포스터 약 688점, 팜플렛 4752건, 대본 3176건, 전단지 2080건, DVD 2496 건을 디지털 서비스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자체 사이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해시에서 운영하는 관광정보 싸이트에서 스마트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연 박물관은 공연에 관한 자료를, 탈 박물관은 동양, 서양탈 및 인형에 관한 이미지와 3D이미지로 탈을 볼 수 있다. 자료의 분류는 포스터, DVD, 도서, 팸플릿, 전단, 대본, 동양탈, 서양탈, 인형, 탈3D보기로 되어 있다.
소장 자료의 제공은 그림 12처럼 연대별로 포스터 이미지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처럼 포스터 이미지만을 제시하는 것 외에, 극단이나 연도, 작품 제목별 목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필요한 정보를 페이지를 넘기며 찾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연 자료는 검색 결과에도 나오는 것이 없다.
포스터에 관한 자료는 구분, 국가, 종류, 유물번호, 제작년도, 제작사, 크기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아래는 작품에 관한 정보로 보인다. 원작, 연출, 안무, 예술감독, 극본, 작곡, 기타참고자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도서는 소장하고 도서의 정보이다. 저자, 출판사, 발행년도, 청구번호, 등록번호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도서의 표지 이미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본문 내용은 디지털 이미지로 제공하지 않는다.
팸플릿은 국가명, 구분, 유물번호, 소분류, 제목, 연도, 단체, 연출자, 년대와 같은 기본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전단지는 국가병, 구분, 유물번호, 소분류, 제목, 연도, 단체, 연출자, 년대와 같은 기본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공연대본은 년도, 코드, 제목, 작가, 극본, 연출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공연대본 역시 도서처럼 본문을 디지털 이미지로 제공하고 있지 않다. 소장 정보를 디지털 이미지로 제공하고 있는 수준이다.
남해국제탈박물관의 스마트박물관은 소장 자료를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하고, 최소한의 기본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리하여 같은 공연 자료라고 하더라도, 자료 사이의 관련성을 찾아 볼 수 없는 구조이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공연 자료를 상당량 소장하고 있고, 자료의 상태도 좋기 때문에, 디지털 연극 아카이브 전략을 기획하여 새롭게 구축한다면 국내 연극사를 조망할 수 있는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가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부산문화재단 디지털 아카이브
부산문화재단의 디지털 아카이브[40]는 부산에서 행해진 문화예술 공연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2009년 자문위원회가 구성되고 사이트 구축 및 DB등록을 시작하였다. 2013년부터 연극 분야 DB구축을 시행하였고, 현재까지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는 부산 지역의 문화예술 디지털 아카이브이다. 문화예술지원업체, 문화예술시설, 문화예술단체, 문화예술작품, 문화예술인, 문화예술교육자료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7989건의 데이터가 수집되어 있다.
연극은 정극, 한국전통극, 무언극, 마임, 인형극, 음악극, 창작극, 실험극, 아동청소년극, 해양연극으로 구분된다. 정극의 대부분의 연극은 정극에 포함된다. 정극은 제작자, 작품제목, 작품장르, 주요작품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 정보를 제공하는 곳에서 작품 제목을 제시하고 있지 않는 등 다소 혼란스러운 분류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기본정보를 작성할 때 원본 자료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화예술단체와 문화예술인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상세하고, 관련 자료와 연계되어 있으며, 부산의 문화 행사의 성격과 일정을 분류해 놓았다. 인물스페셜은 부산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정보와 함께 해당 작품의 디지털 자료를 동시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으며, 시대별부산문화는 시기별 문화예술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41]
각주
- ↑ 유민영, 우리시대 극장운동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0
- ↑ 유민영, 우리시대 극장 운동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0년, 363쪽
- ↑ PD시스템의 연극사적 의의에 관해서는 2장에서 다루고 있다.
- ↑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엮음, 한국현대예술사대계 1, 970년대, 연극, 2005,p.163~p.214
- ↑ 김윤정, 동인제 극단 연구 : 극단 자유와 에저또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학위 논문, 2016년
- ↑ 차범석, 한국 소극장 연극사, 연극과 인간, 2004.
정호순, 한국의 소극장과 연극 운동, 연극과 인간, 2002.
정대경, 소극장운동으로 본 삼일로창고극장-1975년부터 1990년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양경모, 창고극장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1년
- ↑ 민족문학사연구소 희곡분과 편, 1970년대 희곡 연구 1-2, 연극과 인간, 2008. 1970년대 희곡 연구 1-2편이 대표적이다. 이는 연극을 촬영하여 기록할 수 없었던 시대적 기술적 상황 때문이고, 극단들이 지속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까닭에, 공연 자료가 제대로 보존이 되지 못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또한 해당 시기연구자들이 서양문학과 국문학자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 ↑ 1902년 고종의 명에 따라 서울 정동에 세워진 최초의 현대식 국립극장이다. 국악예술인들을 중심으로 공연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연극 중심의 극장이라고는 볼 수 없다.
- ↑ 정호순, 위의 책
- ↑ 국내 소극장들은 하나 같이 운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서구의 소극장과 국내 소극장 등장의 이유가 필연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의 소극장은 기성연극에 대한 반발과 새로운 예술형식을 탐구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국내 소극장은 공연 공간의 부족에 따라 생겨난 점이 더 크다. 이에 대해 정진수(소극장운동, 1974년의 현실, 연극평론, )는 서구의 소극장 운동이 십 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즉 소극장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연극 실험이 끝나면, 소극장 운동을 종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소극장들은 젊은 연극인들이 연극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목적에 개관한 것이고, 소극장 연극 활동에서 확장된 연극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소극장 공간에서의 연극 활동에 더욱 집중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또한 소극장은 연극지원을 받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규제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극장은 지속적인 공연 활동을 위해 수익을 내야 했고, 그 결과 흥행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 ↑ 양정모, 위의 연구
- ↑ 정대경, 위의 연구
- ↑ 아레나 형식은 무대가 관객석으로 360도 둘러싸인 중앙에 위치하는 형태로써 무대와 객석의 벽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프로시니엄 무대가 객석과 분리되어 있다는 데 반해 이 무대는 객석이 둘러싸고 있어 배우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친밀감을 형성한다. 정호순, 위의 책, p.120
- ↑ 어떤 인물이 어떤 목적에 의해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가는 극장의 정체성과 연결되는 것이다. 1975년 극단 에저또의 방태수가 가정집을 구입해 소극장으로 개조했을 때에는, 연극실험실의 의미가 강했다. 이후 백병원 정신과의 유석진 박사가 극장을 인수했을 때에는, 싸이코드라마 공간과 청소년 선도 및 연극연구기관을 의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여관주인인 오영수가 극장을 인수하고부터는 필연적으로 상업적 목적의 대관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2015년 삼일로창고극장 폐관과 2017년 재개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2015년 폐관 역시 경제적인 문제였고, 2017년 재개관을 둘러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와의 잡음 역시 대관료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17년 6월 21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212143015&code=960313
- ↑ 이호신, 공연예술아카이브의 존재론적 특성에 관한 연구, 무용역사기록학 33호, 무용역사기록학, 11-33쪽, 2014년 6월
- ↑ 김유승, 아카이브 2.0 구축을 위한 이론적 고찰, 한국기록관리학회지 10(2), 한국기록관리학회, 2010.12, 31-52쪽
- ↑ 설인재, 국내 공연예술 디지털아카이브 발전방안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 실제로 국립극장 공연예술디지털 아카이브에는 공연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 이외의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 ↑ 연극 아카이브의 구축 및 운영에 관한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 ↑ 이는 본 연구가 지향하는 연극 데이터베이스의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 ↑ 본 연구자는 이 사업의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하여 1975년-2015년까지의 공연 자료를 수집하고, 디지털 이미지화하였다. 또한 창작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하여, 1975년에서 1990년대까지의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 활동에 관한 현장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 ↑ 특정 극장을 중심으로 아카이빙이 시도된 경우는 국립현대무용단의 공간 사랑 아카이빙 사업(2014년)과 삼일로창고극장이 있다. 전자는 공간 사랑의 공연자료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 아카이빙 전시와 ‘리빙 아카이브’라는 아카이브 기반의 공연 창작을 했다는 점이 삼일로창고극장의 아카이빙 사업과 다르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자료원에서 1950-70년대 동인제 극단의 자료 기증 사업을 진행했고, 2017년 9월 현재에는 소극장 ‘공간 사랑’의 자료 기능 사업을 하고 있다.
- ↑ 이러한 상황은 삼일로창고극장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1985년 개관하여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산울림소극장과 1987년 개관한 연우 소극장을 제외하곤, 모두 같은 상황이라고 추측해도 무방하다.
- ↑ 극단 창고극장의 여배우.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주였던 이원경과의 인연으로 연극계에 입문하였다. 이원경의 화술아카데미 출신. 1980년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작, 에드워드 올비. 연출, 강영걸)의 주인공 역으로 제 2회 삼일로창고극장상 수상. 2015년 이재희와의
- ↑ 1세대 마임이스트, 전 춘천마임페스티벌 예술감독
- ↑ 2015년 인터뷰 당시 인천시립극단의 예술감독. 교육연극학자.
- ↑ 로얄씨어터 대표, 배우. 전 삼일로창고극장 대표(1986년-1990년)
- ↑ 로얄씨어터 연출가.
- ↑ 방태수는 인터뷰를 통해 1975년 5월 에저또전용소극장의 공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가정집을 극장으로 개조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단원들과 직접 공사를 했다고 한다. 공간의 높이가 가정집보다는 높아야 했기 때문에 바닥을 파내려 갔는데, 모래가 딱딱하게 굳은 바위라 한달을 파 내려가도 1cm정도 깎였다고 한다. 또한 이재희는 삼일로창고극장은 냉난방이 안되기 때문에, 한 겨울에는 극장안에 커다란 난로를 갖다 놓았다고 한다. 이재희가 극단 창고극장의 수습단원으로 있던 시절,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공연 도중 난로를 꺼트리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 ↑ 마임이스트 유진규는 에저또전용소극장이었던 1975년 삼일로창고극장의 연극적 실험이 이후의 삼일로창고극장에서는 지속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1975년 연극 뱀은 배우의 신체와 부조리한 세계를 비사실주의 방법으로 구현하였고, 그해 12월에 공연된 연극 잔나비는 돌아오는가는 배우들이 아시바에 매달려 공연 하는 등 환경연극적 요소가 강하였다. 2015년 유진규와 인터뷰
- ↑ 연극제목 선정적이고 길어져, 한국일보, 1978.8.25일자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연극이 관객 확보를 위해 제목을 선정적으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이에 관한 것은 1979년 12월 31일 극단 대하의 공연 '사랑의 매듭 풀기(원제이다. Coming and Going이다. 다른 한국어 버전의 공연 제목은 '오며 가며'이다.)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리플렛의 홍보 문구는 다음과 같다. 한편의 연극에서 여러분은 또 다른 35가지의 연극을 볼 것입니다. 아라발의 무용극과 미건 테리의 변신극이 새롭게 조화된 충격과 파괴의 끈적끈적한 에로티즘의 현장.
- ↑ 국립예술자료원 공연예술 아카이브 현황, 2017년 8월 31일 기준. 관련 작품 : 12,612건, 이미지 자료 : 26,012건, 영상자료 : 2,293건 음원자료 : 692건 문서자료 : 7,263건이다. 이중 연극 자료의 보유량은 연극 예술인 자료 35건, 전체 연극 자료 2,805건이다.
- ↑ DA –Arts 구술채록 페이지에서 발췌. 출처: http://www.daarts.or.kr/gusoolBuss.jsp. 2017.8.31.일 확인
- ↑ 공연날짜에 관한 정보는 제작극회 연보를 찾아보면 확인할 수 있는 문제이다. 실제로 제작극회 <일어나 비추어라>의 공연 정보는 1980년 제4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1387)임을 알 수 있다.
- ↑ 예술자료원의 소장 자료는 앞서 밝힌대로 12,612건, 이미지 자료 : 26,012건, 영상자료 : 2,293건 음원자료 : 692건 문서자료 : 7,263건이다. 이중 연극 자료의 보유량은 연극 예술인 자료 35건, 전체 연극 자료 2,805건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실물 자료와 디지털화된 자료의 수량에 불과하다.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는 각각의 실물 자료 및 디지털 이미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맥락 정보가 더욱 중요하다. 이는 프로그램이나 포스터, 리플렛 등의 공연 자료에서 제공하는 정보로 구성이 되는데, 디지털 연극 아카이브에서 파악해야 하는 정보 및 데이터의 수량은 여기에서 파악되는 구체적인 인명정보, 공연정보, 장소 정보 등이다. 즉 이에 대한 고려가 없는 연극 디지털 아카이브는 단순히 소장 자료를 디지털 매체로 전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 ↑ 국립극장 공연예술디지털아카이브 http://archive.ntok.go.kr
- ↑ 일반연극 194편에 관한 영상, 음향, 이미지, 복합, 디자인, 서지, 물품, 기타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194편은 현재까지 공연된 작품의 편수이지 그 안에 있는 개별 자료의 숫자는 아니다. 예술자료원처럼 개별 자료에 관한 합계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 ↑ 복합이라는 명칭은 이 사이트를 충분히 이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겐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 용어이다.
- ↑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스마트 박물관 http://tour.namhae.go.kr
- ↑ 부산문화재단 전자아카이브 ttp://e-archive.bscf.or.kr
- ↑ 부산문화재단 전자아카이브에 관한 선행 연구는 본 연구자의 연극포럼에 게재된 국내외 연극디지털 아카이브 현황을 요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