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대부 백자묘지석

정송이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월 3일 (월) 14:40 판

조선시대_도자유물_메타아카이브
[지석]은 조상계보와 인적사항, 그리고 업적과 무덤의 위치를 꼼꼼히 기록한 생의 마지막 기록물이다. 본래 지석은 네모난 석제에 글자를 새겨 제작하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새기는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석제 대신 제작 공정이 간편한 도자기 지석이 유행하였다.[1]

도자 지석은 사대부층에서 선호되다가 왕실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청화백자를 가장 고급으로 쳐주었다. 장방형의 판석이 일반적이지만, 조선후기에 접어들면 묵서를 써놓은 생활용기가 유행하기도 한다.
백자지석은 죽인 이의 기록을 담은 물품이기에, 묘주의 몰년과 지석의 제작시기가 동일한 편이다. 그렇기에 해당 백자지석은 무문, 청화, 철화 등의 시기별 백자의 유행양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


청화기법은 초벌구이한 백자 위에 코발트 안료인 회청(回靑, 回回靑)으로 그림이나 문양을 그린 후 백자 유약을 시유하여 굽는 기법이다. 청화백자는 조선 전기부터 제작되었지만, 고급 안료였던 회회청 수입의 어려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조선 중기가 되면 청화백자 제작량은 급감하게 되었다.


청화백자 제작이 어려워지면서회청 대신 석간주를 사용한 철화백자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 청화백자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철화백자는 다시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었다.


백자청화 심지원 묘지석은

주석

  1.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백자에 담긴 삶과 죽음 : 2019 경기도자박물관 기획전>, 광주: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