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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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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

  •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민간의 방첩 활동까지 육군 특무대에서 수행했기 때문에 인권 및 월권 문제로 말이 많았던 터라 순수하게 민간의 방첩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기관의 창설이 필요했다.
  • 5.16 군사정변 이후 이후락에 의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다.
  •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 박정희 정권과 유신정권 시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름
  •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10.26 사건을 일으킴
  • 김형욱: 최장기 정보부장, 삼선 개헌이 통과된 후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박정희가 비서실장 이후락과 김형욱을 같이 자름.

워커힐의 시작

  • 김종필(중앙정보부장): 주한 UN군의 휴양지를 만들어 외화를 벌이겠다는 목적
  • 중앙정보부장 김종필, 중앙정보부 제 2국장 석정선, 중앙정보부 경제고문 김용태 주축

워커힐 건설 사업

  • 교통부 주관
  • 워커힐 호텔 건설공사: 자금난으로 부진
  • 교통부 장관 박춘식, 관광공사 사장 신두영: 워커힐 호텔 이사장 임병주(중앙정보부 제2국 1과장, 중령)에게 정부주금 5억 3590만 9795원 가불=막대한 공적자금
  • 건설을 위해 투입된 비용: 2억 8천만 원
    -> 형무소 죄수, 각 군의 공병들의 무상 노역
    ->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에서 장비 지원 
    -> 일본제 수입품 무관세, 무검사 
  • 부당 이득: 8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가 소요될 거라고 예상한 워커힐 건축을 불과 220만 달러로 완성

중앙정보부 워커힐 건설사업 정리

  • 4,158대 장비
  • 24,078명 무상 노역
  • 교통부 장관 박춘식에세 정부 주식 출자금으로 받은 5억 3천 600만원 중 실제 공사에 투입된 자금 2억 8천만원, 나머지 2억 5천여만원 착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