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제3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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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서는 대담의 형식으로 진행된 심사평(김윤식 대표집필, 「아, 방현석」)의 일부를 발췌했음을 알린다.

수상작

『존재의 형식』


“『존재의 형식』을 두고 우리의 논의가 집중된 곳은 이른바 후일담계 문학이 지닌 문제점에 있었다. 후일담계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저절로 문학사적임을 천명하고 있는 개념이어서 작가의 개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역사‧사회적이다.”


“지난날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던졌던 이념형 인간 군상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망가지는가를 다룬 소설들이 한동안 유행했지요. 조직적으로 망가지기, 거기에서 생기는 것이 이른바 유형성입니다.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카멜레온형,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형, 자기 반성형, 우직하게 고집하는 맹목형 등이 그것. 이 각각이 『존재의 형식』이겠지요.”

후보작

『명랑』


“미란 새삼 무엇인가. 그것은 일상적 삶(현실)과 무관한 것, 그것 위에 군림하는 것, 그것을 희생시켜 그 위에 군림하는 것. 그러니까 비정상적인 것, 어쩌면 병적인 것인지도 모르지요. 진통제 ‘명랑’을 복용해야 가능한 환각이라는 것. 그러기에 이 미를 일시에 비판,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자연의 폭력(계곡물)이어야 한다는 것.”

『노랑무늬영원』


“‘나’가 온몸을 드러내어 혼자 떠들고 있는 만큼 게임 규칙이 성립되기 어렵다는 뜻이겠는데요. 이미지 하나에 매달려 있는 게임이라고나 할까. 팔다리 잘린 도마뱀의 생리, 곧 팔다리가 재생되는 생물학적 규칙 하나에 매달린 게임이니까 독자 측도 이 규칙 하나에 반응하면 그만. 조금은 싱거운 게임이지요. 게임 규칙인 생물학을 전경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김영하 씨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자전적 형식, 곧 성장소설의 연장선상에 놓인 한 전형입니다그려. 그만큼 유려하고 빈틈없고, 심지어 아기자기하고, 문체에서도 유머가 넘쳐나고. 이른바 하이칼라인 셈인데요.”


“소설가란 그러니까 자기 그림자를 악마에게 팔아넘긴 자를 가리킴인 것. 그림자가 없기에 파우스트모양 시공을 왕래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추지만 동시에 그는 현실에 복귀할 수 없는 ‘저주받은 존재’인 셈. 일종의 떠도는 유령이라고나 할까. 그는 손오공모양 무한한 자유를 획득한 것이지만 그래봤자 그 역시 아무개 가문의 자식에 지나지 않은 존재, 곧 인간이지요.”

『남원 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김연수 씨의 『남원 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은 또 하나의 소설적 장치여서 흥미롭네요.”


“정확히는, 원작으로는 ‘남원 고사’이겠고, 판소리계 완결본인 ‘열녀춘향수절가’류는 일종의 편곡인 셈이지요. 좌우간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원작이 지닌 고전성에 있겠지요. 편곡의 창의성이란 고전성이 보증하고 있으니까. 이와 꼭 마찬가지로, 독자인 우리 같은 연주자는 또 그만큼 자유로운 법이고.”

『저녁의 눈이신』


“속도란, 그러니까 속도 위반, 요컨대 허풍이랄까 입심이랄까 민첩성이겠는데,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대낮처럼 환하다는 사실이지요. 설명할 수는 있어도 해석할 수 없는 세계라고나 할까요. 원한이나 억울함, 증오심, 복수심 등등 뒤틀린 감정에서 떠나 이른바 ‘사심 없음’의 경지에서 씌어졌기 때문. 곧 승부(우연성)를 가르는 게임(축구)을 다루었기에 그럴 수밖에요.”

『2마력 자동차의 고독』


“최윤 씨의 『2마력 자동차의 고독』은 제목이 많은 것을 노출시켜줍니다그려. 고독 아닙니까. 혼자 있음이겠는데, 그것도 독신녀의 혼자 있음이라면 알 만하지 않겠습니까. 혼자서 성을 쌓아놓고 그 속에 누에고치처럼 앉아 자기만 잘났다고 하는 그런 느낌 같은 것.” “요컨대 타자 부재의 자서전이라고나 할까요.”

『꽃 지고 강물 흘러』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고수의 솜씨. 천의무봉이라고나 할까. 도무지 꾸며낸 흔적, 이른바 억지스러움이 전무해 보입니다그려.” “그쪽에서 ‘천의무봉’이라 한 것은, 그러니까 만들어낸 예술품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라는 것. 자연 그대로라는 뜻이겠지요. 그렇기는 하나 조금 걱정스러운 것은……. 이승과 저승 사이까는 괜찮겠으나, 자칫하면 그 경계선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그것. 『당신들의 천국』쪽이 있어 이 위험을 견제하리라 믿지만.”

『석류』


“최일남 씨의 『석류』 역시 고수의 솜씨. 인간의 마음의 무늬랄까 그런 속내를 포착, 이를 한국어로 그려냈기에 한국어 ‘석류’라는 낱말이 실물보다 월등히 생생합니다. 이를 두고 아름답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