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봄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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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싹


양지쪽따스한곧 누른잔듸로
파릇한풀싹하나 돋아나서는
봄바람살랑살랑 장단을맞춰
보기좋게춤추며 개웃거리죠


보슬비나리면은 물방울맺혀
아름다운진주를 만들어내고
해가지고달뜨면 고히잠들고
별나라려행꿈을 꾸고잇어요


2010년에 권영민 서울대 교수가 동아일보에 발표한 동요 「봄싹」을 발굴해내면서 "동요와 함께 단편소설과 희곡이 초기 습작기에 이미 신문에 발표됐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며 "그동안 우리 문단에서는 황순원 선생의 문필활동이 1931년 시 창작활동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져 왔으나 이번 발굴로 그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권영민 교수가 발굴한 동요 8편

① 봄싹 (동아일보, 1931.3.26)
② 딸기 (동아일보, 1931.7.19)
③ 수양버들 (동아일보, 1931.8.4)
④ 가을 (동아일보, 1931.10.14)
⑤ 이슬 (동아일보, 1931.10.25)
⑥ 봄밤 (동아일보, 1932.3.12)
⑦ 살구꽃 (동아일보, 1932.3.15)
⑧ 봄이 왓다고 (동아일보, 1932.4.6)

순수한 동심

순수란? 일체의 현실적인 연관으로부터 해방된 정신 세계, 혹은 세상에 대한 판단중지를 뜻하는 관념

이러한 관념은 계몽주의ㆍ계급주의 이데올로기를 거부, 부정하는 경향으로 구체화되는 경우가 많다. 1930년대의 한국문학사에서 순수 관념의 경향은, 1920년대의 계몽주의ㆍ계급주의 경향의 문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현실에 대한 관심보다는 미와 예술적인 열정을 중시한 시문학파에서 찾아진다.

시문학파

계몽주의ㆍ휴머니즘이 지닌 계몽성이나 계급주의가 주장한 계급성ㆍ혁명성 등의 목적성과 일체 거리를 둔 채로 삶의 현실적인 연관에서 해방된 모습을 미 그 자체로 보려는 발상 = 무슨 의미나 현실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계몽적ㆍ계급적 태도와 무관하기 때문에 그 메시지 자체가 미적인 것

황순원의 동심

황순원이 보여준 순수 관념 경향의 작품에 나타난 아동은, 시문학파의 순수 관념과 결합된 것

=> 시문학파의 순수관념을 전유, 재구성해서 미성숙하고 순진한 동심을 보여줌.

동심의 기원

황순원의 순수 관념 경향의 작품은 계몽주의ㆍ계급주의적인 내용이 아닌 미에 대한 열정에 주목한다. 청소년기의 황순원은1930년대 초반의 식민지 현실과 사회 문제들 [1] 보다는 그런 현실ㆍ사회와 단절된 부르주아 자신의 삶에서 경험되는 미에 대한 열정에 더 관심을 지닌다.


(3ㆍ1운동에 참여하다가 검거되어 ‒ 편자 주) 옥고를 치르고 나온 (황순원의 아버지인-편자 주) 찬영은 한동안 숭실중학교 사감으로 있다가 조림 사업과 작답 사업에 정열을 쏟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략) 해방이 되면서 북이 공산화되자 그는 지주 계급으로 몰렸고, 끝내는 1946년 3월에 38선을 넘어야 했던 것이다. [2]


일제 관헌들은 고향에 소개되어 있는 지식 청년 황순원을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았고 동네사람들은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고향에서 무위도식하고 있다고 수군댔다. (중략) 그러나 그는 지주 계급 출신의 지식 청년이었으므로 공산화된 북한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그는 요시찰 인물이 되었고, 끝내 월남을 결심하고 말았다.[3]


다음 글들은 황순원의 아버지와 자신이 공산당에 의해서 지주계급 즉 부르주아로 인식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황순원의 아버지가 숭실중학교 사감이자 사업가였고, 황순원 자신이 식민지 기간 내내 무위도식 했다는 사실은, 부르주아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부르주아의 감각ㆍ태도ㆍ인식으로 식민지 현실과 당대의 사회 문제들과 거의 무관한 인간ㆍ자연 그 자체에 대한 관심 혹은 미에 대한 열정을 보여 준 것. 이 부분에서 황순원 순수문학의 기본적인 원형질이 발견된다.

각주

  1.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1년의 만주사변, 1932년 이봉창ㆍ윤봉길 의거
  2. 김동선, 「황고집의 미학, 황순원 가문」, 문학과지성사, 1985
  3. 김동선, 「황고집의 미학, 황순원 가문」, 문학과지성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