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반복과 차이, 혹은 차이와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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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제 10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칼'에 게재된 문학평론가 '류보선'의 심사평이다.

총평

"제 10회 황순원문학상의 본심에 초대된 소설은 열 편이었다. 읽는 내내 긴장해야 했다. 열 편 모두가 읽는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어다. 이 어두운 세상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내고 그 안에서 균열을 만들어 끝내 희망의 징후를 찾아내려는 열도가 넘쳤고, 그것을 소설로 직조해내는 밀도에는 빈틈이 없었다. 어떤 소설들은 현재 한국소설의 경향을 대변하면서도 미세하지만 핵심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또 어떤 소설은 그 소설만의 특이성으로 한국소설사에 또 다른 길을 내고 있었다. 일대장관이었다"

심사평

편혜영 『저녁의 구애』

"부조리한 사황 속에서 작중화자는 매우 분주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한데, 자세히 보면 그 행동은 뭔가를 바꾸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한 행동, 곧 '가짜 행위'이다. 누군각가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같이 임종을 지키거나 아니면 그 부조리한 상황을 벗어나거나 하는 결단을 미룬 채, 아니 그 결단 자체를 피하기 위해 끝없이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작중화자의 실존형식은 단연 이채로웠다. 이 삶의 형식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삶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한강 『훈자』

"최근 한국소설의 큰 흐름을 대변하는 소설이다."

"'훈자'라는 곳으로 떠날까 봐 '훈자 아닌 훈자'를 연상하는, 그래서 '훈자인 훈자'와 '훈자 아닌 훈자' 사이에 벌이는 힘겨운, 그러나 놀랍도록 세심하게 그려진 내면에서의 갈등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훈자』는 가히 최근 한국소설의 한 경향을 그 정점에까지 끌어올렸다는느낌이었다. 그러나 소설의 강렬함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으리라 생각되는 이분법적인 상황 설정들이 맘에 걸렸다."

이승우 『칼』

"『칼』은 특유의 형이상학적 상상력으로 한국소설사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승우의 또 다른 역작이며, 이는 충분히 기릴 만한 것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소설의 이해가능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과잉의 서술, 혹은 서술의 과잉이 너무 두드러진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이 한 소설에 담아내기 힘든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실존조건들을 빈틈없이 누벼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칼』에는 심리적인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의 미묘한 차이와 그것이 빚어내는 화해 불가능한 갈등, '칼'이라는 극단적인 방어기제나 도구 없이는 자기를 유지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무력함, 과잉억압과 전면적인 부정 때문에 더욱 격화되는 오이디푸스 드라마 등 여러 주제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다....(중략)...그래서 이 소설은 읽는 사람마다, 또는 읽을 때마다 다른 키워드를 떠올리게 할 법했다. 읽는 사람들마다 또 읽는 순간마다 각기 다른 것을 읽게 하는 이 힘, 그러니까 이 형이상학적 보편성이야말로 다른 한국소설이 지니지 못한 이승우 소설만의 득의의 영역이며, 『칼』역시 그런 품격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