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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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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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리얼리즘연극운동을 벌여 리얼리즘극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연기술의 개척자이다. (1916년 11월 14일 ~ 2006년 5월 13일)


그의 일생

  • 그가 연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배재고보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평생의 친구 이해랑을 만났고, 학생 연극부를 조직하면서 극작가 유치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해랑, 유치진과의 만남이 그를 연극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들은 <고래>를 비롯하여 <바보치료>, <가보세> 등 세 편의 단막극을 창립공연으로 올렸는데, 김동원은 <고래>에서 선장 부인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배재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김동원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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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과 이해랑>

  • 1939년 일본경찰은 지식인들의 연극활동을 좌익으로 몰아 구속했다. 김동원은 체질적으로 사상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유치진,이해랑,주영섭 등과 함께 종로경찰서에 구속돼 온갖 고문을 받았다. “‘춘향전’도 너희가 한 거는 좌익연극이라는 거야. 뭔고하니 이몽룡이가 암행어사로 출두해가지고 때려부수고 변학도 때려부수고. 그게 다 목적 있어 가지고 한 거 아니냐고 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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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장의 전속 극단 ‘신협’의 단원이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연극 〈햄릿〉(1951), 〈파우스트〉(1966), 〈남한산성〉(1974) 등이 대표작이다. 국립극단장,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의 대표관직을 맡았었다.
  • 그에게 '햄릿'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중후하면서도 박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고인은 62년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85년 호암아트홀 개관 기념 등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햄릿 역을 맡아 열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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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햄릿>

  • 햄릿 이외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뇌우' 등이 있으며 94년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유부인', '마의 태자'(1956), '춘향전'(1961),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70년 대까지 영화에도 꾸준하게 출연했다.
  • 고인은 2003년 출간된 자서전 '미수의 커튼 콜'에서 "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어야 한다"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또한 "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라고도 했다.


황순원과의 관계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 후 주영섭, 장계원, 마완영, 황순원 등과 신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단하였다.

창립공연 <소>(유치진 작, 주영섭 연출)와 <나루>(주영섭 작,연출)에 배우로 데뷔했으며

또한 김동원은 주영섭이 연출을 맡았던 <흑룡강>의 주인공과 <춘향전>의 이몽룡의 대역 출연을 맡으며 연극 무대를 올렸다.

1937년 「춘향전」의 이몽룡 역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동원,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 붙잡고 집착하기보자 언제 아름답게 무대를 떠나야 할지를 알고 계셨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조금의 불미스런 일도 없었던 깨끗한 사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었다.
  • 2001년 국립극단 작품 '햄릿' 주인공 김석훈: 일요일마다 부인과 손을 꼭 붙잡고 교회에 나오시곤 했다. 직접 연습실에 찾아오셔서 '손을 많이 쓰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라고 세심하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에 후배들에게도 경어를 쓰시던 신사같은 분이었다.
  • 연극평론가 한상철: 우리 시대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있듯이 우리 관객의 우상은 김동원 선생이었다. 우리 시대 관객이 꿈꾸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간상을 김동원 선생은 생생하게 구현해주었던 것이다.


<김동원 회고록- 출생, 평남 순천 탈출, 1.4후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