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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개괄

창경궁 소개

성종이 즉위하였을 때 생존해 있던 세조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덕종 비 소혜왕후(昭惠王后), 예종 비 안순왕후(安順王后)를 모시기 위해 1484년(성종 15)에 지은 궁이다.[1] 그 터에는 고려 말에 남경 천도를 계획하면서 궁을 세웠던 것으로 전하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이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자 세종이 상왕의 거처로 다시 궁을 지어 수강궁(壽康宮)이라 했으며 성종대 다시 궁을 지어 창경궁이라 이름 지었다. 이곳에서는 왕실의 공식적인 의례인 조하 의식이나 외국 사신 접견 등은 거의 치러지지 않았고 왕이나 왕비, 왕대비 및 후궁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활용되었다.
정문과 정전이 동향을 하였는데, 궁의 정문이나 정전이 동향을 하고 있는 점은 조선시대 다른 궁에서 볼 수 없는 점이다. 동향을 하게 된 배경에는 왕대비 처소를 정전의 동편에 둔다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궁궐 배치 관습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이후에는 주로 왕대비나 후궁이 거처하였고 왕이 침소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후기에는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다. 후원은 창덕궁과 함께 사용했으며 후원에서 과거시험을 치를 때는 주로 창경궁 쪽에서 출입했다.

창경궁 소실과 재건

  1. 수강궁
    1. 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었다.
  2. 창경궁
    1. 창경궁의 역사는 성종 13년(1482) 창덕궁의 수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대비전의 세 어른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폐허처럼 남아 있던 수강궁 수리를 명하면서 시작된다.
    2. 이때의 확장공사는 성종 15년(1484)에 명정전·문정전·통명전 등 주요 전각을 완공하는 것으로 대충 마무리되었으며, 그에 즈음하여 이름도 창경궁으로 새로 지었다.

창경궁 궁궐권역

좌구명 국어(國語)
공자 춘추시대 춘추(春秋)
사마천 전한 사기(史記)
반고 후한 한서(漢書)
사기
구분 목록 한자
본기 오제본기 五帝本紀
하제본기 夏帝本紀
은본기 殷本紀
10권
8권
세가 30권
열전 70권

창경궁과 역사

정조와 사도세자

홍인문

선인문

자경전터

문정전

인현왕후와 장희빈


통명전

창경궁 통명전

대장금

창경궁의 현재

경희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1]
http://gukmun.khu.ac.kr/

디지털인문학의 이해 중간고사 연습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본인의 생각 서술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중 1개 선택하여 서술

궁궐과 관련한 스토리텔링 주제 1개 정하여 서술

국채보상운동 디지털 아카이브를 이용하고 개선점 및 오류 등 5개 항목 이상 작성

참고문헌

  1. 『성종실록』15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