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U김지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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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소개

태종이 1405년(태종 5)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정궁이던 경복궁에 들지 않고 경복궁 동편에 새로 이궁(離宮)을 세워 이름을 창덕궁이라고 하였다([1]). 역대 왕들이 다른 궁보다 이곳을 좋아하였으며 17세기 이후에는 경복궁을 대신해서 정궁으로 사용했다. 동쪽에는 담을 사이에 두고 창경궁이 있어서 창덕궁의 부족한 공간을 채워 주었다. 조선후기에는 두 궁을 합해서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도성 북쪽 응봉에서 내려오는 경사진 지형을 살려 지세에 맞추어 건물들을 지었다. 따라서 전체 건물 배치는 좌우 대칭을 피하고 크고 작은 건물과 마당들이 불규칙하면서도 서로 연속성을 갖고 이어지도록 구성하였다. 넓은 숲으로 이루어진 후원은 인공을 최소화하고 자연 상태의 언덕과 골짜기로 만들어졌으며 곳곳에 정자와 샘물이 마련되었다. 후원은 창경궁에서도 함께 이용했다.

창덕궁은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개성의 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자연 지형에 맞추어 산자락에 지어졌다. 보통 궁궐은 인위적으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되지만 창덕궁은 이러한 얽매임 없이 북악산의 줄기인 응봉의 산자락 생긴 모양에 맞추어 적절하게 궁궐의 기능을 배치하였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 궁궐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그린 《 동궐도》와 1900년에 그려진 《동궐도형》을 참조하여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김지현18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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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유래

위치 및 위치 선정 이유

건축 역사

궁궐 구조(권역)

동궐도

외전

창덕궁 인정전 01

내전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경훈각
    • 성정각
    • 관물헌

궐내각사

    • 이문원
    • 선원전
    • 양지당
    • 홍문관
    • 내의원
    • 예문관
    • 상의원
    • 내병조

동궁

생활기거공간

후원

역사서
이름 시대 저서
사마천 전한 사기(史記)
공자 춘추시대 춘추(春秋)
좌구명 국어(國語)
반고 후한 한서(漢書)
사기
구분 목록 한자
본기 오제본기 五帝本紀
하제본기 夏帝本紀
은본기 殷本紀
10 권
8 권
세가 30 권
열전 70 권

주요 사건 및 인물

현재

동궁 및 낙선재 권역

시민당

중희당

성정각


주석

  1. 『태종실록』10권 5년(1405)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