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민족의 웅계신앙과 그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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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민족의 웅계신앙과 그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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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支那民族의 雄鷄信仰과 그傳說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진단학보 3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손진태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35년09월
시작쪽 076쪽 종료쪽 092쪽 전체쪽 017쪽 연재여부 범주 논문 분야 민속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손진태의 「지나민족의 웅계신앙과 그 전설」은 『진단학보』 3권(1935.9.)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은 1장 "웅계에 관한 신앙"과 2장 "계신전설"로 구성된다. 1장에서 손진태는 중국의 고대인이 웅계에게 주술력이 있다고 믿었다는 것과 닭이 울면 귀신이 숨는다고 믿었다는 것을 논증한다. 특히 중국 고대의 웅계신앙이 음양오행설에 선행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웅계신앙이 중국뿐 아니라, 고대 여러 민족의 보편적 신앙임을 조선의 사례를 들어 논증하였다. 2장에서 웅계신앙을 근원으로 다양한 전설이 발달한 사례로 황부전설, 중명전조전설, 천계전설 등을 설명한다. 이청원은 「『진단학보』 제3권을 읽고」(『조선중앙일보』, 1935.11.9~14.)에서 이 글이 분석한 중국의 웅계신앙의 특징은 조선의 웅계신앙을 설명하는 데 유익하다고 주장하였다. 김태준은 「『진단학보』 제3권을 읽고」(『조선중앙일보』, 1935.11.15~19.)에서 이 글이 천계전설이 조선 고유의 전설이 아니라 이웃나라와 공유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았고, 조선문화의 연구를 위해 세계문화 일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목차







본문


본문1: 웅계에 관한 신앙


한(漢) 응소(應劭)인물의 「풍속통의(風俗通義)서적」(한위서총서본(漢魏叢書本)) 제8 웅계조에
쪽수▶P76-1 漢 應劭의 「風俗通義」(漢魏叢書本) 卷八 雄雞條에
俗說, 雞鳴將旦, 爲人起居, 門亦昏閉談開, 扞難守固, 禮貴報功, 故門戶用雞也, 青史子書說, 雞者東方之牲也, 歲終更始, 辨秩東作, 萬物觸戶而出, 故以雞祀祭也, 太史氶鄧平說, 臘者所以迎刑送德也, 大寒至, 常恐陰勝, 故以成日臘, 戍者溫氣也, 用其氣日, 殺雞以謝刑德, 雄著 門, 雌著戶, 以和陰陽, 調寒配水, 節風雨也, 蓮按, 春秋左氏傳, 周大夫賓孟適郊, 見雄雞、自斷其尾, 歸以告景王曰, 惲其爲犧也, 山海經日, 祠鬼神, 皆以雄雞, 魯郊祀, 常以丹雞祀日, 以其朝聲赤羽, 去魯候之咎, 今人卒得鬼剌排, 悟殺雄雞以傳其心上, 病賊風者, 作雞散東門, 雞頭可以治蠱, 由此言之, 雞主以禦死壁惡也
쪽수▶P76-2 俗說, 雞鳴將旦, 爲人起居, 門亦昏閉談開, 扞難守固, 禮貴報功, 故門戶用雞也, 青史子書說, 雞者東方之牲也, 歲終更始, 辨秩東作, 萬物觸戶而出, 故以雞祀祭也, 太史氶鄧平說, 臘者所以迎刑送德也, 大寒至, 常恐陰勝, 故以成日臘, 戍者溫氣也, 用其氣日, 殺雞以謝刑德, 雄著 門, 雌著戶, 以和陰陽, 調寒配水, 節風雨也,▶P77 蓮按, 春秋左氏傳, 周大夫賓孟適郊, 見雄雞、自斷其尾, 歸以告景王曰, 惲其爲犧也, 山海經日, 祠鬼神, 皆以雄雞, 魯郊祀, 常以丹雞祀日, 以其朝聲赤羽, 去魯候之咎, 今人卒得鬼剌排, 悟殺雄雞以傳其心上, 病賊風者, 作雞散東門, 雞頭可以治蠱, 由此言之, 雞主以禦死壁惡也
라 하야 한대(漢代) 민간에서 엽일(臘日)에 웅계를 죽이어 문호의 제(祭)에 저용(著用)한 습속에 취(就)하야 그것을 설명하는 당시의 속설과 청사자설(靑史子說), 등평설(鄧平說) 등 소개한 후 응소 자신의 설을 끝으로 기록하였다. 그 소위 속설에 의하면 닭(계명장단(鷄鳴將旦) 이러한 것을 보면 웅계을 가러침이다)과 문호는 인간생활에 대하야 서로 유사한 성질의 공헌을 하는 것이므로 문호의 제사에 닭을 쓴다는 것이다. 청사자(靑史子)인물의 설은 명백히 오행설(五行說)이니 원단(元旦)으로부터는 봄이 시작되고 봄은 농작물 산출 최시(最始) 준비기이므로 이것은 마치 만물의 촉출(觸出)하는 문호와 유사한 성질을 가지었다. 그런대 춘(春)은 오행설로 보면 동방에 속하는 계절이오 (예하면 동(東)을 동춘(東春), 춘풍을 동풍(東風), 춘작(春作)을 동작(東作)이라고도 한다) 닭도 동방의 생(牲)이므로 문호의 제에 닭을 쓴다는 것이다. 이 설을 쫓는다면 문제용계(門祭用雞)의 습속은 오행설이 생긴 이후의 것이라고 보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 등평설은 음양설적(陰陽說的) 해석이오 그 논지는 명확을 결(缺)하였으나 엽일에 닭을 쓰는것은 사형덕(謝刑德) 화음양(和陰陽) 조한배수(調寒配水) 절풍우(節風雨) 등의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따른다면 문제용계는 음양설이 상당히 발달된 이후의 이론상 산물이리라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기종(斯種)의 민간신앙의 기원을 그러한 철학 상에 구할 수는 없다. 끝으로 보이는 응력(應力)의 설을 보면 그는 당시 민간에 있던 삼종(三種)의 주술적(咒術的) 행위용어 를 예거하야 전(前) 삼설(三說)에 반대하고 문금용계는 요컨대 어사벽악(禦死辟惡)의 주술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쪽수▶P76-3 라 하야 漢代民間에서 臘日에 雄雞를 죽이어 門戶의 祭에 著用한 習俗에 就하야 그것을 說明하는 當時의 俗說과 靑史 子說 鄧平說 等 紹介한 後 應劭 自身의 說을 끝으로 紀錄하였다. 그 所謂 俗說에 依하면 닭(鷄鳴將旦 이러한 것을 보면 雄雞을 가러침이다)과 門戶는 人間生活에 對하야 서로 類似한 性質의 功獻을 하는 것이므로 門戶의 祭祀에 닭을 쓴다는 것이다.靑史子의 說은 明白히 五行說이니 元旦으로부터는 봄이 시작되고 봄은 農作物 產出 最始 準備期이므로 이것은 마치 萬物의 觸出하는 門戶와 類似한 性質을 가지었다. 그런대 春은 五行說로 보면 東方에 屬하는 季節이오 (例하면 東을 東春, 春風을 東風 春作을 東作이라고도 한다) 닭도 東方의 牲이므로 門戶의 祭에 닭을 쓴다는 것이다. 이 說을 쫓는다면 門祭用雞의 習俗은 五行說이 생긴 以後의 것이라고 보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 鄧平說은 陰陽說的 解釋이오 그 論지는 明確을 缺하였으나 臘日에 닭을 쓰는것은 謝刑德 和陰陽 調寒配水 節風雨 等의 意味를 가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따른다면 門祭用雞는 陰陽說이 相當히 發達된 以後의 理論上 産物이리라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斯種의 民間信仰의 起源을 그러한 哲學上에 求할 수는 없다. 끝으로 보이는 應力의 說을 보면 그는 當時 民間에 있던 三種의 咒術的 行爲을 例舉하야 前三說에 反對하고 門禁用雞는 要컨대 禦死辟惡의 咒術的 行爲에 不過하다고 하였다.
응소의 기록한 한대의 민간주술을 좀 더 자세히 생각하여 보면 귀자비(鬼刺痱)라 함은 귀자(鬼刺)로 하야 생기는 비질(痱疾)이란 의미일 것이오, 비(痱)는 「설문(說文)서적」에 풍병(風病)이라고 하였으며, 당대(唐代)의 의서이라고 추측되는 「영추경(靈樞經)서적」 열병편(熱病篇)에 보면 「痱之爲病也 身無痛者 四肢不收 智亂不甚 其言微知 可治 甚則不能言 不可治也 云々」이라 하야 일봉의 중풍인 듯하나 이시진(李時珍)인물의 「본초강목(本草綱目)서적」 48 계혈(鷄血)의 조는 응소의 문(文)을 「鬼排卒死 用烏雄鷄血 塗心下 即甦風俗通」이라고 해석하야 비(痱)를 비(排)로 짓고 그것은 무슨 졸도하는 병인 듯이 말하였다. 어느 설이 옳은지는 고사(故捨)할지라도 우리는 여기서 한 대인(漢代人)이 비병(痱病)을 귀자 또는 귀비(鬼排)의 소위라고 하야 그 병에 웅계를 사용한 주술행위를 알 수 있으며, 또 적풍(賊風)에 대하야 「영추경」 적풍편(賦風篇)을 보면 「痛痺也」라 하야 역시 일종의 중풍(中風)으로 생각하야 작계산동문(作雞散東門)하는 주술행위를 하였으며, 고(蠱)는 「설문(說文)」에 「腹中蟲也」라 하고 또 梟磔死之鬼 亦爲蠱」라고도 하였다. 그러면 한대에 있어서는 중풍 적품 복중고(腹中蟲) 등 병을 웅계 조계(造谿) 계두(雞頭) 등으로 치료하는 주술적 민간용법이 횡행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민간신앙까지가 음양오행설에서부터 출발되었으리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우므로, 문호(門戶)의 책계(磔鷄)는 차라리 응소의 설을 좇아 고(古)의 민간습속이라고 생각할 바이며 청사자나 등평의 설 등은 그러한 민간신앙을 음양오행설서 이론화하였음에 불과하는 것이다. 습속이라고 삼국시대의 기록에서도 우리는 그 증적(證迹)을 발견할 수 있으니, 즉 OOO의 「배씨신언(裴氏新言)서적」(수(隋) 처세남일북당서초(處世南一北堂書鈔) 1155 원정조(元正條) 소인(所引))에
쪽수▶P77-2 應劭의 記錄한 漢代의 民間咒術을 좀 더 仔細히 생각하여 보면 鬼刺痱라 함은 鬼刺로 하야 생기는 痱疾이란 意味일 것▶P78 이오, 痱는 「說文」에 風病이라고 하였으며, 唐代의 醫書이라고 推測되는 「靈樞經」 熱病篇에 보면 痱之爲病也 身無痛者 四肢不收 智亂不甚 其言微知 可治 甚則不能言 不可治也 云々」이라 하야 一種의 中風인 듯하나 李時珍의 「本草綱目」 四八 鷄血의 條는 應劭의 文을 鬼排卒死 用烏雄鷄血 塗心下 即甦風俗通이라고 解釋하야 痱를 排로 짓고 그것은 무슨 卒倒하는 病인드키 말하였다. 어느 說이 옳은지는 故捨할지라도 우리는 여기서 漢代人이 痱 病을 鬼刺 또는 鬼排의 所爲라고 하야 그 病에 雄鷄를 使用한 咒術行爲를 알 수 있으며, 또 賊風에 대하야 「靈樞經」 賦風篇을 보면 「痛痺也」라 하야 亦是 一種의 中風으로 생각하야 作雞散東門하는 咒術行爲를 하였으며, 蠱는 「說文」에 「腹中蟲也」라 하고 또 梟磔死之鬼 亦爲蠱」라고도 하였다. 그러면 漢代에 있어서는 中風 賊風 腹中蟲 等 病을 雄鷄 造谿 雞頭 等으로 治療하는 咒術的 民間療法이 廣行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民間信仰까지가 陰陽五行說에서부터 出發되였으리고는 到底히 想像하기 어려우므로, 門戶의 磔鷄는 차라리 應劭의 說을 쪼차 古 의 民間俗習이라고 생각할 바이며 靑史子나 鄧平의 說 等은 그러한 民間信仰을 陰陽五行說로서 理論化하였음에 不過하는 것이다. 習俗이라고 三國時代의 記錄에서도 우리는 그 證迹을 發見할 수 있으니, 即 OOO의 「裴氏新言」(隋 處世南一北堂書鈔一一五五 元正條所引)에
현대문주1▶元旦, 縣官殺羊, 縣其頭於門, 又磔鷄以副之, 俗說以厭癘氣, 元以間河南代君, 伏君曰, 是月也, 主氣上升, 草木萌動, 齧百草, 鶴啄五穀, 故殺之, 以助生氣[a 1]
쪽수▶P78-2원문주1▶元旦, 縣官殺羊, 縣其頭於門, 又磔鷄以副之, 俗說以厭癘氣, 元以間河南代君, 伏君曰, 是月也, 主氣上升, 草木萌動, 齧百草, 鶴啄五穀, 故殺之, 以助生氣[1]
라고 보이는 것으로 소위 하남복군(河南伏君)의 설은 한대의 음양오행설과 달라 양계(羊鷄)는 생생지기(生生之氣)를 조해(阻害)하므로써 이것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드래도 당시의 학자들이 고래의 민간신앙 논화코저 다방(多方)으로 각자의 견해를 토하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명백히 여기(癘氣)를 염주(厭咒)함이라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후한말(後漢末) 위초(魏初)의 동훈(董勛)인물의 「간례속(間禮俗)서적」 (태평어람(太平御覽) 29 소인)에도
쪽수▶P78-3라고 보이는 것으로 所謂 河南伏君의 說은 漢代의 陰陽五行說과 달라 羊鷄는 生生之氣를 阻害하므로써 이것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드래도 當時의 學者들이 古來의 民間信仰 論化코저 多方으로 各自의 見解를 吐하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民間에서는 明白히 癘氣를 厭咒함이라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後漢末 魏初의 董勛의▶P79 「間禮俗」 (太平御覽二九所引)에도
魏時人, 問議即董勛云, 今正臘日,門前作煙火桃絞索松栢, 殺鷄著門戶, 逐疫, 禮與, 云云
쪽수▶P79-2魏時人, 問議即董勛云, 今正臘日, 門前作煙火桃絞索松栢, 殺鷄著門戶, 逐疫, 禮與, 云云
이라고 보이어 저계(著鷄)에 관한 동씨의 답은 보이지 아니하나 이렇게 위초의 민간에서도 저계는 축역(逐疫)의 주술이라고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계(磔鷄)의 속(俗)이 진대(晋代)에 이르러서는 당사(宮寺)의 문(門)에는 전대(前代)와 같이 계(鷄)를 사용하였던 모양이나 민간에서는 화계(畵雞)를 많이 대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주술의식으로서 그것을 하였다. 예하면 「진서(晋書)」 19에
쪽수▶P79-3이라고 보이어 著鷄에 關한 董氏의 答은 보이지 안이하나 이렇게 魏初의 民間에서도 著鷄는 逐疫의 咒術이라고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磔鷄의 俗이 晋代에 이르러서는 宮寺의 門에는 前代와 가치 鷄를 使用하였던 모양이나 民間에서는 畵雞를 많이 代用하게 되었다. 그러나 亦是 咒術意識으로서 그것을 하였다. 例하면 「晋書」 一九에
歲旦, 常設葦茭桃梗磔鷄於宮及百寺之門, 以禳惡氣
쪽수▶P79-4歲旦, 常設葦茭桃梗磔鷄於宮及百寺之門, 以禳惡氣
라 하고, 진(晋) 종률(宗慄)의 「형초세시기(荆楚歲時記)」 정월1일조에
쪽수▶P79-5라 하고, 晋 宗慄의 「荆楚歲時記」 正月一日條에
현대문주2▶帖畫雞戶上, 懸葦索於其上, 插桃符其傍, 百鬼畏之[a 2]
쪽수▶P79-6원문주2▶帖畫雞戶上, 懸葦索於其上, 插桃符其傍, 百鬼畏之[2]
라고 보이는 등이다. 파계, 화계뿐 아니라 지나민족은 고래 문호의 제(祭)에 책견(磔犬), 주호(晝虎) 등 사용하였고, 그것은 모두 주술적 의미에서 행한 바이었다. 동양(同樣)의 동물을 동일동소(同日同所)에 사용하였으므로 그 목적이며 의미도 동일하였을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차등(此等)의 동물과 함께 사용한 위색(葦索), 교(茭), 도부(桃符), 송(松), 백(栢), 연화(煙火) 등이 모두 다 축역(逐疫) 양악기(禳惡氣) 백귀외지(百鬼畏之) 등의 주술적 의미로서 한 것이라면 책계, 화계의 속(俗)도 그렇게 해석하지 안이할 수 없다.
쪽수▶P79-7라고 보이는 等이다. 磔鷄 畵雞뿐 안이라 支那民族은 古來 門戶의 祭에 磔犬 畫虎 等 使用하였고 그것은 모도 咒術的 意味에서 行한 바이었다. 同樣의 動物을 同日同所에 使用하였스므로 그 目的이며 意味도 同一하였을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此等의 動物과 함께 使用한 葦索, 茭, 桃符, 松, 栢, 煙火 等이 모도 다 逐疫 禳惡氣 百鬼畏之 等의 咒術的 意味로서 한 것이라면 磔雞, 畵雞의 俗도 그렇게 解釋하지 안이할 수 없다.
그러면 계─ 특히 웅계에 그러한 주력(咒力)이 있다고 하는 신앙은 어떻게 발생되었는가학설. 이것이 다음의 문제이다. 음양오행설가들은 그것을 음양오행설용어로서 해석코자 하였다. 예하면 명(明)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本草綱目)」 48 단웅계조(丹雄雞條)에서
쪽수▶P79-8그러면 雞──特히 雄雞에 그러한 咒力이 있다고 하는 信仰은 어떻게 發生되었는가. 이것이 다음의 問題이다. 陰陽五行說家들은 그것을 陰陽五行說로서 解釋코저 하였다. 例하면 明 李時珍은 「本草綱目」 四八 丹雄雞條에서
時珍曰, 雞雖屬木, 分而配之, 則丹雄雞, 得離火, 陽明之象, 白雄雞, 得庚金, 太白之象, 故癖邪惡者宜之라 하고, 또 동권(同卷) 계두조(雞頭條)에서
쪽수▶P79-9時珍曰, 雞雖屬木, 分而配之, 則丹雄雞, 得離火, 陽明之象, 白雄雞, 得庚金, 太白之象, 故癖邪惡者宜之라 하고, 또 同卷 雞頭條에서
時珍曰, 古者正旦, 磔雄雞祭門戶, 以辟邪鬼, 蓋雞乃陽精, 雄者陽之體, 頭者陽之會, 東門者陽之方, 以純陽勝純陰之義也
쪽수▶P80-1時珍曰, 古者正旦, 磔雄雞祭門戶, 以辟邪鬼, 蓋雞乃陽精, 雄者陽之體, 頭者陽之會, 東門者陽之方, 以純陽勝純陰之義也
라고 한 것이며, 청(清) 원매(袁枚)인물의 「속자불어(續子不語)서적」 제8 계모연사사조(雞毛煙死蛇條)에 「雞本南方積陽之象, 性屬火,爲至陽, 故至陰之類, 觸至陽之氣, 無不立斃」라고 한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양오행설이 웅계신앙의 기원을 설명함에 당하야 하등의 가치도 없을 것은 자명한 바이다.학설
쪽수▶P80-2라고 한 것이며, 清 袁枚의 「續子不語」 卷八 雞毛煙死蛇條에 「雞本南方積陽之象, 性屬火,爲至陽, 故至陰之類, 觸至陽之氣, 無不立斃」라고 한 것 等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陰陽五行說이 雄雞信仰의 起源을 說明함에 當하야 何等의 價値도 없을 것은 自明한 바이다.
나의 생각에 의하면, 닭이 울면 밤이 밝고, 밤이 밝어면 귀류(鬼類)가 보이지 아니하게 되므로, 미개시대의 인류는 이 현상에 대하야 이렇게 추리하였다. 신계(晨雞)가 울면 야중(夜中)에 횡행하던 귀류는 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하므로 귀류는 웅계를 무서워하는 것이라고학설. 그러고 또 일보를 나아가 웅계는 귀류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되었다학설. 그러한 원시추리에 의하야 상술한 바와 같은 주술행위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꽌하여 약간의 고증을 하여 보면, 당(唐) 정웅(鄭熊)인물의 「번우잡기(番禺雜記)서적」(설부본(說郛本))며 송(宋) 엽몽득(葉夢得)인물의 「피서록화(避暑錄話)서적」 (학진토원본(學津討原本), 패해본(稗海本)) 등에는
쪽수▶P80-3나의 생각에 依하면, 닭이 울면 밤이 밝고, 밤이 밝어면 鬼類가 보이지 안이하게 되므로, 未開時代의 人類는 이 現象에 對하야 이렇게 推理하였다. 晨雞가 울면 夜中에 橫行하던 鬼類는 이 世上에서 踪跡을 감추지 안이할 수 없다. 그러하므로 鬼類는 雄雞를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그러고 또 一步를 나아가 雄雞는 鬼類틀 驅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되었다. 그러한 原始推理에 依하야 上述한 바와 같은 咒術行爲가 發生하게 된 것이다. 이에 關하야 若干의 考證을 하여 보면, 唐 鄭熊의 「番禺雜記」(說郛本) 며 宋 葉夢得의 「避暑錄話」 (學津討原本, 稗海本) 等에는
海邊, 時有鬼市, 半夜而合, 雞略而散, 人從之 多得異物
쪽수▶P80-4海邊, 時有鬼市, 半夜而合, 雞略而散, 人從之 多得異物
이라 하고, 당송시대의 소설 「낙신전(洛神傳)서적」(고금설매본(古今說海本))에는 낙포신녀(洛浦神女) 이야기 중 「忽間雞嗚, 神女乃留詩曰, 云々, 言訖超然躍虛而去, 無所賭矣」란 것이 있으며, 「태평광기(太平廣記)」 338 노중해조(盧仲海條)에는 「통유록(通幽錄)」을 끌어 유명계(幽冥界)의 이야기를 한 중에 「雞鳴興, 陰物向息」이란 구(句)가 있으며, 송(宋) 홍매(洪邁)인물의 「이견지(夷堅志)서적」(함분루연인본(涵芬樓鉛印本)) 병지(丙志) 2 위수재조(魏秀才條)에는 어떤 부인귀(婦人鬼)에 대하여 「繞室徘徊,且笑且位, 雞初嗚, 忽越出, 云々」의 구가 있고, 동서(同書) 3 소주동역조)韶州東驛條)에는
쪽수▶P80-5이라 하고, 唐宋時代의 小說 「洛神傳」 (古今說海本) 에는 洛浦神女 이약이 中 「忽間雞嗚, 神女乃留詩曰, 云々, 言訖超然躍虛而去, 無所賭矣」란 것이 있으며, 「太平廣記」 三三八 盧仲海條에는 「通幽錄」을 끄을어 幽冥界의 이약이를 한 中에 「雞鳴興, 陰物向息」이란 句가 있으며, 宋 洪邁의 「夷堅志」(涵芬樓鉛印本) 丙志 二 魏秀才條에는 어떤 婦人鬼에 대하야 「繞室徘徊,且笑且位, 雞初嗚, 忽越出, 云々」의 句가 있고, 同書 三, 韶州東驛條에는
衆鬼入室, 盡挈箱篋, 出井帳亦掣去, 取行庖食物啖嚼, 又竊窺之, 巳斷三僕首, 並手足肝肺, 分井四壁, 益駭怖, 不敢復開目, 漸亦昏睡, 俄鄰雞再唱, 寂不聞聲, 心稍定, 云云
쪽수▶P80-6衆鬼入室, 盡挈箱篋, 出井帳亦掣去, 取行庖食物啖嚼, 又竊窺之, 巳斷三僕首, 並手足肝肺, 分井四壁, 益駭怖, 不▶P81敢復開目, 漸亦昏睡, 俄鄰雞再唱, 寂不聞聲, 心稍定, 云云
의 구절(句節)이 있다. 이러한 예는 매거(枚擧)에 미황(未遑)하나 다시 청대(淸代)의 소설에서 수삼(數三)만을 들고저 한다. 원매의 「신제해(新齊諧)」 (일명 자불어(子不語)) 제8 귀문웅성칙축조(鬼聞雞聲則縮條)에는
쪽수▶P81-2의 句節이 있다. 이러한 例는 枚擧에 未遑하나 다시 淸代의 小說에서 數三만을 들고저 한다. 袁枚의 「新齊諧」 (一名 子不語) 卷八 鬼聞雞聲則縮條에는
云云, 忽鷄鳴一聲, 兩鬼縮短一尺, 燈光爲之一亮, 鷄三四聲, 鬼三四縮, 愈縮愈短, 漸漸紗?的兩翅, 擦地而沒, 云々이라 하고, 同書 卷十五 棺蓋妖條에는
쪽수▶P81-3云云, 忽鷄鳴一聲, 兩鬼縮短一尺, 燈光爲之一亮, 鷄三四聲, 鬼三四縮, 愈縮愈短, 漸漸紗?的兩翅, 擦地而沒, 云々이라 하고, 동서 제15 관개요조(棺蓋妖條)에는
云云, 見一鬼高徑尺, 臉白如灰, 兩退漆黑, 披髮, 云云, 鷄叫一聲 (棺) 蓋忽不見, 云々, 其怪乃滅 李病月餘始愈, 常告人曰, 人聲不如鷄聲, 豈鬼不怕人, 反怕鷄耶
쪽수▶P81-4云云, 見一鬼高徑尺, 臉白如灰, 兩退漆黑, 披髮, 云云, 鷄叫一聲 (棺) 蓋忽不見, 云々, 其怪乃滅 李病月餘始愈, 常告人曰, 人聲不如鷄聲, 豈鬼不怕人, 反怕鷄耶
라고 보이고, 정지상(程趾祥)인물의 「차중인어(此中人語)서적」 제5 대담수재조(大膽秀才條)에는 관중여시(棺中女屍)가 작요(作妖)한 설화 중에 「鷄聲喔喔, 女子臉忽異, 若甚悽慘, 乃一聲大叫, 云々」 이라 하고, 이공진(李拱辰)인물의 「취다지괴(醉茶志怪)서적」 권2 수요조(樹妖條)에는 「鷄鳴始遁入林中而杳, 殆樹精也」라고 보이는 등이다. 기록 그것은 비록 그다지 오랜 것이 아닐지라도 계명즉귀산(雞鳴則鬼散), 귀장계(鬼長雞) 등의 사상은 원시시대로부터 전래하는 바이었다.
쪽수▶P81-5라고 보이고, 程趾祥의 「此中人語」 卷五 大膽秀才條에는 棺中女屍가 作妖한 說話 中에 「鷄聲喔喔, 女子臉忽異, 若甚悽慘, 乃一聲大叫, 云々」
이러한 사상은 지나뿐 아니라 고대 어느 민족 사이에나 보편하였던 바이나학설 번거로움을 피하고 조선의 기록 중에서 수례(數例)를 들면 「청구야담(靑丘野談)서적」 권5 투삼귤공(投三橘空) 중 현령(現靈)의 조에
쪽수▶P81-6이라 하고, 李拱辰의 「醉茶志怪」 卷二 樹妖條에는 「鷄鳴始遁入林中而杳, 殆樹精也」라고 보이는 等이다. 記錄 그것은 비록 그대지 오랜 것이 안일지라도 雞鳴則鬼散, 鬼長雞 等의 思想은 原始時代로부터 傳來하는 바이었다.
李佐郞慶流, 以兵曹佐郞, 當壬辰倭亂, 云云, 公卒後, 每夜來家中, 聲音美貌, 宛如生時、對夫人趙氏, 酬酷無異平昔, 每具饌以進, 則飲啖如常, 而後乃見之, 飲食如前, 每於日昏後始來, 臨雞嗚則出門而去, 云云
쪽수▶P81-7이러한 思想은 支那뿐 안이라 古代 어느 民族 사이에나 普遍하였던 바이나 煩거러움을 避하고 朝鮮의 記錄 中에서 數例를 들면 「靑丘野談」 卷五 投三橘空 中 現靈의 條에
이란 것이며, 유득공(柳得恭)인물의 「경도잡지(京都雜志)서적」 권2 원일조(元日條)에
쪽수▶P81-8李佐郞慶流, 以兵曹佐郞, 當壬辰倭亂, 云云, 公卒後, 每夜來家中, 聲音美貌, 宛如生時、對夫人趙氏, 酬酷無異平昔, 每具饌以進, 則飲啖如常, 而後乃見之, 飲食如前, 每於日昏後始來, 臨雞嗚則出門而去, 云云
鬼名夜光、夜入人家, 喜偷鞋, 鞋主不吉, 小兒畏之, 藏鞋滅燈早宿, 廳壁上縣篩, 夜光計其孔不盡, 雞嗚乃去, 云々
쪽수▶P81-9이란 것이며, 柳得恭의 「京都雜志」 卷二 元日條에
이런 것이며, 실명씨(失名氏)의 「화산파수록(華山罷睡錄)서적」 (사본(寫本)) 중에 전우치(田禹治)가 산사(山寺)에서 독서하고 있던 어떤날 밤 여귀가 와서 독서를 방해하므로 그 혼를 결박하여 두었더니 「星回月落, 曉塾將嗚, 其女急聲哀告曰, 命在頃刻, 云云」이라고 하였다는 등 설화가 모두 그러한 사상의 표현이다.
쪽수▶P82-1鬼名夜光、夜入人家, 喜偷鞋, 鞋主不吉, 小兒畏之, 藏鞋滅燈早宿, 廳壁上縣篩, 夜光計其孔不盡, 雞嗚乃去, 云々 이런 것이며, 失名氏의 「華山罷睡錄」 (寫本) 中에 田禹治가 山 寺에서 讀書하고 있던 어떤날 밤 女鬼가 와서 讀書를 妨害하므로 그 鬼를 結縛하여 두었더니 「星回月落, 曉塾將嗚, 其女急聲哀告曰, 命在頃刻, 云云」이라고 하였다는 等 說話가 모도 그러한 思想의 表現이다.
이와 같이 고대인들은 「귀류는 닭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였고,학설 이 사상이 근거가 되어 역려사기(疫癘邪氣)를 염양(厭禳)하는 주술로서 문호의 제(祭)에 책계(磔雞)를 저용하게 된 것이오, 또 귀류의 소위로 얻은 제종(諸種)의 병도 웅계의 육골혈(肉骨血) 등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웅계를 문호에 저용한 이유는, 원시사상에 있어서는 유적(幽的) 존재 즉 귀류가 생자(生者)보다 강력하였다. 그러하므로 생계(生雞)보다는 사계(死雞) 즉 계귀(雞鬼)가 귀류에 대하여 더욱 강력하리라고 생각한 까닭이며, 또 귀류도 사람과 여(如)히 문호로 출입한다고 사유하였으므로 그것을 문호에 저용한 것이다. 이렇게 책계를 사용한 것은 원시적 방법이요 이에 대하야 화계, 목계, 토계, 화계 등을 쓰게 된 것은 일보를 진(進)한 방법으로서 동형이질(同形異質)의 원시추리에 의하야 이 양자는 동등 주력(咒力)을 가졌을 뿐만 안이라. 채계의 일시적임에 대하야 화계 기타는 항시적었으므로 삼국 이후의 민간은 이 후자를 더욱 중시하였던 모양이다.
쪽수▶P82-2이와 가치 古代人들은 「鬼類는 닭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였고, 이 思想이 根底가 되어 疫癘邪氣를 厭禳하는 咒術로서 門戶의 祭에 磔雞를 著用하게 된 것이오, 또 鬼類의 所爲로 얻은 諸種의 病에도 雄雞의 肉骨血 等을 使用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반다시 雄雞를 門戶에 著用한 理由는, 原始思想에 있어서는 幽的 存在 即 鬼類가 生者보다 强力하였다. 그러하므로 生雞보다는 死雞 即 雞鬼가 鬼類에 對하야 더욱 强力하리라고 생각한 까닭이며, 또 鬼類도 사람과 如히 門戶로 出入한다고 思惟하였스므로 그것을 門戶에 著用한 것이다. 이렇게 磔雞를 使用한 것은 原始的 方法이오 이에 代하야 畵雞, 木雞, 土雞, 鑄雞 等을 쓰게 된 것은 一步를 進한 方法으로서 同形異質의 原始推理에 依하야 이 兩者는 同等 咒力을 가지었을 뿐만 안이라. 磔雞의 一時的임에 對하야 畵雞 其他는 桓時的이었으므로 三國 以後의 民間은 이 後者를 더욱 重視하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귀외계(鬼畏雞)의 사상이 있는 일방에 또 병은 귀(鬼)의 소위이라는 원시사상이 있음으므 웅계는 제종의 병(病)에 주약(咒藥)으로 사용하게 되였다. 한대인이 적풍이며 귀자비(鬼刺痱)에 웅계를 쓴 것은 기술하였거니와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본초강목(本草綱目) 48 소인(所引))에는 단웅계육(丹雄雞肉)을 「殺惡毒, 辟不祥」이라 하였고, 양도홍경(梁陶弘景)의 「주후비급방(肘后備急方)」 (본상강목(本常綱目) 48 단웅계조(丹雄雞條) 소인(所引))에는
쪽수▶P82-3이렇게 鬼畏雞의 思想이 있는 一方에 또 病은 鬼의 所爲이라는 原始思想이 있음으므 雄雞는 諸種의 病에 咒藥으로 使用하게 되였다. 漢代人이 賊風이며 鬼剌痱에 雄雞를 쓴 것은 旣述하였거니와 「神農本草經」 (本草綱目 四八所引)에는 丹雄雞肉을 「殺惡毒, 辟不祥」이라 하였고, 梁陶弘景의 「肘后備急方」 (本常綱目 四八 丹雄雞條所引)에는
辟禳瘟疫, 冬至日, 取赤雄雞, 作腊, 至立春日, 煑食, 至盡, 勿分他人
쪽수▶P82-4辟禳瘟疫, 冬至日, 取赤雄雞, 作腊, 至立春日, 煑食, 至盡, 勿分他人
이라 하고, 「심경(心鏡)서적」 (전동권(前同卷), 백웅계육조(白雄雞肉條) 소인(所引))에癲邪狂妄, 自賢自聖, 行走不休, 白雄雞一隻, 煮以五味和, 作羹粥食
쪽수▶P83-1이라 하고, 「心鏡」 (前同卷, 白雄雞肉條所引)에는
癲邪狂妄, 自賢自聖, 行走不休, 白雄雞一隻, 煮以五味和, 作羹粥食
쪽수▶P83-2癲邪狂妄, 自賢自聖, 行走不休, 白雄雞一隻, 煮以五味和, 作羹粥食
이라 하였다. 적백(赤白) 등은 신성한 색이므로 웅계 중에서도 적백의 것이면 더욱 주력이 우월하다는 사상이다. 이시진은 전(前) 동권(同卷), 오골계조에서 오계(烏雞)는 귀격심복통(鬼擊心腹痛)을 치유한다고 말한 다음에 「태평어람(太平御覽)」 884 소인(所引) 「지괴(志怪)」 중의 설화를 다시 초인(抄引)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쪽수▶P83-3이라 하였다. 赤白 等은 神聖한 色이므로 雄雞 中에서도 赤白의 것이면 더욱 咒力이 優越하다는 思想이다. 李時珍은 前同卷, 烏骨雞條에서 烏雞는 鬼擊心腹痛을 治愈한다고 말한 다음에 「太平御覽」 八八四所引 「志怪」 中의 說話를 다시 抄引하야 이렇게 말하였다.
時珍曰, 云云, 按太平御覽云, 夏候弘, 行江陵, 逢一大鬼引小鬼數百行, 弘潛捉末後一小鬼問之, 曰此廣州大殺也, 持弓戟, 往荆掦二州殺人, 若中心腹者死, 餘處猶可救, 弘曰, 治之有方乎, 曰但殺현대문주3▶[a 3]烏(三)骨雞, 薄心即瘥, 時荆掦心腹, 者甚衆, 弘用此治之, 十愈八九, 中惡用烏雞, 自弘始也, 此說雖涉迂怪, 然其方則神效, 謂非神傳不可也, 鬼擊卒死, 用其血塗心下, 亦效
쪽수▶P83-4時珍曰, 云云, 按太平御覽云, 夏候弘, 行江陵, 逢一大鬼引小鬼數百行, 弘潛捉末後一小鬼問之, 曰此廣州大殺也, 持弓戟, 往荆掦二州殺人, 若中心腹者死, 餘處猶可救, 弘曰, 治之有方乎, 曰但殺원문주3▶[3]烏骨雞, 薄心即瘥, 時荆掦心腹, 者甚衆, 弘用此治之, 十愈八九, 中惡用烏雞, 自弘始也, 此說雖涉迂怪, 然其方則神效, 謂非神傳不可也, 鬼擊卒死, 用其血塗心下, 亦效
이 밖에도 본초강목은 계(雞)의 주약성(咒藥性)에 대하여 여러 문헌을 열거하였다.
쪽수▶P83-5이 밖에도 本草綱目은 雞의 咒藥性에 대하야 여러 文獻을 列擧하였다.
雞頭(丹白雄雞者良), 主治殺鬼, 東門上者良 本(經), 治蠱, 禳惡辟瘟(時珍), (本草綱目 四八 雞頭條)
卒魘死昏, 東門上雞頭爲末, 酒服之(千金方), (前同條)
鬼擊卒死, 烏雞冠血, 瀝口中令嚥, 仍破此雞, 搨心下, 冷乃棄之道邊, 妙(肘后), (前同、雞冠血條)
卒死寢死, 洽卒死或寢臥奄忽而絶, 皆是였惡, 用雄雞冠血, 塗面上, 乾則再上, 仍吹入鼻中, 井以灰營死人一周(肘后)(前同條)
蜈蚣咬瘡, 雞冠血金之(錢相松篋中方), 蛛蜘咬瘡, 同上, (前同條)
中蜈蚣毒, 舌脹出口是也, 雄雞冠血浸舌, 井四之情(靑囊裸纂), (前同條)
諸蟲入耳, 雞冠血滴入, 即出(勝金), (前同條)
쪽수▶P83-6雞頭(丹白雄雞者良), 主治殺鬼, 東門上者良 本(經), 治蠱, 禳惡辟瘟(時珍), (本草綱目 四八 雞頭條)
卒魘死昏, 東門上雞頭爲末, 酒服之(千金方), (前同條)
鬼擊卒死, 烏雞冠血, 瀝口中令嚥, 仍破此雞, 搨心下, 冷乃棄之道邊, 妙(肘后), (前同、雞冠血條)
卒死寢死, 洽卒死或寢臥奄忽而絶, 皆是였惡, 用雄雞冠血, 塗面上, 乾則再上, 仍吹入鼻中, 井以灰營死人一周(肘后)(前同條)
蜈蚣咬瘡, 雞冠血金之(錢相松篋中方), 蛛蜘咬瘡, 同上, (前同條)
▶P84中蜈蚣毒, 舌脹出口是也, 雄雞冠血浸舌, 井四之情(靑囊裸纂), (前同條)
諸蟲入耳, 雞冠血滴入, 即出(勝金), (前同條)
최후의 사종방(四種方), 오공교창(蜈蚣咬瘡), 지주교창(蜘蛛咬瘡), 중오공독(中蜈蚣毒), 제충입이(諸蟲入耳) 등에 계관혈(雞冠血)이 신효하다는 것은 그러한 제충류(諸蟲類)가 계류(雞類)에 탁식(啄食)되는 경험에 유래한 주술적 요법일 것이다. 계두(雞頭), 계육(雞肉), 계혈관 등이 과연 여상한 약호를 가졌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록 그러한 실제 효과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요법 중에 고래의 민간신앙에 근저를 둔 주술적 요소가 다분으로 포함되어 있을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쪽수▶P84-2最後의 四種方, 蜈蚣咬瘡, 蜘蛛咬瘡, 中蜈蚣毒, 諸蟲入耳 等에 雞冠血이 神效하다는 것은 그러한 諸蟲類가 雞類에 啄食되는 經驗에 由來한 咒術的 療법일 것이다. 雞頭, 雞肉, 雞冠血 等이 果然 如上한 藥效를 가지엇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록 그러한 實際 效果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療法 中에 古來의 民間信仰에 根底를 둔 咒術的 要素가 多分으로 包含되여 있을 것만은 否定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계는 사람에게 질병과 재화를 주는 귀류를 능히 염양하는 자이므로 이것을 상서로운 동물이라고 숭존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상은 전인(前引) 「풍속통(風俗通)」 중의 속설이며 청사자설에서도 약간 엿볼 수 있고 또 차술코저 하는 중명조(重明鳥) 전설에서는 특히 명료히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요, 양(梁) 소역(蕭繹)인물의 「삼국전략(三國典畧)서적」 (태평어람 918 소인)에 의하면
쪽수▶P84-3이렇게 雞는 사람에게 疾病과 災禍를 주는 鬼類를 能히 厭禳하는 者이므로 이것을 祥瑞로운 動物이라고 崇尊하게 되었다. 그러한 思想은 前引 「風俗通」 中의 俗說이며 靑史子說에서도 若干 엿볼 수 있고 또 次述코저 하는 重明鳥 傳說에서는 特히 明瞭히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오, 梁 蕭繹의 「三國典畧」 (太平御覽 九一八所引)에 依하면
齊長廣王湛, 即皇帝位於南宮, 大赦改元, 其日將赦, 庫令於殿門外, 建金雞, 宋孝王不識其義, 問於光祿大夫司馬膺之, 赦建金雞, 其義何也, 膺之曰, 案海中현대문주4▶[a 4]占, 日天雞星動, 當有救, 由是帝王, 以雞爲候
쪽수▶P84-4齊長廣王湛, 即皇帝位於南宮, 大赦改元, 其日將赦, 庫令於殿門外, 建金雞, 宋孝王不識其義, 問於光祿大夫司馬膺之, 赦建金雞, 其義何也, 膺之曰, 案海中원문주4▶[4]占, 日天雞星動, 當有救, 由是帝王, 以雞爲候
라 하고, 이 금계(金雞)에 관하야 당(唐) 봉연(封演)인물의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서적」 (학진토원본(學津討原本)) 권4 금계조(金雞條)는 더욱 상세히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쪽수▶P84-5라 하고, 이 金雞에 關하야 唐 封演의 「封氏聞見記」 (學津討原本) 卷四 金雞條는 더욱 詳細히 다음과 가치 記錄하였다.
國有大赦, 則命衛尉, 樹金雞于闕下, 武庫令掌其事, 雞以黃金雪目, 建之于高橦之下, 宣赦畢則除之, 凡建金雞, 則先置鼓於宮城門之左, 視大理及府縣徒囚至, 則槌其鼔, 按金雞魏晋巳前無聞焉, 或云, 始自後魏, 亦云, 起自현대문주5▶呂光,[a 5] 현대문주6▶隋書百官志云, 北齊尙書省, 有三公曹, 赦則掌建金雞,[a 6] 蓋自隋朝廢此官, 而衛尉掌之, 北齊址每赦宥, 則于閶門前, 樹金雞三日而止, 萬人競就金雞柱下, 取少土云, 佩之日利, 數日間, 遂成坑, 所司亦不禁約, 武成帝即位, 大赦天下, 其日設金雞, 宋孝王不識其義, 問于光祿大夫司馬膺之曰, 赦建金雞, 其義何也, 答曰, 按海中星占, 天雞星動, 必當有赦, 由是王以雞爲候, 其後, 河間王孝琬爲尙書令, 先是有謠言, 河南種穀河北生, 白楊樹頭金雞鳴, 孝祖徵與和士開, 譖孝琬曰, 河南河北, 河間也, 金雞言孝琬爲天子建天雞也, 齊王信之, 而殺孝琬, 登封嵩岳, 大赦, 改爲萬歲, 登封壇南, 有大懈樹, 抄置金雞, 因名樹爲金雞
쪽수▶P84-6國有大赦, 則命衛尉, 樹金雞于闕下, 武庫令掌其事, 雞以黃金雪目, 建之于高橦之下, 宣赦畢則除之, 凡建金雞, 則先置鼓於宮城門之左, 視大理及府縣徒囚至, 則槌其鼔, 按金雞魏晋巳前無聞焉, 或云, 始自後魏, 亦云, 起自원문주5▶呂光,[5] 원문주6▶隋書百官志云, 北齊尙書省, 有三公曹, 赦則掌建金雞,[6] 蓋自隋朝廢此官, 而衛尉掌之, 北齊址每赦宥, 則于閶門前, 樹金雞三日而止, 萬人競就金雞柱下, 取少土云, 佩之日利, 數日間, 遂成坑, 所司亦不禁約, 武成帝即位, 大赦天下▶P85其日設金雞, 宋孝王不識其義, 問于光祿大夫司馬膺之曰, 赦建金雞, 其義何也, 答曰, 按海中星占, 天雞星動, 必當有赦, 由是王以雞爲候, 其後, 河間王孝琬爲尙書令, 先是有謠言, 河南種穀河北生, 白楊樹頭金雞鳴, 孝祖徵與和士開, 譖孝琬曰, 河南河北, 河間也, 金雞言孝琬爲天子建天雞也, 齊王信之, 而殺孝琬, 登封嵩岳, 大赦, 改爲萬歲, 登封壇南, 有大懈樹, 抄置金雞, 因名樹爲金雞
이 기록에 의하여 우리는 금계건립(金雞建立)의 속(俗)이 후위(後魏) 후량(後凉)─ 확실히는 북제(北齊)로부터 비롯하야 수당(隋唐)에 이르기까지 행하였던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금계는 황금위목(黃金爲目)하고 백양(白楊) 기타의 고주상(高柱上)에 현치(懸置)하여 대사(大赦)를 행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상서를 상징한 의식이었다. 이 의식을 사마응지(司馬膺之)인물는 「해중성점(海中星占)서적」 중의 천계성동(天雞星動) 필당유사(必當有赦)에 전거하였다고 하였다. 이것도 유리한 설일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상서수립(瑞雞樹立) 사상(思想)의 근원은 먼 고석(古昔)의 웅계숭배에 찾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쪽수▶P85-2이 記錄에 依하야 우리는 金雞建立의 俗이 後魏 後凉──確實히는 北齊로부터 비롯하야 隋唐에 이르기까지 行하였던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金雞는 黃金爲目하고 白楊其他의 高柱上에 懸置하야 大赦를 行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祥瑞를 象徵한 儀式이었다. 이 儀式을 司馬膺之는 「海中星占」 中의 天雞星動 必當有赦에 典據하였다고 하였다. 이것도 有理한 說일는지는 모르겟으나 이 瑞雞樹立思想의 根源은 먼 古昔의 雄雞崇拜에 찾지 안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남은 문제는 이러하다. 지금 우리의 생활경험에 의하면 첫닭이 울 때는 아직 밤 중이요, 밤 중은 귀류의 아직도 횡행할 바 시각이다. 그런데 어찌 古代人들은 닭이 울면 귀류가 은복(隱伏)한다고 생각하였던가. 「예기(禮記)서적」 악지(樂志)에 「幽則有鬼神」이라 한 말과 가치 유암(幽暗) 중에는 항상(恒常) 귀신이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나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을 줄 안다. 첫째, 고대인은 계초명(雞初嗚)의 시각으로써 낮의 시초이라고 생각하였다. 예하면 한(漢) 송균(宋均)인물 주(注)의 「춘추설제사(春秋說題辭)서적」 (예문유취(藝文類聚) 91 급(及) 태평어람 918 소인) 에
쪽수▶P85-3그러면 다음에 남은 問題는 이러하다. 지금 우리의 生活經驗에 依하면 첫닭이 울 때는 아즉 밤 中이오, 밤中은 鬼類의 아즉도 橫行할바 時刻이다. 그런대 어찌 古代人들은 닭이 울면 鬼類가 隱伏한다고 생각하였던가. 「禮記」 樂志에 「幽則有鬼神」이라 한 말과 가치 幽暗 中에는 恒常 鬼神이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問題에 대하야 나는 두 가지 理由를 생각할 수 있을 줄 안다. 첫재, 古代人은 雞初嗚의 時刻으로써 낮의 始初이라고 생각하였다. 例하면 漢 宋均 注의 「春秋說題辭」 (藝文類聚九一, 及太平御覽九一八所引) 에
雞爲積陽, 南方之象, 火陽精, 物炎上, 故陽出雞鳴, 以類感也
쪽수▶P85-4雞爲積陽, 南方之象, 火陽精, 物炎上, 故陽出雞鳴, 以類感也
라 하고, 또 송균의 「춘추고이편(春秋考異郵)서적」 (태평어람(太平御覽) 918 소인)에 「계응단오(雞應旦嗚)」이라고 보이는 등은 일출 시각이 계오(雞嗚) 시각과 서로 일치한다는 사상이다. 후한(後漢) 위굉(衛宏)인물의 「한관의(漢官儀)서적」 (송 축목(祝穆)의 「사문유취(事文類聚)」 전집(前集) 권2 일(日) 군서요어조(群書要語條) 소인) 는
쪽수▶P85-5라 하고, 또 宋均의 「春秋考異郵」 (太平御覽九一八所引)에 「雞應旦嗚」이라고 보이는 等은 日出 時刻이 雞嗚 時刻과 서로 一致한다는 思想이다. 後漢 衛宏의 「漢官儀」 (宋 祝穆의 「事文類聚」 前集 卷二 日 群書要語條所引) 는
太山東南 名曰日觀 雞一鳴時 見日出長三丈許
쪽수▶P86-1太山東南 名曰日觀 雞一鳴時 見日出長三丈許
라 하여, 이것은 차술 도도산(桃都山) 전설과 함께 비록 전설적이나 더욱 구체적이다. 닭이 울기 시작하여도 태양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거주처가 낮고 산에 가려져 있는 까닭이요 높은 일관산(日觀山)에 올라서 보면 계명와 동시에 일출하는 광경을 명백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광은 귀류의 무서워하는 바이라 태양이 세상에 출현한 이상 귀류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계명과 함께 귀류는 은복하여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쪽수▶P86-2라 하야, 이것은 次述 桃都山 傳說과 함께 비록 說話的이나 더욱 具體的이다. 닭이 울기 시작하여도 太陽이 보이지 안는 것은 우리의 居住處가 낮고 山에 가리어저 있는 까닭이오 높은 日觀山에 올나서 보면 雞嗚와 同時에 日出하는 光景을 明白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日光은 鬼類의 무서워하는 바이라 太陽이 世上에 出現한 以上 鬼類는 絶對로 存在할수 없으므로 雞鳴과 함께 鬼類는 隱伏하여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둘째의 이유는, 고대인은 계명과 함께 침석(寢席)을 떠나 기동(起動)하였으므로 사람이 기동을 비롯하면 이로부터 인류의 세상이 시작되고 따라서 귀류의 세상은 종(終)을 고(告)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예하면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子事父母, 雞初鳴, 咸盥漱, 云云」, 「婦事舅姑, 如事父母, 雞初嗚, 咸盥漱, 云云」, 「男女未冠笄者, 雞初鳴, 咸盥漱, 云云」, 「凡內外, 雞初鳴, 咸盥漱, 衣服, 斂枕策, 簟掃室堂及庭, 布席, 各從其事」라고 보이는 등은 특별히 일찍 기상하란 의미가 아니요, 기침할 시각에 기침하라는 훈화(訓話)일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서적」 선공(宣公) 12년조에
쪽수▶P86-3둘째의 理由는, 古代人은 雞鳴과 함께 寢席을 떠나 起動하였으므로 사람이 起動을 비롯하면 이로부터 人類의 世上이 시작되고 따라서 鬼類의 世上은 終을 告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例하면 「禮記」 內則에 「子事父母, 雞初鳴, 咸盥漱, 云云」, 「婦事舅姑, 如事父母, 雞初嗚, 咸盥漱, 云云」, 「男女未冠笄者, 雞初鳴, 咸盥漱, 云云」, 「凡內外, 雞初鳴, 咸盥漱, 衣服, 斂枕策, 簟掃室堂及庭, 布席, 各從其事」라고 보이는 等은 特別히 일즉 起床하란 意味가 안이오 起寢할 時刻에 起寢하라는 訓話일 것이다. 「春秋左氏傳」 宣公十二年條에
楚子爲乘廣, 三十乘分爲左右, 右廣雞鳴而駕, 日中而說, 左則受之, 日入而說
쪽수▶P86-4楚子爲乘廣, 三十乘分爲左右, 右廣雞鳴而駕, 日中而說, 左則受之, 日入而說
이라 한 것도 초자(楚子)가 기침으로부터 일몰까지 광거(廣車)를 구승(驅乘)하였다는 의미요, 행인도 없는 밤중부터 출발하였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맹자서적」 진심장(盡心章)에
쪽수▶P86-5이라 한 것도 楚子가 起寢으로부터 日沒까지 廣車를 驅乘하였다는 意味이오, 行人도 없는 밤中부터 出動하였다는 意味는 안일 것이다. 「孟子」 盡心章에
雞鳴而起, 孳々爲善者, 舜之徒也、雞鳴起、孳々爲利者, 踱之徒也
쪽수▶P86-6雞鳴而起, 孳々爲善者, 舜之徒也、雞鳴起、孳々爲利者, 踱之徒也
라는 것도 기상과 동시에란 의미일 것이다. 「모시(毛詩)서적」 계명장(雞鳴章)에 「雞旣鳴矣, 朝旣盈矣」란 것도 그렇게 해석할 바이다. 더욱 구체적인 예는 「태평어람서적」 918이 「역통괘험(易通卦驗)」을 끌어
쪽수▶P86-7라는 것도 起床과 同時에란 意味일 것이다. 「毛詩」 雞鳴章에 「雞旣鳴矣, 朝旣盈矣」란 것도 그렇게 解釋할 바이다. 더욱 其體的인 例는 「太平御覽」 九一八이 「易通卦驗」을 끄을어
萬民聞雞鳴, 皆翹首結帶正衣裳
쪽수▶P87-1萬民聞雞鳴, 皆翹首結帶正衣裳
이란 것과 동서(同書) 29가 「무초세시기(無楚歲時記)」를 인용한 문(文) 중에
쪽수▶P87-2이란 것과 同書 二九가 「無楚歲時記」를 引用한 文中에
按周書緯通卦云, 雞陽鳥也, 以爲人候四時, 使人得以翹首結帶正衣裳也
쪽수▶P87-3按周書緯通卦云, 雞陽鳥也, 以爲人候四時, 使人得以翹首結帶正衣裳也
라고 한 것이다. 또 「사기(史記)」 75 맹상군전에
쪽수▶P87-4라고 한 것이다. 또 「史記」 七五 孟甞君傳에
昭王釋孟甞君, 孟甞君得出, 即馳去, 更封傳變名姓, 以出關, 夜半至凾谷關, 云云, 關法雞鳴而出客, 孟甞君恐追至, 客之居下坐者, 有能爲雞鳴, 而雞盡鳴, 途發傳出, 云云
쪽수▶P87-5昭王釋孟甞君, 孟甞君得出, 即馳去, 更封傳變名姓, 以出關, 夜半至凾谷關, 云云, 關法雞鳴而出客, 孟甞君恐追至. 客之居下坐者, 有能爲雞鳴, 而雞盡鳴, 途發傳出, 云云
이란 것과 「연단자(燕丹子)서적」에
쪽수▶P87-6이란 것과 「燕丹子」에
燕太子丹, 質於秦云云, 夜到期, 關門未開, 丹爲雞鳴, 衆雞皆鳴, 遂得逃歸
쪽수▶P87-7燕太子丹, 質於秦云云, 夜到期, 關門未開, 丹爲雞鳴, 衆雞皆鳴, 遂得逃歸
란 것 등도 계명과 함께 사람이 기동하고 사람의 기동하는 시각에 관문을 열던 지나의 고속(古俗)을 말하는 바일 터이다.
쪽수▶P87-8란 것 等도 雞鳴과 함께 사람이 起動하고 사람의 起動하는 時刻에 關門을 열던 支那의 古俗을 말하는 바일 터이다.
상술한 바를 요약하면, 고대 지나민족은 귀류(鬼類)의 문호 내 침입 막기 위하야, 또 귀류의 소위에 유(由)한 질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또는 충류(蟲類)에 유한 병이며 독창(毒瘡) 등을 치유하기 위하여 웅계를 사용하여 제종의 주술적 행위를 취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민속에 대하여 후세의 학자들은 음양오행설로서 그것을 이론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설은 웅계신앙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은 아니었었다. 웅계는 태양을 호래(呼來)하고 사람을 기동케 하는 자이므로 귀류는 그것을 무서워하고, 또 닭은 충류를 탁식(啄食)하므로 충류는 닭을 무서워하는 것이라는 원시추리에서부터 웅계에 의한 제종의 주술적 신앙형식이 발생되고, 또 웅계는 제종의 주약성을 가지게 되어 고대의학(古代醫學) 상에까지 적지 않은 관계를 갖게 되었고, 금계숭배도 그러한 사상을 근원으로 하여 발생된 것이었다. 그러고 또 그러한 사상을 근원으로 하여 다양의 전설이 발달되었다.
쪽수▶P87-9上述한 바를 要約하면, 古代 支那民族은 鬼類의 門戶內 侵入 막기 爲하야, 또 鬼類의 所爲에 由한 疾病을 治諭하기 爲하야, 또는 蟲類에 由한 病이며 毒瘡 等을 治愈하기 爲하야 雄雞를 使用하야 諸種의 咒術的 行爲를 取하였다. 그런대 그러한 民俗에 대하야 後世의 學者들은 陰陽五行說로서 그것을 理論化하고저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說은 雄雞信仰의 起源을 說明하는 科學的 理論은 안이었었다. 雄雞는 太陽을 呼來하고 사람을 起動케 하는 者이므로 鬼類는 그것을 무서워하고, 또 닭은 蟲類를 啄食하므로 蟲類는 닭을 무서워하는 것이라는 原始推理에서부터 雄雞에 依한 諸種의 咒術的 信仰型式이 發生되고, 또 雄雞는 諸種의 咒藥性을 가지게 되여 古代醫學上에까지 적지 않은 關係를 갖게 되었고, 金雞崇拜도 그러한 思想을 根源으로 하야 發生된 것이었다. 그러고 또 그러한 思想을 根源으로하야 多樣의 傳說이 發達되었다.






본문2: 계신전설


황부전설(黃父傳說)용어신이경(神異經)서적」 (한위총서본(漢魏叢書本)) 동남황경(東南荒經)에
쪽수▶P88-1一 黃父傳說 「神異經」 (漢魏叢書本) 東南荒經에
東南方有人焉, 周行天下, 身長七丈, 腹圍如其長, 頭戴雞父, 魌頭, 朱衣縞帶, 以赤蛇繞頭 一作惡/蛇遶項, 尾合於頭, 不飲不食, 朝吞惡鬼三千, 暮吞三百, 此人以鬼爲飯, 以霧爲漿, 名曰尺郭, 一名食邪, 道師云, 吞邪鬼, 一名赤黃父, ?世有黃父鬼
쪽수▶P88-2東南方有人焉, 周行天下, 身長七丈, 腹圍如其長, 頭戴雞父, 魌頭, 朱衣縞帶, 以赤蛇繞頭 一作惡/蛇遶項, 尾合於頭, 不飲不食, 朝吞惡鬼三千, 暮吞三百, 此人以鬼爲飯, 以霧爲漿, 名曰尺郭, 一名食邪, 道師云, 吞邪鬼, 一名赤黃父, ?世有黃父鬼
라는 일종의 신화가 있다. 기두(魌頭)는 장화(張華)인물의 주(註)에 하야 「髮煩亂也」라고 해석되나, 그러나 이 비인비귀(非人非鬼)요 또 동물(꼬리가 있다)도 아닌 이것이 과연 무엇을 가르침일가. 황당무계한 설화라 하야 일소에 붙여 버린다면 그만이나 이 설화를 작출한 저리(底裏)에는 하등의 심리적 근거가 없지 아니할 수 없다. De Groot 박사인물는 그 대저 Religious system of China(Vol Ⅳ. PP. 1171-2)서적에서 이것을 왈(曰) 자신의 신격화된 것(the god of day himself)이라고 해석하였다. 동(東)에서 남(南)으로 향하여 천하를 주행한다고 해석한 동(同) 박사의 설에는 좀 수긍하기 어려우나, 腹圍如其長 尾合於頭란 것을 원형(圓形)의 물(物)을 가르침이라 하고, 또 주의(朱衣) 운운한 것을 보아 이것은 태양을 말한 것이며, 이렇게 해석하면 不的不食 朝吞惡鬼三千, 暮吞三百, 以鬼爲飯, 以霧爲漿의 설을 무난히 풀 수 있다고 동 박사는 생각하였다. 아침의 태양은 귀류를 죽이고 무로(霧露)를 흡취하는 까닭으로써이다. 이것은 확실히의 일면의 이유를 가진 해석이다. 그러나 頭戴雞父, 魌頭라고 한 것이 과연 아(阿) 박사의 설과 같이 일신(日神)의 두상에 태양조(太陽烏)(solar bird)를 대(戴)케 하고 귀류의 무서워하는 추면(醜面)을 피(被)케 한 설화일가. 또 赤蛇繞頭는 어떻게 해석할 바일까. 그러고 또 이것이 과연 일신설화라면 조식삼천(朝食三千)의 수는 과장 많은 지나설화로서는 너무나 적은 감이 있다. 「태평어람서적」 918에 인용된 「신이경(神異經)」의 동문(同文)을 보면
쪽수▶P88-3라는 一種의 神話가 있다. 魌頭는 張華의 註에 하야 「髮煩亂也」라고 解釋되나, 그러나 이 非人非鬼오 또 動物(꼬리가 있다)도 안인 이것이 果然 무엇을 가르침일가. 荒唐無稽한 說話라 하야 一笑에 부치어 버린다면 그만이나 이 說話를 作出한 底裏에는 何等의 心理的 根據가 없지 안이할 수 없다. De Groot 博士는 그 大著 Religious system of China(Vol Ⅳ. PP. 1171-2)에서 이것을 日 自身의 神格化된 것(the god of day himself)라고 解釋하였다. 東에서 南으로 向하야 天下를 周行한다고 解釋한 同 博士의 說에는 좀 首肯하기 어려우나, 腹圍如其長 尾合於頭란 것을 圓形의 物을 가르침이라 하고, 또 朱衣 云々한 것을 보아 이것은 太陽을 말한 것이며, 이렇게 解釋하면 不的不食 朝吞惡鬼三千, 暮吞三百, 以鬼爲飯, 以霧爲漿의 說을 無難히 풀 수 있다고, 同 博士는 생각하였다. 아침의 太陽은 鬼類를 죽이고 霧露를, 吸取하는 까닭으로써이다. 이것은 確實히의 一面의 理由를 갖인 解釋이다. 그러나 頭戴雞父, 魌頭라고 한 것이 果然 阿 博士의 說과 가치 日神의 頭上에 太陽烏(solar bird)를 戴케 하고 鬼類의 무서워하는 醜面을 被케 한 說話일가. 또 赤蛇繞頭는 어떻게 解釋할 바일▶P89가. 그러고 또 이것이 果然 日神說話라면 朝食三千의 數는 誇張 많은 支那說話로서는 너무나 적은 感이 있다. 「太平御覽」 九一八에 引用된 「神異經」의 同文을 보면
神異經曰, 東方有人, 長七丈, 頭戴雞, 朝含惡鬼三千, 暮含三百, 名黃父, 又名食邪, 以鬼爲飯, 以霧僞裝也
쪽수▶P89-2 神異經曰, 東方有人, 長七丈, 頭戴雞, 朝含惡鬼三千, 暮含三百, 名黃父, 又名食邪, 以鬼爲飯, 以霧僞裝也
라 하야 그 괴물은 동방(동남방이 아니라)에 있고 두상에는 계를 대하였다고 하였다. 이 어람 인용의 글이 바르다면 De Groot 씨의 설은 더욱 유리하게 될 것이다. 태양은 동방에서 나오므로.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어람 소인은 초인(抄引)이오 한위총서본(潢魏叢書本)의 그것이 완문(完文)일 것 같다. 그 이유는, 나는 신이경 이 신화를 태양(우又는 일신日神)라고 보지 않고 계신설화(雞神說話)라고 보는 까닭이다. 문자 상에는 비록 두 대계(頭戴雞)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계두인신신(雞頭人身神)으로 해석하는 편이 차라리 타당할 것이요, 정말 그렇다면 이것은 웅계를 신격화한 설화일 것이다. 적사효두(赤蛇繞頭)는 웅계관를 신비화한 표현일 것이며, 미합어두(尾合於頭)는 웅계의 만곡(彎曲)한 장미(長尾)를 과장한 것일 터이며, 기두(魌頭)는 웅계의 노하였을 때 역립(逆立)하는 경모(頸毛)를 의미하는 것이오, 호대(縞帶)는 주계(朱雞)의 반모(斑毛)를 윤색 것이리라 해석. 오즉 한 가지 난관은 복여기장(腹如其長)이나 그러나 이것도 전연 양해할 수 없는 표현은 아닐까 한다. 그다음, 이 계신이 조식삼천귀(朝食三千鬼)한다는 것은 전술한 민간신앙에 의하야 용이히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삼천이란 수 이것을 일신(日神)이라고 하는 경우에 비하야 훨신 가연성(可然性)이 있다. 조반(朝飯)이 있는 이상 석반(夕飯)도 있어야 할 터이나 석계는 귀류에 대하야 드대지 유력지 않으므로 석식삼백(夕食三百)이라고 한 것이다. 정말 이러하다면, 이 계신을 동남방에 속케 하고 또 주의(朱衣)를 입힌 것은 음행오행가(陰陽五行家)의 소위일 것이다. 즉 그들의 설에 의하면 계는 동방지성(東方之牲)임과 함께 남방적양지상(南方積陽之象)(기술旣述)이다. 그러하므로 이 신화 작가는 동남 양방을 모두 취하였다. 주의의 주색(朱色)은 남방지색임과 함께 귀류의 무서워하는 색이다. 그러므로 특히 주계의 색을 취한 모양이다. 그러고 또 작가는 이 주계의 주색과 함께 황계의 황색도 염(念)에 두었든 모양으로 그는 이 계신의 명을 지을 때 특히 적황보(赤黃父)라 하야 그 양자의 색 양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여러 점으로 보아 나는 한위총서본이 원화(原話)를 비교적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쪽수▶P89-3 라 하야 그 怪物은 東方(東南方이 안이라)에 있고 頭上에는 雞을 戴하였다고 하였다. 이 御覽所引의 글이 바르다면 De Groot 氏의 說은 더욱 有理하게 될 것이다. 太陽은 東方에서 나오므로.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御覽所引은 抄引이오 潢魏叢書本의 그것이 完文일 것 같다. 그 理由는, 나는 神異經 이 神話를 太陽(又는 日神)라고 보지 않고 雞神說話라고 보는 까닭이다. 文字上에는 비록 頭戴雞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雞頭人身神으로 解釋하는 편이 차랄이 妥當할 것이오, 정말 그렇다면 이것은 雄雞를 神格化한 說話일 것이다. 赤蛇繞頭는 雄雞冠를 神祕化한 表現일 것이며, 尾合於頭는 雄雞의 彎曲한 長尾를 誇張한 것일 터이며, 魌頭는 雄雞의 怒하였을 때 逆立하는 頸毛를 意味하는 것이오, 縞帶는 朱雞의 斑毛를 潤色한 것이리라 解釋된다. 오즉 한 가지 難關은 腹如其長이나 그러나 이것도 全然 諒解할 수 없는 表現은 안일가 한다. 그다음, 이 雞神이 朝食三千鬼한다는 것은 前述한 民間信仰에 衣하야 容易히 解釋할 수 있으며, 그 三千이란 數도 이것을 日神이라고 하는 境遇에 比하야 훨신 可然性이 있다. 朝飯이 있는 以上 夕飯도 있어야 할 터이나 夕雞는 鬼類에 對하야 드대지 有力지 않으므로 夕食三百이라고 한 것이다. 정말 이러하다면, 이 雞神을 東南方에 屬케 하고 또 朱衣를 입힌 것은 陰陽五行家의 所爲일 것이다. 即 그들의 說에 依하면 雞는 東方之牲임과 함께 南方積陽之象(旣述)이다. 그러하므로 이 神話 作家는 東南 兩方을 모도 取하였다. 朱衣의 朱色은 南方之色임과 함께 鬼類의 무서워하는 色이다. 그러므로 特히 朱雞의 色을 取한 모양이다. 그러고 또 作家는 이 朱雞의 朱色과함께 黃雞의 黃色도 念에 두엇든 모양으로▶P90 그는 이 雞神의 名을 지을 때 特히 赤黃父라 하야 그 兩者의 色을 兩存한 것이 안인가 한다. 이러한 여러 點으로 보아 나는 漢魏叢書本이 原話를 比較的 그대로 傳하는 것이 안일가 하는 것이다.
중명전조전설(重明鳥傳說)용어 진(晋) 왕가(王嘉)인물의 「 습유기(拾遺記)서적」 (한위총서본漢魏叢書本 說郛本) 권1 당효조(唐堯條)에
쪽수▶P90-2 二 重明鳥傳說 晋 王嘉의 「拾遺記」 (漢魏叢書本 說郛本) 卷一 唐堯條에
현대문주7▶堯在位七十年, 云云, 有祗支之國, 獻重明之烏, 一名雙睛, 言變睛在目, 狀如雞, 嗚似鳳, 時解落毛系羽, 肉翮而飛, 能博逐猛獸虎狼, 拔妖災, 群惡不能爲害, 飴以瓊膏, 或一歲數來, 或數歲不至, 國人莫不掃西門戶, 以望重明之集, 共未至之時, 國人或刻木, 或鑄金, 爲此烏之狀, 置於門戶之間, 則魑魅醜類, 自然退伏, 今人每藏元旦, 刻木・鑄金, 或圖書, 爲雞於牗之上者 叶之遺像也[a 7]
쪽수▶P90-3 원문주7▶堯在位七十年, 云云, 有祗支之國, 獻重明之烏, 一名雙睛, 言變睛在目, 狀如雞, 嗚似鳳, 時解落毛系羽, 肉翮而飛, 能博逐猛獸虎狼, 拔妖災, 群惡不能爲害, 飴以瓊膏, 或一歲數來, 或數歲不至, 國人莫不掃西門戶, 以望重明之集, 共未至之時, 國人或刻木, 或鑄金, 爲此烏之狀, 置於門戶之間, 則魑魅醜類, 自然退伏, 今人每藏元旦, 刻木・鑄金, 或圖書, 爲雞於牗之上者 叶之遺像也[7]
란 것이 있다. 중명조는 형(形)이 계(雞)와 같고 그 상(像)을 문호(門戶)에 두면 모든 귀류(鬼類)가 퇴복(退伏)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의심 없은 문추민속(門雞民俗)을 신화화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서 다시 진대 이후의 민속에 화계(畵雞), 목계(木雞), 주계(鑄雞) 등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쪽수▶P90-4 란 것이 있다. 重明鳥는 形이 雞와 같고 그 像을 門戶에 두면 모든 鬼類가 退伏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疑心 없은 門雞民俗을 神話化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서 다시 晋代 以後의 民俗에 畫雞, 木雞, 鑄雞 等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대체 지나 민족은 이러한 전설의 창작에 일종의 천재를 가지어 모든 민간신앙 이론화하고저 하였다. 중명조를 실재의 조류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하야 온갓 노력을 다한 것은 지나전설의 특색을 나타내인 바이다. 지나민족이 실제적이면서도 일방에 공상적 성질, 농후히 소유한 것을 이 전설 중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내어 있다.
쪽수▶P90-5 大體 支那 民族은 이러한 傳說의 創作에 一種의 天才를 갖이어 모든 民間信仰 理論化하고저 하였다. 重明鳥를 實在의 鳥類인 것처럼 表現하기 위하야 왼갓 努力을 다한 것은 支那傳說의 特色을 나타내인 바이다. 支那民族이 實際的이면서도 一方에 空想的 性質 濃厚히 所有한 것을 이 說話 中에서도 遺憾없이 나타내여 있다.
천계전설(天雞傳說)용어예문유취(藝文類聚)서적」 91 계조 급 「태평어람」 967 도조소인(桃條所引) 「현중기(玄中記)」에는
쪽수▶P90-5 三 天雞傳說 「藝文類聚」 九一 雞條 及 「太平御覽」 九六七 桃條所引 「玄中記」에는
東南有桃都山, 上有大樹, 名曰桃都, 枝相去三千里, 上有天雞, 日初出照此木, 天雞即嗚, 天下雞皆隨之鳴
쪽수▶P90-6 東南有桃都山, 上有大樹, 名曰桃都, 枝相去三千里, 上有天雞, 日初出照此木, 天雞即嗚, 天下雞皆隨之鳴
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이경(神異經)서적」 동황경(東荒經)에 보이는
쪽수▶P90-7 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神異經」 東荒經에 보이는
扶桑山有玉雞, 玉雞鳴則金雞鳴, 金雞鳴則石雞鳴, 石雞鳴則, 天下之雞悉鳴, 而潮水應之矣
쪽수▶P90-8 扶桑山有玉雞, 玉雞鳴則金雞鳴, 金雞鳴則石雞鳴, 石雞鳴則, 天下之雞悉鳴, 而潮水應之矣
란 사상에서 출발한 계신설화일 것이다. 이 설화로 보더라도 일출과 동시에 닭이 운다는 지나민족의 고대사상을 알 수 있다. 이 설화는 전술 이종의 그것과는 전연 그 취(趣)를 달리 하였으나, 양(梁) 효원제(孝元帝) 소역(蕭繹)인물의 「금루자(金樓子)서적」 권5 지괴조(志怪條)에 보면
쪽수▶P91-1 란 思想에서 出發한 雞神說話일 것이다. 이 說話로 보더라도 日出과 同時에 닭이 운다는 支那民族의 古代思想을 알 수 있다. 이 說話는 前述한 二種의 그것과는 全然 그 趣를 달니하였으나, 梁孝元帝蕭繹의 「金樓子」 卷五 志怪條에 보면
현대문주8▶東南有桃都山, 山有大桃樹, 上有天雞, 日初出, 照此桃, 天雞即鳴, 天下之雞, 感之而鳴, 樹下有兩鬼, 對樹持葦索 取不祥之鬼食之, 今人, 正日作兩桃梗以索, 中置雄雞, 法乎此也[a 8]
쪽수▶P91-2 원문주8▶東南有桃都山, 山有大桃樹, 上有天雞, 日初出, 照此桃, 天雞即鳴, 天下之雞, 感之而鳴, 樹下有兩鬼, 對樹持葦索, 取不祥之鬼食之, 今人, 正日作兩桃梗以索, 中置雄雞, 法乎此也[8]
라고 하야 「현중기(玄中記)서적」보다는 좀 복잡(複雜)하고, 「태평어람(太平御覽)서적」 29소인(所引) 「괄지도(括地圖)」의
쪽수▶P91-3 라고 하야 「玄中記」보다는 좀 複雜하고, 「太平御覽」 二九所引 「括地圖」의
桃都山有大桃樹, 盤屈三千里, 上有金雞, 日照此則鳴, 下有二神, 一名欎, 一名壘, 井執葦索,以伺不祥之鬼, 得則殺之
쪽수▶P91-4 桃都山有大桃樹, 盤屈三千里, 上有金雞, 日照此則鳴, 下有二神, 一名欎, 一名壘, 井執葦索,以伺不祥之鬼, 得則殺之
라는 것과 그 근연(根淵)을 같이한 모양이다. 그러고 이 「금루자」 「괄지도」 등의 천계天雞(금계金雞) 전설은 「풍속도의(風俗道義)서적」 「논형(論衡)서적」 「산해경(山海經)서적」 등에 보이는 소위 현대문주9▶신도(神荼)·울루(欎壘)[a 9]의 문신전설과 「현중기」의 천계전설에 부합한 자이다. 신도‧울루전설용어에 있어서는 이 이문신(二門神)과 대도수(大桃樹) 위색호(葦索虎) 등이 귀류의 외포(畏怖)하는 자로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고래(古來) 지나민속이 엽일 원단에 문호에 부현(附懸)한 이문신상(二門神像) 도경(桃梗) 위색(葦索) 진호(盡虎) 등을 한 체계 하(下)에 넣어 거기에 전설적 설명을 가(加)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방(一方)으로 웅계도 동일한 의미로 동시에 문호에 부현한 것이었으므로 이것 또한 전자의 체계 속에 일괄되어 대도수 상(上)에 금계가 있다고 전설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쪽수▶P91-5 라는 것과 그 根淵을 가치한 모양이다. 그러고 이 「金樓子」 「括地圖」 等의 天雞(金雞) 傳說은 「風俗道義」 「論衡」 「山海經」 等에 보이는 所謂 원문주9▶神荼·欎壘[9]의 門神傳說과 「玄中記」의 天雞傳說 複合한 者이다. 神荼‧欎壘傳說에 있어서는 이 二門神과 大桃樹 葦索 虎 等이 鬼類의 畏怖하는 者로서 表現되어있다. 이것은 古來 支那民俗이 臘日 元旦에 門戶에 附懸한 二門神像 桃梗 葦索 盡虎 等을 한 體系下에 너어 거기에 傳說的 說明을 加한 것이었다. 그런대 一方으로 雄雞도 同一한 意味로 同時에 門戶에 附縣한 것이었으므로 이것 또한 前者의 體系 속에 一括되어 大桃樹上에 金雞가 있다고 說話化한 것이 안일가 한다.
상술한 황부전설(黃父傳說) 중명조전설(重明烏傳說) 급(及) 천계(天雞)용어 옥계(玉雞) 전설용어 등은 요컨대 그 사상근원 원시민속사상에 발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문호제(門戶祭)에 웅계를 사용하는 주술행위는 책계(磔雞)를 쓰는 것이 원시형(原始型)이오 목계, 토계, 화계(畵雞), 주계(鑄雞) 등은 그 발달형일 것이며, 계는 신(晨)을 고(告)하는, 이상성(異常性)에 인하야 이것은 광명을 초래하고 귀류를 은복(隱伏)케 하는 서조(瑞鳥) 또는 신성한 조(鳥)이라고 숭배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상에서 원시종교사상 이상성(異常性)의 관계에 취하야 그 일단를 논한 것이다.
쪽수▶P91-6 上述한 黃父傳說 重明烏傳說 及 天雞(玉難) 傳說 等은 要컨대 그 思想根源 原始民俗思想에 發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門戶祭에 雄雞를 使用하는 咒述行爲는 磔雞를 쓰는 것이 原始型이오 木雞, 士雞, 畵雞, 鑄雞 等은 그 發達型일 것이며, 雞는 晨올 告하는, 異常性에 因하야 이것은 光明을 招來하고 鬼類를 隱伏케 하는 瑞鳥 또는 神聖한 鳥이라고 崇拜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以上에서 原始宗敎思想 異常性의 關係에 就하야 그 一瑞를 論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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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원문주


  1. 唐 歐陽詢 「藝文類聚」 卷四 及 宋 李昉의 「太平御覽」 卷二九와 卷九一八 等에도 大同小異의 引文이 보이고 伏君은 藝文類聚에 任君으로 되어 있다.
  2. 「說郛」 所收 「四時贇鏡」에도 同樣의 記事가 보인다.
  3. 白은 衍字인 듯하다.
  4. 有는 星의 誤.
  5. 後凉始祖懿武皇帝.
  6. 「隋書」 二七 百官志中에 後齊尙書省 有三公이라 하고 其註에 「掌五時讀時分·諸曹囚蛝·斷罪·?日建金鷄等事」라 하였다.
  7. 「太平御覽」 二八所引과는 若干의 出入이 있으나 論旨 別般 支障이 없다.
  8. 「太平御覽」 九六七桃條所引文에는 末文이 「作兩桃人 法乎此也」라고 되여 있다.
  9. 神荼 欎壘傳說의 發見되는 古典은 許多하나 그 原典은 「黃帝書」란 것과 「山梅經」인 모야이다. 「風俗通義」(頑魏叢書本) 卷八에는 謹按黃帝書 上古之時 有茶與欎壘 昆弟二人 性能執鬼 度朔山上章桃樹下 簡閱百鬼 無遒埋 妄爲人禍害 茶與欎壘 縛而葦索 執以 食虎 於是縣官 常以臘除夕 飾桃人 垂葦茭 畵虎於門 皆追效於前事 冀以衛凶也
    라 하야, 「論衡」 亂龍의 交과는 多少 出入이 있으나 大體로는 同一하며, 「論衡」에서는 荼與이 神荼로 葦索가 慮索으로 되여 있다. 그리고 「山海經」 (論衡訂鬼篇所引)에는
    滄海之中 有度朔之山 上有大桃木 其屈蟠三千里 其枝問東北曰鬼門 萬鬼所出入也 上有二神人一曰神荼 一曰欎壘 主閱領萬鬼 惡害之鬼 執以葦索 而以食虎 於是黃帝乃作禮 以時驅之 立大桃人 門戶晝神荼欎壘與虎 ?葦索以祭 凶魅有形 故執食虎
    라 하고, 「荆楚歲時記」(寶顔堂祕笈本)에는 正月 一日 鷄嗚而起 先於庭前爆竹, 以辟山臊惡鬼 貼畵雞 或??五釆 及 上雞于后 上 造挑板著天 謂之仙木 繪二神 貼戶左右 左神荼 右欎壘 俗謂之門神






현대문주


  1. 당(唐) 구양수(歐陽詢) 「예문유취(藝文類聚)」 권4 급(及) 송(宋) 이방(李昉)의 「태평어람(太平御覽)」 권29와 권918 등에도 대동소이의 인문(引文)이 보이고 복군(伏君)은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임군(任君)으로 되어 있다.
  2. 「설부(說郛)」 소수(所收) 「사시윤경(四時贇鏡)」에도 동양(同樣)의 기사가 보인다.
  3. 백(白)은 연자(衍字)인 듯하다.
  4. 유(有)는 성(星)의 오(誤).
  5. 후량시조의무황제(後凉始祖懿武皇帝).
  6. 「수서(隋書)」 27 백관지중(百官志中)에 後齊尙書省 有三公이라 하고 기주(其註)에 「掌五時讀時分·諸曹囚蛝·斷罪·?日建金鷄等事」라 하였다.
  7. 「태평어람」 28소인과는 약간의 출입이 있으나 논지 별반 지장이 없다.
  8. 「태평어람」 967 도조 소인문에는 말문이 「作兩桃人 法乎此也」라고 되여 있다.
  9. 신도울루 전설의 발견되는 고전은 허다하나 그 원전은 「황제서(黃帝書)」란 것과 「산해경(山梅經)」인 모야이다. 「풍속통의(風俗通義)」(완위총서본頑魏叢書本) 권8에는
    謹按黃帝書 上古之時 有茶與欎壘 昆弟二人 性能執鬼 度朔山上章桃樹下 簡閱百鬼 無遒埋 妄爲人禍害 茶與欎壘 縛而葦索 執以 食虎 於是縣官 常以臘除夕 飾桃人 垂葦茭 畵虎於門 皆追效於前事 冀以衛凶也
    라 하야, 「논형(論衡)」 난룡(亂龍)의 교(交)과는 다소 출입이 있으나 대체로는 동일하며, 「논형」에서는 도여(荼與)이 신도(神荼)로 위소(葦索)가 여소(慮索)으로 되여 있다. 그리고 「산해경(山海經)」 (논형정귀편소인論衡訂鬼篇所引)에는
    滄海之中 有度朔之山 上有大桃木 其屈蟠三千里 其枝問東北曰鬼門 萬鬼所出入也 上有二神人一曰神荼 一曰欎壘 主閱領萬鬼 惡害之鬼 執以葦索 而以食虎 於是黃帝乃作禮 以時驅之 立大桃人 門戶晝神荼欎壘與虎 ?葦索以祭 凶魅有形 故執食虎
    라 하고, 「형초세시기(荆楚歲時記)」(보안당비급본寶顔堂祕笈本)에는 正月 一日 鷄嗚而起 先於庭前爆竹, 以辟山臊惡鬼 貼畵雞 或??五釆 及 上雞于后 上 造挑板著天 謂之仙木 繪二神 貼戶左右 左神荼 右欎壘 俗謂之門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