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금성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백세빈(JBNU2025))이 작성했습니다.




석금성(石金星)
597d3b48-c288-47e9-857a-7c3842d4bc46.jpg
출처 : 『영화배우 석금성』online,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한글명 석금성 한자명 石金星 영문명 SEOK JEONG-HUI 가나명 이칭 석정의(石丁義)
성별 여 생년 1907년 몰년 1995년 출신지 평안남도 전공 배우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석금성인물은 토월회단체에서 데뷔하여 1930년대까지 중요 배우로 활약한 여배우이다. [1] 평안북도 출신으로 1925년 광무대 공연의 <추풍감별곡>의 주역인 추향을 맡아 첫 무대를 밟았다. [2] 대표작은 <희생하든 날 밤> · <춘향전> · <산 송장> · <쟌발쟌> · <혈육> 등이었는데, 영화계로부터 출연 교섭이 잇따랐다. [3] 본래 <약혼>이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연극만큼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본래 영화보다는 연극체질이었고 따라서 <아리랑고개> · <모란등기> 같은 무대극에서 보다 많은 인기를 끌었다. [4]


생애


유년 및 가족관계

평안남도의 서민의 딸로 태어난 석정의인물는 일찍 서울로 이주하여 진명(進明)여학교기관를 다니다가 기방에 들어갔다.[5] 그 뒤 기생의 몸으로 여기저기 요정에서 일하다가 극단 토월회기관 전무였던 이서구인물(李瑞求)의 눈에 띄어 광무대 시절 토월회 배우로서 연극계로 진출하였다. [6] 데뷔 한 해 충청남도 이충직인물과 결혼 후 3년만에 이혼, 이후 연극인 최승일인물과 결혼하여 2남 2녀를 뒀으나 1946년 남편과 자식이 월북해 소식이 끊겼다.[7]


토월회(土月會)와 데뷔

석금성의 데뷔는 토월회의 광무대 상연과 관련이 깊다.[8] 토월회는 재정난으로 인해 고난을 겪고 있었고, 당시에는 여배우를 구하는 것이 시급하고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 이서구는 기생 일을 중단하고 있던 석정희를 설득하면, 여배우로 출연시킬 수 있음을 간파하였으며, 석금성은 어렵지 않게 승낙하였다.[9] 석금성이 처음 출연한 연극은 <추풍감별곡>사건이었다고 밝혔다. 당시의 배역은 ‘추향’이었다.[10] 하지만 이 작품보다 석금성이 먼저 출연한 작품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11] 1925년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공연된 <카추샤>사건에 석금성이 출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백수인물가 주인공 공작역을 맡았고, 김성(金星)이 ‘카추샤’를 맡았다고 했다. [12] ‘김성(金星)’이라는 배우는 없었으며, 당시 상황을 참조했을 때‘석금성’의 ‘금성(金星)’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13]


개인적인 일생의 불화

석금성은 기생출신이었기 때문에 사귀던 남자로부터 버림받고 난 후에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데뷔한 직후로 보이는 시점에서(1925년 이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간동안 은퇴하였으나 결혼생활이 3년 만에 파탄나면서, 1929년경 다시 무대로 복귀하였다. [14] 1930년 신흥극장 출연 이후 그녀는 최승일과 결혼했다.[15]하지만 최승일은 이미 아내가 있는 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결혼 생활은 불안하게 출발했다.[16] 자식 넷을 낳고 살게 되엇지만, 초창기 본처와의 갈등과 가족간 이념 대립 시기를 거치면서, 최승일과 자식들이 월북하여, 석금성은 남한에서 홀로 남아 외롭게 살아야 했다. [17]


연구


기생 출신 여배우의 시대적 의의

석금성은 기생 출신 연기자다. 당시 1920~1930년대 배우들이 기생과 동격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석금성은 30년대 여배우의 전형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18] 석금성은 여배우 기근을 겪고 있던 토월회에 입단하면서 배우가 되었다.[19] 당시 토월회는 신극 전파와 공연 문화 확립의 꿈을 세운 토월회가 아닌, 상업적 영리와 대중극 확산을 염두에 둔 연극 단체로 변하던 시점이었다.[20] 석금성은 이 시기와 맞물려 흥행적인 요소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21] 석금성의 필요가 극단의 물리적 형편에 의해 결정 된 만큼, 석금성의 초기 연기력은 빈약하였다. [22] 석금성이 과거 기생이었다는 점은 그녀의 춤과 노래가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예측이 가능하나, 그녀의 연기 실력은 미처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23] 대신 석금성은 얌전한 여자의 역할(천진한 여자)에서 강점을 보였다.[24] 또 슬픈 감정을 객석까지 전파시키는 눈물 연기에 능했다. [25] 그녀는 이러한 자질들을 활용하고 인물 분석 능력을 갖추어 가면서 점차 토월회 연극의 중심으로 격상된다. [26]


정서적 연극 강점 확립

석금성은 영화 <약혼>사건으로 영화배우로서 데뷔하였다. 영화 약혼은 팔봉 김기진인물의 소설 약혼(約婚)(1926)서적을 각색한 영화로, 석금성 자신이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진술 이외에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27] 1929년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토월회는 <간난이의 설움>사건을 조선극장에서 공연했다. 이 공연에서 석금성은 ‘간난이’ 역을 맡았다.[28] 석금성은 ‘시골 색시’를 연기했는데, 동작이 음성과 조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9] 이전에는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 작품에서 조화로운 연기의 가능성을 보이며, 전체적으로 석금성이 인물 분석을 통해 역할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시작했음을 확인시켜 준다.[30]


전성기를 이끈 <아리랑고개>

<아리랑고개>사건는 1929년 11월 21일부터 28일까지 상연된 작품이다.[31] <아리랑고개>는 민요<아리랑>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석금성의 배역 ‘봉이’는 주요한 세 장면에 등장했다. 1)서사가 책을 읽을 때 처녀들과 함께 배경 그림을 만드는 장면, 2)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되면서 길용과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 그리고 3)길용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구슬픈 눈물을 흘리고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정서를 폭발시키는 장면이었다. [32] “석금성양의 최후의 아리랑은 듯는 사람의 머리 끗을 쭙볏하게” 만들었다.[33]검열 때문에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절름발이인<아리랑 고개>”였지만 관객들은 극에서 “흉년이 들어 여러 가지 박두한 문제로 말미암아 전답을 빼앗기고 집을 빼앗기고 남부녀대하고 나”가던 현실을 읽어낼 수 있었다.[34]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석금성 Institution: 진명(進明)여학교 A graduates B
Person: 석금성 Group: 토월회 A worksAt B
Person: 석금성 Group: 토월회 A isMemberOf B
Person: 이서구 Group: 토월회 A isMemberOf B
Person: 이백수 Group: 토월회 A isMemberOf B
Book: 약혼(約婚)(1926) Person: 김기진 A creator B
Person: 석금성 Person: 최승일 A isSpouseOf B
Person: 석금성 Event:<추풍감별곡> A isRelatedTo B
Person: 석금성 Event:<카추샤> A isRelatedTo B
Person: 석금성 Event:<간난이의 설움> A isRelatedTo B
Person: 석금성 Event:<약혼> A isRelatedTo B
Person: 석금성 Event:<아리랑고개> A isRelatedTo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1-150.
"석금성 (石金聖)"『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영화배우 석금성",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online, 한국영상자료원(KOFA).
김재석, 「토월회 연극의 근대성과 전근대성,『한국극예술연구』34, 한국극예술연구, 2011, 37쪽
최승일 (崔承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석


  1.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1-150.
  2. ↑ "석금성 (石金聖)"『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3. ↑ "석금성 (石金聖)"『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4. ↑ "석금성 (石金聖)"『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5. ↑ "석금성 (石金聖)"『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6. ↑ "석금성 (石金聖)"『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7. ↑ "최승일 (崔承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8.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3쪽.
  9.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3쪽.
  10.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5쪽.
  11.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5쪽.
  12.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5쪽.
  13.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5쪽.
  14.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6쪽.
  15. ↑ "영화배우 석금성",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online, 한국영상자료원(KOFA).
  16.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6-147쪽.
  17.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6-147쪽.
  18.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쪽.
  19.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쪽.
  20.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쪽.
  21.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쪽.
  22.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144.
  23.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144.
  24.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144.
  25.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144.
  26. ↑ 김남석,「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43-144.
  27. ↑ 김남석, 「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6쪽
  28. ↑ 김남석, 「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9쪽
  29. ↑ 김남석, 「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19쪽
  30. ↑ 김남석, 「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20쪽
  31. ↑ 김남석, 「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22쪽.
  32. ↑ 김남석, 「배우 석금성(石金星)의 연기 변모 양상 연구,『한국극예술연구22, 한국극예술학회, 2005, 122쪽.
  33. ↑ 김재석, 「토월회 연극의 근대성과 전근대성,『한국극예술연구』34, 한국극예술연구, 2011, 37쪽
  34. ↑ 김재석, 「토월회 연극의 근대성과 전근대성,『한국극예술연구』34, 한국극예술연구, 2011, 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