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

North Korea Humanities

강단비(CB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1월 25일 (화) 19:54 판 (② 전성기와 조선악극단 활동)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강단비(CBNU2025)])이 작성했습니다.




장세정(張世貞)
출처 :
 
한글명 장세정 한자명 張世貞 영문명 Jang Se-jeong 가나명 이칭
성별 여성 생년 1921년 몰년 2003년 출신지 평안남도 평양 전공 대중가요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1936년 평양방송국 개국 기념 공연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1937년 「연락선은 떠난다」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1]

이후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의 간판급 가수로 부상했다.[1]

광복 이후에도 1950년대 초까지 악극 무대에 꾸준히 서며 「울어라 은방울」,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표곡을 발표해 인기를 이어갔다.[1]

1970년대 초까지도 공연과 방송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였다.[1]


생애


① 초기 생애와 데뷔 과정

장세정은 1921년 평양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악기점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오케레코드 운영자 이철에게 발탁되면서 대중가요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이는 그녀의 음악 경력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오케레코드의 지원을 받으며 1937년에 정식으로 데뷔해 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② 전성기와 조선악극단 활동

데뷔 후 장세정은 오케레코드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이난영에 버금가는 주목받는 가수로 성장하였다. 이철의 후원을 기반으로 조선악극단에서 프리마돈나로 활약하며 그녀의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다양한 공연과 악극 무대를 통해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였다. 이 시기 그녀는 조선대중문화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하며 대중적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였다.


③ 전후 활동, 해외 이주와 생애 후반기

1944년 이철이 병사한 뒤 장세정은 한동안 공백기를 겪다가 연주가 한두사와 결혼하며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이하였다. 1960년대에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전후해 여러 차례 일본 공연에 참여하며 활동 범위를 해외로 확장하였다. 이후 1973년 무렵 미국으로 이민하였으나 건강 악화로 오랜 투병 끝에 2003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제목4


제목5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Person: 홍아무개 A hasSon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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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1. 1.0 1.1 1.2 1.3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