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하

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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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하(趙廣河)
제7대 조광하.png
출처 : "제 7대회장 조광하", (학회소개-역대임원)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한글명 조광하인물 한자명 趙廣河 영문명 JO GWANGHA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906년 몰년 1967[1] 출신지 함경남도 장진 전공 화학·교육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조광하(趙廣河, 1906년 ~ 1967년)는 한국의 화학자이자, 교육자였다.[2]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이학부 화학과기관를 졸업하고 동경의 이화학연구소 후카가와 유기화학연구실기관에서 6년, 오사카제국대학 이학부 오다케유기화학연구실기관에서 2년간 연구생활을 하였다.[3] 1943년 2월「천골(川骨)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원고 로 오사카제국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기관를 받고,[4] 그 뒤 성균관대학교기관에 화학과를 창설하고 대학원장과 총장을 역임하였다.[5][6] 한편, 대한화학회기관 회장으로서 학회 육성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원자력위원회 자문위원단체, 학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7]


생애


출생

조광하는 함경남도 장진 출생으로 경기고등보통학교기관·일본 제6고등학교기관를 졸업하였다.[8] 학업뿐 아니라 문학·예능·운동 등 여러 분야에 고루 타고난 재질을 갖추어 제6고등학교에서는 농구대표선수를 지내기도 하였다.[9] 나이에 비해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무척 젊으십니다.”라고 하자 ‘고생을 덜한 덕택’ 이라고 웃어넘겼다고 한다.[10]

쌀이라곤 좀처럼 구경하기도 어려웠다는 함남의 산골 장진 태생이지만 실상 그는 화려한 학력과 해방 직전까지 일본에서의 이력은 순탄하였다.[11] 또 그런 것이 박사로 하여금 만사에 넘치는 자신을 불어넣었고 이태규, 박철재 와 더불어 일제하에서 단 세 사람 밖에 없던 이학 박사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12][13]

과학도인 3남 1녀를 두었고, 조광하 박사 밑으로는 이화여중 교감과 서울고교 수학교사로 있는 아우가 있으며 몇 해 전 인권옹호유공자로 표창되었던 누이까지, 모두 교육자의 집안이기도 하다.[14]


일본유학생활 및 이학박사학위 취득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으며, 도호쿠제국대학 이학부 화학과기관를 졸업하였다.[15] 전공 분야의 대학을 나온 뒤 동경의 이화학연구소 후카가와유기화학연구실기관에서 6년, 오사카제국대학 이학부 오다케유기화학연구실기관에서 2년간 연구 생활을 하였다.[16] 1943년 2월 「천골(川骨)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원고 로 오사카제국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원고를 받았다.[17]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 중 하나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라고 한다.[18] 정확히는 일본에서 취득한 이학박사 2호이며, 1호에는 1931년 같은 화학분야로 일본에서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태규가 있다.[19][20] 위와 같이 1, 2호의 수식어가 붙을 만큼 당시 이학박사 학위 취득이 가진 의미는 상당했는데, 이는 당시 국내의 과학기술 및 고등교육은 일제강점기 전체에 걸쳐 열악한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21]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조선에는 공업전습소와 몇몇 간이(簡易)공업학교가 있을 뿐이었고, 교육내용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다.[22] 교육열은 크게 높아졌는데 이를 수용할 상급학교는 없었다.[23] 이러한 상황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다. 특히 순수과학의 상황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24] 수학은 20여 명, 물리학은 20명, 화학은 응용까지 합하여 이태규(李泰圭) · 리승기(李升基) · 김양하(金良瑕) · 최황(崔晃) · 조광하(趙廣河) 등 5명의 박사를 포함하여 50여 명, 생물학은 10여 명이었다.[25]


학술 발전에 기여

조선 학술원기관은 대한민국 학술원기관(회장 이호왕)의 모태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남북한 간 전쟁과 분단, 그리고 몇몇 멤버의 월북으로 인해 '잊힌 단체'가 되고 말았다.[26] 해방 당일부터 연락을 취해 8월 16일 서울 YMCA 회관에서 첫 모임을 열어 홍명희씨 등 17명을 조선학술원 설립준비위원으로 선정되었고 그날 저녁 경성공업고등학교에서 설립 총회를 개최했다.[27] 조선학술원 논문집 '학술'학술지 을 발간하는 등 46년 8월까지 활발히 활동했지만 몇몇 학자의 월북 등으로 인해 1년 만에 와해됐다.[28] 조선학술원의 위원장은 경제학자 백남운이었다.[29] 그 외에 조백현(농림학부장).김동일(서기국기획과위원).김호식(상임위원).윤일선(의학부장).이태규(상임위원).이승기(상임위원.월북).이양하(문학언어학부장) 도상록(이학부장).우장춘(상임위원) 등이 있었다.[30] 그중 조광하는 상임위원이었다.[31][32] 광복과 더불어 가장 먼저 발족한 조선학술원은 학계의 모든 부문을 포괄한 단체였다.[33] 그 안에는 이학부기관 · 공학부기관 · 기술총본부기관가 있었고 주요 과학기술자들이 망라되었다.[34] 그러나 이념적으로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이견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아 효율적인 운영을 할 수 없었다.[35] 또한 학회도 생겼는데 조선수물학회 · 조선화학회 · 조선생물학회 · 조선토목기술협회 · 조선건축기술협회 · 조선전기기술협회 · 조선기계기술협회 등이다.[36] 1945년에 12개, 1946년에 6개, 1947년에 14개 학회가 탄생했다.[37] 조선화학회는 1946년 7월 7일 창립되었다.[38] 1948년 제1회 연회 및 총회가 개최되었으며 1949년 1949년 9월 17일에 열린 간사회에서 '조선화학회'를 학회의 명칭을 '대한화학회'로 변경하기로 의결하였고 학회지의 이름을 '대한화학회지'학술지 로 결정하였다.[39] 대한화학회지 창간호는 1950년 6월에 발간되었다.[40] [41] 조광하는 1951년 4월~1954년 11월 대한화학회의 제4대,제5대 전충진과 함께 부회장직을 맡았으며, 이어서1957년 11월 ~ 1960년 11월까지 대한화학회의 제7대 회장직을 맡았다.[42] 그의 공적으로는 1958년 대한화학회 경북지부를 결성하고 간사장 제도를 시행한 것 등이 있다. [43] 또한 1945년 10월 19일에는 인공 중앙인민위원회, 학자·실업가·기업가초청경제대책간담회에 참여하여 경제건설의 기본방침에 관한 건, 조선의 휴면상태에 있는 경제의 부흥책에 관한 건, 조선인민 생활안정책에 관한 건(물자대책, 물가대책, 통화대책, 운수대책, 노동대책)에 대해서 논했다고 한다.[44]






연구


「천골(川骨)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논문 발행

조광하는 1943년 2월 「천골(川骨)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원고 로 오사카제국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기관를 받았다. 위 논문의 원문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천골의 성분 중 하나인 세스퀴테르펜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로 추정된다.

세스퀴테르펜은 퀴닌의 대체재로 처음 추출되었다.[45] 퀴닌은 알칼로이드이며 염기성 아민으로, 키나나무속 껍질에서 추출할 수 있는 천연 알칼로이드로써 해열, 진통,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되었다.[46] 그러나 부작용 때문에 퀴닌 계열 항말라리아제를 대체할 새로운 약물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락톤 고리를 가지를 세스퀴테르펜인 세스퀴테르펜 락톤이다.[47] 여기서 세스퀴테르펜은 세 개의 아이소프렌 단위로 구성된 테르펜의 한 종류이며, 식물이 곤충이나 해충을 쫓아내는 페로몬이다.[48] 세스퀴테르펜 락톤이 함유된 식물은 천골을 포함하여 쑥, 국화, 아티초크, 시금치, 셀러리, 파슬리 등이 있다.[49]

천골은 얕은 물 속에서 사는 여러해살이 풀인 수련과(Nymphaeaceae) 개연꽃(Nuphar)의 뿌리줄기이다.[50][51] 천골의 성분으로는 여러 종류의 세스퀴테르펜 알칼로이드가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는 주 성분인 누파리딘(nupharidine)이나 (-)-누파라민[(-)-nupharamine], (-)-데옥시누파리딘[(-)-deoxynupharidine] 등이 있다.[52][53] 이들 알칼로이드는 세스퀴테르펜(sesquiterpene)의 골격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테르페노이드(이소프레노이드) 생합성경로를 거치며, 중간에 어떤 형으로든 질소를 흡수하여 만들어진다고 여겨진다.[54][55]


간사장 제도 도입

조광하는 1951년 4월~1954년 11월 대한화학회기관의 제4대,제5대 전충진과 함께 부회장직을 맡았으며, 이어서1956년 ~ 1960년까지 대한화학회의 제7대 회장직을 맡았다.[56] 그의 공적으로는 1958년 대한화학회 경북지부를 결성하고 처음으로 간사장 제도를 시행한 것 등이 있다.[57] 실제 조광하 회장의 임기가 끝나고 그 다음해인 1961년부터 간사장 임원 기록을 확인 가능한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간사장직을 선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58] 간사장은 조직에서 중심이 되어 직무를 수행하는 직책이나 간사회의 장을 말하며, 특히 정당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이다.[59] 일본의 정당에서는 당대표의 직무 수행을 보좌하거나 당 운영, 국회 대책, 선거 대책을 담당한다.[60] 따라서 이는 당시 일본의 영향을 받은 직책명임을 유추할 수 있으며, 1997년을 마지막으로 해당 명칭의 직책은 대한화학회에서 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61]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과 총장을 역임

성균관대학교기관 화학과를 창설하였다.[62] 1953년 2월 성균관대학교는 단과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승격인가를 얻어 문리과대학, 법정대학, 약학대학의 3개 단과대학 및 대학원을 신설하고 12개 학과를 설치하였는데, 그중 화학과를 창설한 것이다.[63] 대학원장을 맡기도 하였으며, 1961년 9월 20일 제5대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취임식은 1961년 9월 26일에 있었다. [64][65] 조광하는 8.15 전에 귀국하여 한때는 경성방직주식회사 계열 중앙상공회사(고무공업)기관의 공장장을 지내다가 광복이 되면서부터는 줄곧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연세대학교기관 교수,[66][67] 서울대 공과대학기관 화공학과 교수를 거쳐 성균관 대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52년도이다.[68] 1960년 5월까지 3년간은 대학원장을 지낸 바가 있다.[69] 당시 총장 취임사에서는 반공을 기초로 한 건실한 학동 배양, 재건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군 배출, 유교 정신에 따른 국민도의 양성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이상자이기 보다는 현실적인 발판에 뿌리 박은 냉철한 과학자라는 것을 단적으로 밝혀주는 것이기도 하다.[70] 당시 인터뷰를 함께한 기자에게 “잘 좀 써주시오.” 하고 구김새 없이 터놓고 얘기하는 명랑 쾌활한 성격이나 “영어 회화가 좀 짧아서 비서에게 배워야겠다.”는 솔직한 대목이 그의 지도자다운 매력이며, 인간적인 폭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세계 유일의 유교 대학이자 고려 충렬왕 때에 창건된 기원을 더듬어 셈하면 세계 대학 사상 7위가 된다고 자랑하는 성균관 대학으로서는 확실히 비약을 꾀할 수 있는 시기에 박력 있는 총장을 맞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71]


성균관대학교 총장 취임식 직후 인터뷰 내용이 담긴 기사.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경기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일본 제6고등학교 A graduates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도호쿠제국대학 이학부 화학과 A graduates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동경 이화학연구소 후카가와 유기화학연구실 A takesCourseAt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오사카제국대학 이학부 오다케유기화학연구실 A takesCourseAt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연세대학교 A worksAt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A worksAt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경성방직주식회사 계열 중앙상공회사(고무공업) A worksAt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성균관대학교 A worksAt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오사카제국대학 이학부 박사과정 A takesCourseAt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대한화학회 A worksAt B
Person: 조광하 Institution: 조선학술원 A worksAt B
Person: 조광하 Group: 원자력 위원회 자문위원 A isMemberOf B
Person: 조광하 Article: 「천골(川骨)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 A isWriterOf B
Journal: 대한화학회지 Institution: 대한화학회 A publisher B
Journal: 조선학술원 논문집 '학술' Institution: 조선학술원 A publisher B
Institution: 대한민국학술원 Institution: 조선학술원 A isPredecessorOf B
Institution: 조선학술원 이학부 Institution: 조선학술원 A isAdjunctTo B
Institution: 조선학술원 공학부 Institution: 조선학술원 A isAdjunctTo B
Institution: 조선학술원 기술총본부 Institution: 조선학술원 A isAdjunctTo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 "성대 발자취", (1961-1970) 『성균관대학교 역사』online, 성균관대학교.
  • "역대회장", (학회소개-역대임원)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대한화학회 학회연혁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학회연혁", (학회소개-연혁)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 applepop, "알칼로이드(alkaloids)", 『네이버 블로그 - 한국순환학회,인아랑카페, 사상물리학/사상화학 연구소.』online, 작성일: 2020년 06월 01일.
  • Shinji Funayama, Geoffrey A. Cordell, 『Alkaloids: A Treasury of Poisons and Medicines』, Elsevier, 2014.
  • "간사장",『위키백과』online, Wikipedia, 작성일: 2007년 05월 16일.






주석


  1. 당시 쓰여진 기사에서 1967년 04월 25일 하오 6시 15분 자택에서 62세의 나이로 별세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9일 오전 발인 후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일령리 가족 묘지로 옮겨졌다. 필자미상「전 성균관대 총장 조광하 박사 별세」,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주), 작성일: 1967년 04월 26일.
  2. 현원복, "조광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현원복, "조광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해당 문서에 나와 있는 해방 당시 화학 및 화학공학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들에 해당함을 확인 가능하다. "한국물리학회 50년사", (한국물리학회 전체사) 『한국물리학회』online, 한국물리학회.
  5. 다음 문서에서 1961년 9월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함을 확인할 수 있다. "성대 발자취", (1961-1970) 『성균관대학교 역사』online, 성균관대학교.
  6. 이는 취임 당시 기사에서도 확인가능하다. 필자미상, "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7. 1957년에 제7대 회장으로 취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대회장", (학회소개-역대임원)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8. 현원복, "조광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9. 현원복, "조광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0. 1961년 9월26일, 성균관대학교 취임식을 막 끝내고 나서 기자와 한 인터뷰 속 대화이다. 당시 그의 나이가 57세 였음에도 불구하고 난생 처음 총장 취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기자가 이를 첫 질문으로 물을 정도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도 한다.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1. 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2. 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3. 해당 문서에 나와 있는 해방 당시 화학 및 화학공학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들에 해당함을 확인 가능하다. "한국물리학회 50년사", (한국물리학회 전체사) 『한국물리학회』online, 한국물리학회.
  14. 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5. 현원복, "조광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6. 현원복, "조광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7. 해당 문서에 나와 있는 해방 당시 화학 및 화학공학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들에 해당함을 확인 가능하다. "한국물리학회 50년사", (한국물리학회 전체사) 『한국물리학회』online, 한국물리학회.
  18. 필사이언,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는 누구인가?", 『네이버 블로그 - 필사이언』online, 작성일: 2024년 12월 27일.
  19. 필사이언,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는 누구인가?", 『네이버 블로그 - 필사이언』online, 작성일: 2024년 12월 27일.
  20. 이태규는 1931년 9월 「환원 니켈 존재 하에서 일산화탄소의 분해(제2보)」 논문을 통해 같은 화학분야로 일본의 교토제국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물리학회 50년사", (한국물리학회 전체사) 『한국물리학회』online, 한국물리학회.
  21.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2.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3.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4.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5.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6. 배영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6996 해방 다음날 '조선 학술원' 탄생했다 」,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주), 작성일: 2004년 08월 17일.
  27. 배영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6996 해방 다음날 '조선 학술원' 탄생했다 」,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주), 작성일: 2004년 08월 17일.
  28. 배영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6996 해방 다음날 '조선 학술원' 탄생했다 」,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주), 작성일: 2004년 08월 17일.
  29. 배영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6996 해방 다음날 '조선 학술원' 탄생했다 」,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주), 작성일: 2004년 08월 17일.
  30. 배영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6996 해방 다음날 '조선 학술원' 탄생했다 」,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주), 작성일: 2004년 08월 17일.
  31. 배영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6996 해방 다음날 '조선 학술원' 탄생했다 」,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주), 작성일: 2004년 08월 17일.
  32. 다음에서 조선학술원의 회원들은 확인할 수 있다. "조선학술원 창설(매일신보 1945년 09월 14일)",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작성일: 1945년 08월 16일.
  33.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4.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5.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6.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7. 임종태, "과학 (科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8. 대한화학회 학회연혁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학회연혁", (학회소개-연혁)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39. "대한화학회 창립과정", (화학이야기-대한화학회역사) 『화학과문화』online, 화학과문화
  40. 대한화학회 학회연혁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학회연혁", (학회소개-연혁)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41. "대한화학회 창립과정", (화학이야기-대한화학회역사) 『화학과문화』online, 화학과문화
  42. 제4대, 제5대 김동일이 회장을 맡았던 기간 동안 부회장을 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대임원", (학회소개-역대임원)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43. 대한화학회 회장 임기 중의 학회연혁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학회연혁", (학회소개-연혁)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44. "인공 중앙인민위원회, 학자·실업가·기업가초청경제대책간담회 예정(매일신보 1945년 10월 15일)",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작성일: 1945년 10월 15일.
  45. 다음 블로그를 참고함. applepop, "알칼로이드(alkaloids)", 『네이버 블로그 - 한국순환학회,인아랑카페, 사상물리학/사상화학 연구소.』online, 작성일: 2020년 06월 01일.
  46. 다음 블로그를 참고함. applepop, "알칼로이드(alkaloids)", 『네이버 블로그 - 한국순환학회,인아랑카페, 사상물리학/사상화학 연구소.』online, 작성일: 2020년 06월 01일.
  47. 다음 블로그를 참고함. applepop, "알칼로이드(alkaloids)", 『네이버 블로그 - 한국순환학회,인아랑카페, 사상물리학/사상화학 연구소.』online, 작성일: 2020년 06월 01일.
  48. 다음 블로그를 참고함. applepop, "알칼로이드(alkaloids)", 『네이버 블로그 - 한국순환학회,인아랑카페, 사상물리학/사상화학 연구소.』online, 작성일: 2020년 06월 01일.
  49. 다음 블로그를 참고함. applepop, "알칼로이드(alkaloids)", 『네이버 블로그 - 한국순환학회,인아랑카페, 사상물리학/사상화학 연구소.』online, 작성일: 2020년 06월 01일.
  50. 다음 블로그를 참고함. 스톰사랑, "[테르페노이드골격 유래의 알칼로이드 14.3 천골과 누파리딘류]", 『네이버 블로그 - jeon2410님의 블로그.』online, 작성일: 2020년 02월 10일.
  51. 천골의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가 담겨있는 원서이다. Shinji Funayama, Geoffrey A. Cordell, 『Alkaloids: A Treasury of Poisons and Medicines』, Elsevier, 2014.
  52. 다음 블로그를 참고함. 스톰사랑, "[테르페노이드골격 유래의 알칼로이드 14.3 천골과 누파리딘류]", 『네이버 블로그 - jeon2410님의 블로그.』online, 작성일: 2020년 02월 10일.
  53. 천골의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가 담겨있는 원서이다. Shinji Funayama, Geoffrey A. Cordell, 『Alkaloids: A Treasury of Poisons and Medicines』, Elsevier, 2014.
  54. 다음 블로그를 참고함. 스톰사랑, "[테르페노이드골격 유래의 알칼로이드 14.3 천골과 누파리딘류]", 『네이버 블로그 - jeon2410님의 블로그.』online, 작성일: 2020년 02월 10일.
  55. 천골의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가 담겨있는 원서이다. Shinji Funayama, Geoffrey A. Cordell, 『Alkaloids: A Treasury of Poisons and Medicines』, Elsevier, 2014.
  56. 제4대, 제5대 김동일이 회장을 맡았던 기간 동안 부회장을 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대임원", (학회소개-역대임원)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57. 대한화학회 회장 임기 중의 학회연혁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학회연혁", (학회소개-연혁)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58. 대한화학회 회장 임기 중의 학회연혁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학회연혁", (학회소개-연혁)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59. "간사장",『위키백과』online, Wikipedia, 작성일: 2007년 05월 16일.
  60. "간사장",『위키백과』online, Wikipedia, 작성일: 2007년 05월 16일.
  61. 역대 간사장 명단을 통해 확인 가능할 수 있다. "역대간사장", (학회소개-역대임원) 『대한화학회』online, 대한화학회
  62. 현원복, "조광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3. "성대 발자취", (1951-1960) 『성균관대학교 역사』online, 성균관대학교.
  64. "성대 발자취", (1961-1970) 『성균관대학교 역사』online, 성균관대학교.
  65. "성균관대학교", (총장실-역대총장) 『성균관대학교』online, 성균관대학교.
  66. 그가 교수였던 당시에는 명칭이 연희대학교 였지만(1946~1956) 기사 발행 당시에는 학교 이름이 연세대학교로 바뀌었기 때문에(1957~) 기사에는 해당 명칭으로 언급된다.
  67. "연세의 발자취", 『연세대학교』online, 연세대학교.
  68. 1961년 인터뷰 당시 성균관 대학과는 9년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고 했기에, 1952년부터 인연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69. 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70. 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
  71. 새 얼굴 ; 成大總長 趙廣河博士 情熱的인 科學者 華麗한 學歷에 幅넓은 人間性」, 『동아일보』, 1961년 09월 27일 02면, 『한국 현대 사료 DB』online,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