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제

North Korea Humanities

우세윤(K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2월 13일 (금) 19:59 판 (한국 금융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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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제(高承濟)
고승제 학자.jpg
출처 : 위키백과online
 
한글명 고승제 한자명 高承濟 영문명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17년 2월 5일년 몰년 1995년 12월 1일년 출신지 함경남도 홍원군 전공 경제학자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고승제는 함경남도 출신 경제학자로, 일본 릿쿄대학과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친일 논조의 글을 다수 기고하며 일제에 협력했고, 이는 해방 이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지정되었으며, 학문적 업적과 논란이 함께 평가된다. ​


생애


출생과 성장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으로, 1931년 3월에 함경남도 삼호공립보통학교기관, 1936년 3월에 함흥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1936년 4월부터 1937년 3월까지 메이지가쿠인 영문과에 재학했고 1937년 4월부터 1939년 3월까지 니혼 대학 예과기관에 재학했다. 이러한 성장과정은 이후 경제학자로서 활동하는 데 토대를 마련했다.


니혼 대학 재학 후

1939년 4월부터 1941년 12월까지 릿쿄 대학 경제학과기관를 졸업했고 1942년 3월부터 1943년 7월까지 야마자키 경제근무소, 1943년 8월부터 1945년 도요 경제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도요 경제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매일신보》,《국민문학》, 《조광》에 일본 제국의 대동아 공영권 정책사건, 전시 통제 경제 정책사건, 징병제 실시사건 등을 지지하고 조선인들이 태평양 전쟁에 협조할 것을 독려하는 논설을 게재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교수활동

1945년 9월부터 1949년 6월까지 연희전문학교 부교수를, 1950년 3월부터 1957년 6월까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교수를 지냈고, 1951년 9월부터 1957년 6월까지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교수를 지냈다. 1954년 5월부터는 대한민국학술원단체 회원이 되었으며, 1950년 5월부터 1961년 1월까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교수활동을 하며 다수의 저서를 통해 학문적 기여를 했다.


대한민국 제 1공화국 시대 이후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대부터 정부 정책의 자문역을 맡아오다가 1961년 2월부터 1963년 4월까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부 연구 교수를 지냈다. 1963년 5월부터 1964년 8월까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사학부 연구 교수를, 1964년 9월부터 1967년 12월까지 시카고 대학교 연구 교수를 지냈다.특히,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 구조와 금융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으며, 그의 연구는 경제발전에 있어 이론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년

저서로《한국경제론》서적 [1], 《한국금융사연구》서적, 《한국근대화론》서적 등이 있다. 말년에는 정약용 연구에 몰두하여 《다산을 찾아서》서적를 펴냈다. 1969년에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했고, 1970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1995년에 사망하며 경제학자로서의 학문적 업적과 논란을 동시에 남겼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지정하며 일제강점기 활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내렸다.





연구


한국 경제사의 분석

고승제는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며, 전통 경제와 근대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분석한다. 《한국경제론》(1956년)에서 조선 후기 경제 체제의 특징과 일제강점기의 경제 침탈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연구는 한국 경제의 토착적 특성과 외부적 요인의 상호작용을 조명하며, 해방 이후 경제 재건의 방향성을 탐구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조선 후기의 농업 생산성 변화와 일제 강점기 토지조사 사업사건이 경제 구조에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한국 금융사 연구

고승제는 금융 제도의 발전사를 통해 한국 경제의 근대화 과정을 탐구했다. 《한국금융사연구》[2](1970년)에서는 조선 후기 전통 금융 제도의 특성과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일본식 금융 체제의 영향을 분석한다. 그는 금융 시스템이 산업화와 경제 성장에 기여한 방식을 규명하며, 식민지 금융 제도가 조선 경제에 미친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균형 있게 다룬다. 이를 통해 근대 금융의 기능이 경제적 자율성을 약화시켰음을 강조한다.


전쟁경제와 대동아 공영권

고승제는 전쟁 경제 체제를 정당화하고 대동아 공영권을 옹호하는 글을 다수 기고한다. 그는 기고문에서 전시 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 정책을 옹호하는 논조를 펼친다. 이는 일제의 침략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학문적 관점에서 지원한 것으로 평가되며, 고승제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활동은 전시 조선 경제의 동원 체제 강화와 자원의 강제적 배분에 협력하는 결과를 낳았다.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고승제 Institution: 삼호공립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고승제 Institution: 함흥공립농업학교 A graduates B
Person: 고승제 Institution: 도요 경제 연구소 A worksAt B
Person: 고승제 Group: 한국 개발 연구원 A isMemberOf B
Book: 다산을 찾아서 Person: 고승제 A creator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위키백과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