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탑파의 연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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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탑파의 연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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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朝鮮塔婆의 硏究(二)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 역자 @ 집필일자 @ 게재연월 @
시작쪽 59쪽 종료쪽 99쪽 전체쪽 41쪽 연재여부 연재 범주 논문 분야 역사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三. 石造婆塔


필자는 전고의 제 1항에서 조선의 목조 탑파 건물을 말하였고, 제 2항에서 조선의 전조 탑파 건물을 말하였다. 다시 이어 이곳에서 조선의 석조 탑파를 말하려 하거니와, 전고와 이 속고와의 사이엔 어언 1년 이상 근 2년이란 간격이 생겨, 생각하면 짧은 기간인 듯하나 그 간에 부여군 내의 읍군수리와 규암면외리에서는 희귀한 백제 사적이 발굴되어 학계의 일경이틀 끼친 중, 특히 군수리사지에선 목조탑파의 기지와 불보살의 발견이 있어, 조선에 흔치 아니한 현대문주1▶목조 탑파 연구에 새로운 자료를 제공한 바 있었고[a 1], 작년 11월 중순에 들어 필자가 경주에 놀다가 그곳 동호의 모우로부터 칠곡 동명송림사에서 괴조 5중탑을 목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전조 탑파에도 자료가 늘어가는 것을 느낄 때, 졸고의 이 발표가 너무 급하지 아니하였던가 하고 후회도 하여보았으며, 또다시 내가 이곳에 쓰고 있는 석탑의 문제에 관하여서도 그 자료를 충분히 내 마음껏 수집하였다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앞으로 시일을 기다린다 해도 돌연한 세월만 보낼 뿐이요 소망의 완전한 수집이 기필되리라고는 날이 갈수록 미더움이 넓어지니 불충분한 현상대로나마 소견의 정도를 피력하자는 것이다.
쪽수▶P59筆者는 前稿의 第一項에서 朝鮮의 木造 塔婆 建物을 말하였고, 第二項에서 朝鮮의 塼造 塔婆 建物을 말하였다. 다시 이여 이곳에서 朝鮮의 石造 塔婆를 말하려 하거니와, 前稿와 이 續稿와의 사이엔 於焉 1年 以上 近 2年이란 間隔이 생겨, 생각하면 짧은 期間인 듯하나 그 간에 扶餘郡 內의 邑軍守里와 窺岩面外里에서는 稀貴한 百濟 寺跡이 發掘되여 學界의 一驚異틀 끼친 中, 特히 軍守里寺址예선 木造 塔婆의 基地와 佛菩薩의 發見이 있어, 朝鮮에 흔치 아니한 원문주번호▶ 木造 塔婆 研究에 一新資料를 提供한 바 있었고[1], 昨年 11月 中旬에 들어 筆者가 慶州에 놀다가 그곳 同好의 某友로부터 漆谷 東明松林寺에서 壞造 5重塔을 目睹하였다는 逍息을 듣고 塼造 塔婆에도 資料가 불어가는 것을 느낄 때, 拙稿의 이 發表가 너무 急하지 아니하였던가하고 後悔도 하여보았으며, 또다시 내가 이곳에 쓰고 있는 石塔의 問題에 關하여서도 그 資料를 充分히 내 마음껏 蒐集하였다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앞으로 時日을 기다린대야 突然한 歲月만 보낼 뿐이요 所望의 完全한 蒐集이 期必되리라고는 날이 갈수록에 믿어움이 넓어지매 不充分한 現狀대로나마 所見의 程度를 披攊 ▶P60-1하자는 것이다.
전고에서 나는 조선 석탑의 발생 원인으로, 1. 건축 재료의 생산 경제의 관계, 2. 수법공기의 난역 문제, 3. 원성공납의 시급 문제, 4. 보존시일의 장구영속 문제 등, 제반 외면적 이유를 나열하였지만, 이러한 외면적 동기 이외에 다시 그 내면적 동기를 보더라도 우선 현대문주2▶교리상, 대소와 및 재료에 하등의 제한과 차별이 없었던 듯하며[a 2], 또 조형적 의미에서 보더라도 탑파는 요컨댄 현대문주3▶『封樹遺靈 扁針法藏 冀表河砂之德 庶酬塵却之勢』[a 3]키 위한 기념적 건물(Monumentalische Architektur)이라 인도 자체에 있어서도 원시 탑파는 모두 내부가 충새된 괴체 건물(Massen Bau)임을 볼때 내새된 괴체 건물의 양식을 필경코 잡고 나선 조선의 석탑이야말로 결국은 원의의 탑파로 회귀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점에서도 내새된 괴체로서의 석조 탑파(이곳에 내새이라함은 내실 양식의 공간을 갖지 아니한 것을 뜻함이니 사리를 양숭키 위한 탑신의 망혈은 문제가 아니다)가 성행될 원인이 있다 하겠다. 물론 이 점만은 혹 독자─있어 조선 석탑의 발생 원인도 될 수 없거니와 촉진시킨 근기도 될 수 없다고 반대할 사람이 있으리라. 그 반대의 이유는 반드시 이러하리라─현대문주4▶즉 조선의 일반 석탑이 그 결과에 있어선 비록 내새된 괴체 건물이라하나 그 외양에 나타난 전반적 특색은 끝끝내 내공 형식을 고집한 [a 4] 중화 전통의 목조 탑파 양식을 모방함에 급급하여 심지어 탑신의 문호헌창의 조식까지도 이러한 의욕을 표시하여있고, 인도고탑의, 사실로 내새된 괴체 양식이란 승려의 묘탑 형식(특히 석종형식) 이외에 조선의 일반 석탑에선 볼 수 없는 점이 아니냐고─물론 이것은 사실다운 이유일 뿐 아니라 필자 역시 지실하고 있는 바이며, 필자가 또 조선 석탑의 출발을 짓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곡산의 폐미륵사 석탑까지도 진실로 곧 내공된 목조 탑파 양식을 그대로 직역하고 있는 것으로 이 사실에 하등 반대는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조선 석탑의 발생의 동기, 촉진의 동기가 아니 되었으리라고도 반대할 수 없는 것으로 믿나니, 왜 그러냐하면 조선 석탑파가 사실에 있어 저 내공된 목조 탑파의 형식을 재현함에서 출발하였고, 또 재현함에서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탑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성격이라든지 교리상 내면적 성격이라든지 작가의 의식 무의식 내지 요구 불요구를 무시하고 조형적인 것으로의 예술 유형상, 탑파는 한 개의 "기념적인 것"에 뻔한 것이고 보며, 시대가 의식했건 못했건 예술적 원칙이 그곳에도 있었던 것으로 인정치 아니할 수 없는 까닭이다. 탑파가 고도로 높아지는 것도 교리상으론 "적취의 공덕"의 소치라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예술 원 칙으로 말하면 그것이 "기념적인 것"인 까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면 탑파나 Obalisque나 Pyramid나 기공비 등이 다름이 없다 하겠다. 그러므로해서 목조 탑파에서 석조 탑파로 넘어가매 그 필연성을 볼 수 있는 것이요 (전조 탑파로 넘어버리지 못한 것은 오직 생산경제 관계로 돌릴 수 있다)석조 탑파로 넘고보매 다시 내새된 괴체 건물로 급변될 수 있는 것도 이해되는 것이라 하겠다.
쪽수▶P60-2前稿에서 나는 朝鮮 石塔의 發生 原因으로, 一曰 建築 材料의 生産 經濟의 關係, 二曰 手法工技의 難易 問題, 三曰 願成供納의 時急 問題, 四曰 保存時日의 長久永續 問題 等, 諸般 外面的 理由를 羅列하였지만, 이러한 外面的 動機 以外에 다시 그 內面的 動機를 보더라도 爲先 원문주2▶敎理上, 大小와 및 材料에 何等의 制限과 差別이 없었던 듯하며 [2](주석2), 또 造型的 意味에서 보더라도 塔婆는 要컨댄 원문주3▶『封樹遺靈 扁針法藏 冀表河砂之德 庶酬塵却之勢』[3]키 爲한 記念的 建物(Monumentalische Architektur)이라 印度 自體에 있어서도 原始 塔婆는 모두 內部가 充塞된 塊體 建物(Massen Bau)임을 볼때 內塞된 塊體 建物의 樣式을 畢竟코 잡고 나선 朝鮮의 石塔이야말로 結局은 原意의 塔婆로 回歸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即 이 點에서도 內塞된 塊體로서의 石造 塔婆(이곳에 內塞이라함은 內室 樣式의 空間을 갖지 아니한 것을 뜻함이니 舍利를 兩菘키 爲한 塔身의 蟒穴은 問題가 아니다)가 盛行될 原因이 있다 하겠다. 勿論 이 點만은 혹 讀者─있어 朝鮮 石塔의 發生 原因도 될 수 없거니와 促進시킨 根機도 될 수 없다고 反對할 사람이 있으리라. 그 反對의 理由는 반드시 이러하리라─원문주4▶卽 朝鮮의 一般 石塔이 그 結果에 있어선 비록 內塞된 塊體 建物이라하나 그 外樣에 나타난 全般的 特色은 끝끝내 內空 形式을 固執한 [4] 中華 傳統의 木造 塔婆 樣式을 模倣함에 汲汲하여 甚至於 塔身의 門戶櫶窓의 彫飾까지도 이러한 意欲을 表示하여있고, 印度古塔의, 事實로 內塞된 塊體 樣式이란 僧侶의 墓塔 形式(特히 石鍾形式) 以外에 朝鮮의 一般 石塔에선 볼 수 없는 點이 아니냐고─勿論 이것은 事實다운 理由일 뿐 아니라 筆者 역시 知悉하고 있는 바이며, 筆者가 또 朝鮮 石塔의 出發을 짓고 있는 것으로 認定하고 있는 谷山의 廢彌勒寺 石塔까지도 眞實로 곧 內空된 木造 塔婆 樣式을 그대로 直譯하고 있는 것이매 이 事實에 何等 反對는 없으나, 그렇다고하여 이것이 朝鮮 石塔의 發生의 動機, 促進의 動機가 아▶P61-1니 되었으리라고도 反對할 수 없는 것으로 믿나니, 왜 그러냐하면 朝鮮 石塔婆가 事實에 있어 저 內空된 木造 塔婆의 形式을 再現함에서 出發하였고, 또 再現함에서 發展되었다 하더라도 塔婆 그 自體가 가지고 있는 歷史的 社會的 性格이라든지 敎理上 內面的 性格이라든지 作家의 意識 無意識 乃至 要求 不要求를 無視하고 造型的인 것으로의 藝術 類型上, 塔婆는 한 개의 "記念的인 것"에 뻔한 것이고 보매, 時代가 意識했건 못했건 藝術的 原則이 그곳에도 있었는 것으로 認定치 아니할 수 없는 까닭이다. 塔婆가 高度로 높아지는 것도 敎理上으론 "積聚의 功德"의 所致라 說明할 수 있겠지만, 藝術 原 則으로 말하면 그것이 "記念的인 것"인 까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點에서 볼제 塔婆나 Obalisque나 Pyramid나 紀功碑 等이 다름이 없다 하겠다. 그러므로해서 木造 塔婆에서 石造 塔婆로 넘어가매 그 必然性을 볼 수 있는 것이요 (塼造 塔婆로 넘어버리지 못한 것은 오직 生産經濟 關係로 돌릴 수 있다)石造 塔婆로 넘고보매 다시 內塞된 塊體 建物로 急變될 수 있는 것도 理解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리하여 조선 석탑파는 발생되었고 또 발전되었으니, 그러면 어떠한 양식적 계열을 이룸으로써 전개되었는가를 우리는 이로부터 장을 바꾸어 고찰할까 한다.
쪽수▶P61-2이리하여 朝鮮 石塔婆는 發生되었고 또 發展되었나니, 그러면 어떠한 樣式的 系列을 이룸으로써 展開되었는가를 우리는 이로부터 章을 바꾸어 考察할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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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62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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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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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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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원문주


  1. 朝鮮古蹟研究會 發行 昭和 11年 度古蹟調査報告 參照
  2. 造塔功德經 一節에 「爾時 世尊告觀世音菩薩言 善男子 若此現在諸天眾等及未來世一切眾生 隨所在方 未有塔處 能於其中建立之者 其狀高妙 出過三界 乃至至小如菴羅果 所有表刹 上至梵天 乃至至小猶如針等 所有輪蓋覆彼大千 乃至小猶如棗葉 於彼塔內 藏掩如來所有舍利髮牙髭爪 下至一分 或置如來所有法藏十二部經 下至於一四句偈 其人功德 如彼梵天 命終之後生於梵世 於彼壽盡生五淨居 與彼諸天等 無有異」라 하였고 또 毗婆娑論 一節에는「若入起大塔 如來轉法輪處 若人取小石為塔 其福德 等前大塔 所爲尊 故若爲如 來大梵 起大塔 或起小塔 以所爲同 故其福無量」云云이라 있다.
  3. 造塔功德經 序.
  4. 神尾弌春 著 契丹佛教文化史考 第三項.






현대문주


  1. 조선고적연구회 발행 소화 11년 도고적조사보고 참조
  2. 조탑공덕경 일절에 「爾時 世尊告觀世音菩薩言 善男子 若此現在諸天眾等及未來世一切眾生 隨所在方 未有塔處 能於其中建立之者 其狀高妙 出過三界 乃至至小如菴羅果 所有表刹 上至梵天 乃至至小猶如針等 所有輪蓋覆彼大千 乃至小猶如棗葉 於彼塔內 藏掩如來所有舍利髮牙髭爪 下至一分 或置如來所有法藏十二部經 下至於一四句偈 其人功德 如彼梵天 命終之後生於梵世 於彼壽盡生五淨居 與彼諸天等 無有異」라 하였고 또 毗婆娑論 一節에는「若入起大塔 如來轉法輪處 若人取小石為塔 其福德 等前大塔 所爲尊 故若爲如 來大梵 起大塔 或起小塔 以所爲同 故其福無量」운운이라 있다.
  3. 조탑공덕경 서.
  4. 신미일춘(神尾弌春) 저 계단불교문화사고 제 3항.